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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문제점 및 사건 사고/개·폐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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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막식 관련
2.1. MIKIKO가 집단괴롭힘을 당한 후 사임2.2. 개막식 음악 담당자 학교 폭력 및 사퇴 사건
2.2.1. 사퇴 및 노래 사용 중단2.2.2. 이후 진행2.2.3. 평가2.2.4. 의문점
2.3. 개막식 공연 담당자홀로코스트 희화화 및 해임2.4. 아베 신조개막식 불참 논란
3. 개막식 진행, 중계 관련
3.1. 해외 선수단 입장 당시 마스크 불량 착용3.2. KBS의 잘못된 정보 전달3.3. MBC 개막식 중계방송 사진 및 문구 논란3.4. NHK 대만 언급에 따른 중국의 반발
4. 폐막식 진행, 중계 관련
4.1. 아이누류큐 문화 소개에 대한 반응4.2. 한국 선수단 중계 패싱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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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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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막식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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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MIKIKO가 집단괴롭힘을 당한 후 사임

개막식 연출을 담당하던 MIKIKO가 개, 폐막식 연출 총괄을 맡은 사사키 히로시에게 집단괴롭힘과 각종 부당한 취급을 받은 후 결국 사임하였다. 원래 개막식의 주요 아이디어와 기획을 짰던게 MIKIKO였기 때문에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엉망이었던 것이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문서를 참조. MIKIKO가 사임하고 이후에 담당자로 기용된 사람들이 아래에 나오는 오야마다 케이고코바야시 켄타로다.

2.2. 개막식 음악 담당자 학교 폭력 및 사퇴 사건

일본 트위터에서 과거, 코넬리우스(오야마다 케이고)가 이지메 사실을 밝힌 인터뷰(록킹 온 재팬[1] 1994년 1월호, 퀵 재팬[2] Vol.3)를 실은 트윗이 1만 2천건 넘게 리트윗이 되며 재조명받고 있다. 왕따 방식도 굉장히 잔인한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온 장애인 급우[3]를 골판지 상자 안에 가두어 공기 구멍 안에 지우개 가루를 털어 "독가스 공격이다!"라고 하거나, 이는 고등학생까지 이어져서 벌거벗겨 백드롭을 하거나, 츄리닝을 벗기거나, 인분을 억지로 먹이는 행위를 해왔음을 본인이 직접 밝혔다. 자신이 받은 장애 아동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쓴 연하장을 공개하면서 글씨를 조롱하기까지 했다.[4][5]

오야마다의 이지메 후기(?)가 실린 퀵 재팬에 오야마다가 괴롭힌 왕따 피해자를 기자가 직접 찾아가 후일담을 듣는 황당한 코너도 함께 발굴됐다. 사회고발 목적도 아니고 가벼운 분위기와 느슨한 말투, 편집자가 직접 로드 무비 같다는 감상을 남길 정도로 장난스럽게 쓰여있다. 순전 재미로 오야마다가 괴롭힌 왕따 피해자[6]을 찾아가 "오야마다 씨와 사이가 좋았나요?"라고 묻는 등 피해자의 상처를 헤집는 행동에 오야마다를 포함해 퀵 재팬의 편집자들도 싸이코패스가 아니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한 피해자 어머니는 중학교 때까지는 자살도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걸 마치 재미있는 가십거리마냥 기고했다.

이런 범죄 자백 및 2차 가해에 가까운 미친 인터뷰가 가능했던 이유는, 1990년대 초중반 오야마다 케이고가 속했던 플리퍼즈 기타의 위상이 문화적 아이콘 수준으로 기세등등했기에 그렇다. 인기에 눈멀어 끔찍한 범죄를 천재 반항아의 일탈로 포장하려고 했던 기레기들의 썩은 마음가짐과 자신의 행동에 전혀 반성도 안 하고 있던 오야마다의 후안무치가 만나 최악의 결과물을 만든 셈. 당시에도 까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팬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수준이었다가[7] 올림픽 건으로 묻혀있던 뇌관을 때려 폭발하게 되었다.

