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8번째 도그마 영화 <오픈 하트>의 도그마95 선언문 서약서. 왼쪽부터 라스 폰 트리에, 크리스티안 레우링,[1] 토마스 빈터베르, 쇠렌 크라그야콥센으로, 도그마95의 주창자들이자 서약서에 최초로 서명한 덴마크인 감독들이다.[2] |
2. 내용
도그마95 선언문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순결의 서약'에는 이른바 도그마 영화가 갖추어야할 10가지 계명이 명시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1. 촬영은 반드시 로케이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소품과 세트를 사용해선 안 된다. 만약 이야기 전개 상 특정한 소품이 필요하다면 로케이션은 그 소품이 있는 곳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2. 사운드는 절대로 이미지와 별도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며, 그 반대도 안 된다. 그 장면이 촬영되고 있는 곳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음악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3. 카메라는 반드시 핸드헬드여야 한다. 손에 든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이나 정지 상태는 허용된다.
4. 필름은 반드시 컬러여야 한다. 일체 특수 조명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노출을 맞출 만큼 빛이 충분치 않다면 그 장면은 포기하거나, 카메라에 램프 하나만 부착시켜 촬영한다.
5. 옵티컬 작업[3]과 필터 사용을 금한다.
6. 영화에 피상적인 액션을 담아서는 안 된다. 살인, 폭력 등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7.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금지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현재,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8. 장르 영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9. 필름의 형식은 반드시 아카데미 35mm여야 한다.
10. 감독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면 안 된다.
여기에 더하여 나는 감독으로써의 개인적 취향을 자제할 것을 서약한다. 나는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물과 배경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미학적인 고려나 취향, 무슨 대가를 치르든 모든 수단을 통해 이행할 것을 서약한다. 이로써 나는 순결한 서약을 하는 바이다.
2. 사운드는 절대로 이미지와 별도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며, 그 반대도 안 된다. 그 장면이 촬영되고 있는 곳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음악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3. 카메라는 반드시 핸드헬드여야 한다. 손에 든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이나 정지 상태는 허용된다.
4. 필름은 반드시 컬러여야 한다. 일체 특수 조명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노출을 맞출 만큼 빛이 충분치 않다면 그 장면은 포기하거나, 카메라에 램프 하나만 부착시켜 촬영한다.
5. 옵티컬 작업[3]과 필터 사용을 금한다.
6. 영화에 피상적인 액션을 담아서는 안 된다. 살인, 폭력 등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7.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금지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현재,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8. 장르 영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9. 필름의 형식은 반드시 아카데미 35mm여야 한다.
10. 감독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면 안 된다.
여기에 더하여 나는 감독으로써의 개인적 취향을 자제할 것을 서약한다. 나는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물과 배경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미학적인 고려나 취향, 무슨 대가를 치르든 모든 수단을 통해 이행할 것을 서약한다. 이로써 나는 순결한 서약을 하는 바이다.
3. 역사
1995년 3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연설자 자격으로 참여한 라스 폰 트리에는 연설을 시작하는 대신 도그마95 운동을 알리는 붉은 전단지를 청중들에게 살포하였고, 이는 도그마95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도그마95 선언문의 초안은 폰 트리에와 토마스 빈터베르에 의해 45분 만에 작성되었으며, 프랑스 작가주의 영화의 서막을 알린 프랑수아 트뤼포의 1954년 에세이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Une certaine tendance du cinéma français)>의 형식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98년에는 도그마95 원칙에 입각한 최초의 영화<셀레브레이션>과 <백치들>이 개봉되었고, 두 영화는 나란히 그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다. 그 중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셀레브레이션>은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덴마크 출신이 아닌 타국의 감독들도 도그마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계 미국인인 장마르크 바[4]의 <연인들>은 다섯 번째 도그마 영화이자, 비 덴마크 출신 감독의 첫 번째 도그마 영화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완전히 끝나버린 운동으로, 공식적으로는 2005년에 해산한 것으로 본다.
솔 메츠스틴(Saul Metzstein) 감독 도그마95 다큐멘터리 <The Name of This Film Is Dogme95>. 변혁의 <인터뷰> 덕분에 중간에 제작국가로 한국이 언급된다.
