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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돌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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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사 사례3. 막장 부대4. 속도전 청년돌격대의 부대 편성5. 216사단의 부대 편성6. 기타 청년돌격대7. 속도전청년돌격대와 혼동할 수 있는 '돌격대' 명칭8. 조선인민군 건설부대
8.1. 조선인민군 건설부대의 부대 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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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년돌격대는 건설현장이나 탄광, 광산 산하에 조직되는 준군사조직으로 현역에 입대시키고 남는 청년들을 대개 이쪽에 배치시킨다. 줄여서 '돌격대'라고도 불린다.

북한은 절대적인 인구수도 부족하고 출산율도 낮은 나라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북한보다 훨씬 더 심각하지만 북한같이 노동집약적인 산업만 겨우 잔존하는 나라에서 인구도 대략 2천만 명 안팎으로 잡히는 경우에 현 북한의 출산율인 1.7명은 대단히 심각한 경우이다. 그런 북한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남녀징병제를 채택하는데 군대를 못 가고 남아도는 인력이 있나 싶겠지만, 북한도 나름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에 입대할 수 있는 조건은 마련해놨다. 한국이나 기타 국가들과 징병시에 보는 조건 중 같은 점은 신장, 몸무게,[1] 평발 등이 있고, 차이점은 출신성분에 따라 인민군대 징병 여부가 갈린다는 것이다.

북한은 개인이 출세하기 위해선 에 들어가는 것, 즉 '입당'해서 '당원'이 되는 것이 기본이다. 입당 자격은 개인의 출신성분, 직업, 직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 북한 서민 대부분에게 입당 자격이 주어지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인민군대를 만기제대했을 때이다. 그래서 북한에선 입당하여 개인이 출세하고자 하면 인민군대는 꼭 다녀와야 한다.

그러다가 최근 북한 현실에서는 힘들게 만기제대하고 입당하여 높은 직위를 가져봐야 나라에서 배급이 나오질 않고, 일반 서민들이 고이는 뇌물이나 받아먹거나 어차피 장사를 해야 먹고살 수 있는 현실이다보니, 최근 북한 주민들도 "인민군대(또는 돌격대) 가서 만기제대해봐야 어차피 장사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가봤자 허약이나 걸리고 무엇하러 가나?"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그래도 여전히 북한 사회 전반에서 (특히 남자가) 입대를 못했다고 하면 어디 하나 모자라거나 출신성분이 좋지 못하다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인민군대를 좋든싫든 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그렇기에 군대는 무조건 가야하나, 위와 같이 출신성분이나 신체적 조건을 갖추지 못해 입대가 거절된 청년이 인민군대 대신 복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청년돌격대이다. '복무할 수 있는' 표현이 붙은 이유는 인민군대보다도 사회적으로 멸시하고 푸대접하는 이 돌격대가 바로 탄원해서 자원입대하는 곳이다.

청년돌격대는 다녀와야 사회에서도 "인민군대는 못 갔지만 그래도 청년돌격대 만기제대했대"하고 어느 정도는 사람구실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개인마다 다르지만 돌격대 만기제대자에게도 웬만하면 입당 자격 또한 주어진다. 웬만하면 청년돌격대 만기제대자에게도 입당 자격이 주어지나, '개인마다 다르다'는 사족이 붙은 이유는 북한이탈주민 이위력[2] 씨의 경우, 토대(출신성분)가 좋지 않아 돌격대로 자원입대했으나 부대 소속 정치지도원이 "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나? 너 그렇게 해봐야 입당 안 된다"고 언질을 주었다는 일화로 비추어 보아, 돌격대 만기제대했다고 모든 이에게 당원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청년돌격대도 복무일자는 인민군대와 같다.

방어진지 건설 혹은 고속도로, 비행장, , 살림집, 공장, 철도, 발전소, 농사 지원 등 각종 공사와 잡일에 투입하는 준현역급 건설공병들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국가가 세운 국토건설단으로 탄원 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국토건설단이 폐지된 현대의 남한 기준에서는 사회복무요원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볼 수도 있다.