사실 2004년 팬 사이트에서도 이 건이 언급되긴 했지만, 이때 오야마다가 해명하기는커녕 니들이 쓰레기라 비난해도 난 신경 안 쓴다라는 투로 적반하장으로 일관해 유야무야된 일이 있었다. 오야마다가 진심으로 이 건에 대해 생각하거나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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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사퇴 및 노래 사용 중단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맡을 자격이 있냐고 분개한 일본 여론을 의식한건지, 오야마다는 20년만에 사과문을 트위터에 개시했으나 지금까지 언급도 없었다가 논란이 되니 갑자기 사과한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과 정작 사임한다는 표명은 없어 논란이 더욱 거세진 상황.[8] 참고로 패럴럼픽도 담당해서 간토 지방 장애인 스포츠 협회 간부도 분개했다는 사실이 Business Journal 언론 뉴스를 통해 밝혀졌다.

사과문 게재 이후에도 오야마다가 개막식 담당에서 내려오질 않자, 일본 국민들은 해외 눈치를 보는 조직위원회라면 국내 논란보단 외국에서 시끄러워지는 게 더 빠르다며 외신에 퍼나르는 중이다. 이러는 와중에도 오와라이 콤비 폭소문제의 오타 히카리는 18일 TBS 선데이 재팬에서 오야마다 건으로 "당시 잡지가 그것을 허용해 게재했다. 그 시절 서브컬쳐에 그러한 국면이 있었다는 것, 시대의 가치관으로 그 시대를 알고 있지 않으면 평가가 좀처럼 어렵다." "굉장한 사이버 불링 같다. 오야마다가 퇴장할 때까지 계속할 셈인가. 그것은 또 이지메의 연쇄가 아니냐"고 오야마다를 감싸는 발언을 해 기름을 끼얹었다.

무토 사무총장은 이러한 일탈을 몰랐다고 한다. #

조직위원회는 처음에는 오야마다를 유임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그들은 “본인이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여 사과문을 개시했다. 우리는 현재 그를 높은 윤리관을 가지고 창작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한다. 개최식 준비의 공헌은 크다"라고 발언하여 많은 일본인들이 능력만 좋으면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고 성희롱[9]한 범죄자를 평등의 행사에 참여시키는 거냐며 격분했다. 일본 장애인 단체는 강력한 항의 성명을 내고 조직위원회를 규탄했다. #

7월 19일 결국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올림픽 조직위원회측에 사임의사를 밝혔다. # 이 같은 결정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려서[10] 경악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또한 이 하차는 오야마다 본인의 자진 사임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높은 윤리관' 운운하며 오야마다를 두둔한 조직위원회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

이후 조직위원회는 오야마다의 사임을 받아들이고 무토 사무총장이 "오야마다 씨의 노래에 대해서는 개막식에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높은 윤리관으로 대표되는 망언으로 조직위원회에 향한 분노 여론을 의식했는지 "조직위원회는 오야마다 씨의 행위가 결코 용서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며 2번의 유임 의사를 밝힌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사과했다. # 한편 조직위원회가 오다야마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 태도를 바꾸지 않았던 이유도 드러났는데, 무토 사무총장이 말하길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들의 판단이 안이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뒷목을 잡는 중.

7월 20일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은 언론의 취재에 응해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야마다의 후임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 개막일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공석으로 비워둔채 진행해나가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 같은 날 하시모토 회장은 오야마다 건에 대해서 자신의 책임이라며 사과를 전했다. #

무토 사무총장은 계속되어 지적받는 오야마다의 기용에 대해서 여성 탤런트 외모를 모욕하여 사임한 사사키 히로시의 후임 팀이 그룹 전체 계획에 필요한 사람과 동료를 부르고 형성되었다며 우리가 일일이 임명한 게 아니다. 우리에게 임명 책임이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뽑은 게 아니라며 변명했다. #

개막식 4일 전에 음악 감독이 사퇴하고 오프닝 곡이 날아가는 참사에 조직위는 급거 기자회견을 갖고 "대회의 상징인 개막식을 성공시키는 책무를 위해 서둘러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상황인지라 "그러길래 진작 강판하지"라는 말만 듣고 있다.