4. 평가
도그마 95 관련 인터뷰 |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의 상업성에 반기를 들고, 작가주의 이후 영화가 나아갈 한 가지 길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주변의 유럽 국가에 비해 비교적 작은 영화 시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덴마크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을 덴마크 출신 감독들의 개성과 실험 정신에서 찾는 의견도 존재한다. 실제로 최초 서약자 중 라스 폰 트리에와 토마스 빈터베르는 지금까지도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5]
하지만 도그마95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비판은 크게 선언문 내용에 대한 것과 도그마95 운동에 참여한 감독들에 대한 것으로 나뉜다.
먼저 도그마95 선언의 내용이 영화사적으로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순결의 서약> 중 6개 조항 즉, 제1조부터 제5조까지와 제9조는 사실주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영화 기법과 유사한 항목들이다. 영화사에서 사실주의의 계보는 뤼미에르 형제 초기 단편에서 시작하여 시네마 베리테를 거쳐 네오 리얼리즘까지 이어진다. 도그마95 역시 이러한 사실주의 전통의 연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을 명문화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막상 모든 공식적인 도그마95 영화들 중 순결의 서약 10개를 전부 지킨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리얼리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지만 항목 하나하나가 상업영화는커녕 저예산 독립영화를 기준으로 봐도 각본과 연출에 심각한 제약을 준다.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길을 가려한 유럽 영화계에서도 대중성을 잃는 문제 때문에 상업 영화계까지 확산되지 못했다.
- 1번 - 세트는커녕 소품조차 사용 불가능하다. 장소와 그 곳의 물건에 각본을 맞추는 선택지밖에 없다.
- 2번 - 현장음이 아니면 BGM 삽입 불가. 사실 리얼리즘 영화에선 BGM 삽입이 그렇게 필수적이진 않지만.
- 3번 - 카메라 거치 불가. 장소에 따라 구도가 매우 제한된다.
- 4번 - 화면 연출에서 흑백이 아예 금지된다. 또한 카메라 램프와 자연광만을 이용해 찍을 경우 장소에 따라 야간 촬영 등은 아예 불가능.
- 5번 - 4번과 마찬가지로 연출 방식이 제한되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촬영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 6번 - 각본 및 연출 제한. 가벼운 폭력 묘사조차 들어갈 일 없는 장르는 그렇게 많지 않다.
- 7번 - 플래시백이나 액자식 구성이 금지되며, 교차편집도 제한된다. 스토리 진행이 무조건 일직선이어야 한다는 소리. 또한 시대배경을 과거나 미래로 잡는 것도 금지라고 해석된다.
- 8번 - 장르물 금지. 영화에서 특정한 장르라고 취급되지 않는 건 드라마뿐이다.
- 9번 - 화면비를 1.33:1 또는 1.375:1로 제약. 후술하지만 "아카데미 35mm로만 촬영해야 한다"로 좁게 해석할 경우 제작비가 껑충 뛰며 3번 때문에 촬영 담당이 죽어나간다.
- 10번 - 다른 항목들에 비하면 매우 쉽지만 다소 자기모순적인 항목이다. "감독은 예술가가 아니다"라는 반 작가주의적 의도가 담긴 항목이지만, 영화 내에서나 감독이 불명이었을 뿐 외적으로는 누가 감독했는지 매체로 전부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트리에 본인도 키노와의 인터뷰 등에서 "도그마 95의 서약은 십계명과 비슷한 것이다. 실제로 전부 지키는 건 무리지만 서약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현실성은 없는 운동이지만 의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토마스 빈터베르도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인지했는지 아예 "다 찍고 나면 서약을 얼마나 어겼는지를 고해성사 식으로 남기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주창자들이 제작에 관여한 작품들은 대부분 이 '고해성사'들이 남아있다.
그나마 최초 서약자인 4명을 포함한 여러 감독들의 작품은 최대한 전부 지켜보려고 했던 티가 나지만, 서약 대부분을 어기고 비주얼만 도그마95 영화처럼 연출한 컨셉질에 가까운 작품조차 상당수 존재한다. 형식에만 치중하다보니 영화 자체는 IMDB 기준 4~5점대인 경우도 적지 않다. 북-서유럽권 밖의 작품들은 대부분 주창자들이 제작에 관여하지 않아서 이런 경향이 심하다.
- 도그마 #1 셀레브레이션: 촬영을 위해 창문에 임의로 커버를 씌워놓은 컷이나,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찍은 컷이 있다. 빈터베르 감독 본인이 고백했으며, 또한 조연 캐릭터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있다.
