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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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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남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학교에 대한 내용은 남자고등학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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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익산시 CI.svg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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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화성/남성학원
<colbgcolor=#c0c0c0,#3f3f3f> 고등학교 남성고등학교 이리남성여자고등학교
중학교 남성중학교 이리남성여자중학교

파일:남성고전경.jpg
파일:남성고.png
남성고등학교
Namsung High School
南星高等學校
파일:30CBCDFD-007C-4E13-B0E8-B8FDA889C0A3.webp
개교 1946년 3월 5일
(6년제 남성중학교[1]),
1951년 8월 27일
(중고등학교 분리)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학교[2]
운영 형태 사립
학교 법인 남성학원
교장 김은철
교감 박종우
교원 수 63명[3]
(2024학년도)
학생 수 760명[4]
(2024학년도)
관할 교육청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동서로35길 41-4 (신동)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연혁3. 학교 상징
3.1. 교가3.2. 교호
4. 학교 시설
4.1. 본관4.2. 경춘당4.3. 유성당4.4. 일성당(기숙사)
4.4.1. 서관(신관)4.4.2. 동관(구관)
4.5. 과학관4.6. 보영당4.7. 체육관
5. 학교 생활
5.1. 시간표5.2. 문화5.3. 자율학습5.4. 보충 학습
6. 운동부7. 출신 인물8. 사건 사고9. 기타

[clearfix]

1. 개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신동에 위치한 일반계 남자고등학교이다. 후술하겠지만 학교 이름의 '남성'은 남자고등학교인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엮인다. 같은 재단의 학교로 남성중학교, 이리남성여자중학교, 이리남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5] 남성재단의 '남성'은 '男性'이 아니라 南星이다. 물론 이름답게 진짜로 남학교이기는 하다.

2000년 전까지는 여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홍보자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주입시킨다. 이러한 자부심 고취의 일환으로 90년대부터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오영우 전 1군사령관 등 동문들을 초청해 특강을 하기도 했다.

2. 학교 연혁

1946년 화성학원이 설립되면서 남성중학교로 개교하였다. 이 지역 부호인 백인기의 부인 이윤성이 설립하였다. 1951년에 학제 개편(중학교와 고등학교 분리)으로 동명의 중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이후 이리역 폭발사고로 구 교사가 파손되어 지금의 소라산 부근으로 1980년에 이전했다. 이후 남성여중과 남성여고가 잠시 구 교사를 사용하다가 두 학교 모두 1985년에 완전히 소라산의 통합캠퍼스로 이전하였고, 구 교사는 헐려서 해당 위치에 현재의 남성맨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구 교사에 남성국민학교[6]도 있었으나 소라산으로 가지 않고 폐교되었다.

1989년에 손태희 이사장이 취임했고, 2010년 자율형 사립고 인가를 받았고, 2015년 자율형사립고 재지정을 받았다.

2019년 신입생 감소로 인한 재정상 이유로 자사고 지정이 취소되었다.[7] 2020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일반고 체제가 되며, 72회까지의 재학생은 자사고 체제가 유지된다.

파일:남성고 연혁.jpg

3. 학교 상징

3.1. 교가

파일:external/3.bp.blogspot.com/a02.jpg

남성학원 교가로, 중학교, 여중, 여고 교가이기도 하며, 폐교된 국민학생들도 불렀다. 2번째 음악시간까지는 주로 교가를 배우게 된다.

문제는 작곡가인 김성태가 만주국 국책 악단으로 조직된 만주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고, 일제 강점기 말기 어용 음악인 단체인 조선음악협회에 참여한 전력으로 인해 친일 논란이 있는 자이고, 작사가인 정열모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국어학자로 이름이 높던 인물이었지만, 6.25 전쟁 이후 북한으로 월북한 인사라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남성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교가 소개에 교가의 악보만 있을 뿐, 작사가와 작곡가 이름은 나와있지 않다.