2.2.2. 이후 진행

20일 사퇴 이후에도 새로운 인터뷰가 하나 더 발견되어 까였다. 학교 폭력 관련은 아니지만 중환자 조롱 및 고인 모욕 내용을 담고 있다. 96년 월간 긱스 2월호에 실린 플리퍼즈 기타 결성 전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때의 일화에서 "둘 다 잠을 안 자서, 한 밤 중에 암을 앓고 있던 말기 환자가 내는 듯한 신음 소리가 "윽-"하는 식으로 들려왔어(웃음)", "그런 사람들은 말이야, 기계 같은 데에 연결되어 있거든. "삑" "삑" 소리내는 기계 같은 것이 있어서, 밤 중에 삐- 하는 소리에 반응해(웃음). 그래서 "아, 오늘도 또 하나 죽었다."라고 말했어(웃음). "당신들이 새벽에 기타 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라고 간호사에게 혼났음(웃음)".

그 와중에 '바흐[11]의 곡을 쓰자'#느니 '이젠 마츠켄 삼바밖에 없다'#는 개드립이 나도는 등, 여러모로 많은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심지어 오야마다는 원래 음악 감독이었던 시이나 링고가 사임한 이후 그 대타로 들어갔던 것인데 그마저도 불명예 사임하게 되어서, 개막식에 무슨 저주가 깃든 것이 아닌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한편 햐다인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음악 프로듀서 마에야마다(前山田) 겐이치가 오야마다(小山田)와 성이 불과 1자 차이 나지 않아 오인한 일부 인간들이 햐다인의 노래도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햐다인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풍평피해를 진심으로 피하고 싶으므로 올림픽과 관계없는 외부인임을 강조했다.

결국 23일에 열린 개막식에서는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곡이 대신 사용되었다.

2.2.3. 평가

이 사건은 일본 국민들에게 올림픽의 인식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데 한 몫 했다.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로 인해 일정이 망가진 감이 있긴 하나 이지메 가해자를 경질시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며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적되어온 사회 문제인 이지메[12]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재난을 딛고 극복한 모습을 전세계에 알려주려는 목적의 부흥 올림픽에서 장애인을 지독하게 괴롭힌 가해자를 내쫓지 않고 감싸주고 품은 현실과 아이러니에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는 평이 한 둘이 아니다. 3조엔이나 써서 망신... 도쿄 올림픽, 너무 늦은 결단이 부른 되돌릴 수 없는 손실, 오야마다 문제가 결정타로.

범죄를 저지른 오야마다도 오야마다지만 조직위원회의 무능과 실책이 특히 두드러졌다는 평이다. 오야마다 사건은 다른 학교 폭력 폭로와 양상이 달랐다. 보통은 피해자가 언론이나 인터넷에 익명으로 고발하여 그 사이에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 며칠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오야마다는 피해자의 고발도 아닌 자신의 범행을 자랑하는 듯 말했고 사실 검증도 피해자 후일담을 통해 발뺌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던 상황이었다. 조직위원회가 오야마다 사과문이 올라온 그 날 그를 강판시키고 담당을 잘 못 뽑은 일에 대하여 대국민사과를 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조직위원회, 특히 무토 사무총장은 “몰랐다.” “사과했으면 됐다.” “인사권은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 책임이 아니다.” 연일 망언을 쏟아내어 국민들의 화를 더 돋구기나 했다.

오야마다와 조직위원회가 알박기를 시전하자 워싱턴포스트나 타임스 기자들에게 접근하여 오야마다 사건을 알려주거나 SNS에 오야마다의 만행을 영어로 번역해서 퍼뜨리던 행위를 했던 것도 자신의 나라를 믿을 수 없기에, 일본 내에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외국에도 다 퍼졌다. 여기서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일본을 어떻게 보겠냐. 국가망신을 할 생각이냐' 식의 압박을 주는 것. 심지어 일본 내에서 소란이 있을 때는 무시했지만 외신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바로 사임 표시를 했던 점에서 이 작전은 어느 정도 통했다. 여기다 오야마다는 오노 요코 밴드에서 연주하고 블러를 위시한 해외 유명 아티스트 리믹스를 하는 등 해외 인지도가 있는 편에 속하기에 이런 해외 이미지 실추는 상당히 데미지가 있다.

