ГАЗ Победа / FSO Warszawa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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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베다»를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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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포베다"는 1946년, 소련의 자동차 메이커인 GAZ에서 개발한 패스트백 스타일의 대형 세단/크로스오버 시리즈이다.«포베다»를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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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인 "포베다 (Победа)"는 러시아어로 "승리"를 의미하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소련에서 만들어진 독자모델 차량이라는 점과, 승전에 대한 당대 소련 정부의 자긍심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이름이 부여되었다고 한다.
후계자인 가즈 볼가의 등장 이전까지 소련 이외 위성국에서는 나강 리볼버와 같이, 소련 치하의 압제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해, 이 때문에 "포베다"라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1]
공장 코드명은 M-20과 M-72 2개가 있는데, M-20은 일반적인 4x2 후륜구동 세단을 말하며, M-72는 4x4 4륜구동 관용차 사양을 의미한다.
2. 상세
2.1. 가즈 포베다 (1946~1958)
ГАЗ Победа |
등장 자체는 전후인 1946년이었지만, 그 개발계획 자체는 194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당시 독소전쟁의 여파로 소련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렌드리스를 게시해 소련에게 지원했으며, 여기 포함된 품목들 중에는 당연하게도 기갑차량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시기 포드의 GPA와 닷지의 WC 시리즈를 정비 및 개수를 지속한 GAZ는 자연스레 고급 차량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GAZ-67 소형전술차량의 개발을 하게 된다.
GAZ-67은 분명히 괜찮은 성능의 전술차량이었지만, 대량생산을 하진 못해 미완의 여지를 남겼는데, 이에 GAZ사의 개발진들은 그 동안 많은 기술지원을 도와준 포드의 차량들과, 전쟁 중 생산된 쉐보레의 쉐보레 플리트라인과 영국의 스탠다드 뱅가드 등, 여러 자동차들과 당대 디자인 트랜드를 획득하려고 노력했으며, 이에 수석 디자이너로 젊고 유망한 "베냐민 사모일로프"가 선대 디자이너인 "블라디미르 아랴모프"의 1938년 시제 설계안 GAZ-11-80을 기반으로 4도어에, 미국식 폰톤 디자인의 차량 설계를 이끌어내었고, 이것이 큰 호응을 얻어 "M-20 포베다"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여기에는 재밌는 사정이 있는데, 본디 가즈 사의 중역들은 차 이름을 "로지나 (Родина, 조국)"로 하려 했으나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는, "흠, 그럼 조국의 가치는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살벌한(...) 농담을 해서 승리를 뜻하는 포베다로 이름을 바꿨다는 일화가 있다.
특히 포베다는 소련 최초의 개인 구매 가능 차량이기도 했는데, 이전까지 자동차는 소련 정부로부터 "대여"형태로만 구입이 가능했다보니 이는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었다.
전쟁 직후인 1946년, 전후 최초로 탄생한 독자모델이라는 것과, 그 독자모델이 고급차라는 점 덕분에 서방권에 큰 충격을 가져다 준 차량이기도 하지만 그 실상은 오펠 카피텐을 동독을 통해 밀반입해와 이를 역설계하여 매우 급하게 만든 차량이었고, 생산 초기에는 끔찍한 결함에 시달리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차였다.[2]
다만 1948년부터 소련 경제의 안정화, 공산권 국가들의 순조로운 단합 등으로 공업 품질이 좋아졌으며, 이 덕에 소련 및 위성국들 뿐만 아니라,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스칸디나비아 3국과 서유럽 일부 국가, 심지어 미국에도[3] 수출이 이루어지면서 모스크비치 400 시리즈와 함께 소련의 수출품 중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으며, 단종되는 1956년까지 큰 인기를 구가했다.
2.1.1. M-20
М-20 «Победа» |
1955년에는 출력이 개선되어 55마력으로 향상되었으며, 여러 편의사항을 추가하였고, 컬럼식 수동변속기에서 일반적인 센터 플로어식으로 변경된 사양이 "M-20V"라는 명칭으로 생산되었다.