- 도그마 #2 백치들: 옵티컬 작업과 필터가 사용되었고, 배경음악으로 카미유 생상스의 "백조"가 사용되었다. 그 와중에 일부러 붐마이크를 화면에 잡는 등 컨셉에 충실하게 찍은 게 포인트. 이후에 트리에 본인이 필터를 제거한 버전으로 다시 수정했다.
- 도그마 #6 줄리언 동키 보이: 상술한 "도그마 95 컨셉"에 가까운 작품 중 하나로, 제대로 지키고 있는 서약이 8번뿐이다. 화면비부터 대놓고 1.85:1에 BGM이 삽입되어 있고, 첫 장면부터 살인이 나오는데다 디졸브, 스텝 프린팅, 정지화상 등 온갖 필름 편집 기법이 다 들어가 있으며 죽은 아기도 소품 도구로 가져온 걸 썼고 스탭롤에 감독 이름까지 당당히 올라가 있다.[6] 일부러 더 조악한 화질을 뽑으려고 필터를 씌운 느낌이 역력한데, DV로 찍은 원본을 16mm 필름에 확대 인화해서 만든 질감이라고 한다. 애시당초 하모니 코린은 데뷔작 구모부터 이런 막나가는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서[7] 그냥 친목질의 결과로 승인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라스 폰 트리에도 코린의 룰 위반에 대해 DVD 코멘터리 도중 규칙을 창의적을 재해석했다라는 실드에 가까운 발언을 했을 정도.
- 도그마 #7 인터뷰: 작품 자체가 그냥 상업 멜로영화다. 지키는 서약은 8번뿐이며, 애초에 도그마95랑 연관이 있는 작품은 맞는지부터 의구심이 들 만큼 정석적인 상업영화식 연출이다. 주인공이 캠코더로 녹화하는 장면이나 실내 장면들 정도에서만 도그마95 스타일이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상술한 <줄리언 동키 보이>는 '도그마95 컨셉'이기라도 하지 이 작품은 도대체 왜 선정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8] Letterboxd의 경우 리뷰의 절반이 '이게 어딜봐서 도그마 영화냐'일 정도. 변혁 감독이 도그마95 운동을 조롱하기 위해 등록해놓고 트롤을 했거나, 진짜로 처음엔 도그마 영화로써 제작에 들어갔는데 여러 사정으로 상업영화로 방향을 틀며 흐지부지됐거나, 오히려 도그마 측이 슬슬 아시아권 영화가 구색 맞추기로 필요해서 우연히 도그마 스타일로 찍은 <인터뷰>를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정했다거나 하는 추측만 가능하다.[9] 아시아권 영화에선 차라리 미이케 다카시의 <비지터 Q>나[10] 임상수의 <눈물> 등이 비주얼 면에선 도그마95와 일치하는 구석이 훨씬 많다. 심지어 영어 위키 도그마 95 항목에서도 이 영화는 리스트에 빠져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다.
- 도그마 #8 퍽랜드: 감독 표기가 되어있고, 배경음악이 삽입되어있으며, 영화가 대놓고 '디지털 캠코더의 시점'으로 연출되어 있다. 그나마 필름 편집은 없으며 화면비는 안 어긴 게 그나마 규칙을 지킨 수준.
- 또한 대부분의 도그마 영화들은 아카데미 35mm가 아닌 DV로 촬영되었다는 점에서 9번 항목에 어긋난다.[11][12] 당장 최초 작품들인 셀레브레이션과 백치들부터 이걸 안 지킨다.[13]
이런 것 때문에 도그마95는 그저 잘 짜여진 홍보전략 정도에 불과한다는 비판까지 나온 바 있다. <빌리지 보이스>의 평론가 짐 호버먼은 도그마95를 두고 "밥값 하는 모더니스트들이라면 모를 리 없겠지만, 아방가르드로 성공하려면 언론플레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도그마95의 공동 창시자이자 유명한 활동가인 덴마크의 악동 라스 폰 트리에는 자신을 마케팅하는 놀라운 재주 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라는 혹평을 남겼다.
