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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말레이시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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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2.2. 20세기2.3. 21세기
3. 문화 교류4. 대사관5. 관련 문서

1. 개요

호주말레이시아의 외교 관계. 두 나라 모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양국 모두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가 양국의 공용어이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호주에도 말레이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유학생들도 호주로 오는 경우가 많다.

호주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오세아니아 국가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말레이시아 항공이 호주 운행을 자주 할정도로 가까운 국가다. 그리고 전략적 파트너 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말레이시아와 사이가 안 좋은 이웃국가인 인도네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호주를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한다. 그리고 더 사이가 좋은 이유는 두 나라 모두 영연방 소속 국가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5개국 방위협정에 따른 동맹국이기에 연합훈련도 하고 있다. 다만 호주가 아세안에 가입하려고 하자 말레이시아측이 인도네시아와 함께 반대하기도 했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호주와 말레이시아는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공유한다. 영국은 호주를 영국 본토의 죄수를 수용하는 장소로 삼았다면, 말레이시아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죄수를 수용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연유에서 호주는 주로 영국 백인들이 이민하게 되었다면, 말레이시아에는 타밀족 등 인도 제국 출신 이민자들이 이민 정착하게 되었다.

영국 식민당국은 호주 원주민들을 학대하였던 것과 반대로 자국 식민지 내 말레이인들은 식민지 내 신민으로의 대우는 해주었는데, 그 이유는 말레이시아 지역 식민지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있어서 현지 소왕국 술탄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호주 원주민들이 호주 인구에서 약 2~3% 정도를 차지하는데 비해 말레이시아의 경우 말레이인들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영국은 식민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말레이시아 주석 광산을 운영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청나라에서 쿨리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켰다. 중국인 쿨리들은 거의 다 남성이었고, 말레이시아에 온 쿨리 상당수는 현지 말레이인 여성과 결혼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이런 중국-말레이 혼혈 가정들을 바바 뇨냐라고 부른다. 온대기후, 지중해성 기후에 해당하는 지역이 많았던 호주와 다르게 열대기후에 해당하는 말레이시아에서 정착할 백인 입식자들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2] 같은 이유로 말레이시아의 고무나무 농장에는 남인도 타밀족들이 투입되었다.

호주 역시 1850년대 골드러시 당시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으면서 일부 중국인 노무자들이 유입되었으나, 호주 백인들은 여기에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여러차례 인종 폭동이 발생했다. 당시 호주 백인들이 중국인 유입에 유달리 신경질적이었던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골드러시에 참여하던 백인들 사이에서 중국인들이 자신들 대신 금광을 찾아서 대박이 나면 약올라서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만연하였고, 중국인 남성 이민자만 많고 여성 이민자가 없다는 점[3] 역시 문제로 지적되었다. 당시는 인종주의가 당연시되던 시대였고, 유색인종 여성이 기독교도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엄청난 스캔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호주인들은 아시아계 이민자 유입 문제로 영국 식민 당국과 갈등하고, 결국 더 이상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유입을 용납할 수 없다는 백호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1901년 1월 1일부로 독립하게 되었다.

호주가 말레이시아보다 더 빨리 독립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한 때 그냥 특이한 식민지 정도로 취급되던 호주는 고기를 냉동하여 철도와 선박을 통해 운송하는 인프라가 갖추어지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밀 같은 곡물만 수출하던 호주는 냉동선을 갖추게 된 이후 양고기와 소고기를 냉동하여 영국에 수출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백인 농부들은 새로 농장을 개척하기 위해 꾸준히 호주로 유입되었고, 호주가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호주인들 사이에서는 독립해도 문제가 없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2.2. 20세기

