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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50

광해의 연인/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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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초반3. 중반
3.1. 재회
4. 중반5. 결말

1. 개요

광해의 연인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2. 초반

역사학자 아버지를 둔 여자 주인공 김경민에게는 과거와 현재로 시간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경민의 가문 사람들에게는 여성에 한하여 일종의 패널티가 있는데, 남자는 현대로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지만 여자는 집안 남자의 도움이 없으면 현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어느 날, 경민의 집에 조선시대 복장을 한 경민 또래 소년이 나타나고, 경민은 현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해 당황하는 소년에게 여기는 '천계'라고 거짓말을 한다.[1]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은 해 뒀지만, 밤이 되도록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광해군의 나이와 그 시대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유추한 결과, 아버지가 슬립한 시대가 임진왜란임을 알게 된다. 직감적으로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안 경민은 조선시대로 넘어가고 소년의 정체도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이미 왜군의 손에 사망하기 직전이었다.

아버지에 의해 현대로 돌아온 경민은 미국에 거주 중인 고모 영아에게 아버지의 죽음과 그에 관련된 자초지종을 고하고, 고모는 자신과 함께 살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살리고 싶었던 경민은 '시간의 뒤틀림'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과거에 있을 아버지와 만나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알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하지만 이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패널티를 무릅쓰고 조선시대로 가야 한다는 상당히 위험한 계획. 게다가 아버지에게 알리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고모의 경고도 무시하고 조선시대로 돌아가고[2], 도착한 시기는 이미 임진왜란이 끝난 뒤. 그때부터 경민의 험난한 궁중 생활이 시작된다.

3. 중반

경민은 정원군의 배려로 그의 장남 종이의 보모 상궁으로 일하게 된 덕분에 궐에서 지내게 되나, 인빈의 간계로 강제로 인빈의 거처인 양화당 나인으로 들어간 이후 천연두에도 걸리는 등 온갖 고생을 죽도록 다 하는 신세가 된다. 그때마다 정원군과 광해군, 그리고 선조가 새로 들인 중전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다 광해군과의 관계에서[3] 아이를 가진 것을 인빈에게 들키고, 인빈은 이를 빌미로 임금의 여인인 궁녀를 건드린 광해군을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린 뒤 정원군을 세자로 책봉할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정원군은 이복 형인 광해군과 짝사랑하는 여인인 경민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본인이 경민을 임신시켰노라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거짓 자백을 하고, 경민 또한 정원군의 마음을 알고 광해군을 위하여 눈물을 머금고 정원군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만다. 그로 인하여 기어이 선조에 의하여 정원군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까지 가게 된다. 이때 종이와 정원군의 부인이 경민에게 원망을 표한다

경민은 유배로 인한 피로와 충격, 광해군에 대한 그리움이 스트레스로 번져 결국 임신중독증에 걸리고, 정원군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사산하고 만다. 유배가 풀린 건 선조가 승하한 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한양으로 돌아온 경민은 정원군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지내며 후궁으로 들어가기 위한 가례를 준비하던 중, 과거 임해군의 사람들이었던 이들이 대규모로 숙청당하는 현장을 보게 되고 그 사이에서 보모상궁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나인 미영을 발견한다. 그리고 소성대비를 만나러 간 행궁에서 정원군의 아들이라는 능풍도정 명이를 만나게 된다.

정원군과 정원군의 부인이 밝힌 명이의 정체는 바로 제주도에서 사산한 줄 알았던 경민과 광해군 사이의 아이.[4] 경민은 혼에게 이 사실을 말하려 하지만, 그 순간 엄청난 두통[5]을 느끼고 말하는 데 실패. 본인과 명이의 이름이 역사에 남지 않으며, 정원군의 아들 종이가 광해군에게서 왕위를 찬탈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경민은 그저 광해군과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전이 혹시나 경민이 후궁으로 들어와 아이를 낳을 경우, 세자 책봉에 장애가 될까 염려하여 경민을 아무런 정치적 힘도 없는 노수눌(盧守訥)[6]양녀로 들였다는 사실을 정원군을 통하여 듣는다. 또한 정식 세자 책봉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명이의 정체를 광해군에게 누설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역사는 예정대로 흘러갈 것으로 보이는데, 명이와 경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

3.1. 재회

임해군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광해군 지지파의 숙청의 피바람이 부는 와중에, 경민은 미영이 진도 유배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유배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던 중, 미영이 자결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미영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중전에게 직접 부탁을 할 정도로 노력하였던 상황. 슬픔에 빠져있던 경민이 비를 맞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남자 한 명이 경민에게 걱정하는 말을 하고, 뭔가 이상한 점[7]을 발견한 경민이 남자를 불러세우는데, 남자의 정체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의 손에 숨진 아버지 영찬! 시작한지 60화만에 해냈다 해냈어 경민이 해냈어

