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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1:45:53

다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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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다산면
茶山面 | Dasan-myeon
<colbgcolor=#009240><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경상북도
기초자치단체 고령군
행정표준코드 5200032
관할 법정리 10리
하위 행정구역 20행정리 134반
면적 45.86㎢
인구 8,401명[1]
인구밀도 173.7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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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고령군·성주군·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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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용 (초선)
경상북도의원 | 고령군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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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환 (초선)
고령군의원 | 나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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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철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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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다산로 681
다산행정복합타운
1. 개요2. 지명 유래3. 역사4. 특징5. 교통
5.1. 도로5.2. 대중교통
5.2.1. 버스
6. 교육
6.1. 관내 학교 목록6.2. 교육 환경
7. 환경8. 주변 시설
8.1. 주거
8.1.1. 곽촌리8.1.2. 상곡리
9. 하위 리 일람
9.1. 평리리9.2. 호촌리9.3. 곽촌리9.4. 상곡리9.5. 좌학리9.6. 월성리9.7. 노곡리9.8. 송곡리
9.8.1. 송곡1리
9.9. 나정리9.10. 벌지리
10.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경상북도 고령군. 낙동강을 끼고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사문진교를 통해 이동 가능), 논공읍, 다사읍, 하빈면과 맞닿아 있다.

2. 지명 유래

『여지도서』에는 다질면(茶叱面)과 벌지면(伐知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읍지』에는 다질면이 다기면(茶基面)으로 기재되어 있다. 다질면은 조선 말기에 다산면(茶山面)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신라 초기에 다사지현(多斯只縣)이었다가 제35대 경덕왕(景德王) 때 하빈현(河濱縣)으로 고치고 수창군(壽昌郡) 또는 수성(壽城)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9년 하빈현을 지금의 달성군 하빈면 현내동(縣內洞)으로 옮기고 경산부(京山府)[2]에 딸리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대구부(大邱府)에 속하였다가 다시 성주로 편입되면서 다기방(茶基坊)·다산방(茶山坊)·벌지방(伐知坊)이라 하였고, 1906년 고령군에 편입하였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다산면(茶山面)의 곽촌(藿村)·지내(池內)·법동(法洞)·신동(新洞)·상곡·좌학(侳鶴)·발산(鉢山)·평리(平里)·호촌(湖村)·사촌(沙村), 벌지면(伐知面)의 나정(羅亭)·아시(阿時)·벌지(伐知)·동암(東岩)·남촌(南村)·상로(上老)·하로(下老)·장척(長尺)·남양(南陽)·노곡(蘆谷)·삼동(三洞)을 병합하여 다산면(茶山面)이라고 하고 평리·좌학·상곡·호촌·곽촌·월성·나정·벌지·송곡·노곡의 10개동으로 개편하였다. 1988년 5월 1일 동(洞)을 이(里)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4. 특징

고령 내 읍면 중 인구가 대가야읍 다음으로 많으며 군민의 30% 가량이 다산면에 살고 있다.

지리상 대가야읍과 맞닿아 있지 않은 유일한 면이다. 반면 달성군 화원읍과는 지척에 있고 배차간격 10분대의 간선버스인 대구 버스 650가 절찬리에 들락거리는 곳이다. 이때문에 고령(대가야읍)과는 별로 교류가 없으며 주민들도 고령군민이라는 자각이 거의 없다. 생활권으로는 화원읍 생활권이며, 넓게는 월배 생활권에 들어간다. 다산면소재지를 기준으로 고령군청보다 대구광역시청이 더 가깝다.

특산물로는 한약재로 쓰이는 향부자가 있다.

고령축산물공판장이 있다. 대구 시내를 지나가다 보면 고령 몇 번 중개인 하면서 고깃집이 있는 모습을 제법 볼 수 있는데, 다 고기를 여기서 떼오는 것. 고령 공판장 앞에도 고깃집이 몇 개 있다. 직접 구입도 가능하다.

윗 동네 성주군만큼은 아니지만, 참외 농사도 많이 짓는다.

