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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5-02 00:56:05

R.A. 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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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디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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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MLB 사이 영 상 (BBW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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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National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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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League
R.A. 디키
(NYM)
데이비드 프라이스
(TB)
232⅔ IP
20 W 6 L
230 SO
ERA 2.73
ERA+ 139
FIP 3.27
WHIP 1.053
fWAR 4.6
bWAR 5.7
211 IP
20 W 5 L
205 SO
ERA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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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AR 4.3
bWAR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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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1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클레이튼 커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R.A. 디키
(뉴욕 메츠)
클레이튼 커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1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제레미 헬릭슨
(탬파베이 레이스)
제이크 피비
(시카고 화이트삭스)
R.A. 디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댈러스 카이클
(휴스턴 애스트로스)

파일:MLB 로고.svg 2013년 메이저 리그 투수 부문 필딩 바이블 상
마크 벌리
(마이애미 말린스)
R.A. 디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댈러스 카이클
(휴스턴 애스트로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51번
마이크 무뇨즈
(1999~2000)
<colbgcolor=#C0111F> R.A. 디키
(2001)
후안 알바레즈
(2002)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45번
이라부 히데키
(2002)
R.A. 디키
(2003~2006)
카를로스 리
(2006)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41번
랜디 윌리엄스
(2007)
R.A. 디키
(2008)
크리스 자쿠가우스바스
(2009)
미네소타 트윈스 등번호 39번
후안 린콘
(2001~2008)
R.A. 디키
(2009)
앤서니 슬라마
(2009~2010)
뉴욕 메츠 등번호 43번
브라이언 스톡스
(2008~2009)
R.A. 디키
(2010~2012)
션 헨
(2013)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43번
앤서니 고즈
(2012)
R.A. 디키
(2013~2016)
마이크 올먼
(201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19번
브랜든 스나이더
(2016)
R.A. 디키
(2017)
아니발 산체스
(2018)

}}} ||
파일:R.A._Dickey_New_York_Mets.jpg
로버트 앨런 디키
(Robert Allen Dickey)
생년월일 1974년 10월 29일 ([age(1974-10-29)]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테네시 주 내슈빌
출신학교 테네시 대학교
신체조건 190cm / 97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8번 (TEX)
소속구단 파일:TEX_Logo_2003.png 텍사스 레인저스 (2001~2006)
파일:Seattle_Mariners_Logo.png 시애틀 매리너스 (2008)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nnesotaTwins.png 미네소타 트윈스 (2009)
파일:TA2Afor.png 뉴욕 메츠 (2010~2012)
파일:TorontoBlueJaysEmblem.png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3~2016)
파일:ATL_Logo_2018.png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7)
수상 All-Star (2012)
NL Cy Young Award (2012)
AL Gold Glove Award (2013)

Fielding Bible Award (2013)
NL Strikeout Leader (2012)

1. 개요2. 커리어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야구는 후회를 관리하는 게임이다.
본인의 자서전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에서 남긴 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우완 투수로,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가 끝날 위기에 처했을 때 너클볼로 돌파구를 찾아 이후 각성하여 필 니크로팀 웨이크필드를 잇는 메이저를 대표하는 너클볼러로 자리잡은 선수다.

