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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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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colbgcolor=#fff,#191919> 용문중학교
고등학교 용문고등학교
대학교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학교 법인 용문학원
관련 인물
김문희 김용주 현영원 유승지 }}}}}}}}}
학교법인 용문학원
學校法人 龍文學園
YONGMOON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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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립학교법인 (교육재단)
설립일자 1949년 4월 28일
겸산학원
설립자 김문희
이사장 유승지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 208 용문빌딩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고등교육기관
2.1. 대학
3. 중등교육기관
3.1. 고등학교3.2. 중학교
4. 임원진5. 역대 이사장
5.1. 겸산학원 시절5.2. 강문학원 시절5.3. 용문학원 시절
6. 역대 용문 학원장7. 사건·사고
7.1. 이사장 공금 횡령 사건7.2. 친일반민족행위자 논란
8. 여담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학교법인 용문학원
學校法人 龍文學園 YONGMOON FOUNDATION

대한민국학교법인으로 1949년 4월 28일 기존 강문학원[1]임당 김문희 선생이 인수하여 세운 학원이다. 화정 유승지 선생이 현재 4대 이사장직을 지내고 있다.

2. 고등교육기관

2.1. 대학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서울諮詢心理研究生院大學, SEOUL GRADUATE SCHOOL OF COUNSELING PSYCHOLOGY)

3. 중등교육기관

3.1. 고등학교

용문고등학교 (龍文高等學校, YONGMOON HIGH SCHOOL)

3.2. 중학교

용문중학교 (龍文中學校, YONGMOON MIDDLE SCHOOL)

4. 임원진

학교법인 용문학원 임원진
직위 성명 현직(경력) 임기
임기시작 임기종료
이사장 유승지[2] (주)홈텍스타일코리아 회장, 유현개발 회장 2021년 3월 3일 2025년 3월 2일
이사 현일선[3] (학)용문학원 상임이사 2021년 4월 30일 2025년 4월 29일
이사 진광엽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2021년 9월 30일 2025년 9월 29일
이사 최원현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2021년 9월 30일 2025년 9월 29일
이사 황원길 반앤반에듀 대표이사 2021년 9월 30일 2025년 9월 29일
이사 유정수[4] (학)용문학원 이사 2019년 9월 17일 2023년 9월 16일
이사 신용길 용문고등학교 교장, 교육경험이사 2021년 1월 20일 2025년 1월 19일
이사 이호영 백암농원 대표 2021년 1월 20일 2025년 1월 19일
이사 강동구 더블유에셋 지점장 원장 2021년 9월 30일 2024년 9월 29일
이사 조재형 (주)TM자산운용 대표이사 2023년 3월 7일 2027년 3월 6일
이사 송시강 홍익대학교 교수[5] 2023년 2월 7일 2027년 2월 6일
이사 박주봉 대주.KC 회장 2023년 7월 25일 2027년 7월 24일
감사 박영선 세무법인 다현 대표세무사 2023년 2월 7일 2027년 2월 6일
감사 홍준 (주)중고나라 대표이사 2022년 7월 1일 2025년 6월 30일

5. 역대 이사장

5.1. 겸산학원 시절

역대 학교법인 겸산학원 이사장
순번 성명 직함 임기 기간
취임일 퇴임일
1 조관연 초대 이사장 1949년 1월 25일 강문학원 이임 연결

5.2. 강문학원 시절

역대 학교법인 강문학원 이사장
순번 성명 직함 임기 기간
취임일 퇴임일
1 조관연 초대 이사장 1949년 1월 25일 1959년 10월 17일 10년
2 이광수 2대 이사장 1959년 10월 17일 1964년 4월 27일 5년
3 박금선 3대 이사장 1964년 4월 28일 1966년 12월 25일 2년
4 김용주 4대 이사장 1966년 12월 26일 용문학원 이임 연결

5.3. 용문학원 시절

역대 학교법인 용문학원 이사장
순번 성명 직함 임기 기간
취임일 퇴임일
1 김용주 초대 이사장 1966년 12월 26일 1980년 9월 18일 14년
2 현영원 2대 이사장 1980년 9월 19일 1998년 8월 27일 8년
3 김문희 3대 이사장 1998년 8월 28일 2017년 3월 2일 29년
4 유승지 4대 이사장 2017년 3월 3일 현재 재임 중

6. 역대 용문 학원장

역대 학교법인 용문학원 학원장
순번 성명 직함 임기 기간
취임일 퇴임일
1 김문희 초대 학원장 1995년 3월 현재 재임 중

7.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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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사장 공금 횡령 사건