최초 등장은 1946년 보통강 개수공사 때로, 이후로도 각종 전후복구 사업을 위해 임시적인 청년돌격대가 편성되다가 가장 유명한 '속도전청년돌격대'가 1975년 상설조직이 되어 40년 이상 운영되고 있다. 북한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설들은 이들 청년돌격대가 건설한 것이다. 예를 들면 금강산청년역, 신의주청년역 같은 철도역들이 있다.

남한에서도 과거엔 방위병이 있었고 현대엔 사회복무요원이 있고, 공무원을 대신해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부려먹는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쪽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북한의 청년돌격대는 말 그대로 몸 쓰는 노가다로 부려먹힌다는 차이가 있다. 김정은 시대가 온 뒤로는 경력이 쌓이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는 있어졌기 때문에 상황이 개선되었지만, 김정일 시대 때는 막장인 경제상황과 부실한 보급이 겹쳐서 군기가 개판이기로 악명 높았다.

2. 유사 사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한 국가에는 거의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인간론에 따라 의무교육을 받은 개인은 가장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져야했다. 자본주의에서의 소외 현상을 불러오는 생산수단과 생산력(노동자)의 분리를 타파하고, 생산력을 가진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장악할 수 있는 직업을 의미한다. 즉, 똑같은 1차 노동이라도 농민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농작물 생산의 모든 과정을 본인이 장악하여 본인이 생산 자체를 통제할 수 있고 공장의 노동자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른 모순이 없다. 문제는 건설현장의 단순 노무직은 그 생산수단과 결과물로부터의 소외가 불가피했다는 점인데, 쉽게 말해서 노동자가 원하는 대로 건물을 지을 수도 없고 건물을 짓는다고 그 건물을 노동자에게 줄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차마 사회주의 국가, 전체주의 독재국가라도 너의 적성은 노가다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 문제. 계획경제 사회주의 국가에서 '건설노동자'로 분류되는 직업이 없던 것은 아니나, 대개는 집을 수리하는 기술직이나 목수와 같은 전문 기술이 필요한 업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임업종사자와 같이 조직되는 경우가 많았다. 1, 2차 산업에서의 육체노동자는 존재했고 교육 수준 향상에 따른 육체노동 기피와 차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현대 한국의 노가다 같은 직종은 별도의 직업 분류 없이 노력동원으로 충당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도 시민대중의 교육 수준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21세기의 시점에는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국제노동시장의 개방, 아니면 노동시장에서 낙오된 인원의 수급으로 해결하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가다상하차로 대표되는 단순노무직의 만성부족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2020년대 현재 한국도 단순노무의 일급은 단순 최저임금보다 상당히 높게 책정되고 있다.

소련 초중기에는 학력수준이 낮았기에 단순노동을 기피하는 경우는 적었지만 사회기반시설 건설수요는 많았기 때문에 죄수들까지 동원했었고 학력 수준이 고졸 이상으로 올라간 소련 후기에는 사무직보다 노무직의 임금수준이 더 높은 경우가 많았음에도 사무직 노동을 선호하는 현상이 생겨나서 단순노무직은 일손이 달렸다. 단순노무직을 확보하기 위해 제일 많이 활용된 방법은 죄수를 이용한 노동단련형과 군인이나 민간인의 동원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붕괴하는 그 순간까지 단순노무직의 만성 부족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고, 그동안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갖은 방안을 고안했다.

동독에는 Bausoldaten(건설병)제도가 있었다. (참고자료). 건설병 제도도 이 제도와 마찬가지로 군복무 대신 건설, 토목 현장에서 노역을 하게 한 제도이다. 다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동독의 건설병 제도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현역 대신 선택해서 가는 일종의 대체복무였고, 북한의 건설부대는 그냥 비자발적 노예라는 것이다. 애초에 북한에서 군복무는 선택의 자유란 없으며 당에서 정해주는 대로 복무해야 한다.

베트남 전쟁 때도 북베트남에 청년충격여단이라는 청소년, 여성으로 구성된 건설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신장생산건설병단 역시 이 분류에 속한다.

남한에서 그나마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은 1960년 11월 28일에 창단되었다가 1962년 12월 31일 해산된 국토건설단이다. 원래 실직자 구제수단으로 만들어졌으나 병역미필자, 병역면제자들이 군복무 대신 국토건설단에서 건설, 토목 현장에서 노역을 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국토건설단은 감자 농사를 짓지는 않았고, 건설부대처럼 군기가 완전 막장인 단체는 아니었다.

