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의 배경이 되는 국가간 전쟁
이발리스와 이웃 국가 올다리아, 올다리아의 동맹국 로만다의 50년에 걸친 전쟁으로, 중세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모델로 삼았다.전쟁의 시발점이 된 것은 50년 전 당시 이발리스의 국왕인 데나문다 2세로, 올다리아의 젤모니아 지방을 독립시켜 올다리아의 세력을 깎기 위한 목적이었다.
전쟁 초기, 이발리스는 올다리아의 수도 브라까지 함락시키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데나문다 2세의 급사와 로만다의 참전으로 등 뒤를 찔리는 격이 되어, 양 국의 협공을 받은 이발리스의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고 만다.
그러나 페스트의 유행으로 인해 로만다는 참전한지 3년만에 전쟁에서 철퇴하게 되고, 그 후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발리스는 올다리아와의 길고 힘든 전쟁을 계속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이발리스는 극도로 피폐해졌고, 끝내 올다리아와 평등 화평조약을 맺는 것으로 50년 전쟁은 종결된다.
전황이 불리했던 이발리스가 올다리아와 대등한 화평조약을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발리스에 천기사 발바네스 베올브, 뇌신 시돌퍼스 올란두, 은발귀 메스드라마 에룸도어가 있었기 때문이며, 올다리아가 이 세 명의 장수들이 있는 군대를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발리스의 패배나 다름없는 결말로 종전이 되었으며, 왕가의 세력이 약해짐으로 인하여 해여단 등의 집단이 봉기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귀족들의 세력을 강화시킴으로 인해 왕위계승을 둘러싼 사자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2. 창세기전 시리즈의 배경 중 하나가 되는 전쟁
투르 제국과 안타리아 대륙간에 일어난 전쟁. 창세전쟁 이후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서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를 걸쳐 창세기전 3까지의 배경이 되는 기나긴 전쟁이다. 게임 내 직접적인 언급이 많지는 않지만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제법 중요하다.2.1. 전쟁 초기와 다갈의 쇄국
에스겔력 1209년 안타리아 대륙의 페넬로와 라르고 무어가 필라프 라인을 뚫고 동방항로를 개척, 마침내 동방의 루슈드[1] 대륙에 도달했다. 그 뒤 1223년까지는 두 대륙 사이에 교역 활동이 있었지만, 매머드 2세[2]가 투르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면서 투르 전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2년 뒤 매머드는 동방항로를 참조, 안타리아의 아스타니아 교국과 다갈을 향해 선발대를 파견하면서 안타리아 정벌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게이시르 제국의 침공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두 국가의 운명은 뻔할 뻔자. 비록 아스타니아와 다갈이 마장기나 비공정 같은 병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두 나라의 전체적인 군비는 총과 전차, 광선검 등으로 무장한 투르 측에는 그냥 먹잇감에 불과했다.
든든한 전력이었던 마장기가 전차의 집중 포격 또는 예니체리들의 광선검의 일격에 순삭되는 걸 보고도 아스타니아군과 다갈군이 기세등등한 투르 병사를 이길 리 만무했다. 아스타니아는 영토의 대부분이 점령당했으며, 무력화된 다갈은 산악 지형을 이용해 철저한 쇄국[3]을 실시한다.
이에 팬드래건의 국왕이자 실버 애로우의 맹주였던 라시드 팬드래건은 즉각 실버 애로우 군(이라지만 사실상 팬드래건 군)을 소집해 아스타니아를 돕기 시작했고, 전쟁은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안타리아에 투르의 문물이 들어왔는데, 총을 비롯한 신식 화기(火機)들과 한 제국의 의학이 들어와, 안타리아 대륙 전역에 투르의 위상을 알리게 되었다.
2.2. 아스타니아 멸망
이후 양 세력은 14년 간의 소강 상태를 이용해 다시 있을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실버 애로우측에선 팬드래건의 원조로 아스타니아 성을 삼중 성벽[4]으로 개수하였고, 투르는 후방의1239년, 투르는 안타리아를 재침공했다. 그 와중에 투르로 외교사절로 온 라시드의 장남이자 팬드래건의 왕세자였던 우드스톡 팬드래건이 구금되었고, 팬드래건에서는 세자가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다.[5] 이후 12년 간 투르군은 매머드 2세의 아들인 바예지드의 지휘 아래 아스타니아 성을 포위해가며 압박했고, 아스타니아군은 창세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슈리 스탐가르드의 지휘 아래 저항해갔다. 그러나 기껏 개수한 삼중 성벽은 투르의 신식 전차 고르곤의 포탄 세례에 차례로 파괴되고 말았고, 결국 1251년 아스타니아는 멸망하였다.