커뮤니티보다 과격한 발언이 오가는 마토메에서는 "그만두고 싶으면 당장 그만둬라. 필요없다.", "이딴 놈들에게 우리들의 세금이 들어간 쓰레기 올림픽 지긋지긋하다.", "장애인에게 똥을 먹이는 녀석과 동일한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해도 되는거냐?" 등의 냉랭한 반응이 쏟아졌다. 영상 팀들은 올림픽 대회를 단지 음악 방송 따위로 생각하는지 버릇대로 의리로 오야마다를 감쌌지만, 올림픽은 국민들의 세금이 들어가는 세계구 행사라는 걸 간과했다. 이미 일렬의 사건으로 민심이 내핵을 뚫고 떨어지는 올림픽에 영상 팀의 이러한 행동은 아름다운 우정이 아니라 여론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에 불과했다.

본 사건이 개막식 직전에 떨어진 대형 핵탄두가 된 바람에 조직위원회의 허술한 대처에 열이 오른 관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다. 가토 가쓰노부 내각장관은 오야마다 건으로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으며, “더 이상의 불길은 안 된다.”고 조직위에 들이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야마다 건과 비슷한 시기에 논란이 된 그림책 작가[13]가 오야마다 건이 터지자 함께 논란이 되었다가 오야마다가 사퇴한 것에 이어 자진 사퇴를 선언했는데, 한 관계자는 이를 관저가 일찍이 노부미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어 오야마다와 동일한 패턴을 겪지 않으려 노부미 건을 ‘처리’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

오야마다 사건의 하차는 이후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돌아왔다. 개막을 불과 4일 앞두고 음악 담당이 하차하는 바람에 첫 부분은 급히 투입된 타나카 히로유키가 4일만에 만들어야 했으며, 이후 일본에서는 올림픽 책임자들의 도덕성에 깐깐한 풍조가 생겨 코바야시 켄타로도 내려와야 했다. 순식간에 중요 인력 두 명이 빠진 여파인지, 문화 강국 일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수수한 개막식으로 남게 되었다.

오야마다 사건은 도쿄 올림픽의 신뢰성을 손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 음악계가 닫힌 사회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알린 기폭제가 되었다. 일본 음악계[14]는 납득할 수 없는 오야마다 옹호로 학교폭력에 대한 형편없는 인식을 드러냈으며 이는 오야마다 케이고 문서의 비판 및 논란 목차 전체에 자세히 서술되었다. 이러한 병폐는 음지화된 영역 중 나카무라 이네 건에서도 있었던 일인데 양지화된 영역에서도 똑같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여담으로 오야마다 사건 이후 방송사에서 오야마다가 작곡한 노래를 내리고 있는 가운데 과거 시즈오카 현의 공식 노래 마루쨩의 시즈오카 선창이 마약 유통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피에르 타키의 노래였던 탓에 2년 전 기록이 말소됐으나, 하차 이틀 전에 겨우 발표된 노래도 오야마다가 편곡해서 또 비워지는 일이 벌어졌다.

2.2.4. 의문점

오야마다 사퇴 확정 후 한 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갔는데, 영상 팀의 정상급 팀이 "오야마다를 사퇴시키면 우리도 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다른 멤버들도 그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막식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 조직위원회는 유임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굳혔다는 정보가 밝혀졌다. 이러한 논란을 벌이고도 오야마다를 감싸는 정상급 팀 멤버가 누군지 일본인들은 신상을 요구 중이다. 이미 뉴스 댓글에서는 본명이 돌고 있다.