3.2. 교호

1971년 봄에 '모교 재학생들의 젊은이다운 기백을 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으로 교사 오종록이 제안하여 1971년 6월 14일에 완성되었다.
파이카치 파이톤
카치무치 호치카
파이카치 파이톤
카치무치 호치카
홀 카치 파이 카치 남성남성
홀 카치 파이 카치 남성남성![8]


교호제정의 원칙

1. 발음이 강하고, 멀리까지 똑똑히 들려야 한다.
(거센자음 : ㅊ, ㅋ, ㅌ, ㅍ, ㅎ)
2. 부드러운 자음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야 한다.
(부드러운 자음 : ㅁ, ㄴ, ㅇ, ㄹ)
3. 밝은 어감을 가져야 한다.
(양성모음과 중성모음 : ㅏ, ㅗ, ㅣ)
4.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교호의 유래와 어원

1. 멕시코 원주민의 언어 첼탈(Tzeltal)어에 기원
(첼탈 민족은 고대에 마야 문명을 일으킨 신화적 민족의 후예)
2. pam(쓰러뜨린다. 때려 눕히다), cik(불타다), katim(뜨겁게 하다),
muk(커다랗다), ip(강력한 힘), ton(돌멩이), wic(높은 산, 언덕),
hol(우두머리)
→ pa(파), ka(카), ci(치), ton(톤), hol(홀), mu(무), i(이)를 취함

졸업식 등 각종 공식 행사에 들어갈뿐만 아니라, 체육시간이 끝날 때 같은 일상적인 때에도 많이 외친다. 졸업생들도 나이에 관계 없이 동문을 만나면 교호부터 외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만큼 교호는 학교를 대표하는 상징이다.[9]

46회~50회 재학생들 사이에 '취이이...'라는 비공식 교호가 있었는데, 강당에 모여있을 때 학생을 너무 쪼거나 불합리한 지시를 하거나 하면 항의의 표시로 전교생이 입으로 '취이이...' 소리를 내곤 했다. '야 이놈들아 그만해' 정도의 의미. 교사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행위인데 왜인지 이에 대한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심지어 교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어느정도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학생의 자유를 완전히 억압하는 행위들도 있었기 때문[10]에 학생들의 약간의 반항을 용인해주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4. 학교 시설

같은 재단의 남성중학교, 이리남성여자중학교, 이리남성여자고등학교와 캠퍼스를 공유한다. 무려 4개교가 한 부지 안에 있어, 캠퍼스가 상당히 크다.

4.1. 본관

2022년 기준으로 5층 건물이다. 건축 당시에는 외벽 일부가 노란색 타일로 덮인 형태였으나 현재는 타일 부분을 스톤코트로 시공하여 분홍빛이 살짝 도는[18] 현재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4.2. 경춘당

과거에는 고3들을 위한 별도의 기숙사 건물이었다. 90년대 중반쯤에는 옛 도서관 및 창고로 쓰던 1층 공간을 개조해 근 30명씩 끼어서 생활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특강도 이곳에서 실시했었고, 수능이 임박하면 정기 야자가 9시 반에 끝난후 12시까지 심야 자율학습을 실시했었다. 지금은 그냥 잡건물. 1층에는 좌석이 구비된 학생회의실과 화석전시실, 안 쓰는 교실이 있고 2~3층에는 간간히 특별수업에 쓰는 교실들[29], 4층은 기숙사생 전용 열람실이 구비되어 있다.[30]

4.3. 유성당

대략 300~400명정도를 수용 가능한 강당이다. 모두 좌석으로 되어 있으며 강연이나 입학설명회 등에 사용된다. 남성고 입학 면접을 보기 전에 여기에서 대기한다. 기숙사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이곳에서 단체 영화 관람을 하기도하며, 학년 단위로 전달사항이 있을 때도 사용된다.

90년대 중반 대형 스크린 프로젝터가 설치된 이래로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방송보다 일본 위성TV가 화면이 더 깨끗해서 화면은 일본방송, 음성은 한국방송으로 듣기도 했었다.[32] 이때는 현재와 분위기가 달라서 기숙사 간식을 아예 유성당으로 가져와서 먹기도 하였다. 이후에 교감의 주도로 2014년 FIFA 월드컵 대한민국 vs 러시아 경기도 시청하였고, 2016년 1월 30일 올림픽 예선 결승경기 때도 당일 2관 사감의 주도 하에 치킨을 먹으면서 시청할 수 있었는데 같은 날 3관 사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관 사감의 "제가 책임집니다" 라는 발언으로 인하여 가능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스페인전 당시에는 그냥 학교를 일찍 끝내주어 기숙사생도 외출이 가능했다.