호주는 백호주의 정책 시행 이후 유럽인 이민을 주로 받게 되었다. 호주의 해안 지대 중에는 유럽과 기후조건이 비슷한 지역이 많았기 때문에 호주로 이민한 백인들은 유럽식 라이프스타일을 호주로 그대로 옮겨왔다. 다른 한편으로 열대 지역인 말레이시아에 이주해 온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은 대개 중국 화남 지방 혹은 남인도 타밀나두 같은 같은 아열대, 열대 지역 출신이 많았고 이들 역시 고향의 문화를 그대로 말레이시아에 이식하였다. 같은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했던 호주와 말레이시아는 기후 조건 때문에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호주군이 말레이시아 지역에 파병되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말라야 연방은 1955년부로 호주와 수교하였다. 말라야 연방과 호주 간의 외교 관계는 말레이시아와 호주 간의 외교 관계로 승계되었다. 이후 브루나이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갈라지는 과정에서, 호주는 말레이인 인구가 상당수 거주하는 코코스 제도를 자국 영토로 귀속시켰다.

양국 모두 공산권과 대립하는 자유진영에 속했기에 냉전 때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호주는 말레이시아 공산반란 때 말레이시아군에 물자와 장비를 지원했고, 1960년대 사라왁 일대에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간의 분쟁 때는 영국의 주도로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했다.

1971년 양국은 영국, 뉴질랜드, 싱가포르5개국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1973년부로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이 폐지되면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호주 출입국이 자유로워졌고, 양국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는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2.3. 21세기

2011년 호주는 자국 내 유입된 난민 중 800여 명을 말레이시아 측에 보내고, 대신 말레이시아 내에서 신원 확인이 완료된 난민 4천여 명을 받아들였다.#

2014년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을 출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가 격추되는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이 발생하여 말레이시아 국민 44명과 호주 국민 27명 포함 298명이 사망하였다. 해당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를 경유하여 호주로 가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2016년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총리의 부패 스캔들을 취재하던 호주 기자 두 명이 말레이시아 측에 의해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호주와 말레이시아에서도 반중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호주와 말레이시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행사에서 여성옷을 입은 트랜스젠더가 고발당하자 호주로 망명했다.#

호주에서 생산된 할랄 양고기의 주 수입국 중 하나가 말레이시아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소비되는 양고기의 71%가 호주산이라고 한다.#

3. 문화 교류

양국 모두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영국과 교류도 많은 편이며 영국의 문화가 양국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양국은 영어가 공용어이고 교류가 활발하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모어는 영어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민족끼리 대화할 때는 영어로 소통하는 편이다. 호주인들의 모국어는 호주 영어이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역시 다문화 국가이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과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말레이인과 호주 사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발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유학 행선지가 호주이다. 호주의 대학들은 말레이시아로부터 상당수의 유학생들을 받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중국계이다. 다른 한편으로 호주의 커틴 대학교, 스윈번 대학교 그리고 모내시 대학교가 말레이시아에 해외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부미푸트라 정책에 불만을 품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인구 상당수가 호주로 이민하는데,[4]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말레이시아계 호주인보다는 중국계 호주인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과 호주와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스리랑카 내전 당시 상당수의 스리랑카 타밀족들이 호주로 망명하였던 바 있는데,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 역시 대부분 타밀족이다보니 호주 내 타밀계 인구와 교류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

호주와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 무슬림들이 따로 호주에 입지를 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주 내 무슬림, 이슬람 관련 (특히 할랄 인증 관련) 산업 및 단체는 유독 말레이시아 이슬람계와 연계된 경우가 많다.

4. 대사관

말레이시아캔버라에 대사관을[5], 멜버른, 퍼스, 시드니에는 총영사관을 두고 있고 호주쿠알라룸푸르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5. 관련 문서



[1] 영어와 말레이어 모두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2] 19세기 호주에 일부 말레이인 노무자들이 들어와서 진주 채취에 종사하였는데, 이는 말레이시아 주석광산과 고무농장에 쿨리 노동력이 투입된 이유와 같았다. 백인들이 직접 진주를 따기 힘들어해서였다.[3] 1860년대 당시 중국인 이민자 4만여 명 중 여성은 12명 정도에 불과했다.[4] 말레이시아계 호주인 중 자신의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대답한 경우는 5.2%에 불과했다.[5] 정확히는 고등판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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