그 과정에서 슈리와 그의 아내인 카자 아미고가 전사하고 그 외의 수뇌부들까지 몰살당했으며, 교국이 그토록 자랑해왔던 대성당까지 파괴되고 말았다. 또한 투르군이 아스타니아 입성 과정에서 닥치는 대로 약탈과 방화, 살육을 자행해 수많은 유민이 발생했다. 마장기를 나포하고 기술자를 생포해 본국에 데려온 투르는 기갑기 베헤모스와 라크라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6]
그동안 구 게이시르 자치령의 혼란 때문에 동부 전선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었던 팬드래건이 이제는 최전방에서 아델라이데와 브래드포트를 중심으로 투르의 공세에 본격적인 대륙 방어전을 펄쳐야 했다.
2.3. 투르 내전으로 인한 휴전기
1263년 투르 제국에 복속되었던 한 제국에서[7] 다시 반 투르 투쟁이 일어나며, 투르는 서부 전선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 팬-투 전쟁은 다시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1264년 실버 애로우 동맹국 중 하나였던 커티스 공화국의 로드리게스 대통령은, 영토 확장을 노리면서 팬드래건 몰래 투르와 평화협정을 맺고 비공식적으로 교역을 하게 된다.1년 뒤 매머드 2세가 한 제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투르는 왕자들의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고[8], 아스타니아 주둔군을 지휘하던 바예지드는 급히 귀국해 형인 샘을 제치고 술탄에 즉위한다.[9] 이 틈을 타, 라시드 팬드래건은 게이시르로 옮겨가 제피르 팰컨 및 크리스티나 프레데릭과 손잡고 체사레 보르자와 비프로스트군을 개박살냈다.
바예지드는 국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한 제국과 자치조약을 맺게 되지만 얼마 안 가 사망하고 재상 아미드가 정권을 장악한다.[10] 이에 아스타니아에 남아있던 슐레이만은 급히 팬드래건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 때는 라시드 또한 사망한 뒤로 차남 헨리가 국왕으로 즉위한 상태였다. 협정이 체결되자 슐레이만은 서둘러 귀국하여 아미드를 제거하고 술탄 슐레이만 5세로 즉위했고, 헨리는 투르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것을 빌미로 반란을 일으킨 이복동생들에게 패한 뒤 참수되었다. 자세한 것은 장미 전쟁을 참조할 것.
투르와 팬드래건이 사실상 휴전 상태에 돌입하자 커티스는 투르와 정식 무역협정을 체결해 공식적으로 무역을 재개하고 사이럽스 또한 투르행 정기편을 운항하기 시작한다. 이후 1274년 클라우제비츠 팬드래건의 즉위까지 8년의 휴전기를 보낸다.
2.4. 종전
1274년 라시드의 장손이자 우드스톡과 한 제국 황녀 연의 소생인 클라우제비츠 팬드래건이 국왕으로 즉위하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즉위 후 엘리자베스와 혼인하고 버몬트 계열 귀족들을 회유클라우제비츠는 투르 병력을 안타리아 대륙에서 내몬 뒤 아스타니아를 팬드래건령으로 통합하고, 곧장 투르 본토를 비공정으로 침공해 첫번째는 수도 자비단 앞에서 돌아갔지만, 곧 일으킨 두번째 원정에서는 자비단은 물론 중부 지역 카디스 요새까지 함락시킨다. 이 과정에서 죤 팬드래건을 구출하면서 필립 팬드래건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된다. 중간에 슐레이만 5세의 반격으로 두 차례 물러나기도 했고, 죤 구출
[1] 투르 고유어 명칭이다.[2]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변형.[3] 팬드래건이 아스타니아를 편입한 뒤에도 빗장을 풀지 않았다는 걸 창세기전 3 파트 1 크림슨 크루세이드 - 호수의 여왕에서 알 수 있다.[4] 아스타니아는 말기의 동로마/비잔틴 제국에서 따온 것 같다.[5] 라시드가 늙자마자 콘웰 파와 버몬트 파의 알력이 점점 표면화되고 있었는데, 그나마 방지책이 되던 제1순위 계승권자 우드스톡이 사로잡힌 건, 동복동생 헨리나 이복동생 리차드 등의 야심가들에게 기회로 보일 수 밖에 없다.[6] 이 부분에서는 콘스탄티노플과 운명이 다르다.[7] 1253년에 투르가 한 제국의 영토 일부를 병합했다.[8] 투르는 술탄의 계승자가 선정되지도 않고, 서로 1:1 승부를 벌이지도 않고 외척과 장군을 끼고 처절한 왕자의 난을 벌여, 승자가 술탄으로 오른다. 동서로 싸움을 벌여놓고는 자기네끼리 또 싸우면서도 무너지지 않더니...[9] 샘은 아나풀리아에서 전사했다.[10] 정황 상 아미드가 바예지드를 암살한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