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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05:51:49

낙신부

洛神賦

1. 개요2. 원문 및 해석3. 등장 매체

1. 개요

삼국시대 (魏)의 조식(曹植)의 작품.

황초(黃初)[1]3년 입조(入朝)후, 봉지로 돌아가던 중 낙수(洛水)를 지날 때 낙신(洛神)의 이야기를 듣고 쓴 부(賦).[2] 조자건집[3](曹子建集)에 전해진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이 부는 군왕(조비)에 대한 자신의 충정을 드러냈다고 본다. 그런데 당나라 때 이선이 문선에 주석을 다는 과정에서 복비(복비는 하백의 아내로 아름답지만 음탕한 여신이다)는 조식의 형 조비의 황후인 문소황후[4]를 가리킨다고 하면서 낙신부는 원래 이름이 감견부/감진부(感甄賦)였다가 조예가 이 작품을 본 후에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그런데 형수님을 연모하는 것은 예절에 대한 가르침을 숭상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에 해당되는데, 이로 인해 문인들은 이 주장은 말도 안되는 낭설이라면서 조비의 아내이자 한 나라의 황후에게 연모의 정을 품는 것은 대역무도한 일로 왕실의 명예와 직결되어 있기에 사실무근이라 했다.[5]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많은 학자들이 낙신부가 조식이 문소황후를 그리워 하여 지은 작품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상은과 포송령이 대표적이다. 곽말약은 더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여 조비와 조식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유는 조식이 문소황후를 연모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하여 결국 문소황후마저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

이 낙신부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낙신부도라는 작품이 있는데, 위진 시대의 귀족들이 어떤식으로 생활했는지 알 수 있어 역사적 의미가 꽤 있는 작품이다.

2. 원문 및 해석

黃初三年 余朝京師 還濟洛川
황초(黃初) 3년[6], 나(조식)는 입조후, 돌아가는 길에 낙천[7]을 지났다.

古人有言 斯水之神 名曰宓妃
옛사람이 말하길[8] 그 강에는 신이 있어, 이름이 복비(宓妃)[9]라고 한다.

感宋玉對楚王神女之事 遂作斯賦 其辭曰
송옥(宋玉)[10]이 초왕(楚王)과 신녀(神女)의 일[11]을 대함과 같이 느끼는 바가 있어, 이에 이 부를 쓴다.

余從京域 言歸東藩
경사[12]를 떠나 동녘으로 돌아가네[13]

背伊闕 越轘轅 經通谷 陵景山日旣西傾
이궐산을 등지고 환원산 넘고 통곡을 지나 경산에 이르니 이미 해가 저물고

車殆馬煩 爾迺稅駕乎蘅皐
수레와 말이 지치었으매 물가에 수레를 쉬고

秣駟乎芝田 容與乎陽林 流眄乎洛川 於是精移神駭
지초 무성한 밭에서 여물을 먹이며 버들숲에 앉아 흘러가는 낙천을 바라보매 문득 정신이 산란하였네.

忽焉思散 俯則未察 仰以殊觀 覩一麗人 于巖之畔
홀연히 생각이 흩어져 굽어 보아도 보이지 않고 우러러 보아도 달랐는데, 바윗가에 서 있는 한 미인을 보았네.

迺援御者而告之曰 爾有覿於彼者乎 彼何人斯 若此之豔也
이에 어자[14]를 불러 묻기를, 자네도 저 이가 보이는가, 저 이는 누구이기에 저토록이나 고운가

御者對曰 臣聞河洛之神 名曰宓妃 然則君王所見 無迺是乎
어자가 답하니 제가 듣기로 낙수의 신을 복비[15]라 이르는 바 군왕께서 보신 이가 그 이가 아닐까 하나이다.

其狀若何 臣願聞之 余告之曰
그 모습이 어떠한지 소인도 궁금하다 이르매 내 답하기를

其形也 翩若驚鴻 婉若遊龍 榮曜秋菊 華茂春松
그 자태는 놀란 기러기[16]처럼 날렵하고 노니는 용과도 같아 가을의 국화처럼 빛나고 봄날의 소나무처럼 무성하구나.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颻兮若流風之廻雪
엷은 구름에 싸인 달처럼 아련하고[17]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

襛纖得衷 脩短合度 肩若削成 腰如約素
섬려한 모습과 아담한 키마저 모두가 알맞고 적합하니 그 어깨는 일부러 조각한 듯 하고 그 허리는 흰 비단으로 묶은 듯하구나.

延頸秀項 皓質呈露 芳澤無加 鉛華弗御
길고 가녀린 목덜미에 절로 드러난 흰 살결은 향기로운 연지도 호사한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구나.