그런데 아버지에게 닥칠 위험을 말하려는 순간, 아버지가 빛과 함께 사라지는데... 이를 보고 놀란 경민이 말을 멈추자마자 빛이 사라지고 아버지는 남는다. 영찬은 경민이 12세이던 시절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와 활동 중이었던 것. 아버지는 경민에게 시간의 뒤틀림에 대하여 설명하며 본인을 구하려고 시간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 하면 시간이 경민을 적대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경민에게 천문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며, 언젠가 경민이 천문도를 통하여 시간의 문을 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수수께끼 같은 말과 함께 아버지는 떠나고, 경민은 광해군의 빈으로 들어갈 채비를 한다.

가례일이 오고 경민에게 주어진 칭호는 원빈 노씨[8]. 경민이 입궁한 이후 이이첨을 필두로 한 대북파가 임해군을 시작으로 김직재의 옥사, 진릉군 유배 등 소북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가고 궁궐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9]. 그리고 이제는 경민의 나인이 된 운지[10]에게도 역모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이유로 위기가 찾아온다. 정원군의 부인은 자녀들을 데리고 겨울비를 맞아가며 대궐 앞에서 정원군의 무죄방면을 주장하고, 이 과정에서 명이가 쓰러지더니 설상가상으로 병을 얻어 죽고 만다. 광해군은 그제야 능풍도정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명이와 각별하게 지냈던 종이는 명이의 죽음과 아버지 관련 일로 인하여 광해군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나간다.[11]

4. 중반

한편 광해군은 경민의 악화되는 건강을 우려하여 이현궁으로 데려가 세자가 보위에 오르면 상왕이 되어 이현궁에서 살 것이라 말하고, 중전은 이에 대하여 경민에게 경고를 한다. 그리고 본인의 정치적 야심으로 대비의 부친인 김제남을 사사할 계획을 원빈에게 일러준다. 남편의 왕권을 강화하고 아들에게 보위를 물려주기 위하여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를 뿌리뽑으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경민은 쌍둥이를 임신하고, 해피해피 돋는 경민과는 다르게 궁 밖에서는 김제남 파벌이 누명을 쓰고 잡혀들어가는 등 정황이 심상찮게 돌아간다. 대비는 상궁으로 위장하여 교화당에 몰래 들어와 경민에게 아들인 영창대군과 부친인 김제남을 위하여 탄원해줄 것을 간청한다. 그리고 경민의 아들이었던 능풍도정 이명을 비상으로 독살하려 했던 사람이 중전과 그의 명을 받은 김개시라는 것을 폭로한다. 당시 명이에게 먹인 비상의 양이 충분치 않아 벙어리로 만드는 것으로 그쳤던 것.

경민은 충격을 받고 중전에게 따지고, 중전이 명이뿐만 아니라 경민마저 죽일 생각이었다고 밝히는 순간 광해군이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나 이 사실을 듣고서 중전과 세자를 국본으로 세우는 것을 다시 생각하겠다고 말하고, 한편으로는 선왕이 자신을 폐세자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우라는 유지를 남겼다는 사실을 경민에게 말하며 괴로워한다. 경민은 대비를 찾아가 문안인사를 하려 하지만 만나주지 않고, 오히려 집에 가두고 불을 질러 죽이려다 실패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민은 유산하고, 대비와 광해군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광해군은 영창대군의 양육을 중전에게 맡기기 위하여 대비로부터 영창대군을 창덕궁으로 데려온다. 경민은 혼신을 다하여 영창대군을 보살피던 중 우연히 글씨가 적힌 돌덩이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이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12]라는 것을 알아낸다. 경민은 그것을 통해 8살 때, 자신이 처음 시간여행을 한 그 날로 돌아가 어린 자신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조선시대의 경민은 시간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 되고,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나면서 조선시대의 경민과 미래, 즉 현대의 경민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버지가 과거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과거 그 자체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 그 순간 빛과 함께 경민은 현대로 돌아와버린다.

5. 결말

경민은 바뀐 현대를 살아간다. 원래의 경민은 한옥마을에서 살다가 어렸을 때 시간여행을 했고, 아버지는 경민을 찾느라 일을 포기하는 바람에 한옥이 경매로 넘어가버렸다. 때문에 시간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는 아파트에서 살며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여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새로이 바뀐 현대에서는, 경민은 여전히 한옥마을에서 살며 멀쩡히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있다.

