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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08:51:25

LNER A1/A3

파일:Norton_Manor_-_60103_after_turning.jpg
1. 개요2. 상세3. 보존4. 미국 투어5. 기타6. 미디어

1. 개요



LNER Gresley Classes A1 and A3
1922년부터 1935년 동안 영국의 주요 사철이였던 런던 앤 노스이스턴 철도(LNER)에서 신조한 증기 기관차.

2. 상세

나이젤 그레즐리 경(Sir Nigel Gresley)[1]이 설계한 3실린더형[2] 4-6-2 텐더 기관차다. 최초로 만들어진 기종이 A1형 기관차이며, 차후 개수받아 새로운 모델명을 받은 것이 A3형 기관차; 일명, '슈퍼 퍼시픽'이다.
A1형은 총 51대가 개발되어 해당 차량 전량이 A3로 개수되었으며, A3의 경우 27대가 추가로 생산되었다.

후계기인 LNER A4에 묻혀서 그렇지, 이쪽도 속도로 대단한 기록을 세웠는데, 1934년 11월 30일, 세계최초로 시속 100 마일(약 시속 160 킬로미터)의 벽을 공식적으로 돌파한 것이다. 해당 차량은 플라잉 스코츠맨(Flying Scotsman).[3]

3. 보존

파일:LNER_60103_Flying_Scotsman_at_the_NRM.jpg
시속 100 마일을 돌파했던 60103번[4] "플라잉 스코츠맨(Flying Scotsman) "단 한대만이 보존 중이며, 영국 국립철도박물관 측에서 복원하여 본선에서 운행 중이다.
플라잉 스코츠맨은 2023년에 있을 제작 100주년 기념일을 준비하기 위해 2022년 4월부터 잠시 퇴역한다.
또한 해당 기관차의 목업이 스타필드 고양에 전시되어있다.

파일:LNER_Class_A1_4-6-2_No60163_'Tornado'_(29903372180).jpg
그 외에도, 페퍼콘이 재설계 후 제작했던 페퍼콘 A1 차량[5] 중 한대인 토네이도를 신규 제작하여 관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4. 미국 투어

전체 여정을 정리한 영상[6][7]
파일:LNER_4472_on_Jefferson_March_1972xRP_-_Flickr_-_drewj1946.jpg
1969~1972년에 미국 투어로 미국에서 운행된 적 있다. 배장기와 경종 설치, 연결기 교체 등 대대적 수리를 하고 배편으로 미국으로 보내져 미국 투어를 했다. 1969년에 합의를 보고 보내졌다.

당시 영국은 60년대에 접어들어 철도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당시 운용하던 증기기관차를 폐차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영국 교통 위원회(British Transport Commission)의 동부 지부 근무자이자 철도 애호가였던 알렌 페글러(Alan Pegler)가 해럴드 윌슨 총리의 후원을 바탕으로 기관차를 매입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돈캐스터 정비소에서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윌슨 총리는 영국의 수출활동 장려 및 지지 차원에서 미국 및 캐나다 투어에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69년에 투어가 시작되었다. 추가로 객차 몇 대를 개조하여 전시장으로 만들기도 하여 투어에 객차가 동행되었다. 그러나 투어 시작 1년만에 대선을 통해 에드워드 히스가 총리로 당선되었고, 히스 총리는 자금 지원을 철회했다고 한다.[8] 그때부터 페글러는 사실상 미국에서 자금을 충당하며 72년까지 투어를 돌기로 결심했으나, 실상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미국 내 일부 주의 규정에 따라 증기기관차가 직접 운행을 하지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9] 이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는 디젤 기관차나 전기 기관차가 스코츠맨을 견인해야 했다. 문제는 이 견인비용으로 생긴 빚만 해도 132,000 파운드였다는 것.[10] 여기다가 샌프라시스코에서 열린 전시회로 돈을 충당하기로 했으나 일이 예상 밖으로 흘러갔고[11], 결국 재정 문제가 눈처럼 불어나 페글러는 파산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스코츠맨을 압류당하기에 이른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본국인 영국에서는 스코츠맨이 미국에 영원히 귀속되거나 폐차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 Sir Robert McAlpine이라는 건설회사의 사장 윌리엄 맥걸파인(William McAlpine)이 원예가이자 똑같이 철도 애호가였던 앨런 블룸(Alan Bloom)의 연락을 받고 일에 뛰어들었다. 이후 기관차에 걸려있던 부채를 청산하고 기관차를 입수하는 데 성공하고, 1년 반 전 기관차가 영국을 떠났던 장소인 리버풀 항구에 기관차가 드디어 도착했다.[12]

한편 파산 후 선박회사 P&O에서 근무하던 페글러는 1974년 12월 파산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고, 배우 일을 하면서 헨리 8세를 연기하기도 하였다. 이후 잠시 철도 관련 일을 다시 하기도 했다.

페글러는 2012년 사망했으며, 2018년 고인의 생전 희망사항에 따라 유골이 런던 킹스 크로스 역에서 요크 역으로 가는 플라잉 스코츠맨의 화실에서 (사실상)화장되어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13] 페글러는 이를 통해 그의 생애 진정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그가 그토록 좋아하고 아끼던 열차를 통해 성불했다고 할 수 있겠다.

5. 기타

철도모형으로는 영국의 Hornby사가 출시했다. 기관차 한 대인 단품도 있고 객차, 레일까지 같이 있는 세트도 발매했다.
레고는 제품 번호 10194인 에메랄드 나이트로 발매했다.

6. 미디어



[1] 후속 기종이자 가장 빠른 증기 기관차인 LNER A4의 설계를 맡은 사람으로 유명하며, A4의 차량 한대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2] 외측에 2개를 장착하고 내측에 실린더를 추가하는 방식. 이 방식을 devided drive이라고도 하며, 일본의 C53형 증기 기관차와 동일한 방식이다.[3] 1904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에서 역시 그들만의 기관차 시티 오브 트루로(City of Truro)가 플라잉 스코츠맨보다 더 먼저 시속 100 마일을 돌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공식 입장은 아닌것으로 확인이 된다.[4] 구 4472번[5] 오리지널 기관차들은 이미 1960년대에 다 폐기되었다.[6] 토마스와 친구들카 시리즈 전문 미국 유튜버 The Unlucky Tug의 영상이다.[7] 전부 영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주의. 자동 생성이긴 하지만 자막이 생각보다 정확하게 나오므로(몇몇 인식 실패 구간이 있으나) 자막을 켜고 볼 것을 추천.[8] 윌슨 총리는 노동당 소속이었으나 히스 총리는 반대파인 보수당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9] 화기 엄금 품목으로 분류되었다는 모양이다.[10] 현재 한화로 계산해도 2억을 넘어가는 금액이다.[11] 전시장 주변 해안가에 주차되었으나, 바다 풍경을 가린다는 주변 상업지구의 항의와 주차문제를 호소한 사람들의 원성 끝에 도심 한가운데로 옮겨졌으나, 결국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전시 목적이 없어져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12] 이 과정에서 재정적 문제가 겹쳤는지, 같이 갔던 객차들은 끝내 입수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 중 몇 대는 훗날 어떻게든 영국에 돌아오긴 했다.[13] 이때의 열차 이름이 따로 존재했는데, 이름이 '안녕히, 알렌 페글러(Farewell Alan Pegler)'였다.[14] 원작에서는 남동생이다.[15] 위에있는 실제 플라잉 스코츠맨의 토마스 세계관 버전이다. 국내판 그레이트 레이스 극장판에서는 날쌘돌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16] 플라잉 스코츠맨은 배장기가 없는것을 제외하면 미국투어 당시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