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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시

룽징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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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시
龙井市
Longjing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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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131f><colcolor=#ffffff> 인민정부 소재지 육도하로 869-1 (안민가도)
상위 행정구역 연변조선족자치주
하위 행정구역 3가도 5진 2향
면적 2,208.8㎢
인구 약 151,100명
인구 밀도 68.4명/㎢
서기
박군봉
시장
황병호
지역번호 0433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30px-Yanbian-map.png

1. 개요2. 역사3. 지리4. 행정구역5. 경제6. 학교7. 출신 인물8. 기타

1. 개요

중국어 간체: 龙井, 정체: 龍井
한어병음: Lóngjǐng
문화어: 룡두레, 룡정
표준어: 용정, 룽징[1]
외래어 표기법: 룽징

파일:용두레우물.jpg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 면적은 2,591km², 인구는 26만여 명이고 연변 내 모든 행정구역 중 조선족 비율이 가장 높아 70%에 이른다.

특이하게도 만주족이나 한족이 아닌 조선족이 개척한 도시다. 용정시에 있는 용두레우물은 용정시의 이름의 기원이 되는 곳으로 이 샘으로 인해서 이곳에 마을이 들어섰다. 지금은 그 자리에 용정지명기원지정천(龍井地名起源之井泉)이라고 쓰인 비석과 함께 1986년 용정현 인민정부에서 복원한 우물이 남아 있다. 이 우물은 본래 이 지역에 살던 만주족들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1879년부터 1880년대 사이에 조선에서 넘어 온 청년 장인석·박인언이 다시 발견하였고 우물가에다 '용두레'를 세웠다. 1934년 용정촌에 살던 주민 이기섭의 주도 하에 우물을 수선하고 약 2m 높이의 비석 1기를 세워 '용정지명기원지우물'이라고 새겼다. 그러다가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86년 용정현 인민정부에서 우물을 새로 파고 비석을 세웠다.

이 우물이 있는 지역에 '거룡우호공원(巨龍友好公園)'이라고 하는 작은 공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1996년 경상남도 거제시와 국외 자매결연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9월 준공된 공원이다.# 거제시(巨濟市)의 거(巨)와 용정시의 용(龍)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공원 이름을 지었다. 예전에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는데 2019년 6월에는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다.

용정시내에 현재 지린성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용정일본총영사관 유적 및 총영사주택이 남아 있으며 용정실험소학교 운동장 내에 독립유공자 이상설이 세운 학교인 서전서숙(瑞甸書塾) 터가 남아 있다.

용정시 근교에 가곡 <선구자>로 알려진 정자 일송정이 있으며 시인 윤동주의 생가와 묘소, 독립유공자 송몽규·현석칠 묘소, 용정에서의 3.1 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봉천군벌의 무차별 발포로 순국한 17명의 의사가 안장된 '3.13 반일의사릉' 등이 있다. 이곳에 안장된 17의사 중 이균필(李均弼, 이명 이요슬李堯瑟)을 제외한 공덕흡·김병영(金炳榮)·김승록(金承祿)·김종묵(金鍾默)·김태균(金泰均)·김흥식(金興植)·박문호·박상진·이유주(李裕周)·장학관·정시익·차정룡·채창헌·최익선(崔益善)·현봉률·현상로 등 16명의 의사들은 현재 모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어 독립유공자다.

2. 역사

룡정시 변천사
연도 당시 행정구역
1881 남강초간분국
南崗招墾分局
1902 훈춘부도통 연길청
琿春副都統 延吉廳
1909 길림성 동남로도 연길부
吉林省 東南路道 延吉府
1913 길림성 연길도 연길현
吉林省延吉道延吉縣
1932 길림성 연변독찰전원공서 연길현
吉林省延邊督察專員公署延吉縣
1934.12. 간도성 연길현
間島省延吉縣
1945.11. 연변지구 연길현
延邊地區延吉縣
1946.1. 길료성 길동분성 연길현
吉遼省吉東分省延吉縣
1946.7. 길동전구 연길현
吉東專區延吉縣
1947.2.15. 연변전구 연길현
延邊專區延吉縣
1952.9.3.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연길현
延边朝鲜民族自治区延吉县
1953.5.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연길시
延边朝鲜民族自治区延吉市
1955.12.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현
延边朝鲜族自治州延吉县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延边朝鲜族自治州延吉市
1983.3.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현
延边朝鲜族自治州龙井县
1988 룡정시
龙井市
2008 룡정시
龙井市
조양천진 편입

