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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盛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백능(伯能). 사례 홍농군 사람.2. 생애
병주자사를 지내다가 태원태수 왕구가 이름난 행실도 없는 노불을 벼슬에 앉히려 하는 것을 왕윤이 거부하고 고집해 다툰 일로 그가 위험하자 피신시켜 별가종사로 삼았다.이후 태복을 지내다가 184년 여름 4월에 태위가 되었고 야양, 야용 등이 돈과 관련한 일로 대립하다가 현무문 동궐에 화살이 날아가는 일이 일어나 응소가 이를 알려 대역죄에 버금가는 일이라 처리해야 한다고 하자 등성은 태위부의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리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응소가 설득해 등성은 영사를 보내 사죄하면서 응소가 처리하게 했고 185년 5월에 파직되었다.
3. 창작물에서
3.1.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의 명을 전하기 위해 조조, 왕윤을 불러 조조에게는 병사 3천을 이끌고 영천에 가서 주준, 황보숭을 구원하고 왕윤은 예주자사로 부임해 예주 지역의 남은 병사를 모아 군열을 재정비해 관리들의 기강을 바로잡으라는 것을 전한다.왕윤이 조정에서 몇 명을 줄 수 있냐고 묻자 100명 밖에 못 준다고 이야기하며, 왕윤이 일가나 친구들을 동원해도 되냐고 묻자 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