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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08:43:48

돌아온 영웅 홍길동

돌아온 영웅 홍길동 (1995)
Hong Gil-Dong
파일:돌아온 영웅 홍길동 포스터.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장르 애니메이션, 액션, 판타지
원작 신동우
총감독 신동헌
기획 윤석화, 김영재
제작
각본
각본(공동) 권인찬, 세키지마 마요리
스토리보드 야마우치 시게야스
조감독 제지마 하야토, 하타 요시토(秦義人)
애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사노리
캐릭터 디자인 키타지마 노부유키(北島信幸)
촬영 사토 히토시(佐藤均)
편집 제이필름, 헨미 토시오(辺見俊夫)
미술 카토 히로시(加藤浩)
음악 김동성
사운드(음향) 마츠모토 요시
사운드 어드바이저 이토 카츠미(伊藤克巳)
시각효과 하시모토 타카시
제작/배급 돌꽃컴퍼니
개봉일 1995년 12월 24일
화면비 16:9
상영 시간 75분
제작비 28억 원
총 관객 수 204,240명(서울), 전국 40만 명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전체관람가_초기.svg 연소자 관람가
1. 개요2. 줄거리3. 평가
3.1. 비판
3.1.1. 정체성 논란
3.1.1.1. 반박
4. 등장인물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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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한 1995년작 극장판 애니메이션. 감독은 1967년판 극장판을 맡은 신동헌이긴 하나 스토리보드를 맡던 야마우치 시게야스가 사실상 감독을 맡았다. 실제로 나중에 신동헌은 '나는 감독으로 이름만 올랐지 실제로 한 일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시사회장에서 작품에 불만을 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소문도 있다. 화면 연출이나 각본의 전개 방식은 완전히 야마우치 본인의 스타일이므로 야마우치가 단독으로 감독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좋다.

제작/배급사는 돌꽃컴퍼니로, 제작자인 연극배우 출신 윤석화가 자기 이름 석화를 고유어로 써서 만든 제작사다. 한국에서 기획을 하면 일본에서 캐릭터 디자인 및 배경미술, 음악을, 필리핀은 원화, 싱가포르는 촬영을 각각 맡는 식의 '범 아시아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며,[1] 제작협력엔 한국의 하나프로 및 에코동화를 비롯, 일본에선 AIC, APPP, 스튜디오 쿠마, DAST, 트랜스 아트, 오피스 AO, 무시 프로덕션 등지, 인도네시아의 Bintang Jenaxa Cartoon Film, 중국의 Fun Cut, 필리핀의 STEC 등이 각각 참여했다.

1995년 12월 24일 서울 코엑스 대서양관에서 개봉하여 서울관객 204,240명을 동원해 흥행에는 그럭저럭 성공했다. 하필이면 이거 개봉하고 난 다음 아마게돈, 난중일기, 전사 라이안, 의적 임꺽정, 또또와 유령친구들, 철인사천왕 같이 뒤에 개봉한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이 줄줄이 망하는 바람에 이게 1990년대 극장 개봉 한국 애니에서 가장 대박 흥행작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뒤에 개봉한 아기공룡 둘리 극장판 얼음별 대모험이 흥행과 비평에서 꽤 성공했지만[2] 극장에서 곧 내려갔다. 이후 1996년 4월 24일 SKC가 비디오테이프로 낸 바 있으며 비디오판 제작은 서륭프로덕션이 맡았다.

2. 줄거리

불길한 기운을 타고 났다는 점쟁이의 말 때문에 아버지 홍판서에게 의절당한 홍길동. 이후 길동은 백운도사의 가르침을 받아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하는 골반도사를 무찌르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3. 평가

3.1. 비판

3.1.1. 정체성 논란

일본에 팔아먹은 영웅 <홍길동> - 송락현

파일:external/www.etorrent.co.kr/d8ead29323e4e71365f1106a327959f4_Bm3Ow7EeYsCKCCGQK.jpg

1967년작의 그 홍길동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그 당시 개봉이전부터 여러 국내 언론에서 소개되었거니와[3] 극장은 물론, 시민회관 등에서도 많이 상영했기에 수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를 불러들여서 흥행은 대박쳤지만 원작이 당대 기준으로 일본 작품들에 못지 않았던 것으로 높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욕을 두 배로 먹었다.[4]

