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홍창화 응원단장의 경력을 정리한 문서.1.1. 2005년
대학 시절 응원단장을 거쳐 꿈에 그리던 프로 스포츠 팀의 정규 응원단장 데뷔 첫 해였다.시작은 처음에는 프로농구팀들부터 맡게 되었다.
맡게 된 팀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 구리 금호생명 팰컨스.
1.2. 2006년~2007년 (한화 이글스 1기)
2006년부터 1999년 창단 첫 코리안시리즈 우승과 함께 절친 선배의 영향을 받으면서 팬이 된 한화 이글스의 응원단장을 맡게 되면서 이글스와의 첫 응원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데뷔 첫 해부터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를 응원하였다.이외 종목으로도 팀이 늘어났는데, SK 나이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가 있다.
여담으로 울산 모비스에서는 창단 첫 통합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서울 SK에서는 2007-2008 시즌 첫 시작이었다.
1.3. 2008년 (SK 와이번스)
2008년에는 소속사의 문제로 인해 잠시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했다. 당시 본인은 소속사 관련 문제라 언급하지 않고, 학업에 좀 더 힘을 싣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동한 것이라 언급했었다.[1] 이 시절 응원단장은 SK 와이번스의 박홍구 응원단장이 맞게 되면서 사실상 트레이드를 당했다. 하지만 본인의 뜻으로 한 게 아닌지라 팀에 애정이 없어보였다는 증언과 여러 번 한화 경기를 직관하러 갔다는 등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지만 이 시기 SK 레전드 중 하나인 박재상 선수의 응원가를 만드는가 하면, 투-쓰리 풀카운트 함성과 함께 다 같이 악! 응원도 만드는 등 업적도 있다.
사실 SK 팬덤 사이에서 후임인 박홍구 응원단장의 평이 좋아 묻히는 것도 많은 편이다.
허나 위에 써져있듯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는 평판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와는 별개로 이 시기에 팀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묘하게도 본인의 현재 유일한 야구 우승경력이 되었다. 상술했 듯이 한국시리즈 응원은 2006년에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응원을 한 적이 있어서 이 시기가 처음이 아니다.
1.4. 2009~2011년(한화 이글스 2기)
2009년에는 2년만에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였다.복귀 후 첫 경기 때, '다시는 이글스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관중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 시절 라이벌로는 현역 최고령인 김주일을 포함해서 롯데의 부산갈매기인 조지훈만 아니라 영원한 LG맨인 강병욱이 있었다.
하지만, 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자신의 응원경력 사상 첫 포스트 시즌에 탈락하더니 2009년에는 첫 꼴찌를 당했으며 2010년에는 김태균의 일본리그 진출 포함 전력약화와 함께 또 꼴찌였으며 2011년에는 한대화 감독의 야왕 신드롬이 있었지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1.5. 2012년
2012년 6월 29일 KIA와 벌인 경기 중 홍창화.
2012 시즌 팀의 4강 진출을 기원하며 초사이어인 마냥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한화 이글스가 4강에 들지 못하면 결혼을 안 하겠다는 선언을 해 버렸다. 하지만 알다시피 한화의 2012 시즌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심지어 겨울에도 그는 끝없이 고통받고 있다. 2012/2012~2013시즌 이 사람이 응원단장을 맡은 팀의 성적은,
야구 한화 이글스 - 2012시즌 53승 3무 77패. 8팀 중 8위
배구 수원 KEPCO 빅스톰 - 2012-2013시즌 2승 28패 6팀 중 6위
여자농구 구리 KDB생명 위너스 - 2012-2013시즌 13승 22패 6팀 중 6위
다만 한 매체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여자배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6팀 중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며 극한직업이 아님을 밝혔다.
1.6. 2013년
2013시즌에도 홍창화의 고통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4월 10일 한화가 시원하게 개막 9연패를 찍자, 10연패를 찍으면 삭발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4월 11일 한화의 개막 10연패가 확정되었다.4월 12일 홈경기에서 원래 삭발할 계획이었으나, 구단측에서 팬들이 동요한다는 이유로 삭발을 만류하여 삭발은 하지 못했고 대신 한쪽 머리를 밀고 승리를 기원하는 V자를 새겨 넣었다. 이 머리를 한 4월 16일 경기에서 한화는 그토록 염원하던 첫 승을 이루었다.
2013년 6월 7일 문학 야구장에서 김혁민이 공사사를 당하고 8실점한 팀을 바라보고 있다.
9월 13일에는 2014년 이글스 우승을 기원하며 반대쪽 머리까지 밀고 V자를 새겨넣었다.