2. 커리어

2.1. 텍사스 레인저스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활약하던 시절에는 메이저가 주목하는 강속구 유망주로 손꼽혔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어 활약해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1] 이 때 함께 선발된 멤버가 크리스 벤슨, 브래든 루퍼, 빌리 코치 등 한 때 메이저에서 이름을 날렸던 투수들이다.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텍사스 레인저스가 1라운드에서 디키를 지명하고 당시로선 거금인 81만 달러의 계약금까지 안겨주며 젊은 투수의 앞길엔 밝은 미래가 비치는 듯했으며, 공식 계약을 앞두고 있었던 메디컬 테스트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구단측에서 베이스볼 아메리카 잡지 표지에 나온 디키의 팔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실시한 마지막 단계 검사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파일:R.A._Dickey_Baseball_America.webp
문제의 사진[2]
디키의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인대는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위아래 팔뼈를 연결하는 인대가 없는 상태에서 강속구를 펑펑 뿌려댔다는 것이다.[3] 충격에 휩싸인 텍사스 프런트는 약속했던 $0.81M 대신 $75k로 계약금을 후려쳤고, 디키도 인대가 없다는 사실이 뉴스를 탄 이상 다른 팀에도 입단할 수 없을 거란 불안감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받아들였다. 이때 대학교 2학년 때 들어둔 팔꿈치 보험이 있었고, 만약 야구를 완전히 접는다면 $0.1M을 수령할 수 있었지만 결국 계약을 선택했다.[4] 그래도 5년 동안의 마이너 생활 끝에 결국 2001년에 메이저에 데뷔했고, 2003년과 2004년에는 부상으로 먹튀로 전락한 박찬호의 빈 자리를 메우는 땜빵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면서 활약했다. 하지만 2005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끼면서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는데, 이 부상을 계기로 갑자기 구속이 떨어져 140km에도 못미치게 되면서 계속 메이저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연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를 본 벅 쇼월터 감독과 오렐 허샤이저 투수 코치, 그리고 마크 코너 불펜 코치는 이틀 뒤 디키를 불러 마이너로 내려가 너클볼러가 될 것을 제안했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가 너클볼러였다는 사실을 듣고 시합에서 한두번 던져보긴 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아니고 취미 수준에 불과해 너클볼을 어느 정도 던질 줄은 아는 정도였으나 너클볼러는 아니고 흔히 보는 조금은 던질 줄 알지만 주무기는 아닌 상태였다.[5] 하지만 당시 31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72경기 239.2이닝 15승 17패 ERA 5.48이라는 초라한 통산 성적으로 메이저에서 쫓겨나기 딱 좋은 성적이었고, 결국 이 면담에서 7분만에 너클볼러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6] 이러한 과정으로 그는 너클볼러가 될 각오를 하게 되며, 이렇게 되기에는 타자들에 대한 자신감 상실, 준비되지 못한 은퇴와 아내와 어린 두 딸에 대한 걱정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마이너에 내려간 후 본격적인 너클볼러로 전향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전향 후에는 너클볼을 지도할 코치가 없어서 독학과 실전 경험을 통해서 연마를 했었다가 시즌 막바지에 구단의 소개로 이후 디키가 너클볼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은인으로 표현하는 찰리 허프를 만나 너클볼 연마에 큰 도움을 받는다. 이를 통해 텍사스 구단은 찰리 허프에게 디키가 너클볼 투수로서 성공 가능 여부를 타진했고, 오프 시즌 기간 동안 캘리포니아의 찰리 허프의 자택을 두 차례 찾아가 너클볼을 배웠고, 찰리 허프에게 허프가 34세 이후로 162승을 거둔 사실에 많은 격려를 받았다.

하지만 너클볼러가 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200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1경기 6피홈런이란 불명예기록을 남기며 처참하게 두들겨 맞았고, 이 경기는 텍사스에서의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7]

2.2. 시애틀 매리너스

이후 룰5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가 지명하며 기회를 얻었지만 여전히 영점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2008년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는 1이닝 4폭투란 대기록을 남겼다.[8] 그렇게 실패와 좌절을 맛 보던 중에 2008년 5월에 큰 기회가 찾아오는데, 당시 너클볼 현역 최고의 투수인 팀 웨이크필드의 지도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만남은 보스턴 레드삭스가 시애틀로 원정을 왔을 때 이루어 졌는데, 10분의 시간을 약속하고 시작했는데 45분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상대팀 투수를 자신의 팀 불펜으로 데려와 지도한 것은 야구 업계의 통념을 깨트린 일로 디키 본인도 너클볼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2008년 시즌 중반 절친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포츠 캐스터 데이브 니하우스를 통해 너클볼 역대 최고의 투수였던 필 니크로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되어 시즌 종료 후인 2009년 1월 애틀랜타에 있는 필 니크로 자택 근처의 실내 야구 시설에서 배우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그는 필 니크로의 지도까지 받으며 선배들의 너클볼을 따라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너클볼을 만들어 가게 된다.