4.4. 일성당(기숙사)

1학년과 2학년들의 기숙사였으며, 1층에서는 2000년 처음 실시된 1학년들의 컴퓨터 수업 교실이 있었다. 당시 2학년은 학교건물 4층에서 실시 했다. 3학년은 별도도 경춘당에서 관리했었다. 기숙사 감시는 예나 지금이나 철두철미해서 2층과 3층 출입문에 싸인된 종이를 붙여놔 통행을 감시하던 사감도 있었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교생의 70%이상이 기숙사생이다보니 상당히 크다. 총사감이 존재하고 각 학년별로 담당 사감이 있으나, 이들이 기숙사에 상주하는것이 아니라 다른 교사들과 돌아가며 기숙사에서 숙직한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잔업무는 기숙사 위원들이 처리하는 편이다.
기숙사는 90년대 지어진 구관(1관)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신관(2, 3관)으로 나뉜다. 구관은 본관 정문기준 우측에 존재하며 신관은 좌측에 존재한다. 신, 구관 관계없이 가끔 절수가 되는데 이는 물을 다 사용해서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물탱크를 증설했다고 매번 말하지만 아직도 잊을 만 하면 절수가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찬물밖에 안 나오고 어떤 때는 체감온도 7~80도의 뜨거운 물밖에 안 나온다. 참고로 방마다 난방시설이 있고 지하실에 난방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앙난방인 듯 하다. 한여름에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추워서 보일러를 틀고 이불을 덮는 멸망 직전의 폼페이 같은 생활을 했던 적도 있었다.
감시체제가 정말 촘촘하다. 방 안, 화장실, 계단을 제외한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경춘당과 함께 cctv를 교체하였고 추가로 HDD를 교체하였다. 2관의 경우 2주가량 녹화가 가능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데, 기숙사 내에서 일체의 취식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특히 냄새를 많이 풍기는 음식에 대한 제제가 엄격하다. 이에 따라 과자류는 대부분 알고도 넘어가는데, 컵라면, 심지어 치킨 등을 먹는 경우에는 얄짤없다. 벌점은 기본이요, 사감에 따라 기합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학교도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서 학생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따라 2관과 3관 입구 사이의 공간에 휴게실을 만들었다. 먹고 싶다면 열람 끝나고 합법적으로 휴게실에서 먹도록 하자. 시간이 빠듯한 게 문제지만.
이제는 열람 후 휴게실에서의 취식마저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2, 3관 학생들이 생각하는 사람 동상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선 채로 라면을 먹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게 되었다. 휴게실은 저녁시간에 배달 음식을 먹거나 풀열람날에 배달 음식 먹는 장소로 전락했다.
휴게실에서의 취식이 다시 가능해지기도 하였다.

4.4.1. 서관(신관)

4.4.2. 동관(구관)

예전에 기숙사로 쓰던 경춘당의 수용인원을 감당할 수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93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다. 당시 비평준화시절 호남 전지역 및 심지어는 서울에서까지 지원한 학생들을[40] 집에서 통학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이들을 수용해야 했는데 경춘당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유성당이 지어진 이후에도 1인당 확보 공간이 군대보다도 열악했었다.

3학년 기숙사생들의 2/3 가량이 여기서 지내며,[41] 오래되고 주변에 나무가 많다보니 각종 벌레가 많다. 돈벌레도 많고 바퀴벌레도 많다. 2층과 4층에 열람실이 있으나, 3학년들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기 때문에 사용 시간은 하루에 1시간 정도이고 그 후 추가 심야열람을 통해 새벽 1시까지 이용가능하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경보 발효중이였을 때 지붕 위에 덮여 있는 타일이 날아가서 기숙사생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밖으로 나가, PC방, 200냥하우스, 노래방 등으로 향했다는 뒷이야기도 존재한다.

2014년 창고로 쓰던 1층을 개조하여 방을 더 만들었다.[42] 아무래도 최근에 시공해서 그런지 화장실이며 샤워실이 최신식으로 그나마 좋다.