사실 2012 겨울 시즌도 그렇고 응원단장을 맡았던 팀들의 성적이 전부 꼴찌를 기록하면서 이쯤 되면 성적이 부진한 문제가 응원단장 탓이 아니냐는 농담조의 말이 나오기도 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화 이글스의 경우 4, 5월 시즌 초반부터 일찌감치 꼴찌 굳히기에 들어가면서도 "최강한화"를 외치는 육성응원이라던지,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라는 가사의 응원가를 꿋꿋이 밀고나갔던 문제로 자팀팬들에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국내야구 갤러리 등지에서 해당 응원들이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탓. 특히 육성응원의 경우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2007년부터 시작한 한화만의 전매특허 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응원과는 별개로 팀 성적이 성적이다보니 구호를 수정하거나 아예 없애버렸다가 성적이 올라갈 경우 다시 부활시키길 원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이와 별개로 성적과 관계없이 야구장을 많이 찾았던 팬들 중에 계속해서 하기를 바라던 사람들도 역시 많았던 상황이었다.[2] 이래저래 치이는 문제가 많다보니 응원의 유지, 변경 문제를 두고 아마 고심이 대단했을 것이다.[3]
한화가 이기는 경기에 한하여 색소폰 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상, 기사
2013-14 시즌 역시 V-리그 팀인 수원을 연고로 한 두 팀의 응원을 맡고 있다. 다행히 2013-14 시즌 두 팀의 행보는 홍창화의 여름 때보다는 나아보였다. 한국전력은 유력한 신인왕 후보인 전광인의 전 시즌 꼴찌에서 벗어나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으로 내고 있고, 현대건설도 양효진의 괴물같은 활약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두 팀 다 꼴찌를 안한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 한국전력의 경우 2011-12 시즌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의 최대 피해팀으로 팀이 어느 정도 재건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현대건설의 경우 2013-14 시즌에 1위팀을 뺀 나머지 팀들의 혼전양상이 심화되고 있어 하룻밤만 지나면 순위가 뒤바뀔지도 모르는 기기묘묘한 상황에 놓여있다. 실제로 한국전력은 안산 러시앤캐시 베스피드와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가 바닥을 확실히 깔아줘서 5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러시앤캐시에게 일격을 당하며 꼴찌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현대건설은 3위에 잠깐 올랐다가 주포 황연주와 외국인 선수의 깊은 부진으로 순식간에 꼴찌로 떨어졌다. 그나마 회복해서 4위까지도 올라가 봤으나 4라운드에서 흥국생명에게 일격을 당했고 결국 떨어진 팀 분위기를 회복하지 못하며 시즌을 5위로 마쳤다.
추가로 2013-14 시즌 응원단장 경력으로 첫 남자프로농구에 진출했다. 성적만큼은 KBL에서는 다행히 고통받고 있지 않다. 부산 kt 소닉붐에서 응원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당시 팀장이었던 강보경 치어리더 팀장 이하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했던 후배들과 함께하게 된다. 참고로, 3년전 2010-11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했는데 그 시절 주역이 강보경 치어리더 팀장과 김연정 치어리더였다. 부산 kt는 3년전 정규리그 했으나 잇다른 전력약화로 인해 고전하던 시기였다. 신인 드래프트의 실패로 전력이 약하다고 평가받았으나 송영진과 조성민의 활약과 이재도의 성장으로 만회하고도 남기 때문에 꾸준히 중상위권을 마크중이고 2013-14 시즌 2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농구 응원단장으로 첫 봄농구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여자농구 구리 KDB생명 위너스는 국가대표 라인업에 티나 톰슨까지 영입한 초호화 멤버임에도 5위로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다.
1.7. 2014년
2013년 11월, 한화가 공격적인 행보로 정근우, 이용규라는 대형 FA를 영입하고 내부FA선수 전원과 잔류계약을 맺는 등 스토브 리그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2014년 가장 행복할 사람이라는 짤방이 떠돌기도 했다.이로써 성공적인 FA 영입, 새로운 외국인 용병투수의 합류와 적극적인 신인 드래프트 참여, 전역선수들의 복귀로 전력이 작년에 비해 한층 상승하였고, 향상된 경기력과 더불어 홍창화의 근무요건도 나아지고 결혼도 할 수 있길 많은 팬들이 염원하였다. 실제로 한화는 최근 5년을 통틀어 최고의 4월 성적을 냈고 여전히 꼴찌 언저리에 어이없는 역전패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반등의 여지가 있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2,13년에는 한화의 어이없는 경기력으로 고통받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2014년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고통받고 있다. 대전구장의 3차 리모델링 작업에서 다양한 팬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취지로 내야에 큰 규모로 위치했던 응원단상이 외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조치는 그간 시끌벅적한 앰프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관중분산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되면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지만 내야 응원석을 선호했던 팬들에겐 아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응원단장의 입장에서도 반갑지만은 않은 부분으로, 외야에서는 선수들이 작게 보여서 경기상황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않고 좁은 외야 응원석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관중들로 신나는 응원을 이끌어 내는 것도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화 구단의 운영경비 절감차원에서 수도권 원정경기 중 문학구장같이 관중동원이 부족한 곳은 응원단을 더이상 파견하지 않게 되었는데, 필연적으로 회사입장에서든 개인입장에서든 파견수당이 줄어드는데 따른 고통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진 역대 최악의 참사로 비통한 분위기 속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국민적 정서를 반영한다는 의도아래 KBO에서 각 구단에게 앰프 응원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측에서 사고 당일날 저지른 병크[4]가 대대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차분한 분위기속에 육성으로만 응원을 이끄는 것이 아닌 아예 응원단상에 설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안타까운 국가적인 재난상황에 따른 것이지만, 이 참에 시끄러운 앰프를 없애고 조용한 MLB식 관전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들까지 힘이 실리면서 조만간 이루어지리라 보았던 응원단의 경기 복귀가 생각보다 더 어려워지게 된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KBO가 각 구단과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 6월 10일부터 구단 자율로 다시 응원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어쨌든 홍창화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6월 20일 금요일, 대전 LG 트윈스전을 시작으로 응원단 복귀가 확정되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66일만이다[5].