雲髻峩峩 脩眉聯娟 丹脣外朗 皓齒內鮮
구름같은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그 아미는 가늘고 길게 흐르며 붉은 입술은 밖으로 빛나고 백옥같은 이는 입술 사이에서 곱구나.[18]

明眸善睞 靨輔承權 瓌姿豔逸 儀靜體閑
눈웃음치는 눈동자는 아름답고 그 보조개가 능히 마음을 끄나니 그 맵시가 고와 이를 데 없고 거동이 고요하여 윤기가 흐르니

柔情綽態 媚於語言 奇服曠世 骨像應圖
그 부드러운 마음에 가냘픈 자태에 말투 또한 더욱 아름답구나. 기이한 복색은 지상에는 없으며 그 자태 그림과 같으니,

披羅衣之璀粲兮 珥瑤碧之華琚
찬연한 비단옷 에 귀에는 아름다운 귀걸이 달고

戴金翠之首飾 綴明珠以耀軀
금비취 머리장식에 밝은 구슬을 꿰어 몸치장하고

踐遠遊之文履曳 霧綃之輕裾
무늬 신 신고 얇은 명주치마를 끌며

微幽蘭之芳藹兮 步踟躕於山隅
그윽한 난초 향기에 묻혀 산모퉁이를 거니네

於是忽焉縱體 以遨以嬉 左倚采旄 右蔭桂旗
이에 몸을 놓아 즐겁게 노니니, 왼쪽은 채색 깃발[19] 에 기대었고 오른편은 계수 깃발[20]그늘에 가려졌구나.

攘皓腕於神滸兮 采湍瀨之玄芝 余情悅其淑美兮心振蕩而不怡
물가에서 흰 팔 걷고 여울가에서 현초[21]를 캐는데, 내 뜻이 그 맑은 아름다움에 흠모되어 마음이 흔들려 편안치 않네

無良媒以接懽兮 託微波而通辭 願誠素之先達兮 解玉佩以要之
좋은 매파가 없어[22]말 전하지 못하여 잔물결에 부쳐 전하노니 사모하는 내 뜻을 알리고자 구슬 노리개를 풀어[23] 바라네

嗟佳人之信脩 羌習禮而明詩 抗瓊珶以和予兮 指潛淵而爲期
가인은 닦음에 정성되어 예를 익혔고 시에도 밝으니, 구슬을 집어 답하기에 깊은 연못을 가리켜 화답하였네[24]

執眷眷之款實兮 懼斯靈之我欺 感交甫之弃言兮 悵猶豫而狐疑
간절한 정을 지녔으나 그 속음을 두려워하니 정교보[25]의 버림받은 말생각하고 슬퍼져 머뭇거리며 의심하네

收和顔而靜志兮 申禮防以自持 於是洛靈感焉 徙倚傍徨
온화한 얼굴 거두고 뜻을 조용히 가지며 예의를 차려 자신을 지키니 이에 낙신이 느낀 바 있어 이리 저리 헤매는데

神光離合 乍陰乍陽 竦輕軀以鶴立 若將飛而未翔
광채가 흩어졌다 모이며 그늘이 되었다 밝아졌다 하니 날렵한 자태 발돋움하여 나는 듯 날지 않고

踐椒塗之郁烈 步蘅薄而流芳 超長吟以永慕兮 聲哀厲而彌長
향기 자욱한 길을 밟고 방향을 퍼트리니 길게 읊어 영원히 사모하니 그 소리 서러워 더욱 길어지네

爾迺衆靈雜遝 命儔嘯侶 或戱淸流 或翔神渚 或采明珠 或拾翠羽
그리하여 갖은 신령들이 모여들어 서로 짝들을 부르게 하니 혹자는 맑은 물 속을 노닐고 혹자는 신령스런 물가를 날며, 혹자는 밝은 구슬을 찾고 혹자는 비취빛 깃털을 줍네

從南湘之二妃 攜漢濱之游女 歎匏瓜之無匹兮 詠牽牛之獨處
남쪽 상강의 두 비[26]를 따르게 하고 한수가의 여신을 대동하니 포과성[27]이 짝없음을 탄식하고 견우성이 홀로 삶을 읊조리네

揚輕袿之倚靡兮 翳脩袖以延佇 體迅飛鳧 飄忽若神
아름다운 옷자락을 나부끼며 긴 소매 가려 물끄러미 서니 날렵하기가 나는 새 같고 표연하기가 신령과 같네

陵波微步 羅襪生塵 動無常則 若危若安 進止難期 若往若還
물결을 밟아 사뿐히 걸으니 버선 끝에 먼지가 일고 그 몸짓 대중없으니 위태한 듯 평안한 듯 나아가고 멈추어섬을 예측하기 어려워 가는 듯 돌아서는 듯 하네

