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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4:29:32

로버트 한센



1. 개요2. 생애
2.1. 출생과 성장2.2. 재혼, 그리고 앵커리지 이주2.3. 선한 제과점 주인의 끔찍한 이면2.4. 드러난 사건의 전모2.5. 사망
3. 미디어에서4. 기타

1. 개요

파일:HANSEN.jpg

Robert Christian Hansen(1939.02.15~2014.08.21)

미국연쇄살인자. 'Butcher Baker'라는 별명[1]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로버트 크리스천 한센은 1939년 아이오와주 애스터빌에서 덴마크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2세때 어머니는 실종되고, 지배적인 성향을 가진 제빵사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한센은 내향적인 성격에 심한 말더듬이였고, 여드름이 유난히 많은 탓에 학교에서 종종 놀림감이 되곤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여성을 증오하게 되었고, 항상 여성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하는 망상을 하며 성장했다. 그가 유독 여성을 증오하게 된 것은 학교의 여자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그를 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7년 한센은 미군 예비역으로 1년간 복무 후 아이오와주 포카혼타스의 경찰학교 조교로 일하면서 1960년에 결혼했으나, 동년 12월 7일 포카혼타스 카운티 교육청 버스 차고 방화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가 수감된 동안 아내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혼했고, 출소 후에도 절도죄로 여러 차례 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2.2. 재혼, 그리고 앵커리지 이주

이후 한센은 1963년에 재혼하여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20대 후반이 된 1967년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이주한 그는 지역 사냥 대회에 참가하여 기록을 세우고 이웃들에게 호감을 얻는 한편, 제과점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에도 앞장서는 등 선행에도 힘쓰며 앵커리지 지역사회의 든든한 후원자로 이름을 알렸다. 또한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로서 그야말로 이상적인 모범 가장의 모습을 보이면서 지역민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지만....

2.3. 선한 제과점 주인의 끔찍한 이면

그의 실체는 1970년부터 1983년에 걸쳐 무려 21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이 21명이라는 숫자는 살해 혐의가 인정된 희생자 수고,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71년경부터 한센은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거금을 들여 매춘부를 사들였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매춘부들을 폭행하고 성폭행을 저질렀다. 결국 1972년에 매춘부 폭행 혐의로 6개월 동안 복역 후 출소, 1976년에는 앵커리지의 한 백화점에서 쇠사슬을 훔치다 잡혀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알래스카 주 대법원은 형량을 감형한 데 더해 조울증을 이유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한 뒤 그를 석방했다. 이 때 그가 쇠사슬을 훔친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여성들을 고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한센의 범행 방식은 한 마디로 인간 사냥이었다. 그는 알래스카 송유관 공사가 한창이던 당시 외지에서 몰려온 매춘부들을 대상으로 경비행기를 태워 주겠다며 유인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돈을 주어 돌려보냈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갑이나 쇠사슬로 결박해서 인적이 없는 자신의 오두막 지하실로 끌고 가 고문과 성폭행을 자행했다.[2] 그리고 여성들의 옷을 벗겨 일부러 풀어주고 어느 정도 도망치게 놔둔 다음,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피해자들을 뒤쫓으며 곰 사냥에 사용하던 엽총으로 쏴 죽이는 잔인한 악행들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런 잔혹한 수법으로 20여명에 달하는 여성을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센의 살인 행각은 후술될 생존 피해자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무려 13년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았다. 이는 앵커리지 지역 사회에 공헌한 후원자라는 한센의 표면적인 모습에 더해 그가 신원이 불분명한 매춘부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데다, 피해자들을 인적이 드문 오지로 끌고 가 살해한 뒤 얼어붙은 땅에 시신을 암매장했기 때문에 땅이 녹기 전까지 시신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3]

2.4. 드러난 사건의 전모

1983년 6월 13일 한센에게 납치당했던 17세 소녀 신디 폴슨의 증언으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한센은 폴슨을 납치, 성폭행한 뒤 자신의 경비행기에 태우려 했으나, 그가 방심한 사이 폴슨은 수갑이 채워진 채 맨발로 도주했다. 가까스로 한센에게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폴슨은 씻지 않은 채 그대로 경찰서를 찾아가[4] 한센의 인상착의와 말더듬이, 경비행기 등 특징을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경찰은 이를 토대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한센의 집을 불시 수색한다.

그리고 경찰은 박제된 동물들과 희생자의 유류품 일부, 그리고 24개의 표시가 된 항공 지도를 발견하는데, 지도의 표시 중 일부가 피해자들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와 일치했다. 결국 한센은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가석방 없는 46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처음 펜실베이니아 루이스버그 교도소에 투옥되었다가 1988년 알래스카로 돌아가 레몬 크릭 교정센터에 잠시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2014년 5월까지 슈어드의 스프링 크릭 교정센터에 수감되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앵커리지 교도소로 옮겨갔다.

2.5. 사망

2014년 8월 21일 앵커리지의 한 병원에서 75세로 사망했다.

3. 미디어에서

4. 기타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의 감독 스콧 워커는 신디 폴슨과 50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한 한센의 범죄 내용이 영화 속에 다 담기에는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에 차마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하고, 상당 부분 순화해서 실제 사건에 비해 범죄 묘사의 수위를 대폭 낮춰 제작했다고 한다. 전술되었듯 실제의 한센이 희생자들에게 고문까지 자행한데다, 살해 수법이 수법인지라 극중에서 재현하는 데 거부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명이인으로 로버트 한센(Robert Hanssen, 1944~2023)이 있는데[7], 이 사람도 로버트 한센과 비슷한 수준의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 자는 FBI 직원으로 일하며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소련에 미국의 1급 기밀들을 팔아넘긴 희대의 매국노로, 죗값답게 15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매국노/예시 문서에 또 다른 로버트 한센의 악행이 자세히 나온다.
[1] Butcher는 도살자, Baker는 빵집 주인이라는 의미로, 후술될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비롯된 별명이다.[2] 이 때 참으로 뻔뻔하게도 피해 여성 근처 소파에 누워서 느긋하게 잠을 자기까지 했다고 한다.[3] 이 사건을 다룬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의 제목이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4] 자신에게 남은 성폭행 흔적이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다고 하며, 성폭행 사건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처 방법이기도 하다. 같은 사례로 2016년에 발생한 흑산도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자신의 신체 상태를 그대로 보존한 채 경찰에 신고하여 물적 증거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큰 잡음 없이 범인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5] 실제 사건의 담당 수사관이었던 글렌 플로스를 모티브로 한 극중 인물.[6] 피해자를 일부러 풀어주어 도망가게 놔둔 다음 자신은 사냥총으로 이들을 사냥하는 것.[7] 다만 연쇄살인마 로버트 한센과는 달리 성씨에 들어간 s가 1개가 아니라 2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