7월 22일 화요일, 대전 NC전에서 응원도중 펠릭스 피에의 홈런볼[6]을 관중과의 경합 끝에 잡아내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했다.영상
7월 27일에는 2014 안산 우리카드배 프로배구 대회서 본인에게는 6년만의, 담당 여자 배구단이 8년 만에(!) 우승하는 것[7]을 보게 된다. 근데 하필 이날이 한화 홈경기날이라 우승의 기쁨을 채 누리지도 못하고 응원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총알같이 대전으로 이동해야[8] 했는데 가자마자 2회까지 10실점하는 꼴을 보고야 말았다.
10월 경에는 원주 동부 프로미의 2014-15시즌 새로운 응원단장이 되었다는 오피셜이 떴다. 참고로 원주 동부는 2013-14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다. 이쯤되면 꼴찌팀이 운명이 아닌가 싶다. [9]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부임함에 따라, 드디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줄 알았지만...!
2014-15 겨울 시즌에서는 맡은 팀들이 모두 봄에서 늦게까지 시합을 치르게 된다.
농구는 부산 kt 소닉붐을 떠나 인기와 성적의 명가인 원주 동부 프로미로 이적하게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농구, 배구 팀들이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문제는 만약 이들 팀 중 어느 한 팀이라도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할 경우 한화의 개막전 시리즈와 겹치게 된다는건데. (특히나 현대건설과 원주 동부가 챔프전에 모두 진출하게 되면 3월 31일에 한화 홈 개막전 + 농구 챔프전 2차전 + 배구 챔프전 3차전이 동시에 열리게 된다. 평일 저녁 경기라 시간도 겹친다)
천만다행히도 남배 한전과 여배 현건 둘 다 PO에서 물먹은 터라 이런 상황까진 안 갔다.
농구는 2014-2015 시즌을 끝으로 자신의 10대 시절 고향[10]으로 안양 연고인 안양 KGC 인삼공사로 이적했다. 3년전 창단 첫 KBL 플레이오프 우승팀으로 우승경력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인삼공사는 주축 선수의 트레이드와 부상으로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는데 반전할 수 있는지는 의문부호의 상태였다.
1.8. 2015년
느닷없이 KIA 타이거즈로 옮길 거라는 루머가 돌았지만[11] 홍창화는 2월 13일 SNS를 통해 어디서 유래된 루머인지 몰라도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그리고 담당 여자농구팀이 김영주 감독을 2년만에 복귀시키면서 극한직업 탈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박신자컵 우승은 덤. 그러나 첫경기 연장전에서 말아먹고 11연패도 하더니 꼴찌.
2015시즌이 시작하고 나서 나온 응원가들은 전매특허인 강렬한 병맛을 보여주고 있다. 선수 콜인 '다함께 차차차', 오로나민C CM, 나이저 모건과 강경학 응원가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정근우와 이용규의 바뀐 응원가, 클래식 OST를 편곡한 신규 팀응원가 '사랑한다 이글스'[12]도 호평 일색이다.
그리고 아직 설레발일수 있지만 올해 한화의 마약야구를 보면 드디어 고통을 탈출할 수 있을 확률이 급증했다! 극한 직업의 바통을 김주일에 넘겼다는 의견들도 존재.[13]
8월 29일 잠실 두산전에서 경기 도중 갑자기 응원단상으로 야구공을 들고와 보여주며 오늘 경기에서 패하면 내일경기에서 머리를 야구공 모양으로 깎고 오겠다고 선언했다.
경기는 유희관의 호투로 결국 한화의 패배로 끝났다.[14] 다음날 정말 공약을 지킬지 기대가 되었는데.
8월 30일인 다음날 정말 약속을 지켰다! 과감히 눈썹까지 탈색을 해버렸는데 한화의 가을 야구를 위하여 진행했다고 한다.
결국 10월 3일 한화가 공식적으로 5강 싸움에서 탈락함에 따라 장가가는건 한해 더 미뤄야 할 상황이 되었다.
2015년이 끝나가는 와중에 담당 여자배구팀이 전반기 1위, 올해 담당 남자농구팀이 3위. 하지만 담당 여자농구팀만 꼴찌다.