이렇게 총 3명의 선배들에게 너클볼을 배우게 됐는데, 그가 자서전에서 말하길 찰리 허프 덕분에 올바른 그립과 문틀을 상상하며 던지는 법을 배웠고, 팀 웨이크필드에게 팔을 휘두르는 올바른 팔 동작과 적절한 릴리스 포인트에 대해 배웠으며, 필 니크로에게는 엉덩이를 앞으로 밀면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힘을 싣는 법을 배워 가공할 만한 피니시를 가진 공을 배웠다고 한다.

2.3. 미네소타 트윈스

2.4. 뉴욕 메츠

2.4.1. 2010년

2010년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은 직후에도 별다른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스프링 캠프에서 첫 번째로 정리되어 마이너로 내려가는 명단에 포함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4월 19일 더럼 불스[9]와의 경기에서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는 등 8경기 60.2이닝 4승 2패 ERA 2.23이라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고, 이러한 활약 덕에 올리버 페레즈가 완전히 망가지자 페레즈의 공백을 매꾸기 위해 메이저에 콜업되었으며, 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최종 성적 27경기 174.1이닝 11승 9패 ERA 2.84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며 완전한 너클볼러로 안착하는데 성공했고, 프로에 지명된지 14년 만에 리그간 메이저 승격과 마이너 강등을 35번 반복한 만 36세의 노장 투수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2.4.2. 2011년

지난 시즌의 활약으로 홈 개막전 선발로서 선정되었으며,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다년 계약을 맺는데도 성공했지만 최종 성적 33경기 208.2이닝 8승 13패 1홀드 ERA 3.28이라는 준수한 활약에 비해 승운이 없는 시즌이였다.

2.4.3. 2012년

6월 13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1실점 (비자책) 12탈삼진 완투승을, 6월 1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무실점 13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며 그것도 2012 시즌 AL 동부지구에서 잘나가는 팀을 상대로 말이다. 두 경기 연속 2자릿수 탈삼진 + 1피안타 완투승은 디키가 메이저리그 최초이다. 최종 성적 34경기 233.2이닝 (NL 1위) 20승 6패 ERA 2.73 230탈삼진 (NL 1위)이라는 리그 정상급의 성적을 기록하며 클레이튼 커쇼를 제치고 너클볼러 최초의 사이 영 상 수상에 성공했다.[10]

시즌 종료 후 연장 계약이 논의되었지만, 많은 나이 때문에 구단과 선수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고, 연장 계약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더니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의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양 측은 디키와 유망주들 외에 디키의 너클볼을 캐치할 포수도 교환하는 등의 합의에 이르렀으며, 결국 포수 조시 톨리와 유망주 한 명과 함께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메츠가 받는 선수는 블루제이스의 팀내 최고 유망주인 포수 트래비스 다노와 대형 투수 유망주 노아 신더가드, 또 다른 하위 유망주 한명과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넘어온 존 벅인데 아무리 사이 영 수상자라고 해도 토론토 측에서 퍼줘도 너무 퍼줬다는게 중론이다. [11]

2.5.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즌을 앞두고 토론토와 3년 $30M의 연장계약을 맺었고, 2016년에 $12M의 클럽 옵션과 $1M의 바이아웃도 포함된 계약이다.

2.5.1.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당초 저스틴 벌랜더도 참가할 가능성이 있어서 벌랜더 - 디키의 꿈의 사이영 원투펀치가 미국 대표팀에서 실현될 지 관심이 모아졌으나 벌랜더가 몸상태를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고, 지오 곤잘레스가 뒤늦게 참가를 선언하면서 디키 - 지오의 원투펀치가 형성되었다.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사정없이 털리더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의 첫 경기인 멕시코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으나, 1회부터 2실점하며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3회 아드리안 곤잘레스에게 중월 투런을 얻어맞으며 떡실신당하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4이닝 4실점 탈삼진을 기록했다 돔구장빨[12] 때문에 너클볼의 무브먼트가 무뎌진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스프링 트레이닝 구장에서도 사정없이 털리던 모습이라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도 있고, 2012년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완투승을 거두었던 곳이 트로피카나 필드인지라 돔구장이 너클볼의 무브먼트를 더욱 변화무쌍하게 만들어준다는 의견도 있다. 정말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컨디션이 꽝일 뿐이었던 것인지 2라운드 승자전인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는 호투했고, 돔구장이 어떤 변수가 되리라던 예상도 말린스 파크의 지붕이 닫혀진 상태에서 호투하며 쏙 들어갔다.