70회 기준, 전 층을 3학년이 쓴다. 열람실은 2층과 4층에 각각 존재하는데 4층 열람실중 한 줄을 2학년이 쓰고 나머지는 3학년이 쓴다. 샤워실에 사람이 몰리면 물이 무진장 약하게 나오고 물이 끊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물이 끊기면 보통 학교 화장실이나 2, 3관에 가서 머리를 감거나 세면을 한다.[43] 1층에는 학습용도로 컴퓨터 5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제대로 작동되는 건 별로 없으며 심지어 작동되는 것도 인터넷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복도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한데 걸어다니면 방 안이 울린다. 그래서 누워있으면 밖에 얼마나 무거운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지 알수 있다.

사물함 종류는 2가지인데 하나는 예전부터 존재해온 사물함과 하나는 디지털식 비밀번호 사물함이다. 디지털식 사물함은 1층과 2층 3개방에만 존재한다.

구관 옆에 붙은 건물에서 배구부가 합숙생활을 하며 훈련하고 있다.

예전에는 급식실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 출구가 배구부실이었는데 그 시간이 7시 뉴스 끝무렵 스포츠 뉴스시간이라서 늘 TV에 목마른 학생들이 멀찍이서 보기도 하였다.

4.5. 과학관

4.6. 보영당

정확히는 남성고등학교 건물이 아닌 남성재단 건물이다. 이곳에서는 소규모 세미나실 및 재단 사무실등이 있다. 1층의 절반을 도서관으로 쓰고있다. 워낙 건물이 구석진데 있고 재단 사무실 건물이다보니 3학년이 되었는데도 학교도서관이 존재함을 알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 구석진 곳에 가보면 소량이긴 하지만 195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책을 구경할 수 있다. 가끔 47년이라 작성된 고문서도 나온다. 1층을 개조해 도서관을 만들기 전 경춘당에 보관해오던 책자들로 추정.[45]

도서관은 원래 본관 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96년쯤에 학교환경정비의 일환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디지털 컬러 OHP를 갖춘 첨단 학습실등 기타 새로운 시설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같이 마련된 것. 이 도서관이 일성당 3관 5층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이전하여 현재는 보영당 1층에 위치하고 있는것.

2016년 현재는 일성당 서관에 기숙사 4관 신축을 위해 남성예술관에 전시되었던 작품들등 기타 잡다한 물품을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는 관계로 운영은 중지된 상태이다. 정규 동아리 명단에 도서부인 '라임'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운영을 재개하기는 할 듯 하다. 5월 말경에 드디어 운영이 재개되었다. 책 대출을 위해서는 학생증이 필수이며, 대출기간은 2주, 1인당 2권까지이다.

4.7. 체육관

국제 배구 규격에 맞춘 배구 코트, 소규모 헬스장, 약 800명 정도 수용가능한 2층 스탠드, 대규모 단상등이 갖춰져있다.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고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5. 학교 생활

5.1. 시간표

시험기간 등의 사유로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나(토요일, 주중공휴일), 보편적으로 이 시정을 따라간다.
토요일에 아래 시간표대로 자습하는 것은 3학년이다. 1, 2학년은 토요일 아침에 바로 귀가한다.
평일 토요일 주중공휴일
시간 일정 시간 일정 시간 일정
6:40~7:40 기상&점호/퇴실 7:00~7:50 기상 및 인원점검 7:00~7:50 기상 및 인원점검
7:40~8:10 아침 자율학습(비기생은 등교) 8:30~10:10 토요 자습 1교시 7:50~8:30 아침식사
8:10~8:40 아침 종례 및 청소 10:40~12:30 토요 자습 2교시 8:30~10:00 열람 1교시
8:40~9:30 1교시 12:30~13:30 점심식사 10:30~12:00 열람 2교시
9:40~10:30 2교시 13:30~15:30 토요 자습 3교시 12:00~14:00 점심식사
10:40~11:30 3교시 16:00~18:00 토요 자습 4교시 14:00~16:00 열람 3교시
11:40~12:30 4교시 <colbgcolor=#ffffff,#191919> <colbgcolor=#ffffff,#191919> 16:30~18:00 열람 4교시
12:30~13:30 점심식사 18:00~20:00 저녁식사
13:30~14:20 5교시 20:00~21:30 열람 5교시
14:30~15:20 6교시 22:00~23:30 열람 6교시
15:30~16:20 7교시 23:30~23:55 세면 및 취침준비
16:40~17:30 8교시
(보충학습)
24:00~ 취침
17:30~18:40 저녁식사 <colbgcolor=#ffffff,#191919> <colbgcolor=#ffffff,#191919>
18:40~19:50 야자 1교시
20:10~21:40 야자 2교시
22:00~23:30 야간 열람
(비기생은 하교)
24:00~25:00 심야 자율학습

주중공휴일의 구체적인 시정은(특히 시험기간 중에)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체적인 것은 기숙사에 붙는 일정표를 참고하도록 하자.