여담으로 KBL 프로농구 응원단장으로 통산 5회 구단 이적이 되었다. 역대 프로농구 응원단장 중 최다이적 신기록이다. 과거 울산 모비스 피버스를 시작으로 SK 와이번스 응원단장 시절 형제 농구팀인 서울 SK 나이츠를 거쳐 6년에 남자농구 응원단장으로 복귀한 경력이 있다. 과거 김연정 치어리더의 시작이었던 부산 kt 소닉붐에서 강보경 치어리더 팀장과 1년을 함께하더니 사정상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1년을 함께했다. 그리고, 1년뒤 10대 학창시절 고향인 안양 KGC 인삼공사의 신임 응원단장이 되었다. 이후 호성적과 함께 나는 행복합니다를 안양체육관에서 부르게 된다.
1.9. 2016년
3월 21일 담당 구단 중 수원 현대건설이 10-11시즌 이후 5년만에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상대로 V리그 최초의 3경기 모두 3-0으로 이기며 우승하는 기록을 달성했다.2016년에 새로 나온 응원가들은 평이 갈린다. 라인업송의 경우 매우 고퀄리티로 뽑아냈다는 데 이견이 없고 육룡이 나르샤 OST인 무이이야와 카멜롯의 Forever을 각각 편곡한 신규 팀응원가들 역시 반응이 좋아서 응원단에서 푸쉬를 많이 받고 있다. 그전까지는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모두가 즐길만한 응원가를 만들었지만 올해는 팀이 우승후보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열광적이고 강렬한 인식을 주기 위해서 강렬한 느낌의 응원가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단 무이이야를 편곡한 불꽃한화 투혼이글스여 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선수 개인별 응원가의 경우 차일목의 등장곡(오빠차), 신성현의 등장곡(별빛이 내린다) 등에서 예의 약빤 센스를 발휘하였다. 신성현 응원가도 중독성이 강해서 호평을 받는 중이다. 하주석의 새 응원가 역시 호응이 좋다. 그러나 윌린 로사리오 응원가의 경우 대놓고 떼창유도형의 응원가를 만들었으나 축 처진다는 반응이 많아 결국 갈아치웠다. 갈아치운 캐리비안의 해적 응원가는 사실상 외인 응원가 중 최강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일단 애초에 노래가 모두가 아는 노래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호평을 받는 중. 그러나 김경언과 장민석의 새 응원가는 전체적으로 호평보단 혹평이 더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아서 계속 사용하는 중.
차일목의 응원가는 시즌 초반 악평이 많았지만, 현재 미친듯한 중독성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선수 본인도 별로였지만 지금은 좋다는 의견.
그리고 한화가 또다시 최하위로 처지자 다시 불쌍함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7월 8일 기준으로 드디어 탈꼴찌는 했으니 다행이려나. 아직 9일 현재 5위 롯데와 4.0경기 차이라 희망이 있다. 그리고 20일 기준으로는 7위까지 올라가면서 가을야구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팀은 결국 588689967 이쯤 되면 그냥 결혼해야 될 듯 한데.
오죽하면 담당 구단 중 하나이자 더 약체였던[15]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마저도 10월 3일 2016 청주 코보컵 결승전에서 프로화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하면서 그냥 퉁치고 결혼하라고 할 정도.
다행히도 겨울시즌에는 자신의 10대 학창 시절 고향팀인 안양에 복귀하게 된다.
대선배인 김주일 응원단장의 후임으로 그 동안 부산 kt 소닉붐과 원주 동부 프로미를 거친 뒤 안양 KGC인삼공사의 응원단장으로 진출하면서 15-16 시즌 정규리그 4위에 4강 플레이오프로 위안을 삼아주었다. 2년간 하위권인걸 보면 선전한 성적이다.
1.10. 2017년
담당 농구, 배구 구단 중 남자팀과는 달리 여자팀은 성적에서 모두 멸망했다.하지만, 농구 응원단장으로서 챔피언 경력을 채우게 된다. 자신의 10대 학창 시절 고향이었던 안양 KGC인삼공사 응원단장으로 부임한지 2년만에 16-17 시즌 KBL 통합우승[16]을 거두면서 우승팀 하나를 추가하셨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인 한화 이글스는 공교롭게도 데뷔년도는 다르지만 사실상 응원동기와 다름이 없는 김연정 치어리더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9위로 떨어지면서 올해도 결혼을 못 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김성근 감독이 잘려서 반등의 여지는 있다. 영원히 고통받는 홍창화. 하지만 전 감독이 경질된 이후에도 사실상 올해도 물건너간 상황이다. 결국 8위로 시즌을 끝냈다.
담당 여자 농구팀은 2017-18시즌에도 3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비밀번호 등재가 확정이 된다. 그나마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그나마 기대를 걸어 볼 수 있긴 하지만 담당 여자 배구팀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막장 팀 운영에 팬 이탈과 구설수까지 휘말리며 답이 없는 수준였는데 뚜껑을 열고보니 초반 시즌 4연승 이었지만 3라에서 급격히 추락하며 3위에 그쳤다. 밑에 세팀이 못해서지 현대건설이 잘한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최규순 게이트에 여러 구단이 연루되면서 이들에 의한 최대 피해자 중 한명으로 떠올랐다.