경민은 광해군을 그리워하다가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아버지가 발견한 옥패를 보고, 그간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과거의 너는 광해군과 함께 폐서인되었고, 승자가 기록하는 역사로 인하여 그 존재마저 함께 삭제되었을 거야"라고 이야기한다.[13] 경민은 자신의 존재가 없어졌는지를 의심하였으나, 정원군이 자신의 으로 남겨두고 모든 기록을 지운 것으로 설명되었다.[14]

이에 경민은 광해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고등학교 졸업 후 과거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와 함께 창덕궁을 관람하던 중 아버지에게 "조선시대에 오게 되면 꼭 나를 찾아줘"라는 약속을 남기고 조선시대로 돌아가[15] 제주도로 유배 온 광해군과 재회[16]하며 이야기는 끝. 종이책 출판본은 그로부터 4년 후에 광해군이 경민의 곁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난다.


[1] 어차피 500년 뒤의 미래라고 말해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조선 시대 지식 수준을 감안한다면 이런 대답이 최선일 것이다. 경민이 광해군에게 익숙하게 거짓말을 하며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언급하는 묘사로 보아 전에도 이런 식으로 경민의 집에 넘어온 과거 사람들이 꽤 있었던 듯.[2] 경민 입장에서는 조선 시대가 낯설지 않은 것이, 서술했다시피 이미 한 번 조선시대에서 몇 년 살아본 경험이 있다. 집안에 대해 모르던 어릴 적에 실수로 세종대왕 시기로 넘어가 아버지가 뒤늦게 찾아낼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던 것. 그때 조선 시대에 적응해버려서 오히려 다시 돌아온 현대 사회에서 꽤 고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이유도 이 때문.[3] 처음 광해군이 현대로 넘어와 두 사람이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한 묘사가 1부 전반에 깔려 있다. 또한 경민을 처음 만난 정원군이 말하길, 광해군이 경민의 이야기를 본인에게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이전에 메밀꽃밭에서 광해군이 경민에게 마음을 고백하며 본인이 왕위에 오르면 정식으로 후궁으로 맞아들이겠다고 말한 상태.[4] 역사왜곡인 게, 실제 능풍군은 능창대군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첩이 낳은 서자라고 공식 기록에도 분명히 있는데, 본부인이 낳은 걸로 위장했다는 헛소리는 대체...... 판타지 소설에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건 엄연히 실제 역사와 실제 인물들을 가지고 쓴 사극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애써도 완벽한 고증이 힘든 판국에, 공식 기록에 있는 걸 대놓고 왜곡하는 건......[5] 타임 패러독스를 막기 위한 일종의 패널티. 미래의 사람은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사람에게 역사를 말해버리면 역사가 뒤틀려버린다. 이를 막기 위해 정해진 역사를 미리 말해버리기 직전에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고통이 실로 어마어마해 혼절할 정도이며, 심한 경우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래에서 모든 걸 알고 있다 해도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장치. 광해군이 현대로 넘어왔을 때 담배를 받아든 순간 경민이 고통을 느끼며 기절한 것으로 보아, 과거인이 어쩌다 미래의 역사를 알게 되어도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6] 인목왕후의 외가인 광주 노씨 집안의 사람이다.[7] '감기'라고 말했다가 '고뿔'이라고 서둘러 정정했다.[8] 노수눌의 양녀로 들어갔기 때문에 김씨 성이 아닌 노씨 성이다.[9] 김직재와 진릉군에 관련된 내용은 광해군 항목 참조.[10] 정여립의 난으로 가문이 풍비박산나고 목숨만 간신히 부지하여 사노비로 전락한 과거가 있다.[11] 역시 헛소리. 우선 인조가 광해군에게 복수할 생각을 가지게 된 사건은 능풍군의 죽음이 아니라, 능창군과 아버지 정원군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능풍군은 1604년에 병사했는데, 이건 광해군이 즉위하기 전이다....[12] 만원짜리 지폐 뒷면에 있는 바로 그거다.[13] 헛소리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일개 후궁인데 그 존재를 삭제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이득이 된다고. 오히려 광해군의 악덕을 강조하려면 후궁을 언급하며 "여색에 푹 빠져서 나랏일을 소홀히 어쩌고"라는 죄목 하나 추가하는 게 더 나을 테니, 역사왜곡을 하든 안 하든 후궁의 존재 자체를 삭제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14] 실제로 정원군은 광해군이 폐위되기 한참 전에 홧병으로 죽었다. 광해군이 자기 둘째 아들에게 누명을 씌워서 죽이고, 자기 집까지 빼앗았기 때문.[15] 관람객 금지구역인 애련정 근처 옛 교화당 터로 들어가는 것이 창덕궁 관리사무실 CCTV에 포착된 이후 경비들이 재확인 결과 사라져 있다.[16] "야사에 따르면 광해군이 유배간 후 반말을 하며 막 대하던 여종이 있었다"며,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여종이 광해군을 막 대한 것은, 그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당시 상황을 보면 그냥 망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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