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21:32:48

자맨

고자맨에서 넘어옴
<colcolor=#000>
[ruby(자맨, ruby=ザーメン)]
Sparkey1226
파일:689fa95a-e1f0-4daf-90e5-762acf7ed3a0-profile_image-300x300.jpg
닉네임 이로([ruby(色, ruby=いろ)])[1], 고자맨[2], 215[3]
본명 김경현
출생 1991년 2월 20일 ([age(1991-02-20)]세)
대구직할시 동구 신암동
(現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1.1cm, 59kg[4]
학력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50보병사단 상근예비역 병장 소집해제
가족 부모님, 남동생
방송
시작일
2018년 5월 8일
문의 [email protected]
파일:치지직 아이콘.svg파일:트위치 아이콘.svg파일:트게더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공식파일:유튜브 아이콘.svg팬채널

1. 개요2. 행적
2.1. 방송 기록
3. 성향
3.1. 방송3.2. 방송 外
4. 사건 사고 및 논란
4.1. 욱일기 연상 이미지 송출
5. 여담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노가다 시다, 前 보험사 영업사원[5], 대한민국의 전트위치 스트리머치지직 스트리머 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공혁준의 절친으로 유명했지만 이후 평청자 600~700명대의 방송인으로 트위치 내에서의 입지도 제법 높아졌...던 때가 있었으나, 지속하지 못하고 방송 횟수가 점점 뜸해지더니 한동안 접었다가 2023년 9월경 복귀했다.

2024년 7월 현재는 쿠팡 물류를 뛰고 있으며 보통 오후 4시쯤 방송을 켜서 약 1시간 정도 홈트와 소통을 하고 쿠팡 가야 한다며 방송을 끄는게 루틴이 되었다. 일을 못 받은 날이나 야간방송을 할 때는 방송시간이 긴 편이다.

2. 행적

방송을 하기 전에는 노가다를 하고 있었으며 흥미있는 갤러리엔 다 들어가본다는 진성 디시인[6]이자 웬만한 애니들을 다 섭렵하고 코이즈미 하나요와 각종 카드게임을 좋아하는 진성 10덕이다. 애초에 노가다를 뛴 이유도 일본 가서 덕질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정말로 다년간 모은 돈을 코미케아키하바라에서 몽땅 탕진해버렸다.

최소 2016년 이전부터 공혁준의 방송에 찬조출연하며 그 존재가 알려졌다.[7] 공혁준이 삽질을 할 때마다 옆에서 심드렁하게 츳코미를 거는 조연 캐릭터 같은 느낌으로 인지도를 쌓다가 2018년 5월 8일부터 공혁준[8] 및 주변의 권유에 의해 방송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벽람항로와 고전게임, 영도를 컨텐츠로 삼았다. 이외에 환세취호전, 영웅전설3, 그로우랜서[9] 등 주로 고전 RPG를 방송했는데, 사실 당시 컴퓨터 사양이 너무 후져서 고사양 게임은 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2개월만에 후술될 사건 이후 방송을 그만두고 잠적하게 된다. 이때 이후로 술을 매일 먹기 시작하면서 간이 망가지기도 했었다고.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험회사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2020년 갑자기 크게 터진 코로나 사태[10]의 영향으로 이 일마저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이후 우연히 찾아간 공혁준의 성내동 집에서 다이어트 프로젝트를 위해 합숙 중이던 피지컬갤러리의 출연진들이 인방하는 사람들 매니저 다 있던데 자맨이 매니저를 하는게 어떻겠냐?라고 제안하자 얼떨결에 매니저로 임명되어 동거하게 된 것. 이러한 경위로 2020년 5월부터 몇개월간 공혁준의 전속 매니저로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사실 자맨은 공혁준보다 1살 연상(학년으로 따지면 2살 연상)이지만 서로 말을 놓고 친구처럼 지낸다. 공혁준의 집 청소, 설거지, 빨래, 차량운전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주기도 했다. 공혁준 본인이 안해서[11] 그리고 글쓰기가 서툰 공혁준을 대신해 공게더나 유튜브에 공지를 적기도 했다.