2017년 들어와서 약간 불만을 가지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유의 뽕삘이 너무 심하다는 것과 몇몇 응원가의 경우 입에 안붙고 부르기 어렵다는 점. 예를 들자면 방출된 김원석의 응원가[17]라든지, 양성우의 응원가[18]가 대표적. 물론 클린 응원 캠페인 때문에 응원가 만드는 데에 제약이 있음을 팬들도 잘 알고 있지만, 가능한 중독성이 있고 쉬운 응원가를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 많다.
1.11. 2018년
대부분의 다른 구단이 그렇듯 저작권으로 인해 많은 수의 응원가가 바뀌었는데, 뽕삘이 심하고 웅장한맛이 없던 작년 응원가에 비해 웅장한 응원가가 늘어났다. 듣기 다만 정근우, 김태균 응원가는 웅장하긴 하지만 밋밋하다는 평가와 백창수 응원가는 톤이 너무 높아 남자가 부르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일단 4월 중순 현재 팀의 분위기가 아주 좋다. 이대로만 시즌끝까지 가준다면 이번시즌에는 홍창화에 대한 한화팬들의 숙원사업을 드디어 이를 수 있을 듯 하다.
2018년 4월 20일자로 1,000경기 출장에 돌파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일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그리고 이 날 한화는 넥센에게 4차전에서 3-1로 패하며 시즌을 마쳤다.
5월 23일까지 한화는 1위에 2경기차 뒤진 단독 2위 유지. 이로써 숙원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져 있는 상태이다.
2018시즌부터 나는 행복합니다 재생 빈도가 늘어났다. 예전에는 경기에서 이길 경우에만 가끔 틀었다면, 지금은 적시타만 나와도 틀어댄다. 이유는 모두가 알 것 같다.
9월 16일 시점으로 4위와 3.5경기차 3위를 유지 중이다. 2015년에 달성했던 68승도 이미 달성한 상황. 결혼이 매우 유력해보인다.
그리고 드디어 9월 28일 그토록 이뤄지지 못했던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다!!! 한화가 10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홍창화 본인도 인스타그램에서 '이제 갈 수 있다'라는 소감을 나타냈다.
10월 3일, 드디어 가을 점퍼를 입고 응원을 주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시련이 시작됐다. 담당 여자농구팀은 간신히 네이밍 스폰서를 구해서 2018-19시즌에 들어갔다. 그래도 이건 뭐 그렇다쳐도 문제는 배구인데, 담당 여자배구팀과 남자배구팀이 쌍으로 단 1승도 못하고 승점 자판기 신세가 되어버린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농구팀 안양 KGC인삼공사가 제 구실을 해주고 있다.
11월 5일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수원 OK저축은행 읏샷의 홈 개막경기에서 부천 KEB하나은행에게 89:85로 승리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11월 12일 현재 담당 배구팀이 1승은 커녕 도합 13연패에 빠졌고 담당 여자배구팀 11월 10일 경기에 패하며 팀 최다 연패 타이기록인 13연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11월 14일 결국 담당 여자배구팀은 1718시즌 정규시즌 6연패 포함 14연패에 빠지며 팀 연패 최다 신기록을 경신하고 말았다.[19] 담당 여자농구팀마저 1승 이후 연패중이지만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신한은행에 70:67 3점차로 승리하며 2승 3패로 1라운드를 마쳤다.
11월 24일 담당 여자배구팀은 17-18시즌 포함 15연패를 당했고, 담당 남자배구팀은 11연패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12연패까지 겹치며 2라운드 전패마저 달성했다.
12월 5일, 드디어 담당 여자배구팀이 첫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틀 뒤 담당 남자배구팀은 또 참패하며 개막 14연패 거기에 끝나지 않고 16연패까지 당했다
그리고 12월 18일, 드디어 담당 남자배구팀도 첫 승을 거두면서 응원팀 모두 최소 1승씩을 확보했다.
1.12. 2019년
응원가 평가는 반반. 김태균 응원가, 공통 안타송은 평가가 좋으나 나머지 응원가들은 모두 반응이 싸늘하다.[20] 특히 야심차게 준비한 듯한 사랑을 했다 개사곡은 매우 좋지 못하다. 또한 호응이 좋은 몇몇 응원가들을[21] 거르고 위의 평가가 좋지 않은 응원가들만 주야장천 틀어대 피드백 문제도 제기 되고있다.1월부터 담당 남녀배구팀 모두 봄배구 탈락했다.
2월에는 담당 여자농구팀도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다.
3월에는 수원의 남매 배구단인 한국전력, 현대건설 모두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수원에서의 배구 시즌을 모두 마치고 다시 한화 이글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참고로 한화에서의 개막전이 원정경기다. 그나마 마지막 보루인 인삼공사까지 탈락하고, 한화는 작년의 플루크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며 진작에 리그 최하위로 떨어져서 모든 응원팀이 사이좋게 망했다. 그러나 한화는 롯데의 더한 삽질로 인해 결국 탈꼴칰에 성공하며 9위로 시즌을 끝냈다.