토론토 소속으로 첫 등판한 4월 2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는 포수 때문에 말 그대로 지옥을 맛보았다. WBC에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게 호흡을 맞춘 J.P. 아렌시비아가 제대로 공을 받지 못하다 보니 실로 엄청난 경기를 치뤘다. 토론토는 아렌시비아와 늙다리 포수 헨리 블랑코만 믿고 메츠에서 같이 트레이드로 온 조시 톨리를 마이너로 보내버렸는데 제대로 뒤통수 맞은 경기가 되고 말았다. 포수들이 못 받을까봐 너클볼을 일부러 구속과 무브먼트가 덜하게 살살 던졌다는 말도 있었고, 승패야 그렇다 치더라도 ERA와 WHIP까지 심각하게 올라가 버렸다. ERA 5점대 중반을 찍는 총체적인 난국이 벌어지자 존 기븐스 감독은 6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톨리를 콜업해 전담 포수를 담당하도록 했고, 이후에는 사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져 조금씩 승수를 벌충해서 시즌 끝무렵에는 겨우겨우 5할 승률은 넘겼고 3년 연속 200이닝을 소화하며 최종 성적 34경기 224.2이닝 14승 13패 ERA 4.21 177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수비력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커리어 최초로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13]

2012년에는 33경기동안 볼넷을 54개만 허용했는데, 2013년에는 볼넷을 1.4배 정도 많은 71개를 내줄 정도로 제구력이 나빠진데다 너클볼의 구위 역시 안 좋아져 평균 80마일을 자랑하던 구속은 2013년 전반기에는 70마일대를 기록했고, 이 때문에 홈런을 33개나 얻어맞았다. 게다가 홈구장인 로저스 센터와의 궁합이 너무나 안 맞는 것도 문제인데, 홈경기에서는 5점대에 가까운 ERA를 기록한 반면 원정 경기에서는 오히려 ERA 3점대 중반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거포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것은 물론, 양키 스타디움이나 펜웨이 파크 등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구장들이 꽤나 타자친화적인 성격인 것을 감안하면 디키의 극단적인 홈 - 원정경기 성적은 굉장히 기묘한 대조를 보인다.

2.5.2. 2014년

3월 31일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시즌 개막전에 선발로 나와 5이닝 6실점을 기록하고 패전한 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크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듯 했지만, 4월 말 이후부터는 꼬박꼬박 6이닝씩 소화하면서 호투를 보여주며 5월까지 10경기 60이닝 4승 4패 ERA 4.20을 기록하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이번 시즌엔 전년과는 정반대로 홈경기 성적이 좋고 원정에서 죽을 쑤고 있다.(...)

최종 성적 34경기 215.2이닝 14승 13패 ERA 3.71을 기록해 승패 뿐만 아니라 세부 항목을 살펴봐도 지난 시즌과 차이가 별로 없고, ERA만 조금 하락했다.

2.5.3. 2015년

팀이 23년만에 지구우승과 포스트 시즌 진출을 거머쥐며 포스트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지만 2경기에 나와서 2번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ALDS 4차전에서는 무난하게 잘 던졌지만 이날 다른 타자들과는 달리 디키의 공을 잘 치던 추신수 타석이 되자 존 기븐스 감독이 5회 종료까지 단 1아웃이 남았음에도 그를 내리고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구원 등판시켰다. 디키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내려갔지만 프라이스가 추신수를 외야 뜬공으로 돌려세워 일단 노림수는 성공했고, 토론토는 4차전을 승리하면서 이후 5차전까지 승리해 역스윕으로 ALCS에 진출했다.

ALCS 4차전에 등판했지만 1회부터 너클볼의 약점을 간파한 캔자스시티 로열스 타선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1.2이닝만에 5실점 (4자책)으로 강판당한 후 팀이 14:2로 대패하면서 패전투수가 됐고, 이후 6차전에서 패배하면서 디키의 포스트 시즌은 그렇게 쓸쓸히 끝난다.

