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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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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제국
Ghana Empire
300년 ~ 1200년 경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원시 부족사회 말리 제국
위치 서아프리카
수도 쿰비살레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가나
언어 소닝케어, 아랍어, 만데어, 만딩고어 등
종교 이슬람교 (국교)
아프리카 토착신앙
주요사건 300년 건국
1050년 이슬람으로 개종
1200년 경 멸망
통화 [2]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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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애매모호한 형성시기3. 역사
3.1. 황금과 무역3.2. 쇠퇴3.3. 멸망
4. 역대 국왕5. 기타

[clearfix]

1. 개요

가나 제국은 서아프리카에 존재했던 제국 국가였다. 그리고 와가두[3] 제국 또는 가나 왕국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2. 애매모호한 형성시기

언제 성립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서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중세시대 8세기 아랍인들에 의한 서술로 시작된다. 이슬람이 최초로 북아프리카를 점령한 지 얼마 안되어 아랍의 지리학자인 알-파자리(al-Fajari)의 저서 《알-마수디》에서 서기 773년 모로코에서 사하라 사막을 지나면 황금의 나라로 불리는 가나가 있다고 기술했다. 이것으로 보아 최소한 8세기 이전에 형성된 걸로 추측할 수가 있다.

이렇듯 전반적으로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주된 이유는 북아프리카나 이집트 주변 지역들, 에티오피아 등을 제외한 나머지 아프리카 지역에는 대부분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역사는 아랍인이나 유럽인들이 관찰한 기록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초기 역사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부실한 상황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가나 제국의 역사를 연구한 프랑스 사학자들은 가나 제국이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이 남하해 세운 것이라 생각했다. 이 이론의 근거는 기본적으로 가나 제국이 황금 무역의 발전한 것의 영향으로 제국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전제가 있는데, 이런 시각은 후대에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북아프리카와의 무역로 발전이 가나 제국이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도록 했다는 시각은 여전히 수용된다.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서기 1세기-3세기 건국설은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금 무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의 결과를 통해 제안된 것이다.

3. 역사

3.1. 황금과 무역

앞서 말했다시피 가나 제국은 서기 8세기경부터 역사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외부와의 관계도 이후에 형성됐다. 9세기경 저술가 알-야쿠비는 가나에는 매우 강력한 왕이 있고 주변의 왕국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을 포함한 전 영토에서 엄청난 황금이 나온다고 기술했다. 주변의 왕국들은 카우카우, 카넴, 말렐[4] 등이 있다고 전해졌다.

이븐-호칼(Ibn Hawqal)이라는 상인이 10세기 후반에 남긴 기록에 의하면, 사하라를 횡단하는 무역에서 거래되는 금액은 그 당시로도 상당한 액수에 달했다고 한다. 사하라를 횡단하는 대상들은 사막의 유목민이면서 모로코 원주민에 동화된 베르베르인으로서, '산하자'라고 불리는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고, 그들의 주된 교역로는 모로코 남부의 시질마사에서 가나의 북부인 아우다고스트(Aoudaghost)[5]에 이르렀다. 사하라 횡단 무역에서 거래되는 물건의 수집이나 분배는 산하자족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행해졌는데 산하자와 가나는 이 무역으로 양쪽 모두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

이븐-호칼은 언젠가 아우다고스트의 상인이 시질마사에 있는 거래상인에게 보내온 거래장부를 보게 되었는데, 그 액수가 40,000디나르에 달했다고 한다. 이 금액은 대단히 큰 액수로 1968년 기준 25만불의 수준이라고 한다.[6] 일개 상인 하나의 거래량이 이 정도니 전체적으로 보면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고 볼 수 있다. 가나의 주된 산출품은 역시나 황금이고 이 덕에 가나는 부유한 왕국이 될 수 있었다.

3.2. 쇠퇴

이렇듯 가나는 무역으로 잘나가는 부유한 왕국이었지만, 오직 수출과 수입에만 전력을 기울였고, 결국 쇠퇴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가나가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054년 가나가 아우다고스트에 있는 남부 산하자족의 무역 거점을 정복한 사건이었다.