2019-2020 시즌에는 WKBL에서 응원팀으로 매각으로 인해 이사하게 된다. 위탁운영된 수원 OK저축은행 읏샷이 해체되면서 서한국 응원단장의 후임으로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로 이적하게 된다. KIA 타이거즈 팬들은 서한국의 실직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한화 이글스 팬들은 여농에서라도 응원전을 이어가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동안 답이 없었던 구리 KDB생명 위너스-수원 OK저축은행 읏샷에서 여자농구에서 인기이자 명가인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서 호성적을 기대하게 되었다.
수원 OK저축은행 읏샷의 자리는 신생팀으로 창단된 부산 경남의 새 여농팀인 부산 BNK 썸이 되었다. BNK는 전신 팀들의 역사를 인수인계가 아닌 신생팀으로 과거 흑역사는 추억으로 그치게 된다. 자신이 야구에서 1년 응원했던 SK 와이번스의 정영석 응원단장이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자리 또한 부산과의 이동거리로 인해 또 후임으로 부산 출신의 비주류인 신대권 응원단장이 맡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사실상 응원단장으로 부산 남녀농구 통합 초대 치어리더가 된 김연정 치어리더가 응원전을 이끌게 된다. 농구 팬들은 부산 사직체육관에서의 응원은 과거 응원단장들이 있지만 사실상 김연정 치어리더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김연정 치어리더 관련은 그녀의 치어리더 활동과 경력을 보자.
1.13. 2020년
남자배구 한 팀(한국전력) 빼고 여자배구(현대건설), 남자농구는 상위권이다. 여자농구도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배구 잡지 더 스파이크 2월호에서 홍창화 응원단장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2020시즌에도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을 맡으며 올해 김태균, 송광민, 정진호 등의 응원가가 나온다고 밝혔다.하지만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해 육성응원이 금지되고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면서 수도권 특히 서울 잠실을 찾은 팬들이 박수 응원이 한 영상이 뜨면서 그리움을 표시했다.
그 와중에 무관중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KOVO컵에서 남자배구팀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이 8월 29일 우승을 차지하면서 안양 KGC인삼공사의 통합우승 이후로 우승팀을 하나 추가하셨다. 박철우의 합류로 팀이 어떻게 달라질지 정규시즌에서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이어 창화위키를 편 채 신영석과 인터뷰했다.
그리고 한화는 그대로 꼴찌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게다가 담당 여자배구팀은 11월 22일 6연패에 빠졌다. 11월 25일 기준 5위. 다행히 2라운드 인삼공사전을 크린시트 내면서 7연패는 면했다. 그러나 도로공사와 백투백 경기 모두 패하며 꼴찌로 내려 앉았다. 하필이면 도로공사가 현대건설과 백투백 경기 직전 기업은행에 3:2 리버스 스윕으로 역전승 하면서.
1.14. 2021년
홍창화 드디어 장가가다. 한화팬들의 오랜 숙원 사업중 하나인 홍창화가 1월 9일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사가 올라왔다.배구는 남자팀, 여자팀 모두 플레이오프조차 올라가지 못했는데 담당 여자배구팀은 6라운드 KGC인삼공사전 4세트[22]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고 13년만에 꼴찌 수모를 당했고 담당 남자배구팀은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카드에 0:3으로 완패하며 5위에 그쳤다.
하지만, 담당 응원 남자농구팀인 안양 KGC인삼공사는 우승후보라는 평과 반대로 3위가 어려운 상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KBL 최초로 4강 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 10경기 전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달성하며 V3의 영광을 함께했다.
한편 2021시즌 K리그2의 대전 하나 시티즌 응원단장이 되면서 처음으로 축구 응원을 맡게 되었으며, 대전 연고 두 스포츠팀의 응원단장이 되었다.
축구 역시 유니폼 등번호는 信로 마킹되어 있으며, 대전 서포터즈인 대전러버스와도 잘 협의해 대전 박수나 북을 치는 응원 기존의 응원들을 최대한 같이 하고 맞춰가고 화합하면서 잘 응원하고 있으며, 클래퍼를 활용한 박수 응원을 유도하여 경기장에서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대전을 응원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등 열성적으로 응원에 임하며 대전 하나 시티즌 팬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2021년 사실상 코로나 19로 서포터즈들이나 관중들이 박수 이외의 기존의 육성 응원가를 전혀 부르지 못하게 되면서 홍창화가 이런 관중들을 대신해 육성 응원을 대신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한편 여름들어 코로나 19의 악화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강화로 시즌 중반 프로 야구가 잠정 중단되고 대전 하나 시티즌의 홈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면서 아프리카 TV나 스팟 등을 활용해 팬들과 비대면으로 소통하기도 했다.