예전에는 7시 30분터 8시20분까지 0교시가 있었던적도 있었다. 교육부에서 0교시를 제한하자 0교시를 1교시로 바꾸어 오전에 무려 5교시가 끝나는 멋진모습도 보여주었다. 감탄이 절로 나로는 정말 머리가 좋은 학교다.

19학년도 들어 시정표를 바꾸었다. 6교시와 7교시 사이에 쉬는시간이 20분이 되고, 열람 후 점호까지 개인시간이 늘어서 학생들은 나름 좋아하는 편.저녁밥을 일찍 먹게 되는 관계로 열람 끝나면 배고프다.

영등동 방면 쪽문 폐쇄에 상응하여 저녁시간이 20분 늘게 되었다.

2022년도부터 스마트 출결관리 시스템인 '체쿠'를 통해 학생들의 출결을 관리한다. 학생들은 매 수업시작 전에 어플을 켜서 출석을 해야하며 출석 확인 시간까지 정확히 기록된다.

5.2. 문화

어느 남고나 그렇듯이 체육대회에 목숨을 건다. 사실 자율학습에 찌든 남고생들에겐 체육대회는 일상의 청량제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체육대회때 각 반마다 학생들이 디자인한 반티를 맞추어 입는 것이 나름의 관례였다. 현재는 3학년, 2학년, 1학년 순서대로 중복없이 반티를 골라서 입는데 마지막에 골라야 할 1학년에게는 퀄리티 좋은 반티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축구 유니폼을 입는다.

솔밭안 축제라는 축제가 존재한다. 축제날의 오전에는 동아리 경진대회를 하고 오후에는 축제를 거행한다. 지금은 동아리 경진대회와 축제가 분리되었다.

넥타이 색이 학년별로 다르다. 예를들어 1학년 때 노란색 넥타이를 착용하였다면, 졸업할 때까지 쭉 같은 색깔의 넥타이를 착용하는 방식인데, 이것으로 학년을 구분할 수 있다.[49] 2023학년도 기준으로 1학년(76기)은 붉은색, 2학년(75기)은 노란색, 3학년(74기)은 초록색이다.

졸업식에는 오래전부터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사모와 학사복을 씌우고 거행하는 문화가 있다. 졸업식이 끝나면 학생들 모두가 학사모를 공중에 던지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고등학교 졸업식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는 명찰에 이름이 한문으로 표기되어 교사가 이를 숙지하지 못하면, 이름을 보면서도 부르지 못 하는 상황이 종종 연출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명찰을 착용하지 않아 이런 일은 볼 수 없게 되었으나 2022년 기준 벨크로 명찰을 다시 착용한다.[50]

5.3. 자율학습

5.4. 보충 학습

현재 보충 학습은 8교시(16:40~17:30)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듣고자 하는 수업을 신청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리로스쿨을 이용하여 수업을 신청할 수 있으며, 수강인원에 제한이 있다. 클릭하는 것에 희비가 오가곤 한다.

6. 운동부

남성고등학교의 배구부는 정말 유명하다.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전국단위 배구대회에서 매번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60] 프로 배구 선수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문일고등학교 배구부와는 매우 교류가 잦은데, 선수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감독끼리 사귀는 게 분명하다며 놀리곤 한다.

학교 배구부가 인근지역에서 대회 경기를 치를 때면 종종 스쿨버스를 타고 3학년을 제외한 학생들이 응원을 가기도 했다.