2014년 김문희 이사장의 횡령 사건#[6] 이후, 2015년 광복 70주년 특별 사면으로 거론되었으나 김무성 덕분에 사면된다는 논란이 있어 사면은 무산되었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개월로, 김 이사장은 지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자신의 딸을 서울 강남구 소재의 용문학원 소유 건물 관리인으로 임용해 급여 명목으로 3억 7000만원과연 3억 7000만원이 다일까?을 지급한 혐의(업무상 횡령)를 가지고 있다. 이사장의 비리에 대해 참조하는 기사 2015년 겨울 이사장이 학생식당에서 교장선생님과 같이 석식을 먹는것을 목격. 뒷테이블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되게 잘먹었다.[7] 자기가 삥땅(?) 친 것들인데 당연히 잘 먹어야겠지.

7.2. 친일반민족행위자 논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용문학원 김문희 이사장의 아버지[8]김용주 선생의 호인 '해촌'을 딴 해촌기념관이 본교 내에 위치해 있다.[9]
이상의 논란을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서술해야 하는 위키의 준칙에 의거, 중재위의 결정에 입각하여 결론 내린다면 다음과 같다. 김용주는 최종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은 없으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하여 그가 친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속단하면 안 된다.[10]

썰전에서 다룬 바 있듯, 김용주가 초기에(대략 1941년 이전) 애국·항일 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1927년 항일단체였던 신간회 영일지회 설립총회 멤버였고, 1925년에는 야학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포항청년회 간부를 맡아 ‘독서회’ 조직으로 신문화 연구와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중 1926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1936년에는 항일운동 본거지였던 포항 영흥학교가 존폐 위기에 처하자 조선인 취학연령 아동들을 위해 사재를 기부해 학교를 살렸다. 1937년에는 경북도 의회에 당선이 되고 1938년에 경북도의회에서 일제가 수탈 목적으로 강제 시행하던 면작에 대한 피해에 대해 농민들에게 국가가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김용주의 아들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선친인 김용주가 독립군에 몰래 활동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반대로 친일인명사전에 제외된 사실이 있기에 친일파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친일 행보와 민족적 행보 모두를 자처한 것으로 보아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자적 성격을 가졌던 인물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11]

자칫하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물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인물을 친일 인사로 결론지어 버렸다면 허위사실 유포가 된다. 참고로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친고죄에 속한다. 다만 친일적 행동에 해당하는 반민족행위를 하였느냐 안하였느냐로 본다면 했다.가 맞다.

그러다가 2015년 9월 17일에 인터넷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 보도 내용 인용에 의하면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사료 발굴을 통해 군용기(애국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아사히 신문 광고 등 김용주의 친일 행위를 새롭게 입증할 다수의 일제 공문서와 신문 자료를 공개했다." 라고 한다. [12]

참고할 자료 민족문제연구소의 기자 간담회 보도자료, 뉴스타파 보도내용 - 김무성父 김용주, ‘일제군용기 헌납, 징병독려’ 광고, 뉴스타파 유튜브 영상 친일인명사전 등재 기준에 부합한다고 자세히 보도했다.

이에 관해 유명한 사건으로는 교사들이 입학 전형에 관해 강의를 할 때, 이사장이 있는 자리에서 한 교사가 독립운동가 전형을 예로 들자 이사장이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에요?' 라고 한 적이 있다. 이때문에 학교 축제때 독립운동가를 조사한 부스를 만들때 고민을 많이 했고, 결국 반발심 비슷한 마음이 생겨 완성했다. 거기에 대해선 별 논란은 없었다.

현재 이사장은 유승지 홈텍스타일코리아 회장이다. 김문희 전 이사장의 장녀인 현일선의 남편이다.

8. 여담

현 용문중고의 전신인 성도중학교는 1946년에 최의순 선생이 사비를 들여 세운 학교로서 그리 넉넉한 재정으로 운영하지는 못하였다 전해진다. 겸산학원의 설립자인 조관연 여사는 이러한 성도중을 인수하여 겸산학원을 세운다.

1966년 12월에 초대 이사장 김용주선생은 외국여행 중이였는데, 국악예술학교 이사들이 강문학원을 인수를 해놓고 국립예술학교[13] 이사장인 김용주선생에게 강문학원을 맡으라고 권하였다. 마침 교육감의 간곡한 권유도 있고 해서 딸인 김문희선생에게 전화로 강문학원을 맡지 않겠나고 물었다. 김문희선생은 당시 평소에 늘 사회에 봉사하는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고등학교를 맡는다는 생각은 없었고 교장을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김문희 선생은 고민하다가 기왕 할 바에 이번 기회에 시작하여 아버지인 김용주선생의 권하는 것을 하여 기쁘게 해 드리고자 맡겠다라고 하였다. 며칠 후에 김용주선생과 현영원선생, 김문희선생이 교사에 와보니[14] 그 때가 겨울인데 황량하였다고 한다. 학교라고는 골조만 있는 콘크리트 단층건물에 주위에는 판잣집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고 부지도 제대로 있지 아니하였다.