1.15. 2022년
2022년에도 대전 하나 시티즌의 응원단장을 맡았다.5월 6일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일주일 간 야구와 축구 응원을 맡지 못했고, 5월 13일 대전에서 펼쳐진 롯데전에 복귀했다. 그 사이 응원단장으로 후배인 김연정 치어리더 팀장이 대신 맡을 정도로 공백이 컸다. 김연정 치어리더 또한 이날 잠실 원정 응원이었는데 그날 응원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속상할 정도였다.
2022년 한화 이글스는 역시나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2020년 시민구단에서 다시 기업구단으로 전환된 이후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대전 하나 시티즌이 대전시에서 하나금융에 인수된 3년만에 K리그1 즉 1부리그 승격에 성공하면서 어느정도 위안을 줬다. 하지만, 그날 배구 일정으로 인해 응원전을 하지 못하면서 본인은 아쉬워했다.
1.16. 2023년
2023년 2월 26일, K리그1으로 승격한 축구특별시라 불리는 대전 하나 시티즌의 홈 개막전에서 역사적인 응원전을 진행했다. 대전러버스 서포터즈와의 응원조화에도 성공하며 콜리더에도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채널에는 한화 이글스 티셔츠를 입고 응원전을 진행했다.2023 시즌 한화 이글스의 신 응원가로 박정현, 오그레디, 채은성의 선수 응원가를 공개했다. 세 응원가 모두 평가가 꽤나 좋다.
여전히 한화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대신 대전 하나 시티즌이 승격하자 상위권에 위치하면서 고통을 메꿔주고있다.
4월 기준, 프로응원단장 최초 인스타그램 블루뱃지가 달렸다.
5월 7일 안양 KGC인삼공사의 응원단장으로 두번째 통합우승을 경험했다. 당일 한화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안양으로 올라와 우승의 순간을 팬들과 만끽하면서 함께 영광을 나누었다.
2023년 6월 현재 대전 하나는 초반 기세보다 약간 떨어졌지만 당초 강등권을 벗어나면서 안정적으로 K리그1에 잔류하고 있고, 한화가 급격한 상승세를 타면서 8연승을 질주하는 등 모처럼 응원을 맡은 팀이 모두 순항했다.
하지만 사실상 코로나 19가 완전히 종식되면서 야구 응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맡으면서 대전 하나 시티즌 응원을 맡는 빈도는 많이 줄어들었다.
연승기간에 오그레디를 방출하고 새로 영입한 닉 윌리엄스와 신인 문현빈 선수의 응원가를 공개했다. 그리고 후반기가 시작되고 나서 이도윤과 박상언의 응원가를 공개했다.
10월 13일 인스타그램에 득남 소식을 알렸다.
드디어 한화는 천신만고 끝에 3년 연속 꼴찌에서 가까스로 탈꼴찌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선수를 계속 판 인삼공사에서 팀명을 바꾼 정관장은 7연패를 넘어 무려 10연패를 당하면서 9위로 추락하더니 디펜딩 챔피언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당했으며 신한은행 에스버드마저 꼴찌로 추락하며 또 최하위권으로 떨어지더니 5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탈락과 함께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1.17. 2024년
3월 12일 KIA 타이거즈와 시범경기에서 박준호를 대신하여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다.대전 하나 시티즌의 응원단에는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대전 하나 시티즌 구단도 끝내 응원단장 없이 응원단을 구성하며 윈퀸즈 치어리더로만 응원을 대신하게 된다.[23][24]
정관장 레드부스터스와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끝내 모두 플레이오프에 탈락했다.
대신 류현진 선수가 복귀하게 된 만큼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시즌 초에 안치홍, 요나단 페라자, 최인호의 응원가를 공개했는데 평가가 꽤나 좋다. 안치홍은 이전에 타팀에서 쓰던 응원가들이 하나같이 레전드로 평가받은 탓에 부담이 있을법 했는데도 잘 뽑아냈고, 페라자는 오선진의 옛 응원가를 가져왔으며, 최인호는 바로 그 Epic Sax Guy 밈으로 유명한 노래로 응원가를 기깔나게 뽑았다.
한편 4월 19~21일 진행된 삼성과의 3연전에서 지속적으로 상대 응원 도중에 끼어들고, 한화의 공격 도중 타자를 응원할 생각은 안 하고 상대 투수의 제구가 흔들린다는 등 조롱성 멘트를 날리며 비판을 받았다.
이와 별개로 한화는 4월 4일까지 순항하며 진짜로 행복응원을 할 줄 알았으나, 3주만에 무려 1등에서 8등까지 떨어지며 올해도 고통받으실 위기에 처했다....
5월 중순이 되며 한화는 꼴등 위기에 처했고, 이 와중에 황영묵의 응원가를 공개했는데, 반응이 좋았던 이성곤의 응원가를 리메이크하여 큰 호평을 받고 있다.
8월 15일, LG한테 17대 3으로 대패했던 경기에서 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야, 2층, 중앙 가리지 않고 직접 가서 응원 유도를 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
또한 6년만에 필승불패 최강한화 응원을 부활시키며 팬들에게 가을에 대한 희망과 이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는 9월 초반부터 팔치올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면서 추락하는 경기력과 함께 가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결국 2024 시즌에도 가을야구를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자배구에서 24-25시즌부터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응원단장을 맡았다. 과거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떠난지 4년만에 여자배구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정관장 스포츠단 남매들을 모두 응원하게 됬다.