V리그의 초창기 스타이자 전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인 신진식이 이 학교 출신이며, 모교를 방문해 체육관 관람석 후배들게 싸인볼을 스매싱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단장 김철수, 전 국가대표 리베로 이호, OK금융그룹의 레프트 송희채, 우리카드의 리베로 오재성 등 남자 배구계에 남성고 출신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남성고 배구부가 3:2로 우승했다.

7. 출신 인물

나무위키에 문서가 등록된 인물만 서술했다. 가나다순으로 정렬했다.

8. 사건 사고

언론에서 보도한 경우에만 서술합니다.

9. 기타


[1] 중고등학교 일치[2] 이름만 봐도 남자인 걸 알수 있다.[3] 남 40명, 여 23명[4] 1학년 249명, 2학년 269명, 3학년 242명이다. 참고로 모집 정원은 1050명이다.[5] 여학교들은 이리라는 지명까지 들어간 명칭이 정식 명칭이다. 부산광역시의 남성여자고등학교, 남성여자중학교가 5년 빨리 개교하였기 때문[6] 1960년대 개교하였고 한동안 이리 지역의 유일한 사립 초등학교로서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으나 중학교 입시 제도가 폐지되며 기울기 시작하였고 재정난으로 인해 1986년 2월에 폐교되었으며 졸업생을 제외한 재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전해인 1985년부터 폐교 조짐이 보이자 차례차례 전학 간 학생들의 영향으로 학생 수가 크게 줄어 한 반 학생 수가 현재 한국의 2020년대 수준과 맞먹을 정도였다. 1970년대에 아주 짧은 기간 탁구부를 운영했는데 그때 배출한 선수가 양영자이다.[7] 관련 기사[8] 느낌표는 성에서 끝날 때 목소리를 높여야한다는 뜻이다.[9] 심지어 남성 동문들로 이루어진 친목 축구회 이름이 파이카치 FC(...)라고 한다.[10] 당시에는 학생인권이란 거의 없었으므로[11] 공문[12] 후술하겠지만 한개는 남성중, 한개는 남성여고 운동장이다. 따라서 남성고의 운동장은 사실 없다.[13] 현재 여고 쪽 담을 허물고 인도를 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후에도 담이 유지될지는 불분명하다.[14] 때문에 남성공고라는 또 다른 별칭도 있었을 정도다.[15] 수십 개쯤 되었다고 한다.[16] 당시에 유행했었던 꽃보다 남자의 교복을 참고했다고 한다.[17] 다만 2018학년도부터 발생한 신입생 감소로 인해 방 별 인원을 감축할 예정이며, 후술할 3관 1층은 전면 열람실화 예정이다.[18] 붉은색 부분이 띠처럼 사이사이에 있어 생기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본래는 화강암색이다.[19] 4층은 교무실 대신 교실이 하나 더 있다.[20]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오후 8시[21] 본관 CCTV는 행정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22] 현재는 커리어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3] 그렇다고 이런 점들이 확장공사 계기에 영향은 준 건 아니다.[24] 학생용 와이파이와 교사용 와이파이로 나누어져 있다. 암호가 걸려 있으며. 각자 다르다.[25] 88개라고 한다.[26] 해당 학교에서 시행된 수능 시험지는 해당 학교에서 보관한다.[27] 철제 셔터를 잠그는, 풀려있는 자물쇠를 집어들고 내려갔다 오는 게 가장 안전하다. 열었던 사람이 다시 못 잠근다. 다만 발각 시 후폭풍은 책임 못 진다.[28] 확인해본 결과 옥상에서 양쪽 계단으로 내려가는 문도 나사로 봉쇄되어 있다.[29] 현재 보충수업에 애용되고 있다.[30] 열람실을 이용할 때에는 열람실용 슬리퍼를 따로 가지고 가서 신는다. 없을 경우 신발을 벗어야 한다.[31] 본교 교사에 따르면, 후원을 받아 지어진 거라고 한다.[32]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지역예선 한일전이 유성당 첫 축구관람인 것으로 추정된다.[33] 전북대학교 기숙사를 참고했다고 한다.[34] 3관 1층[35] 그리마가 정말 빈번하게 출몰하며, 매우 습하고, 화장실에서 못 봐줄 정도의 악취가 난다.[36] 사감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가 들어오기도 한다.