2.3. 개막식 공연 담당자홀로코스트 희화화 및 해임

개막식을 하루 앞둔 7월 22일, 개막식 연출을 담당한 연출가 코바야시 켄타로가 과거 게닌 콤비인 라멘즈 활동 당시 홀로코스트를 유머 소재로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이 드러나 해임되었다.#일본어 코바야시 켄타로가 "유대인 학살놀이를 하자"며 홀로코스트를 유머 소재로 한 콩트 영상이 발굴되었기 때문.

미국의 유대인 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15]가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 결국, 개막식 하루 전날인 7월 22일, 조직위가 그를 해임했다. #

개막식의 연출 담당팀을 둘러싼 문제는 3월 뚱뚱한 여성 인기 탤런트 와타나베 나오미를 돼지 분장해서 내보내자고 한 개폐막식 연출 총괄자 사사키 히로시가 사임하고, 지난 19일에는 장애인 동급생들에 인분을 먹이는 등 심각한 이지메를 한걸 인터뷰에서 자랑처럼 자백한 개막식 음악 담당자 오야마다 케이고가 사임한 데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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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아베 신조개막식 불참 논란

도쿄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켰고, 지난 수년 동안의 준비도 주도해온 주인공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7월 23일 개막식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올림픽 강행에 대한 일본 내부의 높은 비판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그동안 올림픽 유치 성공을 최대 치적으로 자랑했으며, 개최 1년 연기도 자신의 총리 재임 시기에 결정됐던 사안[16]이기에 이제와서 자신과 올림픽과 거리를 두려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17]#

일본 현지에서도 이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 아베 신조의 불참 행위에 대해 매우 무례하고도 무책임한 처사라는 불만과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으며 SNS에서 아베의 무책임함을 성토하는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다. # #

호사카 유지 교수는 아베 신조가 갑자기 도쿄 올림픽 관련 활동을 중단한 것에 불기소 처분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벚꽃 스캔들관련 수사가 7월 15일 검찰심의회의 일부 기소의견 결정 때문에 재조사가 시작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거란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
호사카 유지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아베 신조가 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올림픽에 대한 반대 여론 때문만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신변에 영향이 생긴 것도 고려한 결정일 수 있다. 실제로 올림픽에 대한 반감이 계속해서 올라가던 올림픽 직전까지도 올림픽 관련 옹호 여론을 조성하려고 하던 아베 신조가 여론의 반감 때문에 갑자기 개막식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분석은 모양새가 이상하긴 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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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막식 진행, 중계 관련

3.1. 해외 선수단 입장 당시 마스크 불량 착용

선수단 입장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입장한 선수들이 있었으며, 일부는 코나 입이 드러날 정도로 대충 착용하거나, 중계 영상에 잡혔을 때 벗는 이도 있었다. 또한, 입장시에는 마스크를 썼으나 이후 퇴장 전까지 마스크를 벗은 상태로 있던 선수들이 상당수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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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KBS의 잘못된 정보 전달


하계올림픽 개막식 메인 MC를 처음 맡아서 잘 몰라서 그런지[19] KBS 이재후 아나운서가 잘못 전달한 내용이 있었다. 바로 도미니카 연방이 입장할 때 도미니카 공화국과 다른 나라인 것은 맞지만 도미니카 연방은 영어가 공용어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의 공용어는 프랑스어라고 한 것. 도미니카 연방의 공식언어는 영어, 공용어는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한 크레올어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또한 이전부터 러시아어로 자신들의 국명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한 조지아를 굳이 그루지야라고 표현했다. 정확히는 아제르바이잔을 설명할 때, 인접국으로 그루지야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SBS에선 과거엔 그루지야로 불렸지만 지금은 조지아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모리타니 선수단이 입장할 때 모리타니의 과거 국기가 자막으로 나오기도 하였다.[20] MBC에서도 같은 실수를 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도 국기를 잘못 내보냈는데 문장이 빨간 바탕 안에 다 들어가 있는 형태의 국기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쓰인 국기이며, 이 당시에는 문장이 빨간 바탕을 벗어난 형태인 2013년 이후의 국기를 써야 한다. 이 역시 MBC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21]

콜롬비아의 수도를 '산타페 데 보고타'로 표기했는데 이 명칭은 2000년까지 쓰였으며, 현재 정식 명칭은 '보고타 수도 구역'이고 흔히 보고타로만 부른다.