轉眄流精 光潤玉顔 含辭未吐 氣若幽蘭 華容婀娜 令我忘飡
돌아서 바라보니 옥같은 얼굴이 눈이 부시고 말을 머금어 내지 않으니 그윽한 난초와 같아 꽃 같은 용모 눈부셔 식사를 잊게 하네

於是屛翳收風 川后靜波 馮夷鳴鼓 女媧淸歌
이에 병예[28]가 바람을 거두고 천후가 물결을 재우며 풍이[29]가 북을 울리고 여와[30]가 고운 노래를 부르니

騰文魚以警乘 鳴玉鸞以偕逝
문어를 띄워 수레를 지키고 옥방울을 울리며 더불어 가는구나

六龍儼其齊首 載雲車之容裔 鯨鯢踊而夾轂
육룡이 머리를 맞대 공손히 수레를 끌고 고래가 뛰어올라 바퀴를 돌보며

水禽翔而爲衛 於是越北沚 過南岡紆素領
물새가 날아올라 호위하며 북쪽 물가를 넘어 남쪽 산을 지나네

廻淸陽 動朱脣以徐言 陳交接之大綱
흰 고개를 돌려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열어 천천히 만남의 일을 말하니

恨人神之道殊兮 怨盛年之莫當
사람과 신의 길이 다르매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네

抗羅袂以掩涕兮 淚流襟之浪浪
비단 소매 들어 눈물을 가리나 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적시니

悼良會之永絶兮 哀一逝而異鄕
좋은 만남이 영원히 끊어질 것을 슬퍼하며 한번 가니 다른 곳에 있음을 서글퍼 하네

無微情以効愛兮 獻江南之明璫
미미한 정으로 다하지 못한 바 있어 강남의 빛나는 구슬을 바치고 [31]

雖潛處於太陰 長寄心於君王
비록 깊은 곳에 거할지라도 이 마음 긴히 군왕[32]께 거하겠다 하네

忽不悟其所舍 悵神宵而蔽光
문득 그 있는 곳 뵈지 않더니 섭섭히 사라져 빛을 가리네

於是背下陵高 足往神留 遺情想像 顧望懷愁
이제 돌아서 높은 곳 오르려 하니 발걸음은 가고자 하나 뜻이 머물려 하니 남은 정을 되새기며 돌아보며 탄식하네.

冀靈體之復形 御輕舟而上遡 浮長川而忘反 思緜緜而增慕
그 모습 되찾기를 바라며 작은 배를 몰아 강에 오르니 아득한 강물에 배 띄우고 돌아갈 길 잊으나 생각은 연이어 그리움만 더하고

夜耿耿而不寐 霑繁霜而至曙
밤은 깊었는데 잠들지 못하고 엉킨 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노라

命僕夫而就駕 吾將歸乎東路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내게 하고, 이제 나는 동로로 돌아가려 하네

攬騑轡以抗策 悵盤桓而不能去.
말고삐 잡아 채찍은 들었으나 그 마음 서운하여 돌아서지 못하네

3. 등장 매체

김용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보법 능파미보의 명칭이 낙신부의 구절로부터 따온 것이다.