사막 무역상들과 가나의 왕 및 상인들 모두가 무역을 통해 최대한 이득을 보기 원했다는 상호 이해관계는 긍정적이었지만, 한편이 다른 편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려고 하거나 최대한의 이익만을 탐하게 되면 자연히 문제가 발생되기 마련이다. 갑자기 독자적인 행동을 하게 된 가나는 그들이 산하자에게 팔아먹던 금이나, 산하자로부터 수입해온 소금을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취급하려고 했고 산하자의 지도자들은 이를 저지하여 기존의 이권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산하자족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노력에 행동 통일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산하자족은 렘투나와 고달라 등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 부족장들은 모두 왕을 자칭하면서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가나가 아우다고스트를 정복하자 산하자족은 더욱 심한 분열을 일으켰고, 이는 렘투나 등의 일부 부족들이 부족장을 가나의 왕으로 대신한 것 등에 있어서도 큰 반발이 생기게 되고 만다. 결국 이러한 행위들은 가나의 연방제가 붕괴되는 길로 가게 만들었다.

그러다 고달라족의 부족장 이븐 야신이 렘투나 부족의 추장계에 속하는 야히와와 아부 바크르라는 두 형제를 포함한 소수의 개신 무슬림들과 함께 '리바트'라고 불리는 군사훈련소를 세네갈 강의 하구에서 가까운 섬에다 세웠다. 이 리바트는 비록 소규모이긴 하나, 훈련이 매우 잘된 열성적인 신자들로 구성된 군대로서 이들은 알 모라비드 왕조라는 나라를 세웠다.

알 모라비드, 즉 무라비트 왕조는 당시 사하라에서 남북으로 나뉘어 아직도 다투고 있었던 지겹지도 않나 산하자의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하면서 이들을 통일시키는 데 성공했다. 결국 1054년 가나로부터 아우다고스트를 빼앗았으며, 1076년에는 아부 바르크가 이끄는 알 모라비드 군대에 의해 수도를 뺏기게 된다. 그러나 알 모라비드는 몇 년 안 가 가나 지역에서 물러났는데, 그 이유는 부유했던 가나에 대한 전리품을 두고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그놈의 돈 결국 소닌케의 가나 제국은 알 모라비드를 쫓아내고 왕국을 재건했다.

3.3. 멸망

알 모라비드로부터 수도를 수복하고 재건되었지만, 가나는 과거 산하자를 지배하던 시절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알 모라비드가 사하라 남북을 공략한 이래 타필랄트로 가는 서부 서하라의 무역로도 붕괴되었다. 또한 그들의 약탈로 가축 사육에 필요한 목초지 요구는 사하라 사막 인근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가나인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땅은 점차 황폐해지고 우물들은 마르게 되며, 식물들이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 돼버렸다. 기어이 가나 제국은 1235년 케이타족의 지도자인 순디아타가 이전 가나 제국의 지역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게 되며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4. 역대 국왕

알려진 국왕들은 다음과 같다.

5. 기타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가나 공화국이 가나 제국으로부터 국명을 따오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 연관은 없고, 역사적인 종주권은 모리타니와 말리가 가지고 있다. 가나 제국의 주요 유적은 전부 모리타니와 말리에 걸쳐 분포돼있는데, 수도였던 쿰비살레는 거의 발굴되지 않았다.

스페인의 무슬림[7] 지리학자 알-바크리는 1067~1068년에 걸쳐 가나에 대한 정보를 기록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가나'라는 명칭은 원래 국명이나 수도가 아니라 국왕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한다.[8] 본래 그들만의 언어로는 '와가두'라고 불렀다고 한다.


[1] 가나 제국의 최대 강역[2] 소금, 조개껍데기, 구리 등을 따로 화폐로 쓰기도 했다.[3] 실제 국명이다. 가나 제국의 실제 국명은 '와가두'이지만 군주 칭호인 '가나'를 따서 가나 제국이라고 불린다.[4] 말렐의 경우, 정확한 소재지를 알 수 없으나, 후일 가나를 멸망시킨 걸로 알려진 말리인들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5] 현재 모리타니 남부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서부 사하라의 황금과 소금 무역으로 번영한 도시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6] 2021년 현재 기준으로 약 1,200만 달러. 즉 약 140억원[7]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슬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8] 이것에 대해서도 확실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