3.3. MBC 개막식 중계방송 사진 및 문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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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NHK 대만 언급에 따른 중국의 반발

일본 공영방송인 NHK에서 개막식 생중계를 하던 중 대만 선수단이 입장할 때 올림픽에서 공식적으로 대만을 칭하는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가 아닌 대만이라고 언급하여[22] 중국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 다만 도쿄 올림픽이 연기된 원인인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눈치없고 뻔뻔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 폐막식 진행, 중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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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아이누류큐 문화 소개에 대한 반응

일본 각지의 전통 축제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홋카이도오키나와의 축제를 소개하면서 아이누족류큐인을 탄압했던 역사가 있음에도 일본의 전통 문화인 양 영상에 담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특히 러시아와 쿠릴 열도 관련한 분쟁이 있음에도 아이누족을 굳이 일본 문화라고 홍보하였기 때문에 올림픽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23]

하지만 21세기 현재 일본 입장에서 아이누류큐는 당연히 이제 일본의 문화이고, 오랜 탄압의 역사 때문에 상당수의 아이누와 류큐 문화가 소실되었기 때문에[24] 해당 문화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연구[25]는 물론 여러 관련 홍보 및 축제도 빈번히 개최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각지의 전통 축제 중 하나로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도쿄의 무더위로 인해 2020 도쿄 올림픽마라톤, 경보 종목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개최하기도 했는데, 아이누족들은 경보 종목의 대회장에서 자신들의 전통 민족 무용 퍼포먼스를 자발적으로 선보이기도 했다.[26] 다만 이는 아이누가 자신들의 문화가 다른 이슈들에 묻혀 잊히지 않기 위해 한 것이라는 인터뷰도 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로 짚는점은 "과거에 탄압한 역사가 있으니 지금 와서도 자기들 역사로 광고하지 말아야한다" 같은 현실성 없는 1차원적인 주장이 아니라, 아직도 소수민족을 차별하고 그 존재와 역사를 오랫동안 부정해왔으면서 왜 이제와서 잘해주는척 하냐라는것이다. 아이누와 류큐에 대한 일본의 차별은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있는 문제이며, 류큐의 경우 골치아픈 주일미군을 한데 몰아넣는 님비현상 처리장 역할을 국가가 정해버림으로서 민간사회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일본정부 차원에서 차별을 한다는걸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그동안 류큐와 아이누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일본의 것으로 편입시키고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별로 없었으면서 왜 세계인에게 보여줄땐 이러한 영상을 만들어 "소수민족을 보호하고 문화를 포용하는 일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선전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것이냐? 라는 것이다. 일본 역시 1세계의 일원으로서 평소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을 자주 비판한 만큼 내로남불이 아니냐는것.

4.2. 한국 선수단 중계 패싱 의혹

폐막식 선수단 입장 당시, 한국 선수단이 나오자마자 중계화면을 돌리거나, 행사 참여를 비추지 않아 의도적인 패싱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났다. ### 중계방송을 진행하던 진행자들도 이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러 한국 선수단을 맨 마지막으로 배치시켜 카메라에 잘 안 나오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다만 실제 출입 순서는 무작위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올림픽 카메라를 다룬 스태프가 일본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올림픽의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모든 중계는 IOC의 관리 및 감독 아래 중계된 중앙 카메라의 영상으로만 중계할 수 있는데, 실무적으로 카메라맨은 대개 개최국 국적의 국민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것이 지나친 반일감정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한국이 순위권에 든 것도 아닐 뿐더러 일본에서 굳이 한국을 촬영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또한 입장 순서가 무작위이므로 폐막식 진행 여건상 중계 화면이 돌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 진행 과정에서 유달리 한일 마찰이 많았던 만큼, 한국 선수단이 중계되는 장면마다 화면이 돌아간 것에 대해 한국 내 반응은 부정적인 편이다.

