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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蜀 | |||
934년 ~ 965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후당 | 북송 | ||
별칭 | 후촉(後蜀), 맹촉(孟蜀) | ||
수도 | 성도(成都) | ||
위치 | 중국 서남부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국성 | 맹(孟) | ||
국가원수 | 황제 | ||
주요 군주 | 고조 명효제 맹지상 공효왕 맹창 | ||
언어 | 중세 중국어 | ||
문자 | 한자 | ||
종족 | 한족 | ||
통화 | 통보(通寶) | ||
현재 국가 | 중국 |
951년경 오대십국 후반기의 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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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나라로, 10국 중 하나이다.후당의 절도사 맹지상이 건국한 나라이다. 장종 사후 후당의 혼란을 틈타 독립하여 나라를 건국했다.
2. 문학
후촉 시대에는 화조화(花鳥畵)에 능했던 화가 황전(黃筌), 시인 모문석(毛文錫), 구양형(歐陽炯) 등이 유명하였다.특히 당말부터 각지에서 읊어지던 시와 사(詞)을 모아 편찬한 시집 <화간집(花間集)>이 발간되었는데, 구양형이 서문을 썼다고 한다.
3. 멸망
구양형의 경우엔 승상까지 역임했는데, 이런 문치주의적인 면이 후촉의 멸망을 불러왔다고 여겨진다.후촉은 북송에 의해 멸망했다[1] 당시 후촉은 무려 14만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실전 경험도 없고, 장군들의 실력도 부족해서 송나라 강병들에게 그대로 무너졌다.[2]
경제력이 강했다는 이유로 병합 이후 송나라가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착취를 했고, 이것이 대대적인 농민 봉기인 왕소파, 이순의 봉기(王小波、李順起義; 993년 ~ 995년)[3]의 원인이 되었다.
4. 후촉의 황제
대수 | 묘호 | 시호 | 성명 | 연호 | 재위 기간 | 능호 |
- | 태조(太祖) | 효원황제(孝元皇帝) | 맹일(孟佚) | - | - | - |
- | 세조(世祖) | 효경황제(孝景皇帝) | 맹찰(孟察) | - | - | - |
- | 현종(顯宗) | 효무황제(孝武皇帝) | 맹도(孟道) | - | - | - |
1대 | 고조(高祖) | 문무성덕영렬명효황제(文武聖德英烈明孝皇帝) | 맹지상(孟知祥) | 명덕(明德) 934년 | 934년 | 화릉(和陵) |
2대 | - | 초공효왕(楚恭孝王) | 맹창(孟昶) 맹인찬(孟仁贊) | 명덕(明德) 934년 ~ 937년 광정(廣政) 938년 ~ 965년 | 934년 ~ 965년 | - |
5. 여담
- 후촉의 2대이자 마지막 황제인 맹창의 황후였던 화예부인 서씨는 미모와 시문을 겸비한 당대의 절세가인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촉이 망한 후 송태조의 후궁으로 개봉에 끌려왔음에도 수절하다 조광윤을 상대로 망국의 한을 풀 복수를 도모했으나 실패하고 자결했다는 야사가 있다.
- 이외에도 다른 야사가 전한다. 미모가 워낙 특출나서 조광의가 내심 탐냈으나 형에게 뺏긴 것에 앙심을 품었고 형이 위독하다고 화예부인을 희롱하자 형이 진상을 알고는 옥도끼로 바닥을 내리치며 치를 떨어 촉영부성 사건으로 알려졌다는 야사가 있다.
- 촉을 정복하기 1년 전 사별한 조광윤의 부인인 효명황후 왕씨와 화예부인이 도플갱어 수준으로 똑같이 닮아서 조광윤이 특히 애틋하게 여겼으나 화예부인마저 자결하는 바람에 더욱 상심하여 건강을 해쳤다는 야사가 있다.(세번째 야사)
- 조광윤과 조광의 형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중국 드라마 <대송전기지조광윤>에서는 도플갱어설을 채택하여 한 배우가 1인 2역을 연기하는데, 광의와 신하들은 탄식을 금치 못하며 광윤 역시 착잡한 심정을 지우지 못하여 개봉부에 끌려와서도 거세게 저항하는 화예부인에게 모질게 굴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화예부인은 광윤이 명군임을 깨닫고 그에게 마음을 열면서도 황제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옛 황후를 그리워하는 마음임을 알았기에 결국 칼을 빼어들고 자결을 택하는데, 자결을 막지 못한 광윤은 황후를 다시 잃은듯 서럽게 울며 건강을 더욱 해친다.
[1] 전, 후촉 모두 2대만에 멸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참고로 유비의 촉한도, 성촉, 명하 모두 2대만에 멸망했다.)[2] 반면에 초기 송나라는 오대십국을 통일한 병사들이 건재해서 군사력이 강력했다.[3] 중국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