1881년(광서 7) 청나라 정부가 두만강 북쪽 지역에 대한 봉금령(封禁令)을 해제하고 남강초간분국(南崗招墾分局)을 설치해 조선과의 국경에 이민하도록 독려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조선인들의 이민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1902년에는 청나라 정부가 국자가(局子街)[2]에 연길청(延吉廳)을 설치하고 혼춘부도통(琿春副都統)의 관할 아래에 두었다. 1909년(선통 1) 청나라 정부가 연길청을 연길부(延吉府)로 개칭하고 지린성 동남로 분순병비도(東南路分巡兵備道)의 관할 아래에 두었다.

1913년 연길부가 연길현(延吉縣)으로 개칭되었고 길림성 연길도윤공속(延吉道尹公屬)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간행된 《연길현지(延吉縣誌)》에 따르면 연길현 전체의 총 인구수는 115,961명이었는데 그 중 조선인이 65,855명으로 전체 약 56.8%에 해당했다. 1929년에는 연길현공서(延吉縣公署)가 연길현정부(延吉縣政府)로 개칭되었고 향(乡)이 구(區)로 바뀌었다.

1932년 만주국이 수립된 뒤 연길현정부가 다시 연길현공서로 개칭되었고 길림성 연변독찰전원공서(延邊督察專員公署) 판사처(辦事處)의 관할 아래에 두었다. 1934년 12월 연길현이 간도성(間島省) 관할이 되었다.

1945년 만주국이 패망하자마자 중국공산당이 점령하여 그해 11월 연길현 인민정부가 수립되었고 연길시, 용정시, 도문시, 명월구시(明月溝市) 등 4개의 시와 18개 구가 설치되었다. 연길현 인민정부는 이 중 연길시에 위치하게 되었다. 1950년 10월 중국공산당 연길현 위원회와 연길현 정부기관이 연길시에서 용정시로 옮겨졌다. 1952년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구(自治區)가 수립된 뒤 연길현이 연변 조선족 자치구 관할이 되었다. 1953년 5월 연길시에서 연길현(延吉縣)이 따로 설치되었다.

1955년 12월 연변 조선족 자치구가 연변 조선족 자치주(自治州)로 격하되었다. 1965년 4월 도문진(圖們镇)이 연길현에서 분리되어 도문시가 되었다. 1983년 4월 7일 연길현이 소재지의 이름을 따서 용정현(龍井縣)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5월 25일 용정현이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용정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3. 지리

동남쪽으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접해 있다. 동북쪽으로는 연길, 도문, 서남쪽으로는 화룡, 서북쪽으로는 안도에 접해 있다. 백두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도시 가운데로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이 흐른다.

4. 행정구역

2023년 기준으로 3개의 가도, 5개의 진, 2개의 향[3], 65개의 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더 많았는데 지속적인 행정 개편을 거치면서 지금의 숫자로 줄었다.

5. 경제

연길시와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임에도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가난한 접경지대라 인구가 많이 빠져나갔다. 연길시 문서에서 볼 수 있듯 인구유출 문제가 전반적으로 심각한데 이 곳은 더욱 심하게 발생한다. 연길시는 조선족 인구가 빠지는 대신 다른 지역 인구라도 유입되지 용정시는 북한이탈주민 정도를 제외하면 유입되는 인구가 거의 없어 경기침체가 더 심해진다는 악순환이 생기기 때문이다. 길거리에는 장사를 접은 가게 건물들이 자주 보이고 저녁 8시만 돼도 길거리는 엄청나게 한산해지며 9시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시가지만 해도 이 정도이며 개산툰처럼 시가지와 멀리 떨어진 지역은 대낮에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6. 학교

7. 출신 인물

8. 기타


[1] 복수표준어이다.[2]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3] 진과 향의 등급은 동등하나 진은 , 향은 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