다만 2021년 4월 20일 방송에서 밝히길, 철원 생활 시작 전부터 이미 매니저 일은 청산한 상태였다고 한다. 사실 이 몇개월 동안 공혁준이 놀러다니느라 무급이였던 적도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은 기존에 자맨이 공혁준에게 가지고 있던 2000여만원의 채무를 탕감해 주는 것으로 갈음하였다고. 고로 둘은 이제 절친 관계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방송인으로 꾸준히 활동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2.1. 방송 기록

파일:rasdasfzdxcaw.png
215번 훈련병 김경현
파일:야쿠자맨.png
파일:wsxedccrfvtgbasfafadf.png
야쿠-자맨
미용이 상당히 잘 되었다고 크게 만족하며, 평소와 달리 텐션이 한껏 올라간 자맨이었다. 이후 단벌신사였던 그간의 생활을 반성하고 JJPD, 피갤PD 분의 옷을 입어보며 수익이 들어온 뒤에는 옷을 좀 사야겠노라고 다짐하였다.
어릴적 다리 수술을 하여 몸의 상태가 좋지 못하며 골반이 틀어지고 걸음걸이도 비정상적이었다. 문쌤은 철원에서 자맨이 앉아있을때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파일:dddddddddddddddssssssssssssqqqqqqqqqqzzzzzzzzzzz.png
양계장 근황.jpg
곧 이어 신세이 카맛테쨩つまんね(지루해)라는 앨범 중 '天使じゃ地上じゃちっそく死 (천사라면 지상에서 질식사)'란 곡[23]을 틀어놓고 화장실에 갔는데 시청자 수가 실시간으로 100명 이상씩 감소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날 본 문서를 직접 읽어보는 방송 또한 진행하였다.

3. 성향

3.1. 방송

채팅창에서 빅 딕맨이 등장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이제는 뭐라함 유일무이한 방송이며 구독자 인장도 딕맨에서 유래했다. 밴 역시 웬만큼 선넘지 않는 이상 하지 않고, 당일날 24시간 차단을 하더라도 다음날 모두 풀어준다.
파일:6c51905aef81e0439829b657abaf6300.png
본처 이즈미 사기리 씨와 함께

방송의 가장 큰 볼거리는 입담 자체의 높은 타율에 있다. 원맨쇼를 하는데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썰을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특히 인터넷 밈과 서브컬쳐에 관한 지식이 사이버 망령 수준이라 온갖 마이너한 영상도네를 쏴도 웬만하면 다 알아보고 호응을 해주는 게 장점이다.

공혁준과는 유희왕으로 알게 된 사이인 만큼 카드게임, 특히 TCG 장르의 게임을 좋아한다. 유희왕은 물론인데다 매직 더 개더링도 취급한다. 그리고 국내 플레이어가 극히 희박하게 존재하는 바이스슈발츠 플레이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였다.[27]

특유의 대구 사투리와 입담이 좋다. 일전에 스페인 스트리머가 호스팅을 넣어준 이후로 종종 외국인 시청자가 난입하여 채팅창에 난데없이 욕을 쓰거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도 영어로 무난하게 대응하며 차단해버린다. 물론 친근한 태도라면 한국인 시청자와 똑같이 대우를 해준다.

3.2. 방송 外

노가다 출신인지라 정치적으로는 노동자 권익에 부합하는 입장에 극호감을 보이며 한국의 양당체제 어느 한 곳을 택하기보다도 양자에 비판적이다. 물론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보수세력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소위 말하는 라살레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보인다. 현재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국내 정당으로는 정의당이 있다. 다만 정의당에 대해서도 리버럴한 부분만큼은 비판적이다. 디시인사이드 유이 좌익 커뮤니티인 로자 룩셈부르크 마이너 갤러리진보정치 마이너 갤러리도 자주 눈팅한다고 밝혔다. 본인 입으로도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상당히 빨간 사람입니다'라고 밝혔고, 공혁준은 '저 새X는 거의 공산당원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파일:ef19530497c7a20309d6a2a102f96b18.jpg
남산 돈까스 먹방 中

패션도 그야말로 노동자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옷들로만 입어서 그런지 액면가 상승 뿐만 아니라 운동권 활동가 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쇼비니즘,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극히 경계하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충성을 거부하고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당연하다고 본다.

특히 징병제를 극도로 혐오하는데, 그 유승준을 옹호할 정도로 징병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과거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쳐 후유증[28]을 앓고 있었음에도 신검에서 현역 판정이 나와 강제로 상근 복무[29]한 탓에 다리 상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최저임금은 맞춰줘야 병역에 임할 만하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는 상근이긴 해도 병장 만기전역자이다.