어둠 속의 댄서가 개봉한 이후, "왜 배교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라스 폰 트리에는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로 6개월 동안 색 보정 작업을 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비디오 톤의 영상에 매혹되어 있다. 비전문가용 소형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라는 뜬금없는 변명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한국에서는 비교적 도그마95에 낭만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영화인들이 많았으나, 이동진은 조선일보에 기고하던 <시네마 레터>에서 "도그마는 먼저 규약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엘리트적이고 교조적이다. 많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실패한다면 맥락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모습은 긴 기간의 변화에 나름대로 적응해 나간 결과이다. 영화 역사가 남긴 기술을 발전 과정이 아니라 걸림돌로 보는 시각은 맥락을 잃기 쉽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였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첫 제안자인 트리에 본인조차도 결국엔 포기한데다, 다른 감독들도 조금씩 건드려보곤 이후론 전혀 따르지 않아서 사실상 실패한 선언이다. 1990년대 말에 쏟아져 나온 이후론 그냥 잊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창자인 트리에의 도그마 영화 백치들의 내용과 똑같은 결말을 맺어버린 셈. 그나마 저예산 영화들의 제작과 연출 방식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14] 2006년 어드밴스드 파티라는 이름으로 추종자가 나왔으나 [15] 칸 영화제에 진출한 안드레아 아놀드의 붉은 거리와 Donkeys를 만들고 해체했다. [16]
상기한 두 감독 역시 도그마 이후 작품들은 극단적으로 양식적인 세계로 나아갔다. 트리에는 백치들 이후 어둠 속의 댄서-도그빌-<만덜레이>부터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현실 = 핸드헬드+점프컷 몽타주/상징 or 비현실 = 고정된 미장센(+슬로우모션)" 연출법을 도입하다가 <오! 마이 보스>를 도그마 95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마냥 찍고는,[17][18] 우울증 치료 이후 복귀작인 안티크라이스트부턴 후자를 아예 다시 초기 시절 수준으로 깔끔한 화질, 슬로우모션 등 온갖 기교적인 화면 표현으로 극대화시켰다.[19] 빈터베르는 2003년작 올 어바웃 러브를 일부러 도그마 규칙의 정반대로만 찍으며[20] 탈퇴까지 실험적으로 한 뒤, 삽질 끝에 서브마리노와 더 헌트로 셀레브레이션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역시 스타일은 도그마하고는 거리가 멀어졌다.
애시당초 도그마 영화로 등록하는 것도 특별히 엄격한 검증 프로세스가 있는게 아니라, 영화 감독이 도그마 사이트에서 양식을 기입하고 "I truly believe that the film mentioned above has obeyed all Dogme95 rules as stated in the Vow of Chastity."라는 항목에 체크만 하면 끝이었다. 서약 다수를 지키지 않는 컨셉질에 불과한 영화들까지 정식으로 등록된 것, 심지어 등록해놓고 제작이 엎어져서 애초에 존재했던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까지 리스트에 몇몇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짐 호버먼처럼 도그마 운동과 라스 폰 트리에한테 굉장히 비판적인 평론가인 조너선 로젠봄은 살인마 잭의 집을 비판하면서 "도그마95 서약서는 코펜하겐에서 1,000달러 받고 파는 물건이었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21]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나 정말 심사고 나발이고 돈을 받고 리스트에 넣어주는 식이었다면 진정성부터 금이 가는 부분이다.