[1] 이 언급이 완전히 틀린 말이거나 억지로 꺼낸 표면적인 이유는 아닌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인 것이, 당시 대학 졸업과 대학원 석사과정 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2] 한번은 목동구장에서 8회에 육성응원 하는 것을 잊고 그냥 넘어간 적이 있는데 왜 안하냐고 팬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3] 인터넷상의 여론도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육성응원하기 전 "오늘도 네티즌분들은 이걸로 난리치시겠죠?"라는 멘트를 매번 한다는 것도 그렇고, 페이스북같은 SNS를 열어두고 팬들과 꾸준히 소통을 하고 있는 점, 엠엘비파크에 올라가는 건의글(정현석 응원가)도 수용되는 것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디씨인사이드와 일간베스트같은 커뮤니티도 눈팅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4]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침몰하여 수백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고 이들의 생사가 불투명한 가운데 사직구장에서는 응원단 주도로 응원가 뱃놀이가 울려퍼지고 있었다.[5] 공식적으로는 6월 10일부터 응원이 재개되었으나, 광주 원정-마산 원정-휴식으로 한화는 6월 20일에야 앰프 및 응원단 응원을 재개할 수 있었다.[6] 그것도 무려 팀 통산 3200호 홈런볼이다!(KBO에선 세 번째 기록)[7] KOVO컵만 따지면 그렇다. V-리그도 따지면 3년만의 우승이다.[8] 이날은 여자부 경기를 1시에 먼저 했다. 배구경기는 5세트까지 가더라도 대부분 2시간 반이면 끝나기 때문에, 안산 응원을 끝내고 6시 시작인 대전으로 이동해서 또 응원단상에 설 수 있었다.[9] 그 후 홍창화가 떠난 부산 kt의 후임은 K리그 부산 아이파크 응원단장이자 롯데 자이언츠 3루 응원단장인 김광현 응원단장이 후임이 되었다. 물론 이 분이 아니다![10] 앞의 프로필을 보면 평촌고등학교로 경기 안양 연고 일반계 고등학교다. 안양 KGC의 통합우승과 함께 안양의 아들로 거듭나게 된다.[11] 내용인 즉 김주일의 KT 위즈 이직과 동시에 홍창화가 KIA로 옮긴다는 것. 김주일 응원단장이 KT로 옮기는 것은 사실이 되었다.[12] 이 노래는 연세대학교 응원단에서도 2016년부터 사용중이다. 지금껏 대학 응원단의 응원가를 프로야구팀에서 따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곡이 매우 이례적으로 잘 뽑혔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13] 담당하는 팀들이 여배, 여농, 남농, 야구 할 거 없이 하위권이며 남배마저도 우승에 실패했는데 전력누수가 더 많아 기대가 안된다.[14] 심지어 직관 불패를 기록중인 구단주 김승연이 직관을 왔는데도 졌다.[15] 프로화 이후 25연패(한전의 준프로 가입 이후 V리그 경기는 한시즌에 적어도 30경기 남짓을 한다)만 두 번을 했고 첫 봄배구였던 2011-12시즌 도중엔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며 전현직 선수 8명이 영구 제명되며 팀이 철저히 분해되기까지 했다.[16] 프로농구에서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모두 석권한 우승을 의미한다.[17] 데이브레이크의 '좋다'를 응용한 응원가이나 고음부분이 많고 가사도 많다.[18] 희재의 '쏜다'를 응용한 응원가. 가사가 너무 많고 뽕삘이 엄청 심하다.[19] 배구는 팀당 30경기 정도가 진행된다. 비율로 따져보면 야구 50 ~ 60연패랑 비슷한 정도다.[20] 얍얍얍 응원가, 정은원 응원가 등[21] 사랑한다 최강한화, 8회 승리시 라인업송 떼창 등[22] 이 경기에서 승점 3점을 가져 왔다고 해도 다음 경기가 기업은행:도로공사라 어느팀이 이겨도 승점 3점만 가져와도 자동 탈락 확정이었다. 하지만 1세트와 3세트를 내주며 3세트 종료와 함께 이겨도 3:2라 사실상 탈락 이었고 5세트마저 패하며 탈락을 확인사살당했다.[23] 3월 16일 한화 이글스의 부산 사직 원정 시범경기가 있었으나 비공식이었으며 2024 시즌 대전 홈 개막전이었던 강원 FC전에 보이지 않았다. 이날 본인은 학창시절 고향인 안양에 있었다. 안양 정관장의 안양 홈 2연전에서 응원을 진행했다.[24] 서술한 바와 같이 2023년 들어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없어지면서 야구 응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맡으면서 대전 하나 시티즌 응원을 맡는 빈도는 많이 줄어들었고 이에 23시즌 중반기부터 대전은 응원단장 없이 치어리더들로만 응원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