워낙 생산 수량이 많다보니, 현재까지도 매매되는 차량들이 다수 있는데 대부분의 개체가 50만 루블 ~ 100만 루블 사이에 거래가 되고 있다. 상태가 정말 좋은 완전 복원 개체의 경우 600만 루블까지 하기도 한다.
2.1.2. M-20A
М-20А «Победа Такси» |
1949년, 소련 주요 대도시에서 사용되던 택시들 대부분이 전쟁 이전 생산된 가즈 M1과 같이 구식 차량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때문에 소련 국토부에서 택시 전용 차량의 수요를 GAZ에게 건의, 기존 생산되던 포베다의 내장재나 일부 요소를 염가형으로 교체한 M-20A를 출시해 1958년까지 생산하였다.
일반 포베다와의 차이점은 외부 도색이 투톤이라는 점과, 택시임을 나타내는 초록색 라이트, 그리고 차체 측면에 새겨진 체커 스프라이트가 있다.
2.1.3. M-20B
М-20Б «Победа Кабриолет» |
사실, 완전 컨버터블이라고 하기에는 카브리오 코치에 가까운 형태인데다, 소련의 추훈 기후 탓에 판매량과 인기가 높지 않아 소량 생산에만 그친 모델이며, GAZ에서 해당 모델을 출시한 이유는 당시 소련에서는 전쟁 당시 판금 및 야금 기술이 많이 부족했으며, 이는 포베다를 개발할 때에도 해결되지 않아 카브리오 코치 형태로 임시방편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속사정과는 별개로, 디자인이 매우 수려하고, 전후 최초로 만들어진 자국산 컨버터블이었기에 러시아 클래식카 애호가들에게는 높은 가격에 매매되고 있다.
2.1.4. M-20G
М-20Г «Победа» |
일반적인 M-20 포베다와 달리, M-20G는 기존 4기통 M20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추격 및 특수목적 차량이었기에 더 상위급의 모델인 ZIM-12의 90마력 직렬 6기통 롱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하여 최고시속 130km/h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기존 포베다와의 차이점은 외형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검은색의 특수 도료를 사용한 페인트와,[4] 일반 가죽을 사용한 포베다와 달리 인조가죽을 이용해 마감하였으며, 차량 차대번호를 확인하면 ГАЗ М-20Г라고 당당히 명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특수 첩보 활동을 위해, 가짜 번호판과, ARS-2 무전기, 심지어 카폰(!)까지 장착되어 모스크바 루뱐카 KGB 본부와 소통 가능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다만 1950년대 중엽부터 더 고성능인 가즈 볼가 M23과 같은 후계차량이 등장하며 대다수의 M-20G들이 폐기처분 되었고, 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오토클래시카라는 업체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M-20G의 복원을 거친 후 동태보존 중인 상태이다.
2.1.5. M-72
ГАЗ М-72 «Победа» |
본래 소련 군부는 GAZ-67와 GAZ-69를 장교와 부사관 등의 관용차로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이 차량들은 그 기반을 포드 GPA와 윌리스 MB에 두고 있어 용적이 비좁은데다, 외형도 너무 투박한 탓에 관용차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여 난항을 겪게 된다.
이 시기, GAZ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비탈리 그라쵸프"[5]가 소련 군부에 신형 관용차량 계획을 설명하였으며, 그 계획의 골자는 "포베다를 기반으로, 69의 구동계를 장착해 고급 4륜구동 관용차로 지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것이었고, 이에 군부에서는 흡족해하며 이 계획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1955년 개발이 완료된 M-72는 포베다의 고급스러움은 유지한채로, GAZ-69의 뛰어난 험지 돌파능력을 물려받아 관용차로서의 능력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이는 소련 군인들의 로망이자, 일종의 목표까지 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56년에는 모스크바의 신문 기자들이 M-72의 내구성을 시험하고자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무려 15,000km를 장장 6개월에 거쳐 주파하였는데, 놀랍게도 M-72는 6개월 동안 거의 손상되지 않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기자들을 안전하게 데려다주었으며, 이에 기자들은 M-72에 대하여 큰 호평을 하게 되었다.