2.5.4. 2016년

더더욱 성적이 하락해 이번에는 이닝 소화력도 부족했으며, 포스트 시즌에서는 아예 로스터에도 들지 못해 사실상 디키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인다.

기대했던 사이 영 위너의 실력은 전혀 아니지만 지난 3년간 매년 최소 33경기 출장에 210이닝이란 내구성, 3점 후반대의 ERA로 지옥의 알동부에서 좋은 3 ~ 4선발[14] 평가를 받고 있다.

너클볼의 특성을 감안해도 투구 내용이 매우 기괴했다. 실점없이 6회를 가다가 갑자기 5실점을 하고, 1 ~ 2회부터 만루를 쌓고 3 ~ 5실점을 해서 강판 될 듯 하더니 8회까지 버틸때도 있고, 2회까지 거의 60구를 던지더니 이후 귀신같이 투구수를 줄이는 등, 털리는 시점과 살아나는 시점이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물론 6 ~ 8점까지 털리는 상황은 드물지만 시청자들도 수비하는 야수들도 너무 지치게 한다. 일단 한번 장작을 쌓기 시작하면 거의 무조건 실점하고, 정말 신기하게도 병살이라는 운은 죽어라 안따라줘서 삼진이 되거나 외야 플라이가 되기전까진 이닝이 끝나지를 않으며, 외야 플라이는 대게 홈런성에 가까운 타구여서 팬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이런 형편에 언젠간 한번 야수들에게 만루 상황에서 병살을 지시하는 제스쳐를 해서 팬들의 뒷목을 잡게했다.(...)[15]

4년 계약 마지막을 앞두고 나오는 평가는 보는 게 너무 답답하다는 것과 이 정도 성과를 볼려고 노아 신더가드를 내줬냐는 평가로, 물론 지난 몇년간 선발 투수 때문에 고생하는 토론토를 마크 벌리와 함께 잘 지탱해 준 것은 사실이이지만 대가가 너무 컸다.

그리고 같이 트레이드되어 온 전담 포수인 조시 톨리가 지난 몇 년 간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타격과 수비를 보여주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는데, 너클볼을 잡는 것 이외엔 그 어떤 능력도 없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로 없다. 디키의 등판과 땜빵 포수로서 매년 겨우 40 ~ 50경기[16]를 뛰는 주제에 꼬박 음수의 WAR를 적립하며 마이너에서 고생하는 포수 유망주들이 불쌍해 질 지경이다. 지난 몇 년간 OPS가 3번이나 5할(...)아래였고, 타율은 1할만 2번[17], 장타율은 3시즌이나 .245 아래였던지라 장타율이 없는 J.P. 아렌시비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토론토에겐 얼마나 무시무시한 재앙이냐면 디키가 등판할 때는 아예 지명타자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디키는 단 한번의 잔부상도 없이 매시즌 33 ~ 34경기를 풀로 뛰었는데, 이 말은 곧 토론토가 매년 162경기중에 34경기나 지명타자 없이 자동아웃을 헌납한 것이다.(...) 단순한 WAR 계산법으는 도저히 수치화가 되질 않는 재앙이다. 그렇다고 투구수라도 뺐느냐면 그것도 아니며, 공 3개 이하가 다반사고 공 5개면 꽤나 잘 버텨준 거다. 진짜다. 이에 보다 못한 감독이 너클볼을 받는 임무를 주전 포수 러셀 마틴에게 몇번 맡겨보기도 했지만 어지럽다는(...) 이유로 거부했다.[18]

디키와 팀이 갈린 이후 당연히 마이너로 강등당했고, 심지어 더블 A에서 뛰고 있는데, 아직 젊은 편이라 몇 년 더 뛰어보겠지만 다시 메이저에 콜업되기는 힘들 듯하다. 트리플 A에서도 그냥 그런 수준이라 아시아에서도 용병 제안이 잘 안 들어올 커리어로 메이저에서 주전 포수도 몇 시즌 해보고 아시아에서 FA 대박을 터트린 선수만큼 돈을 벌었으니 상당히 성공한 인생이다.[19]

2.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즌 종료 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1년 $8M의 계약을 맺었고,[20] 최종 성적 31경기 190이닝 10승 10패 ERA 4.26을 기록하며 $8M의 연봉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근데 이 성적이 팀내 다승 공동 2위, 이닝 1위, 정규 이닝 소화 선발 투수 ERA 1위라는 점이 팀 투수진 사정을 말해준다.