5. 교통

5.1. 도로

다산면에서 화원읍을 잇는 사문진교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개통되었고, 다산면에서 성산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낙동강변 도로도 1990년대 이후에 개통되었다. 그 전에는 도로를 통해 다산면으로 진입하려면 벌지리~송곡리 간 고갯길(달성1번 득성리행이 다녔던 구길)로 진입했어야 했던 듯한데, 이 고갯길은 왕복 1.5차선 정도의 좁은 길이다. 게다가 이니셜D의 경사진 헤어핀 비슷한 코스가 송곡리와 벌지리 사이에 있는데, 2014년 11월부터 달성1번에 투입 중인 저상버스가 헤어핀을 아슬아슬하게 꺾어서 들어갔다. 현재는 이 헤어핀 구간 옆에 신길이 생겼고, 달성1번도 신길로 운행 중이다. 그리고 신길 끄트머리에는 골프장이 하나있다. 물론 사문진에서 나룻배를 타고 화원읍으로 진입할 수는 있었지만 사문진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꽤나 고립된 곳이었다.

2013년에는 다사읍과 이어지는 길이 810m의 우륵교가 생겼다. 강정고령보에 지어진 다리로 따지고들면 보는 물길을 제어하는 장치며, 통행은 다리로 하기에 구분한 것이다. 우륵교 개통으로 대구 쪽으로 생활권이 더 넓어지나 했지만,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우륵교는 강정고령보를 유지 및 보수하는 공도교라고 못박으며 일반 차량의 통행은 계획에 없다고 한다. 650번을 타고 가다 보면 차량통행을 열어 달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대신 강정고령보 상류 1km 지점에 곽촌교(가칭)를 신설할 예정이기는 하다.

대구 시내버스는 836번 노곡리/득성리행이 간간히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좌석버스였던 608번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다산면 주민들이 대구 시내로 나갈 때의 교통비 부담이 상당했었다. 이후 2006년 2월 개편 때 608번이 폐선되고 836번의 가지노선도 정리되어, 현재는 달성1번650번이 운행 중이다. 이 때 대구 시내버스가 무료환승제를 실시하면서 다산에 들어오고 있었던 고령군 버스였던 607번은 650번에 밀려 공기화됐다.

또한 2006년 7월에 다산회차지를 정비하여 달성1번650번이 풀 타임으로 다산면에 들어오고 있다.

고령 방면 버스 교통은 굉장히 불편하다. 1일 7회 밖에 버스가 운행하며 이마저도 1일 2회는 성산면을 거쳐가는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닌 성주군 용암면을 거쳐 돌아간다. 시간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이 화원까지 가서 606번을 타야 한다.

5.2. 대중교통

5.2.1. 버스

6. 교육

6.1. 관내 학교 목록

6.2. 교육 환경

면 내에 고등학교가 없는 데다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 동네에 사는 중학생들은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진학이 가능하다. 그래서 등하교 시간에 상곡리의 다산회차지에서 출발하는 650번은 매우 혼잡하다. 실제로 다산면은 대구 2학군[3]에 지정되어 있다.

7. 환경

8. 주변 시설

8.1. 주거

8.1.1. 곽촌리

8.1.2. 상곡리

9. 하위 리 일람

9.1. 평리리

면사무소 소재지다. 매우 크고 아름다운 행정복지센터가 위치해 있다.

9.2. 호촌리

사문진교가 있다.

9.3. 곽촌리

대구문화방송 라디오의 AM 송신소가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이나 옥포읍, 달서구 성서에서 곽촌리 방향으로 보면 멀리 보이는 뾰족한 뿔 모양의 철탑이 바로 AM 송신소다.[4]

9.4. 상곡리

시내버스 종점이 있는 동네며 다산주공2단지 앞에 다산회차지가 있다. 달성1번650번이 다니는 평리리와 상곡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앞으로 상곡지구가 들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더 생길 예정이다.[5]

9.5. 좌학리

9.6. 월성리

다산중학교가 있다.

9.7. 노곡리

9.8. 송곡리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노동·삼동을 병합하여 송곡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송곡리가 되었다.