3. 막장 부대

청년돌격대는 군대식 편제를 취하고 있으며, 실제로 대원들에게도 군대 계급이 나온다. 복무기간은 과거에는 군대보다는 짧은 2~3년에 불과했다고 하나 현재는 군대와 비슷한 10년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속도전 청년돌격대의 인원은 약 40만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北, 청년동맹 산하 청년돌격대 40여 만명…"무보수 강제동원")

이들이 주둔하고 있는 반경 몇 km 지역의 민가와 군부대(?!)에는 식량 한 톨, 처녀 한 명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약탈이나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벌어진다고 하며 그러다가 간혹 저격여단이나 경보병여단 등의 특수부대원들에게 걸려서 역으로 얻어맞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군관(장교)이라는 작자들이 부대원들을 , 곡괭이, 지렛대로 무장시켜서 몇십 명이 죽고 다칠 때까지 패싸움하는, 군기가 막장 중에 막장인 곳이다.

사실 이들이 이런 짓이나 저지르는 것도 나름 사정이 있긴 하다. 신분부터가 동요계층 출신 이하에 신체적으로나 사상적 토대나 성분이 현역으로 입대가 불가능한 계층들이 많다. 게다가 부모없이 떠돌아 다니던 꽃제비 출신들도 있다. 나이가 차니 직업배치를 받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북한 사회에선 군대 경력 없이는 입당도 못하고 입당을 못하면 남자취급도 못받고 장가도 못간다는 인식이 많았기에 돌격대라도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세가 거의 불가능 하다. 부대마다 입당 가능 쿼터가 내려오는데 당연히 일반부대보다 적다. 재일교포 출신 탈북자는 기어이 입당하려고 자원으로 12년 복무까지 했다고 한다. 10년 동안 총 대신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이 노가다만 하는 부대에 걸려서, 강냉이밥과 염장무 따위가 제공된다. 물론 이렇게 부식공급이 열악한 것은 타 부대도 마찬가지이지만 김일성 시절에는 군복무기간이라도 짧아서 사회로 빨리 나갈수있다는 장점이라도 있었는데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복무기간이 연장되어 타군과 똑같이 장시간 복무하게 되고 그 와중에 보급은 형편 없어졌으니 이들의 박탈감이 커졌고 결국엔 고삐가 풀려서 군기가 개판이 된것이다.

더군다나 그 식료품도 제때 보급되지 않아서 가만히 있으면 영양실조로 굶어죽는판인지라 자체적으로 텃밭을 가꾸거나 남는 시간에 장사질을 하든가라는식의 부업을 해야했다. 그리고 안전모랍시고 주는 게 싸리나무 가지를 엮은 것일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약탈 및 성범죄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들이 100프로 성분불량자는 아니다. 모종의 경우로 인해 특정연도 졸업생들은 예외없이 돌격대로 보내버리는 무리배치가 잦다. 이 경우에는 부모들이 뇌물을 써서 다른곳으로 빼돌리니 없는 집 자식들만 남는게 대다수.

이곳 군관들도 하전사들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할당된 작업량만 달성하면 도둑[3], 강간 등의 웬만한(?) 군기 위반 등은 봐주는 편이다. 이렇게 사고가 넘쳐나다보니 당연히 대민이미지가 나쁘니 해체되어도 할말이 없지만 북한의 사회 꼬라지 자체가 군을 우선시하는데다 무엇보다도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이들의 유용성이 커서 그럭저럭 존속은 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10년을 복무해도 제대로 된 봉급 한 번 받지 못하고, 당원이 되어 당증이나 하나 받아오면 다행이나 대부분 입당이 안된다. 이 쪽에 가는 사람들은 출신성분 등 북한 당국의 말도 안되는 기준에 걸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추천을 받으면 횡재다. 그나마도 고된 노동을 뒷받침할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자체적으로 텃밭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고 숙소를 직접 지어 해결해야 하는 판이니 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어찌 보면 어지간한 군대 생활보다도 힘든 것이 청년돌격대 생활이다. 때문에 중도에 탈영을 하는 사례가 부지기수고, 최근에는 이런 사례가 많이 알려지면서 청년돌격대에 입대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군대는 적어도 총을 들고 사민(민간인)들을 약탈하든 뭘 하든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2010년대 북한에서 건설붐이 불자 청년돌격대도 일거리가 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제법 벌어먹고살수는 있어졌고, 이 때문에 코로나 이전 김정은 시대에는 돌격대가 밥벌어먹을수있는 직종으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평양에 아파트와 마천루 등의 신식건물의 건설이 늘어나면서 돌격대가 많이 투입이 되었는데 그전엔 개돼지 취급을 받던 돌격대원들중에 특히 아파트나 고층건물 건설에 기술이 좋은 돌격대원 출신들이 몸값이 올라가서 대접받게되었고, 특히 돌격대 건설지휘부 참모장은 건설인원을 수급해주는 용역업자 역할을 맡아서 꿀이 떨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호위국이고 보위국이고 나발이고 군관들이 돌격대 건설지휘부 참모장 자리 하려고 뇌물을 쓰는판이라고.