다만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기 어려운 우경화된 한국 인터넷 환경에서, 시청자 수도 늘어난 만큼 시사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기 더욱 곤란해졌다. 혹시라도 질문을 하면 그냥 '돈 많이 주는 쪽'을 지지한다고 답변해준다.

음악적 취향은 슈게이징, 포스트락 등을 좋아한다.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의 김경현'으로 불리며 라디오 방송을 할 때는 꼭 마이너한 취향의 브금을 재생한다.

그 때문인지 타 스트리머에 비해 채팅창에 정치관련 드립이 많이 올라온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머리를 감는 장면에서 물고문(...) 드립이 나올 지경.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다.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개방이 없었더라면 서브컬쳐를 즐길 수 없어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며 마치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와도 같은 위인이라고 평했다. 반면 최악의 대통령은 이명박인데, 사유는 고환율 정책으로 엔화 시세를 올려놔서 일본에 가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를 망쳐 일본 내 혐한의 풍조를 키운 주범이기 때문이라고. 게다가 이명박 정부 당시 자맨은 군복무 중이었는데 당시 군인 월급도 동결당했다며 이를 간다. 국가장학금 제도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하지만, 자기는 대학에 안 다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수혜를 입은 게 없다는 듯.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그간 상대적으로 말을 좀 아끼는 편이었지만, 직구 규제가 발표된 날에는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분노해 맹렬히 욕을 퍼부었다.

4. 사건 사고 및 논란

4.1. 욱일기 연상 이미지 송출

파일:고자맨 욱일기.jpg
파일:a46cc399f24d3b79a815363894f93e7d.jpg

첫 방송 이래로 두 달만에 욱일기를 연상케하는 이미지를 송출하는 대형사고를 터트리면서 방송의 빈도가 줄었다. 정확히는 2018년 7월 2일, 방송 화면에 본인 얼굴을 욱일기 가운데에 합성한 사진을 띄워두고 방송을 한 것이다. 본인은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국내 다른 PD계 좌파들도 '민족'이라는 개념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욱광(旭光)에 배타적인 시각이 없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겠다고 여겼다가 사이버렉카의 맹공으로 결국 자숙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자맨은 '디시인사이드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디씨질 짬밥이 오래된 사람이며, 해당 사건 이전에도 일본을 너무 좋아한다며 일뽕맨등으로 놀림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과격 성향이 강한 디씨의 일부 갤에서는 이른바 '근첩'들을 쳐내기 위해 일부러 거부감이 심한 요소들 즉, 욱일기와 노무현, 문재인 등을 합성해놓은 사진을 게시하는 풍조가 있는데, 디씨 문화에 익숙한 그가 본인이 일뽕맨임을 자학적으로 표현하며 이를 경솔하게 패러디한 것이다. 이에 몇몇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문제가 없다는 듯이 말하며 계속해서 사진을 띄워두었다.[30]
자맨 사과문 전문(2018. 07. 03)
[ 펼치기 · 접기 ]
아직 많이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이제 와서는 변명조차 못 될 이야기이지만, 글로 전하는 것이 조금 낫다고 여겨 써봅니다.

많은 카드 프로텍터(뒷면) 중에서도 하필 그런 이미지를 고른 까닭은, 보시는 분들이 지적하셨을 때 그걸 가지고 농담이나 주고받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흔히 '실패한 디자인' 운운하면서 이런 방사형 이미지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가지고 놀 생각이었죠(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가 해당 주제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면서, 정작 의도했던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흘러가다가 나중에 문제의 욱일기 이모티콘 초안을 받자마자 이게 참 좋다고 골라버린 겁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어요. 하다못해 채팅창을 봤을 때라도 아차 싶어 지우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 순간의 저는 그 반응조차 즐기고 있었습니다. 내가 방송 중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디시콘으로 어그로나 끄는 찌질이 시절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줄곧 방송에서 하는 말이 '커뮤니티에 쓸데없이 빠져들지 마라'였는데, 정작 내가 그걸 어기고 있었어요. 이미 그 동네에 너무 발을 담궜는지, 무의식적으론 이게 문제거리가 안 된다고 느낀 거죠. 대구에서 이런저런 3일을 보내고 친구들까지 끼고 방송하니 순간 마음을 놔버렸는데, 이때 드러난 게 나도 모르는 내면이었나 봅니다.