이는 실질적인 제작진 중 다수가 드래곤볼의 애니 제작을 담당한 일본 스태프들로[5][6] 이에 따라 원작인 풍운아 홍길동이 보여줬던 특유의 색채가 많이 희석되었다는 의견이 대다수일 뿐 더러[7] 심지어는 홍길동이 '초사이어인'처럼 각성을 하거나 에네르기파를 날리는 등 장르를 능력자 배틀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안주거리가 되어 씹혔다. 그나마 백번 양보해서 도술을 쓰는 거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나중엔 장풍 날리느라 허리에 찬 칼은 장식품이 될 정도였다. 이렇게 초사이어인으로 각성하는 홍길동의 모습 때문에 '드래곤볼 길동', '돌아온 드래곤볼', '돌아온 영웅 홍오공'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한국 히어로인 홍길동이 손오공의 짝퉁이 되었다는 점에서 돌아온 역적 홍길동, 일본에서 돌아온 홍길동이라는 욕도 들었다.[8] 나중에야 전해진 말에 의하면 한국 측 제작진들은 감독이 진행하는 이런 식의 연출에 대해 우려를 표하였지만 당시 감독은 이렇게 해야 작품이 재밌다며 이런 연출을 독선적으로 강행했고 한국 측 제작진들의 우려를 되려 반려하였다.

무엇보다도 당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부분은 다름아닌 더빙이다. 전문 성우를 기용하지 않고 인기 배우를 쓴 것이 큰 문제이다. 홍길동과 곱단이 역을 각각 당대의 인기 배우 김민종채시라에게 맡겼는데,[9] 인기 배우의 영입을 통해 작품을 홍보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캐스팅된 배우들은 성우 경력이 전무한데다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었기에 배역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과는 길이 남을 발연기였다. 기본적인 발음의 높낮이부터 불안했고, 목소리에서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국어책 읽기 스킬을 선보였다. 특히 김민종의 국어책 읽기 스킬은 충격과 공포였으며 결과적으로 이 둘의 등용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악의 미스캐스팅 중 하나로 남게 된다.

그러나 채시라는 불과 1년 뒤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에서 여주인공 에스메랄다 역의 더빙을 맡아 호연을 펼쳐 잘 된 비성우 더빙 사례를 들때 늘 거론되는 배우가 되었다. 배우들 역량 이전에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연출의 문제가 심각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다른 배역들까지도 그 연기가 악몽이었는데 차돌바위를 연기한 제작자 윤석화는 꼬마가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참사를, 돌순이를 연기한 노영심도 귀에 거슬릴 정도로 엉망이었다. 사실 윤석화와 노영심을 두고 보자면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흑역사다. 둘 다 각자의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거물들인데, 목소리 연기는 아니었다는 평가였다. 이런 문제는 감독이나 피디의 연출 탓도 있어 보이지만...

그나마 호평을 받은 쪽은 호피를 연기한 신현준과 골반도사를 맡은 주호성이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다듬어 졌을거라는 아쉬움과 동시에[10] 목소리 연기가 나름 안정적이었다는 평이다. 채시라와 김민종보다 연기경력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의 높낮이나 음성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안정적이고 듣기가 좋다는 평이었다. 주호성의 경우 성우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악역의 연기가 괜찮다는 평가를 받은 편이었다.

위에서도 각주로 서술되었듯 애니메이션 평론가 송락현은 저서 <송락현의 애니스쿨> 1권을 통해 해당 작품에 대해서 대국적인 견지로 비평하였는데, 해당 작품이 비난받는 이유가 표면적으로 범 아시아 프로젝트란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홍길동을 일본에 팔아 '합작'이라는 허울로 포장해 개봉시켰기 때문이라 하는 한편, 사실상 합작이 아니라 일본에 위탁한 작품이라고도 평가했다.
3.1.1.1. 반박
단, 저 당시의 송락현 비판에 대한 반론도 말하자면 21세기 이후 시점으로 보면 글로벌화가 진행된 시점에선 저러했던 평가는 '우리 것, 우리 문화'를 보전하자는 시대에 나왔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자본에 국경이 사라졌으며, 다국적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화' 전략을 쓴다. 즉 지역화와 지구화가 함께 가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민족문화'라는 것은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당대의 저런 평가는 단지 완성도나 제작자의 독선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송락현의 평가는 전반적인 지적보다 너무 합작이란 의의를 저해시키며 한일관계에 따른 국가간 감정이 실려있던 평가이기도 하다.