다만 이것도 부대사정에 따라 다르기는 해서, 사회초년생들은 여전히 강냉이밥, 콩밥이나 무짠지, 나물, 소금국 정도나 나오는 부실한 식사를 하면서 경력을 쌓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는 하다. 번듯한 식단은 먹으려면 자비를 들여야된다.

4. 속도전 청년돌격대의 부대 편성

5. 216사단의 부대 편성

6. 기타 청년돌격대

돌격대의 본부는 사단으로 간주되며, 대부분 산하에 각 성 및 중앙기관, 직할시 및 도 단위의 여단을 둔다.

7. 속도전청년돌격대와 혼동할 수 있는 '돌격대' 명칭

북한은 속도전청년돌격대가 아니라도, 해당 업무가 중요하거나 김씨일가로부터 직속명령을 하달받은 협동체에 '일에 전투적으로 임하라'는 뜻으로 '돌격대' 명칭이 주어지곤 한다. 이 '돌격대' 명칭을 하사받은 협동체는 절대 해당 문서의 속도전청년돌격대 의미의 돌격대가 아니다.

협동농장 산하의 청년작업반과 청년분조도 돌격대의 명칭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탄광돌격대와 건설돌격대와 같이 탄원을 통해 형성되는 조직이다.

이외에 돌격대의 명칭을 하고 있지만 217과학자기술자돌격대(국가과학원 소속)와 415기술혁신돌격대(조선과학기술총련맹 소속)은 청년돌격대와는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 덧붙여 217과학자기술자돌격대는 공장, 기업소, 농장에 파견되는 것이고, 415기술혁신돌격대는 공장, 기업소, 농장에 설치되는 것이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연구직, 후자는 생산직 기사라고 보면 될 듯.

8. 조선인민군 건설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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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도로군단' 열병대원.

건설부대는 분명 국방성 공병국 예하의 육군 여단급 부대이지만, 절대 정규 공병부대가 아니며, 10년동안 만들고 고치는 일이나 뼈빠지게 시키는, 대놓고 말하면 그냥 노가다 노예다.

8.1. 조선인민군 건설부대의 부대 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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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여타 정상국가와 다르게 북한 징병에서의 신장과 몸무게 조건은 그 커트라인이 매우 낮다. 현역 판정률이 매우 높은 한국에서조차 북한의 신장과 몸무게 조건을 보자마자 사실상 기준이 없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할 정도이다.[2]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던 남성으로, 북에선 보안원의 꿈을 꿨고, 탈북 후엔 그 꿈을 이어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중이다.[3] 민간인의 이나 농작물 등을 서리하는 등[4] 922건설돌격대와 618건설돌격대 및 철길건설돌격대는 청년돌격대가 아닌 직맹돌격대이다.[5] 초창기의 김일성을 지원한 공산주의자로 모아산에서 중국 공산당 예비당원이 될 때 그의 입당보증인이 돼 주었다고 한다. 1930년대 중국 공산당의 세력다툼에서 피살되었다. 북한은 그를 김일성을 위해 충성한 청년 공산주의자의 전형으로 선전하고 있다.[6] 차광수와 마찬가지. 본명은 김근혁으로, 1931년 일제에 체포된 후 변절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