그 당시의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면 '어그로', '노이즈 마케팅'이란 말로밖엔 설명을 못 할 것 같아요. 다른 방에서 내 구독티콘을 보고, 점점 구독이 늘어나는 게 보이니까 손을 대면 안되는 곳까지 뻗어버렸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섬찟할 정도이지만, 월요일 새벽의 저에게는 욱일기가 그저 디시 마크같은 웃음거리로 보였습니다.

제가 참 못나고, 아직도 언변이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욱일기를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저의 역사인식이 모자라다는 걸 사죄했어야 하는데, 사과 한 마디로 넘어가고 내 얘기를 하려는 욕심이 너무 지나쳤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드러내고 질타를 받기보다는, 방송인으로서 앞으로의 일정을 수습하는데 더 급급했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디시에 뼈까지 물든 놈이라, 역갤에서 흘러나오는 입에 담기조차 싫은 사상에 물들고 있었나 봅니다. 안 그러고서야 욱일기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을 방송까지 켜고 하겠습니까. 한 마디라도 사과하기 바쁜 상황에서 그저 잠깐의 해프닝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려고 한 건 아무리 머리를 숙여도 모자랍니다.

이 건에 대해서 앞으로 따로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조차 지금 위기를 기회삼아 시청자를 늘리려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두려워서였습니다. 내가 진정성 있는 방송을 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지금 보면 이것이야말로 모순입니다. 어떤 방송을 해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무섭다면서 평소대로 진행한다는 생각은 다시금 되새기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가 밑바닥에 굴러다닌다는 걸 느낍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어떻게든 하루 때우고 마려는 하루살이 마인드를 여전히 못 떨쳤나 봅니다. 내가 고졸 일용직이라서가 아닙니다. 잊을 만하면 방송에서 비난하곤 하지만, 한솥밥 먹고 같이 삽을 뜨더라도 가족을 위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단지 제가 못난 탓입니다.

팔로우가 어쩌고 구독이 어쩌고 하는 말은 그냥 헛소리입니다. 평생을 제대로 머리숙여 사과해본 적 없는 놈이 이 지경이 돼서도 한 농지거리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백번 천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뒤늦게나마 글을 쓰고 있지만, 이 부분은 다시 봐도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시덥잖은 소리나 하려고 방송을 켰나 후회합니다.

사람이 참 무섭습니다. 다시 내 영상을 보니, 무릎꿇고 사과하는 제가 아닌 사과 '컨텐츠'를 들고온 방송인 고자맨만 보입니다. 정말 이 정도밖에 말을 못하는 인간인가, 어디가서 입으로 먹고사는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나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머리속에 매긴 목차에 사과는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어떻게든 내 방송을 다시 끌어올려서 먹고살 생각만 차있었나 봅니다.

이미 실망하셨겠지만, 이번 방송으로 더 실망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제 방송을 더 봐달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아직도 저를 한번 더 믿어주신다면, 못난 놈 건져낸다고 굳이 진창에 구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비판이든 비난이든 다 옳으신 말입니다. 욕을 먹는다면 저 한사람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잠시 쉬고, 조촐한 사죄방송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방송을 더 못 하게 되더라도 인간으로서 나아가려면 분명 지금보다는 더 확실하게 해결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잠깐의 말로 넘어가려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7월 3일 이 방송에 대해 깊이 뉘우친다고 자신의 트게더에 글을 남겨 사과했으며, 이후 무려 25일간 휴방을 한 뒤 다시 방송을 켰다. 하지만 8월 이후로 방송이 드물어지다 자신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삭제하고 이내 잠적하여 사실상 방송을 그만두었다가 2020년에 다시 복귀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직도 방송에서 일본 얘기가 나올 때면 채팅창에 황국신민, 그 깃발, 대게문양 같은 드립이 올라오곤 하는데 딱히 제재하지는 않는다.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51
, 9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5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5. 여담

파일:사나이김경현3.png
2024년 5월 방송중 패션 떡밥이 나오자 본인의 착장을 보여주겠다며 옷을 꺼내입었는데 티셔츠, 핫피, 타올, 종이백, 심지어 물병까지 죄다 오프행사의 기간 한정 레어템으로 도배한 아키하바라 대장군급 패션을 선보이며 실전을 거쳐온 역전의 용사라는 것을 입증했다.
파일:리즈시절고자맨.jpg

6. 둘러보기

파일:찐서유기3.png
김계란 공혁준 집 나온부식
자맨 JJPD 문쌤
[ 특별 출연 ]
쏘대장,
철원군 내대2리 이장님,
승우아빠,
철원군수 이현종,
이경진·이지영·장민영,
펭수,
하하