[1] 조비의 연호. 원년은 서기 220년[2] 흔히들 오해하고 있는 것이 시부(詩賦)라는 말이 한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제유적(提喩的) 표현으로 사용되나 보니, 시 = 운문, 부 = 산문식으로 이해하여, 부를 마치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수필이나 소설같은 성격의 산문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중국어 특유의 성조 덕택에 굳이 시가 아니더라도, 읽게 되었을 때의 성조를 고려하여 글을 쓸 때에도 최대한 듣기 좋게끔 구성하게 되는데, 그렇게 성조에 맞추어 배열하는 방식을 평측법(平仄法)이라 한다. 즉, 산문이라 할 지라도, 평측을 무시하고 그냥 뜻만 맞추어서 쓰지는 않는다는 말.[3] 자건(子建)은 조식의 자(字)[4] 성씨는 견씨 혹은 진씨라고도 하는데, 성씨에 관련된 논란은 문소황후 문서로 이동하면 알 수 있다.[5] 참고로 주석은 견씨(진씨)와 조식과의 로맨스를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는 것을 고백한다.[6] 서기 222년. 삼국지 진사왕 조식전(陳思王 曹植傳)에 따르면 이 시기에 견성왕(鄄城王)에 봉해지고 식읍 2천 5백호를 받았다고 한다.[7] 낙양의 남쪽을 흐르는 강으로, 지금은 낙하(洛河)라고 부른다.[8] 산해경(山海經)의 내용을 가리킨다.[9] 복희(伏羲)의 딸로, 낙수를 건너다 빠져, 그곳의 신이 되었다고 전한다.[10]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문인. 신녀부(神女賦)를 지었다.[11] 무산지몽(巫山之夢)을 말한다. 초양왕(楚襄王)의 아버지 초회왕이 꿈에서 무산의 신녀인 염제 신농(炎帝 神農)의 딸 요희(磘姬)와 만났다는 이야기 만나서 뭐했겠노? 쎄....쎅! 성관계를 뜻하는 사자성어인 운우지정(雲雨之情)도 여기서 나왔다.[12] 낙양(洛陽)[13] 삼국지 진사왕 조식전(陳思王 曹植傳) 중
黃初二年 監國謁者灌均希指 奏 植醉酒悖慢 劫脅使者 有司請治罪 帝以太后故 貶爵安鄉侯
황초 2년(글을 짓기 1년 전) 감국(각 제후국에 파견되어 국사를 보던 관리. 이 당시 조식은 임치후(臨菑侯)에 식읍 1만호였다.)알자 권균이 상주(奏)하기를 '조식은 술에 취해 난폭하고 오만하여 사자를 협박했습니다.'하였다. 담당관리(有司)들은 처벌하기를 주청했으나, 태후를 생각해(조식과 조비는 동모형제(同母兄弟)) 작위를 안향후로 낮추었다(貶)
여기서 희지(希指)라는 대목에 눈여겨보길 바란다. '오늘날의 손타쿠와 같이 윗사람의 비위를 맞춘다.' 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뭐, 조식도 윗사람이긴 윗사람이지 삼국지연의칠보시이벤트가 그냥 나오게 된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바로 1년전에 저런 꼴을 당했는데, 설혹, 왕으로 봉해졌다고는 해도,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울리도 없을터.
[14] 마부[15] 참고로, 삼국지 문소견황후전(文昭甄皇后傳)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어디서는 낙(洛)이라고 하고, 어디서는 복(宓)이라고도 하던데, 실제 이름은 견훤이라 카더라모른다.[16] 구운몽의 여주인공들 중 적경홍(狄驚鴻)의 이름과 같다.[17]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이 초선의 아름다움을 폐월로 표현하여 초선이 폐월의 미모로 알려졌지만, 사실 폐월이라는 표현은 조식의 낙신부에서 유래하였다. 수화란 말도 이백의 원작에선 서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양귀비가 이를 차지하였다. 폐월수화 문서로.[18] 위 구절의 단순호치(丹脣皓齒)란 말은 미녀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사용된다.[19] 모(旄)란 소의 꼬리로 만든 깃발을 말한다. 원래 모우(旄牛)라고 하면 긴 털을 가진 소를 말한다.[20]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산귀(山鬼) 중
乘赤豹兮從文狸 辛夷車兮結桂旗
붉은 표범을 타고 얼룩이리를 쫒으며 신이향초로 만든 수레에 계수깃발을 매었네
[21]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식물. 자지(紫芝)Ang?라고도 부른다.[22] 시경( 詩經) 제풍(齊風) 남산(南山) 중
取妻如之何 匪媒不得 旣曰得止 曷又極止
장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매 없이는 들 수가 없지. 이미 장가 갔으면서 왜 또 곤란하게 하나유부녀 모에
[23] 시경(詩經)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雞鳴) 중
知子之來之 雜佩以贈之 知子之順之 雜佩以問之 知子之好 雜佩以報之
당신이 오시는 것을 안다면 여러 가지 패옥을 드릴게요. 당신이 따르는 것을 안다면, 여러 가지 패옥으로 문안 드리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안다면, 여러가지 패옥으로 보답해 드릴게요.
[24]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초혼(招魂) 중
懸人以娭 投之深淵些 致命於帝 然後得瞑些
사람을 매달아놓고 기뻐하다가 깊은 연못에 던지고 천제에게 보고한 후에 비로소 잠든다.
여기로. 조식이 처한 상황이 굴원과 비교된다.
[25] 정교보(鄭交甫)란 사람이 구슬을 차고있는 두 여인을 보고 그것을 보여달라 속이고 훔쳐 달아났으나, 여인들도 사라지고, 구슬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26] (堯)의 딸이자 (舜)의 아내부럽구나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남편이 죽자 강에 빠져 순절했다고 전한다.[27] 직녀(織女)가 던진 배틀 북이 변하여 별이 되었다 한다.[28] 바람의 신[29] 하백(河伯). 물의 신이자, 이 글의 여주인공인 복비의 남편.얼레? 그럼 조비?[30] 복희의 아내이자 여동생이쪽은 여동생 모에였군. 딸이 바람피는데, 부모라는 사람이! [31] 공자의 제자 담대멸명(澹臺滅明)의 이야기에 나온다.남편에게는 차가운 남자. 하지만 그 부인에게는 따뜻하겠지?[32] 조식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