일단 트리에의 성향만 보더라도, 다른 주창자들은 모를까 최소한 트리에에게 도그마95는 본질적으로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 영화를 향한 위악적인 조롱 겸 어그로, 일종의 본인 방식의 블랙 유머였을 뿐이지 애초에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분석도 있다. 등록 방법은 허술하고 검증 프로세스랄 것도 전무했던 것도 그 때문이며, 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공식 인증서까지 받아가며 찍은 감독들이나 '왜 주창해놓고 못 지키냐, 그냥 마케팅 아니냐'는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나 트리에한테 낚인 거나 다름 없다고 한다.[22]
5. 영화 목록
{{{#!wiki style="float: center; text-align: center" {{{#!folding 【펼치기・접기】 | #1 셀레브레이션 Festen (1998) 토마스 빈터베르 作 | #2 백치들 Idioterne (1998) 라스 폰 트리에 作 | #3 미후네 Mifunes Sidste Sang (1999) 소렌 카우-야콥슨 作 | #4 왕은 살아있다 The King is Alive (2000) 크리스티안 레브링 作 | #5 연인들 Lovers (1999) 장-마크 바 作 |
#6 줄리언 동키 보이 Julien Donkey-Boy (1999) 하모니 코린 作 | #7 인터뷰 Interview (2000) 변혁 作 | #8 퍽랜드 Fuckland (2000) 호세 루이스 마르케즈 作 | #9 블라단 즈드라브코비치 作 | #10 체체모카의 저주 Chetzemoka's Curse (2001) 릭 슈미트 外 作 | |
#11 디아파종 Diapason (1999) 안토니오 도메니치 作 | #12 초급자를 위한 이태리어 Italiensk For Begyndere (2000) 로네 셰르피 作 | #13 아메리카나 Amerikana (2001) 제임스 메렌디노 作 | #14 조이 라이드 Joy Ride (2000) 마르틴 렝겔 作 | #15 카메라 Camera (2000) 리치 마르티니 作 | |
#16 배드 액터즈 Bad Actors (2000) 숀 몬슨 作 | #17 재회 Reunion (2001) 래프 틸든 作 | #18 트룰리 휴먼 Et Rigtigt Menneske (2001) 오그 상그렌 作 | #19 캐빈 피버 Når Nettene Blir Lange (2000) 모나 J. 호엘 作 | #20 스트라스 Strass (2000) 뱅상 라누 作 | |
#21 키라의 사연: 사랑 이야기 En Kærlighedshistorie (2001) 올레 크리스티안 마드센 作 | #22 원스 어폰 어나더 타임 Era outra vez (2000) 후안 핀사즈 作 | #23 레진 Resin (2001) 블라디미르 기요르스키 作 | #24 시큐리티, 콜로라도 Security, Colorado (2001) 앤드류 길리스 作 | #25 컨버징 위드 엔젤스 Converging with Angels (2002) 마이클 소렌슨 作 | |
#26 더 스파클 룸 The Sparkle Room (2001) 알렉스 매콜레이 作 | #27 (감독 미상) | #28 오픈 하트 Elsker Dig for Evigt (2002) 수잔 비에르 作 | #29 더 브래드바스킷 The Breadbasket (2002) 매튜 비앙카니엘로 作 | #30 디아즈 데 보다 Dias de Boda (2002) 후안 핀사즈 作 | |
#31 엘 데센라세 El Desenlace (2005) 후안 핀사즈 作 | #32 덴마크식 러브 스토리 Se til venstre, der er en Svensker (2003) 나타샤 아르티 作 | #33 레시덴시아 Residencia (2004) 아르테미오 에스피노자 作 | #34 인 유어 핸드 Forbrydelser (2004) 아네트 K. 올레슨 作 | #35 코시 x 카소 Così x Caso (2004) 크리스티아노 체리엘로 作 | |
회색 글씨: 2차 매체가 존재하지 않음. |
도그마 95 정신에 동조하는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도그마 재단이 설립되어 2004년까지 심사를 거쳐 도그마 영화를 선정했다. 공식적으로 도그마 영화는 총 35번까지만 존재하며, 아래 리스트와 같다.[23] 한국의 도그마 영화로는 아시아 최초이자 사실상 마지막인 변혁 감독의 <인터뷰>가 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저예산 독립영화들이기 때문에, 뒷번호로 갈수록 대부분 합법으로든 불법으로든 구하기는 상당히 힘든 편. 트리에의 Zentropa 제작사가 관여한 북-서유럽권 작품들을 제외할 경우, VHS나 DVD같은 2차 매체는커녕 예고편이나 스틸컷조차 제대로 안 남아있는 작품들이 다소 많다. 대부분 PAL DV로 촬영해서 원본 자체가 576i50 또는 576p25이고, 뒷 번호로 갈수록 인지도까지 낮은 탓에 고화질 리마스터는 요원한 상태다. 초급자를 위한 이탈리아어와 오픈 하트 정도가 그나마 말기에 화제를 받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셀레브레이션>, <백치들>, <미후네>, <인터뷰>가 정식 개봉했다.
2차 매체의 존재가 아예 확인되지 않는 작품은 ★ 표시.[24]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해외 OTT로 볼 수 있는 작품은 ☆ 표시.