김용주이사장은 국악예술학교[15] 가 지금의 안국동 삼환기업 자리에 있었는데 교사를 이전해야 할 상황이 되어 지금의 한국외국어대학교이문동의 땅을 사서 교사를 지어주는 조건으로 강문학원을 독립시키고 김문희선생에게 주선하였다. 이런한 국악예술학교와의 관계덕에 초기에 이사진들이 국악에 관계된 사람이 많았다.

인수 후 김문희선생은 김용주선생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였고 이후 용문학원으로 법인명을 바꾼다. 당시 강문학원의 상태는 위에서 서술하였듯 부실학교였기에 이러한 이미지를 벗기 위하여 용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사회는 건전한 학교를 건설하기 위해 부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는데 현영원 당시 상임이사는 오물세례를 받아가면서 판자촌 주민들을 설득하여 이사비용을 가구당 5만원씩 지원하고 우이동에 15평씩 땅을 사서 나눠주는 조건으로 부지문제를 해결하였다. 또 학교 옆 지금의 동암교회 부지도 학교부지였으나 시가보다 싼 값에 양도하였다 한다.

조관연 여사는 성도중학교 말고도 명성여자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1953년에 양 학원을 합병하여 겸산학원을 해산시키고 강문학원에 합병시킨다. 그리고 조관연 여사 사후 명성여중고는 재단에서 분리된다. 당시 명성여중고는 교장은 심태진 선생이었는데 구의동에 학교 부지를 사서 새 교사를 건설하고 있었다. 현영원 상임이사가 명성여중고를 방문했을 당시 심태진 교장이 이 부지는 학부모의 기부금으로 산 것이니깐 기부금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명성여중고를 따로 독립시킬 테니 운영해 보라고 심태진 선생에게 명성여고를 맡긴다. 이 명성여고는 1967년 동국학원이 설립되면서 2005년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게 된다.

1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을 5층으로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69년 12월 10일이었다.[16]1970년에는 운동장을 완성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과학관[17], 체육관, 교사식당[18], 별관[19], 해촌기념관, 신관, 강신수련관이 건설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20]

9. 관련 문서



[1] 구 겸산학원[2] 설립자 임당 김문희선생의 사위이자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자의 조카이다.[3] 설립자 임당 김문희선생의 장녀이자 유승지 이사장의 부인.[4] 유승지 이사장 친인척이자 유유제약 특수관계인이다.[5] 법과대학[6] 이사장의 이복동생은 거물급 정치인이고 딸은 현대그룹 회장이다.[7] 수감된 것이 아니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학교에 나타날 수 있다.[8] 김무성 의원과 김문희 이사장은 이복남매 사이이며, 김문희 이사장김무성 의원보다 23세나 많다.[9] 해촌 선생이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만 애국자라는 이야기 또한 돌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는 않다. 해촌 선생의 친일 여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10]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가 친일인명사전의 등록 기준에 부합하며 그를 개정판에 추가하겠다고 밝혔다.기사[11] 기회주의자보다는 변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거나 그거나 도긴개긴이긴 하지만[12] 나무위키 김용주 문서 중 발췌[13] 당시 국악연수원[14]안암동 교사[15] 당시 국악연수원[16] 현 본관으로서 현재는 리모델링을 하여 예전의 모습은 찾기 힘들지만 구조는 당시와 같다.[17] 본관 동측 끝 건물, 현재 강당이 있는 건물이다. 당시에는 과학관이라는 이름에 맞게 과학실이 있었지만 현재는 과학실은 없고 기타 특수교실이 들어서 있다.[18] 정문 앞에 있었다고 하는 2층의 건물로 현재는 철거됨[19] 현 용문중학교 건물[20] 용문70년사 발췌[21] 많은 학생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현대그룹과 관계가 있다.[22] 설립자 김문희 학원장이 설립한 장학 재단으로 과거에는 용문학원 장학 사업을 다수 하였으나 현재는 거의 하지 아니한다.[23]유승지 이사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장학 재단으로 용문학원 취임 후에 용문학원의 기존 임당재단장학을 유유재단장학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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