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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8:40:26

견능예

후백제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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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80><colcolor=#fbe673> 후백제 견훤의 왕자
견능예 | 甄能乂
출생
(음력)
연대 미상
사망
(음력)
936년 이후
묘소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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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80><colcolor=#fbe673> 본관 전주 견씨
능예(能乂)
부모 부왕 견훤
모후 고비(?)
형제자매 견신검, 견양검, 견용검, 견금강
누이 견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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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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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사기에 언급되는 견훤의 막내아들이자 아자개의 막내손자.

2. 생애

견훤이 견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금산사에 갇혀있다가 애첩 고비, 딸 견쇠복, 막내아들 견능예와 함께 탈출했다는 대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며, 생몰연도 등 상세한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다만 고비와 함께 탈출했다는 점에서 고비의 소생이라고 보기도 하나, 그나마 기록이 조금 더 있는 편인 견금강의 어머니마저 누구인지 특정짓기 힘든 마당에 고비의 아들이라고 볼 결정적인 근거는 없다.

견훤과 함께 금산사에서 탈출한 것을 보면 신검 일당의 쿠데타에 협조적으로 나올 리가 없다고 판단되어 같이 감금되었거나 박영규와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신검에게 충성하는 척 하면서 견훤의 탈출을 도왔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금강과는 달리 신검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경쟁자로 여겨지지 않았던 모양인지 목숨은 보전받았다.[1]

존재가 밝혀진 견훤의 아들 중에서는 후삼국 통일 이후까지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양검, 용검은 이후 처형당한 것이 확실하고 신검 역시 겉으로는 용서받고 벼슬까지 하사받았다고 되어 있지만 이후 따로 처형당했다는 게 다수설인데 능예만큼은 고려 귀부 직후에 병사했다거나 일리천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거나 하지 않은 이상[2] 후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 딱히 없기 때문. 그렇다면 오늘날 전주 견씨들의 실질적인 조상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견훤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실전되었으므로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서는 그의 지위가 나인(內人)으로 나온다. 남성이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기록에 착오가 있는 듯.

3. 대중매체에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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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be673><colcolor=#fbe673> 생애 및 활동 <colbgcolor=#fff,#1f2023>생애 · 일리천 전투
가족 부친 아자개
아내 상원부인
장남 견신검 · 차남 견양검 · 3남 견용검 · 4남 견금강 · 7남 견능예
관련 문서 후백제 · 검교태위 · 신라 서면도통
매체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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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내아들, 그것도 늦둥이라면 금강과 달리 직접 태자 경쟁을 했을 리 없을 터이고, 이미 이복아우를 죽인 신검이 갓난 아기나 매우 어린 아이였을 막내까지 죽인다면 그 후폭풍과 비난이 컸을 테니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살려줬을 가능성이 크다.[2] 반드시 참전했을 것으로 볼 근거부터 없으며, 견훤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백제군의 사기가 땅을 치고 항복하는 병사가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전사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