- Dogme #1: 셀레브레이션 (Festen, 1998) | 토마스 빈터베르 作 ☆ - 크라이테리온 콜렉션 블루레이 출시
- Dogme #3: 미후네 (Mifunes Sidste Sang, 1999) | 쇠렌 크라그야콥센 (Søren Kragh-Jacobsen) 作 ☆
- Dogme #4: 왕은 살아있다 (The King is Alive, 2000) | 크리스티안 레우링 (Kristian Levring) 作 ☆
- Dogme #5: 연인들 (Lovers, 1999년) | 장마르크 바 (Jean-Marc Barr) 作보기
- Dogme #8: 퍽랜드 (Fuckland, 2000) | 호세 루이스 마르케스 (Jose Luis Marques) 作보기
Dogme #9: 바빌론 (Babylon, 2001)| 블라단 즈드라브코비치 (Vladan Zdravkovic) 作 [26]
- Dogme #10: 체체모카의 저주 (Chetzemoka's Curse, 2001) | 릭 슈밋 (Rick Schmidt), 마야 버트하우드 (Maya Berthoud), 모건 슈밋펭 (Morgan Schmidt-Feng), 데이브 놀드 (Dave Nold), 로런스 E. 페이도 (Lawrence E. Pado), 말런 슈밋 (Marlon Schmidt), 크리스 타우 (Chris Tow) 作 ☆
- Dogme #11: 디아파종 (Diapason, 2001) | 안토니오 도메니치 (Antonio Domenici) 作
- Dogme #12: 초급자를 위한 이태리어 (Italiensk For Begyndere, 2000) | 로네 셰르피 (Lone Scherfig) 作 ☆보기
- Dogme #13: 아메리카나 (Amerikana, 2001) | 제임스 메렌디노 (James Merendino) 作
- Dogme #14: 조이 라이드 (Joy Ride, 2000) | 마르틴 렝겔 (Martin Rengel) 作
- Dogme #15: 카메라 (Camera, 2000) | 리치 마티니 (Rich Martini) 作[27].
- Dogme #16: 배드 액터즈 (Bad Actors, 2000) | 숀 몬슨 (Shaun Monson) 作 ★
- Dogme #17: 재회 (Reunion[28], 2001) | 레이프 틸든 (Leif Tilden) 作 ☆
- Dogme #18: 트룰리 휴먼 (Et Rigtigt Menneske, 2001) | 오케 산그렌 (Åke Sandgren) 作
- Dogme #19: 캐빈 피버 (Når Nettene Blir Lange, 2000)[29] | 모나 J. 호엘 (Mona J. Hoel) 作
- Dogme #20: 스트라스 (Strass, 2001) | 뱅상 라노 (Vincent Lannoo) 作보기
- Dogme #21: 키라의 사연: 사랑 이야기 (En Kærlighedshistorie, 2001) | 올레 크리스티안 마센 (Ole Christian Madsen) 作
- Dogme #22: 원스 어폰 어나더 타임 (Era outra vez, 2000) | 후안 핀사즈 (Juan Pinzás) 作[30]
- Dogme #24: 시큐리티, 콜로라도 (Security, Colorado, 2001) | 앤드루 길리스 (Andrew Gillis) 作 ★
- Dogme #25: 컨버징 위드 엔젤스(Converging with Angels, 2002) | 마이클 소런슨 (Michael Sorenson) 作 ★
- Dogme #26: 더 스파클 룸 (The Sparkle Room, 2001) | 알렉스 매콜리 (Alex McAulay) 作 ★
- Dogme #29: 더 브레드바스킷 (The Breadbasket, 2002) | 매튜 비앙카니엘로 (Matthew Biancaniello) 作[36]
- Dogme #30: 디아즈 데 보다 (Dias de Boda, 2002) | 후안 핀사스 (Juan Pinzás) 作
- Dogme #31: 엘 데센라세 (El Desenlace, 2005) | 후안 핀사스 (Juan Pinzás) 作
- Dogme #32: 덴마크식 러브 스토리 (Se til venstre, der er en Svensker, 2003) | 나타샤 아르튀 (Natasha Arthy) 作
- Dogme #33: 레시덴시아 (Residencia, 2004) | 아르테미오 에스피노사 (Artemio Espinosa) 作
- Dogme #34: 인 유어 핸드 (Forbrydelser, 2004) | 아네트 K. 올레슨 (Anette K. Olesen) 作
- Dogme #35: 코시 x 카소 (Così x Caso, 2004) | 크리스티아노 체리엘로 (Cristiano Ceriello) 作[37]