시즌 후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겠단 이유로 옵션을 실행하지 않기로 했고, 자신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될 듯하다

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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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기는 80마일을 상회하는 고속 너클볼이며 60마일대의 저속 너클볼을 간간히 배합하며 던진다.[21] 또한 필 니크로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보다는 변화가 적지만 그 때문인지 와일드 피치나 패스드볼도 상대적으로 적고 제구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너클볼러치고 웨이크필드처럼 전담 포수를 둔다거나 딱히 포수를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너클볼에 익숙하지 않은 포수와 배터리를 짠다면 디키의 위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않는다.

또한 평균 83 ~ 84마일에서 형성되는 포심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는 공을 던지기도 하는데, 포심 패스트볼 역시 웨이크필드에 비해 10마일 이상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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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assets.sbnation.com/Dickey-CH-Whiff-to-Jones-in-8th-Slowest.gif
너클볼러의 문제점은 다른 구종을 던지기 매우 힘들다는 건데, 디키의 경우에는 제 2구종인 서클 체인지업을 적절히 써주며 덕분에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은 당연히 너클볼만 생각하고 임하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서클 체인지업에 당황하여 말려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1 TEX 4 0 1 0 0 12 6.75 13 3 7 0 4 1.667 71 -0.2 0.0
2002 메이저 기록 없음
2003 38 9 8 1 3 116⅔ 5.09 135 16 38 5 94 1.483 99 1.4 0.7
2004 25 6 7 1 0 104⅓ 5.61 136 17 33 4 57 1.620 90 0.6 0.0
2005 9 1 2 0 0 29⅔ 6.67 29 4 17 2 15 1.551 69 -0.1 -0.3
2006 1 0 1 0 0 3⅓ 18.90 8 6 1 0 1 2.700 27 -0.5 -0.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8 SEA 32 5 8 0 0 112⅓ 5.21 124 15 51 2 58 1.588 81 -0.2 0.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9 MIN 35 1 1 0 1 64⅓ 4.62 74 8 30 4 42 1.617 95 -0.4 0.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0 NYM 27 11 9 0 1 174⅓ 2.84 165 13 42 4 104 1.187 138 3.3 4.2
2011 33 8 13 0 1 208⅔ 3.28 202 18 54 9 134 1.277 112 2.5 3.5
2012 34 20 6 0 0 233⅔ 2.73 192 24 54 9 230 1.053 139 4.7 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3 TOR 34 14 13 0 0 224⅔ 4.21 207 35 71 10 177 1.237 98 1.9 2.0
2014 34 14 13 0 0 215⅔ 3.71 191 26 74 14 173 1.229 102 1.7 2.2
2015 33 11 11 0 0 214⅓ 3.91 195 25 61 11 126 1.194 105 1.7 2.5
2016 30 10 15 0 0 169⅔ 4.46 169 28 63 6 126 1.367 96 0.8 0.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7 ATL 31 10 10 0 0 190 4.26 193 26 67 10 136 1.368 102 1.4 2.2
MLB 통산
(15시즌)
400 120 118 2 6 2073⅔ 4.04 2033 264 663 90 1477 1.300 103 18.7 23.7