파일:성내동_1번지.png
김계란 과로사 공혁준
자맨 김시덕 먹구름맨


[1] 십수년전 인터넷 TCG카페 활동 당시 닉네임이 色(일본어 발음으로 '이로')였기 때문에, 해당 카페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공혁준포함 대구패밀리 한정으로 이로라고 자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2] 2021년 3월까지 사용하던 닉네임[3] 디시인사이드 고정닉. 빠르게 발음하면 '이로'와 비슷하기 때문.[4] 홈트레이닝과 식단관리로 20kg 가량을 감량했다.[5] 종합보험, 자동차보험 판매[6] 디시인사이드 초창기에 받은 가방도 가지고 있다. 2004~2005년경 중학생이던 자맨이 가장 먼저 정착하게 된 갤러리는 무려 김성모 갤러리였다고 한다.[7] 카카오팟 시절, 공혁준이 20만원 어치의 배달음식을 후원 받아서 공 혼자로는 감당이 안된다고 하여 인근에 거주하던 자맨을 불러 같이 먹방을 진행하였다고 한다.[8] 참고로 이때 공혁준은 방송을 시작하려던 자맨에게 PC 및 집 마련을 위한 자금으로 2000여만원에 달하는 큰 금액을 그냥 빌려주었다고 한다.[9] 38시간 연속방송으로 클리어 하였다[10] 특히 코로나 확산 초기 대구에서 심각했던 것 때문에.[11] 공지 대필의 경우 매니저로 일 하기 전에도 했다[12] 5만원으로 시작해서 백만원까지 올라가 총액 200만원 가량을 쐈다.[13] 유희왕을 통해 알게된 지인이라고 21년 4월10일 방송에서 밝히며 기존에 서술되었던 짬타수아 결혼식 참석은 가짜뉴스라고 선언.[14] 운전시간만 13시간 정도 소요됐다고.[15] 어릴적 시골 어르신들을 보며 담배농사 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다. 담배 재배중에 나오는 진액이나 향이 굉장히 역하다고. 마늘도 손이 많이 가서 싫다고 하였다.[16] 아무래도 고자는 어감이 안 좋기 때문에 그냥 '자맨'으로 바꿀지 고민중이라고 한다. 다만 자맨(ザーメン)의 뜻도 그렇게 썩 좋은 건 아니다.[17] 팬채널 중, 가장 처음에 팬영상을 올린 분과 계약했다고.[18] 공혁준의 지인으로 철원 귀농 방송 중 양계장 건축 방송 때 첫 등장하며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김계란의 언급에 따르면 파충류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외모와는 달리 운동 수행 능력이 제법 출중하다.[19] 고자맨 표현에 따르면 '청유'였다고 한다. 니 우야할껀디[20] 매니저직은 아니었음.[21] 다만 웃대는 자주 들어가진 않았다고 전한다.[22] 보컬을 노코가 아닌 토와 에리오의 성우인 오오가메 아스카가 맡았기 때문에 에리오오 카맛테쨩 명의로 발매.[23] 가사중, 계속 '죽고싶다, 죽고싶다'라는 구절이 반복된다.[24] 참가자 모집 요강 중, 살아오면서 이성과의 접촉이 최대한 적은 사람을 원한다는 항목이 있었다.[25] 동물을 사육, 번식시켜 샵이나 애호가들에게 분양 보내는 일로 수익을 내는 업자.[26] 공혁준과 동반으로 갔다.[27] 상대 플레이어를 친히 서울까지 초대하여 함께 남산 돈까스 먹방을 찍기도 하였다.[28] 어린 시절 승합차에 치여 발목 반이 거의 절단되는 대형 사고를 당했으며 이 때문에 아직도 다리에 깊은 흉터가 남아있다. 부모님이 다리 치료비 마련을 위해 가게를 정리하는 등 엄청난 돈을 쓰셨다고도 덧붙임.[29] 사실 원래 목표는 카투사였다고 하며 이를 위해 토플 공부도 꽤 했다는 모양이다.[30] 본인이 일본을 너무 좋아하는것에 대한 자학개그이니 상관없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을은 어떻게 그래도 한국인이란 사람이 일본이 좋다지만 욱일기에 본인얼굴을 합성하는걸 개그라고 할수있냐며 경악하는 분위기였다.[31] 품종은 랙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