한편 한국만 패싱 된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화면에는 미국인, 특히 백인 선수들은 빈번하게 나왔으나, 나머지 선수들은 확실히 노출되는 빈도가 굉장히 적으므로 일본인을 제외한 유색인종들을 대상으로 패싱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1] 일본 음악업계를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록킹 온'이 발행하는 음악전문지이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공식 사이트에 편집장 명의로 "깊이 사과드린다"라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현 편집장인 야마자키 요이치로는 문제가 된 94년의 기사가 게재되었을 때도 편집장직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뷰어로서 직접 기사에 관여까지 했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록킹 온은 창간 초기부터 '잡지는 편집장의 것'이라는 방침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야먀자키 편집장은 현 사태에 더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2] 이 잡지는 오오타 프로덕션과 연관이 있는 서브컬처계 잡지로,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의 잡지로 유명하다. 1990년대 일본 막장 서브컬처 문화에 한 몫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 여기서 서브컬처라는 것은 만화영화나 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TV 방송, 음악, 영화 등 서브컬처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다.[3] 언어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엽서에 자로 그은 듯한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피해자의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하장을 쓰는데 도움을 준 듯 하다. 정작 연하장을 받은 오야마다는 앞장서서 그 아이를 괴롭히고 성인이 되어서도 연하장을 꺼내 공개 수치를 줬다는 점에서 어머니와 아이의 마음을 모욕해 더욱 공분을 샀다.[5] 장애 아동 부모들이 가장 화낸 부분도 이 부분이었다고 전해진다. 장애 아동의 아버지이자 동물 사진가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오하라 레이는 다음과 같이 분노했다. "부모로서 자식이 학교에서 이 꼴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해당 기사를 읽고 눈물이 난 부분은 아동이 오야마다 씨에게 보낸 연하장을 잡지에 개시해 웃음거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 연하장에는 어머니가 자로 그은 선에 따라 아이가 연필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걸 어른이 돼서 놀리다니 제정신인가요? 부모가 무슨 생각으로 친구에게 연하장을 보내는데 도움을 보탰는지 아시나요? 아이가 조금이라도 학교에서 친구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요. 이런 인물이 다룬 음악이 패럴림픽에 흘러가다니 블랙 코미디입니다." #[6] 한 명이 아니다. 최소 2명 이상 나온다.[7] 당시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이 증언하기를 인터뷰 공개 후 코넬리우스 팬이 대거 이탈했다고 한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자와랑 달리 오야마다는 플리퍼스 기타 해체 이후엔 일렉트로닉 음악 기반의 힙스터/매니악 노선으로 가서 대중 인지도가 줄고 '왕년에 스타였던 천재 예술가' 이미지에 가까워졌고 전문 음악지 인터뷰였기에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8] 또한 피해자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데, 많은 일본인들이 사과문 트윗에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시킨다고 지적했다.[9] 오야마다는 피해자에게 자위를 시켰으며 여자가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만들었다. 전자는 동성이라 할 지라도 원치 않는 성적 수치심을 주었으며 후자는 이성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를 희롱했다.[10] 일본을 넘어 미국이나 프랑스 등 외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와중에 하차를 발표했다. 그래서 일본 국내 여론보단 외신 눈치를 보는 게 확실히 되는 중.[11]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성씨가 같은 데서 나온 말장난.