5. 기타

6. 관련 문서



[1] 이때 한국 대표팀과도 맞상대한 적이 있지만 등판한 건 아니였고, 당시 미국 대표팀 선발은 세스 그레이싱어였다.[2] 왼쪽에서 2번째가 디키다.[3] 원래대로라면 팔꿈치 인대가 없이는 피칭은 고사하고 통증이 극심해 문 손잡이도 돌릴 수 없다고 한다.[4] 이때를 회상하며 마치 복권에 당첨됐다가 잃어버린 심정이었다고 한다.[5]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 너클볼에서 디키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너클볼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9살 때 테네시 주 네슈빌 공터에서 배웠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6] 면담 이전에도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오렐 허사이저 코치와 너클볼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하며, 불펜에서 너클볼만으로 공을 던지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05년인 이 때에도 한 시합에 한두 개 던질까 말까한 너클볼이었고 정통파 투수였던 그의 구질로는 경쟁력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7] 이 피홈런 기록은 현대야구가 출범한 20세기 이후 기록으로는 한 경기 최다 피홈런 최다 기록이었다.(...)[8] 이는 메이저 역대 타이 기록인데, 메이저 역사를 통틀어 단 4명만 있는 이 명단에는 월터 존슨필 니크로도 올라 있다.[9]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마이너 팀이다.[10] 한편으로 시즌 말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졌는데, 2012시즌 초에 복부 근육이 찢어진 채로 한해를 보냈다고 하며(...) 시즌을 마치고 수술을 받았다.[11] 결국 2015년 메츠의 9년만의 가을야구에 다노와 신더가드가 한 힘 보태면서 디키는 나가고 나서도 메츠팬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물론 2015년엔 토론토도 막나가는 트레이드로 22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12] 이날 경기가 열린 체이스 필드는 지붕을 닫고 있었다.[13] 참고로 같은 팀에 마크 벌리가 있었는데도 받은거다.[14] 데이비드 프라이스, 마크 벌리, 마르코 에스트라다, J.A. 햅, 애런 산체스, 마커스 스트로먼 등의 활약으로 1 ~ 2선발이라고는 도저히 평가 될 수 없다.[15] 배짱이 대단하기로 유명한데, ALCS 4차전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털린 후 벼랑끝의 팀을 위해 언제든지 구원 투수로 나설 수 있다고 자원했으며, 2013년 초반에 자신을 필두로 팀이 신나게 털릴 때도 너무나도 태연히 인터뷰를 하는 비범함(...)을 보여줬다. 물론 부진을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등 그 훌륭한 인성은 누구나 인정한다.[16] 그것도 후반엔 교체된다.[17] 한번은 .204로 간신히 턱걸이로 1할을 면했다.(...)[18] 고단한 포수의 특성상 이런것까지 짬 당하기 싫은 심정에 양보한다고 쳐도 연봉이 무려 $20M이면서 WAR -0.2(...)를 기록하는 선수가 할 소리는 아니다.[19] 사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행한 포수 유망주를 보면 냉정하게 저 선수보다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했다.[20] 1년 $7.5M의 클럽 옵션이 추가로 붙었다.[21] 너클볼의 평균 구속은 75 ~ 76마일로 팀 웨이크필드와 비교하면 무려 10마일이나 더 빠르다.[22] 2001년 4월 2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11:2로 앞서고 있는 9회에 등판했다.[23] 다만 디키는 로드리게스가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고, 본인의 메이저 첫 경기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24] 오해를 막기 위해 부연설명하자면, 양귀비 씨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건 서구에선 매우 오래 전부터 있던 문화이다. 양귀비 씨에는 마약 성분이 없으며 따라서 중독성도 없지만 양귀비 자체의 성질 때문에 이렇게 헤로인 검사 때 오해를 받을 수 있다.[25] 3승 4패 ERA 5.87 → 10승 2패 ERA 2.42[26] 당시 규정상 외국인 선수의 연봉은 30만 달러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명목상 30만 달러였을 뿐 모든 구단이 뒷돈을 주고 선수를 데려왔다.[27] 디키는 당시에 33세라는 자신의 나이, 마이너 올해의 선수였지만 기대했던 9월 메이저 합류 불발로 느꼈던 구단의 홀대와 불확실한 미래, 지난 5년 동안의 수입보다 많은 돈,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을 다음 해 계약 연장으로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80% 정도 삼성으로 갈 생각을 갖고 있었고, 부인의 동의를 받은 상태였지만 괜찮은 성적으로 미네소타 트윈스, 시애틀 매리너스, 뉴욕 메츠의 오퍼를 받은 절친한 에이전트 보 맥키니스의 적극적인 만류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