[37] 3관 1층의 경우 좀 더 커서 21명 가량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38] 19학년도에 신입생 감소로 인해 깨졌다. 현재 3관 3층은 2&3학년이 쓰고 있고, 3관 4층은 3학년만 쓴다. 5층 열람실은 3학년 전용이 되었다.[39] 물론 방에 따라 저학년생이 1층을 사용중인 경우도 있다. 3관의 2층 자리 중에 뭘 하든 밖에서는 문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쓰는 2학년들도 있다.[40] 45회 졸업생의 경우 서울대 45명 합격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남성고의 인기가 치솟았었다. 48회까지 낙방하는 지원자가 매년 10명 이상 나왔을 정도였다.[41] 나머지 1/3은 3관 3층과 4층에서 살고 있다.[42]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은 창문이 2개인데 창문을 왜 설치한건지 모를 정도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 겨울에 엄청 춥다.[43] 1층은 물탱크가 따로 있어서 그나마 물이 잘 안 끊긴다.[44] 허락을 받고 안에 들어가보면 가끔 작업 중인 그림이 놓여있다.[45] 당시 경춘당에는 40년대 미국 교과서도 있었다.[46] 여고만 응원하면 쫓겨나게 되니 인원을 반반씩 나눠서 남성중도 응원해야 한다.[47] 배구공으로 풋살을 하면 잘 안깨진다[48] 급식이 잘 나오는 날에도 많이들 시켜먹는다[49] 사실 뱃지도 이와 동일한 구조로 돌아가서 하복을 입을지라도 뱃지 밑판 색으로 학년 구분이 가능했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학교 뱃지를 안 차고 다닌다.[50] 명찰 하단의 색상으로 학년을 구분할 수 있다.[51] 기숙사생의 경우 23시 30분까지 본인 열람실로 돌아와야 한다.[52] 아예 야자 시작부터 무촉실에서 따로 한다.[53] 2관 3층의 구름다리를 사용해 3관으로 건너간다.[54] 고3은 있다.[55] 3관 1층은 당일 사감에 따라 다르다.[56] 경춘당만 저렇다. 3관은 본인 컨디션과 당일 사감에 따라 중간에 들어가도 되고, 3시가 넘었는데 학습지도위원이나 생활지도위원이 안 가서(...) 3시 이후에 더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오전 3시 40분경 열람이 끝난 적이 있다.[57] 사실 66회의 수능 결과가 나쁜편은 아니었다. 그냥 매년하는 연례행사적인 경고[58] 큐대로 맞기, 기마자세, 오리걸음 등[59] 71회 역시 2학기부터 토요자습을 시행한다고 한다.[60] 2015년에는 전국체전 5연패를 달성했다. 특정 학교가 한 종목에서 5연패를 한 것은 최초라고...[61] 2018년에 모교를 방문해 특강을 했다.[62] 2021년 7월 8일에 모교를 방문해 특강을 했다.[63] 한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이랬다. 교무실에서 교사들이 배를 깎아먹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와아아아아'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학생들이 뛰어갔다. 이에 한 교사가 복도로 나가 그 학생들을 불러와서 배 깎던 과도로 체벌 비슷하게 한다고 하다가 끝부분에 찔린 것.[64] 70회[65] 실제로 다음 날 기숙사 방 변경으로 인해 전교생의 70%에 달하는 기숙사생이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할 수 없었고, 그 다음날은 종업식이라 정말로 공식적인 야자는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66] 말이 절반이지 10반을 제외하면 각 반마다 1~2명 정도만 남았었다.[67] 많은 남고생들이 착각하는 점인데 남고 앞의 운동장은 사실 남성중 것이고, 남성고의 운동장은 엄밀히 말해 없다.[68] 농구대 밑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파쇄하는 작업에서 특히 심했다. 아스팔트에 구멍뚫는 소리와 동일한 '두두두두'소리가 30m 반경에서 들려온다고 생각해보자[69] 휴대폰에 NH콕뱅크를 깔면 편하다.[70] 다만, 현금카드라서 딱 저 두 곳만 된다. 일반적인 상점에서는 결제가 안 될 것이니 현찰을 들고 가는 것이 좋다.[71] 70회의 한 용자가 상기한 홍시를 진짜 따 먹었다. 맛있다고 한다.[72] 정식 양호교사가 없이 교련교사가 역할을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