[12] 일본 현지에서는 오야마다 사건을 두고 '이지메'라고 표현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이지메는 포괄적으로 놀이에 끼워주지 않거나, 책상에 낙서를 하는 등의 비교적 약한 따돌림도 포함되는데, 오야마다는 집단 구타와 성희롱 같은 범죄나 다름없어 일본인 중에서는 아침 뉴스에서 이지메라고 말하는 것만 보고 별 거(?) 아닌 걸로 생각했다가 인터넷에서 자위 강요나 오물 섭취를 듣고 심각성을 깨달았다고도 한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미성년자 학생들이 동급생을 성추행하고 구타한 사건을 따돌림 세글자로 압축해서 덜 범죄스러워 보인다는 뜻.[13] 본명 사이토 노부미. 어린 시절 왕따를 겪고 등교 거부를 선언했지만 고교 시절에는 일진 그룹 이케부쿠로 연합의 보스로 33번의 체포 기록이 있었다고 자칭했다. 이건 이케부쿠로 연합을 알고 있는 제3자와 물적 증거가 없어, 아예 피해자가 다량으로 나왔던 오야마다와 다르긴 하나, 노부미가 지적되는 건 그림책 작가로서의 실책이다. 노부미는 유아/아동이 읽는 그림책에 과격한 스토리를 담아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어머니의 자기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독박육아(ワンオペ育児)를 권장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몇 년 간 노이즈 마케팅급의 어그로를 끌어댄 탓에 오야마다보다 일반인이나 대중 인지도가 높아서 진작 문제제기가 있었긴 하나, 무시한 채 강행하던 도중 오야마다 건이 불씨가 되어 노부미도 다시금 문제가 되었다.[14]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조차도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크게 비난을 받았다.[15] 2013년에 아소 다로가 '나치식 개헌을 본받자'는 요지의 망언을 했을 때에도 항의 성명을 낸 적 있다.[16] 2020년 3월 올림픽 연기를 결정할 당시 아베는 "코로나19 상황이 불투명하니 2년 연기가 바람직하다"는 모리 요시로 당시 올림픽조직위원장 등 현장 의견에도 불구하고 1년 연기를 관철시켰다. 여기에는 자신의 재임기간(2021년 9월까지)과 10월 참의원 선거를 고려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올림픽 개최를 총리 재임기간 내에 하고 이를 바탕으로 10월 참의원 선거의 승리까지 바랐던 것. 결국에는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사임했지만.[17] 도쿄에 코로나19 긴급사태가 선언됐고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실시되는 점 등을 고려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아베측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국에서 참석하는 귀빈들에게 해당되지, 자국의 전직 정부수반에 적용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18] 다른 나라 대통령 혹은 총리 원수들이 코로나 19로 무관중체제로 전환해서 불참한것 처럼 이해한 사람들이 있기한데 사실 이 영향이 크다.[19] 2004 아테네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 서기철 아나운서, 2012 런던 올림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지금 프리랜서로 떠난 조우종이였고 주로 배구와 축구 중계를 했다.[20] 달과 별 문양이 있는 초록색 바탕의 위, 아래로 빨간 줄무늬가 있어야 하는데 빨간 줄무늬가 없다.[21] 사실 아프가니스탄 국기는 2004년 버전과 2013년 버전이 섞여서 쓰이다 보니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긴 하다. 실제로 대회에서도 선수들이 입장하면서 흔든 작은 국기는 2013년 버전이지만 국기를 든 기수의 큰 국기는 2004년 버전이었다.[22] 한국 방송 3사도 똑같이 대만이라고 표기했다.[23] 일본 정부가 아이누를 선주 원주민으로서 공식 인정한 것은 2019년의 일이인데, 이 당시에도 쿠릴 열도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누를 원주민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존재했다[24] 당장 아이누어는 소멸 고비 상태에 처한 언어이고 일본어에 류큐어/오키나와어와 영어가 섞여 만들어진 방언인 우치나 야마토구치가 아닌 순수 류큐어오키나와어는 1940년대에 아예 사용 금지를 당했던데다가 아이누어보다도 보호하자는 인식도 적어서 아예 소멸 위기 상태에 처해있다.[25] 구 제국대학의 일원으로서 일본 최상위 명문 국립대학 중 하나이자 아이누의 본거지와 가까운 홋카이도대학에는 아이누 역사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도 설치되어 있다.[26] 아사히신문의 뉴스 자료 교차 검증. 해당 기사 내용에 따르면 경보 대회장 말고도 원래 개막식에서도 아이누족들의 민족 무용을 선보이기로 했으나,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취소됨에 따라 실망한 아이누족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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