기존 포베다와의 차이점은, 우선 4륜구동으로 변경되었기에 차체 전고가 매우 상승하였고, 전면 서스펜션이 험지에 취약한 기존의 코일 스프링 방식에서 GAZ-69와 동일한 리프 스프링으로 변경되었고, 리어휀다에 미제 자동차와 유사한 휠 커버가 부착되었다는 점, 그리고 변속기가 컬럼식에서 센터 플로어 방식의 변속기로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1955년부터 1958년까지 도합 4,677량이 생산되었으며, 현재도 M-72 포베다는 세계 최초의 크로스오버 차량이라는 점과, 4천대 남짓의 매우 희귀하다는 점으로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비싼 가격에 매매되고 있다.
2.2. FSO 바르샤바 (1951~1973)
Warszawa |
1951년부터 생산을 게시하였으며, 초기에는 포베다와 동일하게 M20이라는 코드명과, 엠블럼 및 라디에이터 그릴을 제외하면 완전히 동일한 차량이었지만 1962년 대대적인 세대변화를 겪으며 기존의 패스트백이었던 차체가 세단형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밖에도 기존 포베다에는 없던 픽업트럭이나, 왜건 등의 파생모델들이 생겨나며 폴란드, 동독 등지를 누볐다.
도합 254,471량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2.2.1. 바르샤바 M20
Warszawa M20 |
2.2.2. 바르샤바 223
Warszawa 223 |
3. 제원
3.1. 가즈 포베다
포베다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생산지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
코드네임 | M-20 / M-20A / M-20V / M-20B / M-20G / M-72 |
차량형태 | 4도어 준대형 세단 / 카브리오 코치 / 크로스오버 차량 |
승차인원 | 5명 |
전장 | 4,665mm |
전폭 | 1,695mm |
전고 | 1,590 ~ 1,640mm / 1,790mm |
축거 | 2,700mm / 2,712mm |
윤거(전) | 1,364mm / 1,388mm |
윤거(후) | 1,362mm / 1,365mm |
공차중량 | 1,460kg / 1,490kg / 2,040kg |
연료탱크 용량 | 55L |
타이어 크기 | 6.00-16 / 6.95-16 |
구동방식 | 4x2 전방 엔진 후륜구동 / 4x4 전방 엔진 사륜구동 |
전륜 현가장치 |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후륜 현가장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전륜 제동장치 | 드럼 브레이크 |
후륜 제동장치 | 드럼 브레이크 |
파워트레인 | ||||||
<rowcolor=#ffffff> 엔진 | 엔진 형식 | 흡기 방식 | 배기량 | 최고 출력 | 최대 토크 | 변속기 |
M-20 |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 | 자연흡기 | 2,100cc | 52ps @3600rpm | 15.29kgf·m | 전진 3단, 후진 1단 수동변속기 |
M-20V |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 | 자연흡기 | 2,100cc | 55ps @3600rpm | 15.29kgf·m | 전진 3단, 후진 1단 수동변속기 |
M-12 |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 | 자연흡기 | 3,500cc | 90ps @3600rpm | 15.29kgf·m | 전진 3단, 후진 1단 수동변속기 |
3.2. FSO 바르샤바
4. 파생모델
- GAZ-26
ГАЗ-26 - 포베다 스포츠
Победа-Спорт |
- 포베다 구급차
- 포베다 밴
Санитарный Победа |
"포베다 구급차"는 전후 최초로 만들어진 소련 민간 구급차로, 당시 가장 성능이 좋고 내부 용적이 안락한 민간 차량인 포베다를 기반으로 하였다. 외부에서 볼 때에는 사이렌과 도장 말고는 일반 포베다와는 차이점이 그리 나지 않지만, 내부에는 후면 트렁크 격벽과 뒷좌석을 한 개만을 남기고 제거하였으며, M-20G와 같이 인조가죽 시트를 사용하고 차체 중앙에 격벽과 커튼을 증설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환자를 실을 때에는 트렁크를 열고, 들것을 후방 캐빈까지 쭉 밀어 넣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Победа Фургон |
"포베다 밴"은 포베다의 파생 모델 중에서는 가장 희귀한 모델인데, 대량생산이 되지 않고 모스크바 제빵점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조된 차량이다. 측후면에 적혀있는 "모스크바 건빵"이라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오직 건빵 배달용으로만 사용되었으며 1950년대 여러 영화에도 등장한 차량이라고 한다. 가즈 본사에서도 포베다의 밴을 양산하려 했지만, 이는 시제품 단계로만 끝났다고 한다. 다만, 라이센스 모델인 FSO 바르샤바에는 해당 형식이 양산화되어 생산되었다.
