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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8-01 02:49:18

후흑

1. 개요2. 리쭝우의 후흑학3. 전근대 중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후흑의 사례

1. 개요

작가는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감출 것을 감추며 냉정할 때에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공공을 위한 '후흑'은 나라를 구하는 난세의 통치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 김선자의 중국 신화 이야기 1권, 351~352쪽
후흑을 이용해 사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비루해진다. 후흑을 이용해 공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고매해진다
- 후흑 작가 리쭝우

후흑(厚黑). '후(厚)'는 얼굴이 두껍다(面厚)는 것이고, '흑(黑)'은 속이 시커멓다(心黑)는 말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을 줄여 후흑이라고 흔히 쓴다. 하라구로와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주로 정치적 의미로 쓰이고 사악하다기보다는 역사적인 영웅이나 간웅 같은 뉘앙스가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1] 사전적인 의미는 관리의 파렴치한 작태(아첨·사기 등), 윗사람을 속이고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는 태도.

한국에서는 '노회하다'는 말이 있으므로 '후흑'이란 단어가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으며, 중국에서도 별로 범용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후흑학"이라는 책에서만 나오는 말이다.(…) 심지어 근래에 중국 대중문화에서 삼국지 비평으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리중텐의 삼국지 강의 같은 곳에서도 후흑학 따위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2. 리쭝우의 후흑학

청나라 말, 중국의 사회개혁가 리쭝우(李宗吾)가 1911년 쓰촨성 청두(成都)의 공론일보에 실은 글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발표된 직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17년에는 청두의 국민공보에서 후흑학(厚黑學, 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되기에 이른다. 이내 높으신 분의 사정에 의해 금서조치를 당하게 되나, 당시 청년이던 마오쩌둥에게도 이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리쭝우가 1938년 2월에 쓴 책의 서문에서는 후흑학의 발전 양상을 서술하고 있는데, 1기는 상고시대로 후흑이 없이 공맹의 인의가 내세워지던 때, 2기는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후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때, 3기는 후흑이 널리 퍼지고 기술의 정교함과 발달이 극에 달한 때라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후흑에도 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낯짝이 성벽과 같이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다.
2단계. 낮짝이 두꺼우면서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빛난다.
3단계. 낯짝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색깔이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를 시장에 비유하면 처음 상인들이 아무리 진품을 팔더라도 갑자기 가짜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 큰돈을 버는 것과 같다. 모든 상인이 이를 다투어 따라하면 시장은 온통 가짜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 홀로 진품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면 오히려 큰 돈을 벌게 된다.
리쭝우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후흑을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공자, 맹자와 삼국지의 영웅들을 면후심흑(面厚心黑)의 대가라고 꼬집었다. 감히 공자님을 까다니
일반적인 경우에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은 합심하여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파하지 않는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같은 이익을 바탕으로 한 배를 탔다고 해도 언젠가는 배에서 내려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면서 경계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 자신과 한 배를 탔던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힐 수도 있다.
- 후흑 제 7장 '거리의 미학,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라'의 45절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헨리 존 템플이 말한 것으로 유명한 "우리에겐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다. 오로지 이익 뿐이다."를 말하기도 했다.#

3. 전근대 중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후흑의 사례



[1] 중국이나 대만에서 하라구로는 한자표기를 그대로 읽어 복흑(腹黑)이라고 한다[2] 다만 초한지와 사기에 기록된 한신의 고사 때문에 한신이 토사구팽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명장일 뿐 정치적으론 미숙아였던 한신은 이전부터 한고제에게 마치 죽여달라는듯 온갖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한신 항목 참조. 그나마 이중에선 혐의 없이 억울하게 죽은 팽월이 토사구팽에 가깝다.[3] 정사에선 '천하' 대신 '다른 사람'이었는데 연의에서 약간 각색된 것이다.[4] 참고로 반대 버전인 "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희생시키지는 않으리라(不以天下奉一人)"도 있다. 청나라 옹정제가 한 말로 유명한 편이나, 원전은 당나라 장온고가 지은 대보잠이라고 한다. 옹정제는 이 글귀를 대전 양 기둥에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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