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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1 15:16:47

김순흥

김순흥
金淳興
파일:김순흥.png
창씨명 가네모토 준쿄
金本淳興
출생 1910년 12월 28일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1981년 10월 26일 (향년 70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167-2 자택
본관 광산 김씨[1]
직업 기업인
가족[2] 조부 김홍기(金弘基)
아버지 김윤석(金潤錫), 어머니 송은석
부인 배동수
장남 김사익[3], 차남 김사복, 장녀 김옥경, 차녀 김희경, 3남 김사홍(金士鴻)[4], 3녀 김선경, 4남 김사준, 4녀 김양경, 5녀 김미경, 5남 김사원, 6남 김사성, 7남 김사영[5]
손녀 김지아
상훈 일본 제국 훈장 감수포장

1. 개요2. 생애
2.1. 친일 행적2.2. 사망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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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대한민국자본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민국 배우인 이지아(본명 김지아)의 친할아버지이다.

2. 생애

1910년 12월 28일 경기도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경성부에 거주하는 대지주로서 경기도 파주군 지역에 논 389 정보와 밭 75정보를 소유했으며, 1937년 6월 말경 소작인 750여 명을 두고 있었다. 1940년 무렵 1년 소득이 11만 원이었는데, 현재 시가로 약 110억 원이다.[6]

2.1. 친일 행적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국방 관련 단체에 헌금을 기부했다. 그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

2.2. 사망

1981년 10월 26일에 향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동아일보 1981년 10월 28일자에는 “학교법인 이화학원 이사 김순흥이 새벽 4시 50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167-2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장례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이화학원장으로 거행된다고 밝혔다. 이 주소는 1937년 7월 22일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에 국방헌금 1만원을 헌납했던 주소와 성명이 일치한다. 1948년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2009년 친일인명사전 경제부문에 선정되었다.

3. 여담



[1] 4대 독자였다고 한다.[2] 서울고등법원 1984. 2. 22. 선고 82구399 판결 [법인세등부과처분취소]에 김순흥의 아내와 자녀들 이름이 공개되어 있다.[3] 2021년 사망.[4] 1937년생. 전 종로 구정상회 대표.[5] 이지아의 친아버지다.[6] 1정보는 3000평이다. 즉 140만평의 논밭을 소유했다는 것이고, 평당 70만원으로 계산하면 1조원이 넘는다.[7] 현재 시가로 약 1억 원이다.[8] 당시 군용기 가격이 1대 75,000원이었다.[9] 징병제 실시가 좋아서 감격한 게 아니라 이전에는 조선 출신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사관생도 이외는 군입대를 배제시켰으나 이후로는 '내지인'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일제는 1946년부터는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방안 또한 검토하였다. 근데 1945년에 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