송곡1리·송곡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송곡·삼동·하노다가 있다.
- 송곡(松谷)·금곡·씨실 : 이 마을은 깊은 골짜기 속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가을에 단풍이 들면 비단같이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에서 금곡(金谷)이라하고 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또한 송곡(松谷)이라 하였다. 동쪽으로 인봉산, 서쪽으로 덕적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 삼동(三洞) : 송곡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송곡2리 마을인데, 이 마을을 형성할 때 수성나씨(壽城羅氏), 함안조씨(咸安趙氏), 안동권씨(安東權氏)의 3성이 개척하였다 하여 삼동이라 하였다. 현재는 다산2일반산업단지 조성으로 주민이 타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 하노다(下老多) : ① 삼동 동쪽의 낙동강가에 있는 마을인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영조 임금 아들(사도세자)의 경종사호(景宗賜號) 문제로 장희빈에게 휘말리어 제주도로 귀양을 가면서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가는 도중이곳에서 잠깐 쉬어갈 때 노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노다(老多)라고 불렀다. 음이 변하여 놉대기라 하고 아래 노다를 아래 놉대기라 부른다.

문화 유적으로는 1712년(숙종 38)에 세워 우암 송시열을 배향한 노강서원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79호로 지정된 노강서원 고문헌, 1938년에 건립하여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된 봉강 조상의 재실인 후송재가 있다.

산업 시설로 다산지방산업단지가 있다. 다산지방산업단지는 총면적 64만 6055㎡으로, 2007년 현재 61개 업체, 2,086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9.8.1. 송곡1리

송곡1리 송곡마을은 창녕 조씨 집성촌으로 26세대가 모여 살고 있다.

조선 중종 때 담양 전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고, 1728년(영조 4년) 경 오계 조정립(梧溪 曺挺立)의 현손(玄孫) 조성좌(曺聖佐)가 이인좌의 난에 가담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아들 형제 조명상(曺明相)과 조명협(曺明莢)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하기 위해 합천군 묘산면에서 달아나 심산유곡(深山幽谷)인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에 은거하였다. 이인좌의 난이 어느 정도 평정되자 고향을 잊지 못해 낙동강을 건너서 지나다가 지금의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입향하여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창녕 조씨 관련 유적으로는 창녕조씨 태복경공파 송곡문중 후손들이 선조를 위한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친목을 도모하는 종청(宗廳)으로 활용하기 위해 1916년에 창건한 경심재, 개항기 성리학자 봉강 조상을 기리기 위해 문하생들이 1938년에 건립한 후송재[6], 봉강의 증조모이자 창녕조씨 문중의 효부 해주오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30년에 세운 해주오씨 숭효각이 있다. 후송재 좌측에는 입향조 조명상·명협의 아버지 조성좌의 유허비인 창녕조공휘성좌유허비가 있고, 후송재 내부에는 2012년에 후학들이 봉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봉강선생창녕조공송덕비가 있고, 후송재 우측에는 유학자였던 학산 조을환(學山 曺乙煥)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학산창녕조공추모비가 있다.

<창녕조씨(昌寧曺氏) 연원(淵源)>
조성좌(曺聖佐)는 대호부로 합천·고령 양 고을에 많은 토지를 갖고 있었으며 가신(家臣)이 800명이 넘었다 하며 식사 때마다 곡식 씻은 물이 몇 십리를 흘렀다고 합천 지방에서는 전해오고 있다. 혼탁한 정치를 바로잡고자 영조 4년(1728) 지방선비들이 거사를 일으킨 것이 무신사화다. 실패한 자손들은 역신(逆臣)이 두려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 아들 형제인 조명상(曺明相)·명협(明莢)은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에 잠시 머물렀으나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후 고향을 찾아 낙동강을 건너서 지나다가 도촌 조응인(陶村 曺應仁)의 막내 손자 조시민(曺時閔)이 합천에서 이거(移居)하여 칩거(蟄居) 중 이던 지금의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함께 거주하게 되어 송곡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9.9. 나정리

9.10. 벌지리

성산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10. 출신 인물


[1] 2024년 6월 주민등록인구[2] 지금의 성주군[3] 가창면을 제외한 달성군 전역, 달서구, 서구, 남구, 고령군 다산면. 가창면은 달성군 소속이지만 수성구 생활권이라서 1학군이다.[4] 개국 초기에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9동에 있었다. 이후 달서구 진천동으로 이전했다가 또 다시 달서구 월암동으로 이전되었다가 1997년 말부터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력은 20kW. 현재는 AM 송출이 중단됐다.[5] 「달성 넘어 고령까지…대구 베드타운의 확장」, 2015-04-02, 매일신문[6] 후송재는 2012년 8월 1일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자산 제1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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