합작이란 허울로 포장해 개봉했다는 주장도 외주나 합작과는 다른 협력/감수와 같은 개념이지만, 제작진의 역량 차이보단 당시 90년대에 유행한 신토불이나 반일정서와 같은 이데올로기도 뒤섞인 평가라고도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

요즘도 해외 감독이 타국의 작품을 담당할 수도 있는데 당시 감독이 일본인이란 이유로 작품성과 감독의 역량과 별개로 이런 부분에선 억까가 있다고 보는 편도 있는 편.

4. 등장인물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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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hardcoregaming101.net/doraonyeongung-3.png

[1] 당시의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일본이 기획하고 한국이 하청을 받아 일감을 처리하는 형태로 크는 구조였는데 이게 거꾸로인 상태로 제작되었으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2] 서울 관객 전산망 기준 126,872명. 90년대까지는 서울 20만 관객만 봐도 그럭저럭 성공했다고 말하는 시대였다.[3] 파일:external/www.etorrent.co.kr/d8ead29323e4e71365f1106a327959f4_U4Cl3pETdqNu785sIvfxxLgaXCJDc6C1.jpg
참고로 1994년 언론 및 영화 잡지에 소개한 포스터나 몇몇 장면들은 그나마 원작 풍운아 홍길동 비슷하게 나와서 제대로 된 리메이크 내지 후속편으로 기대를 걸게 만들었지만...
파일:external/www.etorrent.co.kr/d8ead29323e4e71365f1106a327959f4_ZSj5Ct6CV6YDioPNQnSNpbthe2qqrDS.jpg
결과물은 원작과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하는 일본 캐릭터'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4] 반면에 슬램덩크를 베끼다시피한 이규형헝그리 베스트 파이브는 상대적으로 욕을 덜 먹었는데 사실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극장판은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제작진이 일부 참여하기도 했고, 애초에 기대 자체가 달랐던 작품이다. 그러나 해당 작품은 제작 파트너를 잘못 고른 탓에 퀄리티는 홍길동의 반에도 못 미친다.[5] 시사회 도중 영화가 끝나고 스태프롤이 올라올 때 일본인 이름이 하도 많이 올라와서 사람들이 "이거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어?" 라고 수군거리자 급히 화면을 끄고 사람들 나가게 하는 일도 있었다.[6] 물론 상술한 줄거리에서 보는 것과 같이 파티 구성해서 마왕과 싸우러 가는 RPG의 전형적인 구도는 이미 직접적인 원작인 '풍운아 홍길동'에서부터 써먹은 것으로 바꿔 말하자면 본인들만의 새로운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심지어 원작에서는 이 작품의 메인 빌런(골반대사)과 합세하여 외적(지갈그미)에 맞서는 에피소드도 역시 존재 한다.[7] 물론 당시 일본에 있던 필름이 발견 전과 이후 복원되기 전 까진 1967년작 홍길동을 기억할 세대들은 대략 몇이나 될 것 같으며, 그 세대들이 애니를 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은 들겠지만 차라리 직접 제작을 했었던 신동헌 감독의 의견대로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재밌을 지도 모른다.[8] 공교롭게도 감독인 야마우치 시게야스드래곤볼 Z 애니메이션의 연출 담당자였기 때문에 '이거 정말 드래곤볼 Z의 오마주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9] 심지어 김민종은 본작의 엔딩 스탭롤에 나오는 곡이자 주제곡인 우리에게 내일이 노래도 담당했다. 노래 자체는 명곡이지만 김민종이 부른 노래 실력은 그럭저럭이었으며 그나마 본작의 발연기보다는 노래가 낫다.[10] 당시 KBS 미니시리즈 바람의 아들과 영화 은행나무 침대를 함께 촬영하던 시기여서 성우 목소리 연습을 따로 할 시간이 없었을것이라 추정되었다.[11] 1967년에 신동헌 감독이 애니화했다.[12] 참고로 다른 비슷한 시기 개봉 한국극장 애니도 영어 홍보 전단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