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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바츠(財閥, 재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게이레츠(系列, 계열)는 대전 이후 일본의 기업 집단을 각각 가리킨다. ※전후 미군정에 의해 해체 당하고 이후 1950년대부터 재결집을 했고 그것이 게이레츠가 됐다. * 스즈키 자이바츠는 스즈키가 아닌 현재의 소지츠(Sojitz)다. |
정식 명칭 | 野村證券株式会社[1] |
국문 명칭 | 노무라증권주식회사 |
영문 명칭 | Nomura Securities Co., Ltd. |
국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장소 | 도쿄도 주오구 니혼바시1초메 9-1 |
사업 지역 | 아시아 태평양, 북미 등 |
산업 | 증권, 파생상품 선물 거래업 |
서비스 | 유가 증권의 매매 등 및 매매 등의 위탁 중개인 |
자본금 | 100억 엔 |
매출액 | 4,451억 엔[2] |
순이익 | 567억 엔[3] |
자산 총액 | 10조 5,010억 25백만 엔[4] |
모기업 | 노무라 홀딩스 (주) 100% |
종업원 | 12,839 명 (2019년 6월 30일 기준) |
웹 사이트 | | | | |
본사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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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최고의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노무라홀딩스의 핵심 기업이다. 192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일본 오사카에서 주식회사로 설립했다. 20세기 초반 막대한 자금을 운용했던 일본의 중개업 거부인 노무라 도쿠시치(野村德七) 2세가 그의 이름을 차용하여 설립했다. 당사는 리소나은행과 초창기 역사를 공유하는 같은 뿌리다.‘증권업은 역시 미국에서 해야 한다'
- 설립자 노무라 도쿠시치 -
노무라의 의지대로 창사 2년 후 1927년 미국 뉴욕 사무소를 설립했다. 노무라증권은 노무라 홀딩스(Nomura Holdings, Inc.)와 함께 노무라 그룹(Nomura Group)의 계열사이고 일본 증권업계의 핵심 기업이자 노무라 그룹의 주요 사업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일본 도쿄에 본사를 두고 중화권 홍콩, 영국 런던, 미국 뉴욕에 지역본사를 운영하며, 개인금융, 글로벌 마켓, 투자은행, 상업은행, 자산경영의 5개 분야로 구성된다. - 설립자 노무라 도쿠시치 -
노무라는 일본 및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핵심 기업이고 증권업계에서는 ‘걸리버’라는 별명도 있다. 핵심 사업 지역인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서는 '노무라증권(野村証券)'이라는 명칭으로 운영하고 미국에서는 'Nomura Securities International'로 잘 알려져 있다.[5]
후술하듯이 2008년 10월 노무라증권은 리먼브라더스의 아시아-태평양 및 유럽 지역의 투자은행/자산경영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주축 사업을 일본에서 세계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해 2009년 글로벌 업무 본사를 일본 도쿄에서 영국 런던으로 이전했다.[6] 뉴스픽스 일본어 기사
2. 역사
1918년에 노무라 가문 2대손인 노무라 도쿠시치가 설립한 오사카노무라은행(大阪野村銀行, 현 리소나 은행, 구 다이와 은행) 증권부가 1925년 12월 25일에 독립하여 오사카시 히가시구(現 오사카시 주오구, 現 오사카지점 위치)에서 개업하였다.1941년 일본 최초로 투자신탁 업무를 인가받았으며, 1946년 도쿄로 본사를 옮겼고 1949년 도쿄증권거래소 정회원이 되었다(당시 사장 오카무라 츠나오). 세가와 미노루가 사장이었던 1961년 도쿄증권거래소, 오사카증권거래소, 나고야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으며, 1965년 조사부가 독립하여 (주)노무라종합연구소(NRI)를 설립하였다. 2차 세계 대전 후 노무라증권의 토대를 닦은 것은 '다이아몬드 경영'을 표방한 오쿠무라 사장과 세가와 사장이었으며, 세가와 사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키타우라 키이치로 사장은 이를 더욱 견고히 하여 기업의 국제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노무라증권의 국제지향적 경향은 창업 당시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이기도 하나 키타우라 사장의 철저한 국제화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91년 주식거래에 따른 손실보상 문제로 인해 당시 사장이었던 타부치 요시히사가 사임하였다. 1997년 불량주주에 대한 이익공여 사건에 의해 당시 사장이었던 사카마키 히데오가 사입하는 등 주식업계의 도덕성을 훼손한 사건도 많았다.
2001년 지주회사법에 따라 노무라증권과 지주회사인 노무라홀딩스로 분할하였는데 현재 노무라증권그룹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옛 노무라증권이 노무라홀딩스로 형태를 바꾸고 신 노무라증권이 신설되어 기존에 노무라증권이 담당했던 증권 및 부대업무를 담당하게 됨으로 인해 자산 등의 이전이 이루어졌다.
2008년 부채를 제외하고 2억 5천만 달러에 리먼 브라더스와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의 사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통번역 인력들을 고용했는데 그들의 금융기법에 관련된 자료들을 일본어로 번역해야 했기 때문. 그 과정에서 노하우는 흡수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성장세를 거듭해서 흑자로 전환된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달리 유로존 위기로 촉발된 재정 위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얼어붙은 유럽 지역에서는 사업을 중단하고 1천여 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하면서 리먼 인수가 완전한 성공작이 아니라는게 드러났다. 리먼 브라더스 및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나오듯이, 노무라 증권조차도 이를 완전히 극복하고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당시 리먼의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는 의미도 된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싱크탱크 부문 및 리서치 부문을 재편성하였고 금융 싱크탱크 및 리서치 기능의 인하우스화를 목적으로 금융경제연구소를, 노무라홀딩스 산하에 별도로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를 설립했다.
3. 여담
- 한국으로 치면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곳으로 '조사의 노무라, 정보의 노무라'라고 불렸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는 농담삼아 일본 정부가 모르는 것도 노무라증권의 경영실은 안다고 할 정도로 일본의 차기 수상은 누가 될거라는 것과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한다는 것 등 풍부한 정보력 및 정확하고 민첩한 분석으로 '노르마증권'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다. '노르마'는 노무라의 이름을 패러디한 단어인 동시에 라틴어로 '규범, 표준'을 의미하는데 노무라 증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표현이며 애너그램이 되기도(Nomura → Noruma) 한다.
- 노무라증권은 기타 금융기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일본이 국가정책을 통해 장려하는 종합금융회사와는 차이를 둔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단, 미츠비시UFJ은행 등과 신탁분야에서 협력하는 등 미츠비시UFJ파이낸셜그룹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 野村證券株式會社(のむらしょうけんかぶしきがいしゃ). 노무라 쇼우켄 카부시키 가이샤. 會와会 모두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후자를 더 많이 사용한다.[2] 2024년 3월 기준[3] 2024년 3월 기준[4] 2011년 3월 31일 기준[5]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노무라인터내셔널이라는 사명으로 운영된다.[6] 영미권에서의 영향력을 인증하듯 2009년 7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은 미 재무성 증권경매의 지정사업자로 노무라증권을 선정하기도 했다.[7] 그 덕분에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잘하며 뛰어난 정보력과 기업공개를 통해 롯데를 키우는 등 롯데그룹을 엄청나게 성장시켰다.[8] 주로 싱가포르 지사에서 해외근무 위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