[1] 덴마크어는 표기 심도가 깊은 탓에 실제 발음은 '크라이스찬 레윙'에 가깝다.[2] 나이 순으로는 크라그야콥센(47년생) - 폰 트리에(56년생) - 레우링(57년생) - 빈터베르(69년생). 선언 당시 각각 48세, 39세, 38세, 26세로 주창자들의 세대 풀이 꽤 넓었던 셈이다.[3] 필름에 인위적인 효과를 내기 위한 광학 처리[4] 배우 겸 감독으로, 트리에의 단골 조연이다.[5] 다만 나머지 두 명인 쇠렌 크라그야콥센과 크리스티안 레우링은 감독으로서의 평은 그저 그런 편이며, 도그마95 이후 감독 활동이 꽤 뜸한데다 레우링은 아예 2014년 이후로 필모그래피가 끊겼다. 크라그야콥센의 <미후네>는 "잘 만들긴 했는데 앞의 두 작품에 비하면 별 거 없다"는게 주요 평이며, 레우링의 <왕은 살아있다>는 최초 서약자 4명의 작품 중에서 제일 평이 안좋다. 이후 작품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14년 매즈 미켈센과 에바 그린을 기용해 웨스턴 리벤지로 간만에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갔으나 무난한 변종 서부극이라는 평을 받고 화제가 되지 못했다.[6] 변명을 하자면 '감독: 하모니 코린'이 아니라 그냥 '하모니 코린'이긴 하다.[7] 당시 국내에선 퍽큐시네마로 불릴 정도로 화제였다.[8] 위키백과에 따르면 원래 도그마 7번은 트리에의 또 다른 단골 조연인 우도 키어가 감독을 맡은 <부서진 쿠키들 Broken Cookies>이 될 예정이었는데, 제작이 엎어져서 <인터뷰>가 대신 들어갔다고 한다.[9] <인터뷰>는 다른 도그마 영화들과 달리 시작할 때 서약서도 나오지 않으며, 당시 국내에선 도그마 영화라는게 단 한번도 알려진 적이 없다.[10] 감독 본인이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11] 참고로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마 선언 이전인 <유로파> 전후 즈음부터 거친 톤의 화면이나 핸드헬드에 눈독 들이고 있었다. 1988년작 TV 영화 <메데아>의 경우 무려 모든 장면을 (U-Matic 또는 베타캠 SP로 추정되는) 아날로그 비디오로 촬영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고, 특유의 핸드헬드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부터 정착됐다. 3번의 핸드헬드도 그렇고 그냥 본인의 연출 취향을 명문화시킨 느낌도 든다. 그 외에도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35mm 원본을 디지털 SD에서 작업한 다음 해상도를 재보정해서 의도적으로 필름 그레인을 극대화시키고, 어둠 속의 댄서도 576i인 촬영 원본을 16mm 필름 수준의 해상도까지 끌어올리는 등 트리에의 제작사 Zentropa는 저해상도 보정 작업에 이골이 난 회사다.[12] 트리에는 키노 인터뷰에서 "막상 무겁기 짝이 없는 35mm 카메라로 핸드헬드 촬영을 하는 건 무리인 걸 깨닫고 DV라는 대안책을 찾았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13] 다만 이 9번 항목 자체가 말장난 수준으로 느슨한데, 필름 형식이 아카데미 35mm여야 한다고만 써있을 뿐 촬영을 그걸로 해야한다는 등의 말은 따로 없다. 무슨 카메라로 찍든 아카데미 35mm의 형식이면 된다는 변명이 통한다.[14] 도그마 95로 데뷔하거나 이름을 알린 감독들이 많다. 토마스 빈터베르, 크리스티안 레우링, 원 데이로 유명한 로네 셰르피가 대표적. 모두 도그마 95랑 멀어진 건 덤이다.[15] 사실 이 어드밴스드 파티 창립 멤버 중 하나가 도그마 95 일원이었던 로네 셰르피다.[16] Donkeys도 어렵게 만들어졌다고 하며 (붉은 거리 주역인 케이트 디키가 조연으로 출연한다), 덴마크 배경 세번째 영화는 제작 중단되었다.[17] 화면비가 1.85:1인 것과 거의 모든 컷이 고정된 샷인 걸 빼면 은근히 철저한 도그마 스타일이며, 작 중에서 도그마 95에 대한 자만인지 자학인지 모를 대사가 나온다. 아이러니한 건 이 영화가 백치들부터 디지털 촬영으로 전향한 트리에가 35mm 필름으로 촬영한 마지막 작품인데, 막상 줄거리고 화면 연출이고 굳이 다시 필름으로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심심하다.[18] 여담으로, 의도적인건지 트리에의 장편 영화는 자신의 모국어인 덴마크어 영화들만 유독 화면이 투박하다. 이미 언급된 <백치들>과 <오! 마이 보스> 외에도 초기작 <에피데믹>은 60년대 이전 흑백 영화같은 거친 화질+미장센에 장면들에는 타이틀을 워터마크처럼 찍어놓고, <메데아>는 전술했듯 촬영 자체를 아날로그 비디오로 해놓는 등이 있다.