- 포베다 픽업
Победа Пикап
"포베다 픽업"은 포베다 밴과 더불어 상당히 희소한 포베다의 파생 모델이다. 이 역시 대량생산이 본래 되지 않고 극소량만이 공장 내 작업차량으로 이용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포베다 픽업은 대부분이 후일 코치빌더 업체들에서 픽업의 설계도를 입수해 제작한 재현품이라고 한다.
- 포베다 파에톤
Победа Фаэтон |
"포베다 파에톤"은 1947년 제21연구소에서 국가 행사 및 열병식에서 사용하기 위한 컨버터블의 수요로 소수의 포베다를 개조하여 상부 및 도어의 창문 전체를 제거하여 만들어진 파에톤 형식의 컨버터블이다. 지붕이 없다는 점에서 차체 강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에 차체를 보강하였으며, 뒷좌석에 난간을 만들어 이동 중에도 서 있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 포베다-NAMI
Победа-НАМИ |
"포베다-NAMI"는 1950년대 기존 포베다가 패스트백 형태로 인해 뒷좌석의 높이가 낮다는 점과, 디자인적인 면에서 미적인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GAZ 사에서 중앙 과학 연구 자동차 및 자동차 엔진 연구소(NAMI)와 함께 공동 개발한 프로토타입 세단으로, 총 2량 정도가 만들어졌다. 시제 차량은 여러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고 평가까지 좋았으나 당시 차량 생산에 열을 올리던 소련 정부에서는 세대 교체가 완료될 때까지 공장을 멈춰야 한다는 결과에 이를 생산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프로젝트가 사장되었다. 그런데 1962년, 뜻밖에도 이 프로젝트는 다시 빛을 보게되는데, 폴란드의 FSO에서 기존에 생산하던 바르샤바의 세대 교체를 위해 여러 자료를 모색 중, 해당 프로토타입에 대한 정보를 발견한 것이다. 포베다-NAMI를 본 FSO 측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살짝 변경하여 기존 바르샤바를 세단으로 바꿔 생산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바르샤바 223 모델이 포베다-NAMI의 직계 후손이 되게 되었다.
5. 기타
6. 미디어
7. 경쟁 차종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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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퍼웨어 | 시레나 스포츠 |
[1] 대표적인 예시가 에스토니아 작가 "일마르 타스카"의 2016년 작품 "포베다 1946"이 있다.[2] 이 때문에 스탈린이 매우 분개해 직접 GAZ 사의 이사를 강판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3] 다만 공식적인 수입이 아니라 개개인이 타국에 수출된 포베다를 개인적으로 들여왔던 것이다.[4] 이 페인트는 수성이라, 급하게 추적하거나 적들에게서 벗어날 때 빠르게 색을 변경 가능하였다.[5] 비타스와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