[19] 어떻게 보면, 트리에는 역설적이게도 자기가 쓴 선언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동시에 한편으론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백치들>은 도그마 95를 빼고 봐도 상징이나 비현실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내용이라 필모그래피에서 혼자 100% 핸드헬드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20] 모든 장면을 세트 안에서 카메라는 고정시킨 채 찍었다고 한다.[21] 다만 이 평론 자체가 그냥 트리에를 어떻게든 비난하기 위해 쓴 것에 가까워서 비판 의견도 많다. 서문부터가 '이 영화 보지도 않을거고, 홍보해주기 싫으니 제목도 언급 안할거고, 일단 트리에를 깔 거다' 수준의 뉘앙스다.[22] 덤으로 이런 분석에 따르면, (트리에 관점에서의) 도그마 선언의 본질을 가장 제대로 이해한 감독은 <줄리언 동키 보이>의 하모니 코린이라고 한다. 트리에 만큼이나 반골+어그로꾼이라 도그마95를 그냥 작품의 비주얼을 최대한 불쾌하게 망가뜨릴 핑계로만 써먹었을 뿐이고, 서약을 유독 대놓고 무시한 부분이 많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한다.[23] <Gypo>나 <Karma Cartel>처럼 감독이 도그마 영화라고 자칭한 비공인 작품도 몇몇 있다. 대부분 등록에서 빠꾸를 먹은게 아니라 도그마 운동이 해산해서 공식적으로 등록할 수가 없어 비공인 작품이 된 것이다. Gypo는 영국 최초의 도그마 영화...라 자칭하고 있다. 리뷰.[24] 사실 있다고 해도 VHS/DVD는 이미 절판된지 20년이 다 돼서 재고도 없고 대부분은 인지도도 듣보잡이니 중고나 립버전도 안 돌아다녀서 구하기는 매우 힘들다.[25] 왓챠, 웨이브서 서비스 중[26] 등록을 먼저 해놓고선 제작이 엎어져버렸다.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알려진 포스터에는 뜬금없이 어둠 속의 댄서의 스틸이 들어가 있는데, 사실 이 작품의 포스터가 아니라 <디지털 바빌론>이라는 도그마 95 평론서적의 표지다.[27] 감독이 직접 본인 유튜브 채널에 공개해놨다. # 문제는 얼굴 흔들림 보정을 켠 채로 녹화된 버전이다.[28] 'American Reunion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도 이걸로 등록되어 있다. 근데 동명의 2012년작 섹스 코미디 영화가 존재한다.[29] 일라이 로스 감독의 호러 영화인 캐빈 피버와는 관련이 없다. 원제는 노르웨이어로 "밤들이 길어질 때"라는 뜻이다.[30] 다른 감독들은 전부 한 편 찍고 때려친 도그마 영화를 유일하게 두 번 이상, 그것도 세 편을 연속으로 찍은 감독이다. 다만 IMDB 평점을 보면 영화들 자체는 그닥인 모양이다.[31] 필명으로, 본명은 스티븐 소벨(Steven Sobel)이다.[32]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지만, IMDb 8.2점으로 중기 이후 도그마 영화들 중에서는 평이 매우 좋은 편이다. 개봉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리뷰들을 보면 사회고발적인 내용이다.[33] 영화의 정보가 감독, 제작년도를 포함해서 모조리 유실됐다. 도그마 재단 공식 홈페이지에도 미국 영화라는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당연히 IMDb에도 등록이 안 되어있다. <바빌론>처럼 등록만 먼저 해놨다가 모종의 이유로 아예 제작조차 못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34] 이 문서 최상단의 서약서가 이 영화의 것이다. 말기 도그마 95 중에서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 매즈 미켈센이 출연한다.[35] 트리에 영화사인 젠트로파 소속 여성 감독이다. 흥행 감독으로 유명하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인 어 베러 월드와 버드 박스가 대표작. 정작 트리에는 이 사람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유태계 덴마크인인데 문제가 되었던 트리에의 나치 이해한다 발언도 이 사람 두고 한 말 아니냐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36] 유일하게 30분 단편으로, 감독은 현재는 작가 겸 요리 연구가로 활동하는 중이며 2차 매체는 나온 적 없는 듯 하지만 유튜브에서 저화질 버전을 찾을 수 있다.# 아마 과거에 감독이 인터넷에 직접 올렸었거나 처음부터 인터넷 영화로 기획한 듯.[37] 제작사인 Cinema Distribuzione이 자사 유튜브 채널에 공개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