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호나우두/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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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나우두에 대한 비판과 반박을 담은 문서.2. 비판
호나우두의 활약을 과장하기 위해 호나우두가 뛰던 시절의 바르셀로나가 약팀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가 뛰던 바르셀로나가 약팀이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바르셀로나가 첫 챔피언스 우승을 하던 드림팀 시절에 비하면 침체기로 볼 수도 있으나, '약팀'소리까지 들을 팀은 당연히 아니었다.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에게 0:4로 대패당하고 나서 팀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라리가 4, 3위를 했고 호나우두 입단 전 3위, 호나우두 영입 후 준우승, 호나우두 이적 후 2연패의 기록을 세운 팀이 바르셀로나였다.[1] 심지어 호나우두가 이적하고 바로 다음 시즌에 라리가를 우승하고 챔스에 나갔다. 고로 당시 바르샤가 약팀이라는 소리는 영 무리수다.호나우두의 광팬들에 의해 가장 많이 비교되곤 하는 메시 뿐 아니라[2] 그의 선수 커리어 전체를 조망해 보면 펠레, 마라도나 등과 비교하기에는 약점이 많다. 먼저,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에서 세운 시즌 골 기록은 2010-11 시즌 메시와 호날두에 의해 깨졌다.
특히 호나우두의 유럽 클럽 대항전 기록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UEFA 컵위너스컵과 UEFA컵 우승을 이끌었지만, 아무래도 컵위너스컵과 UEFA컵은 챔피언스 리그에 비해 대회의 위상과 우승 난이도가 낮다. 올드팬들은 호나우두 시절에는 컵위너스컵, UEFA컵이 챔스에 맞먹었다느니 심지어 능가했다느니 하는 그야말로 동북공정 수준의 무리수를 남발하는데, 지금만큼의 넘사벽 격차가 아니었을뿐 역사를 통틀어 컵위너스컵이나 유로파리그(UEFA컵)가 챔스에 맞먹은 적은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유럽의 황제 디 스테파노의 위상은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에서 쌓은거지 컵위너스컵, UEFA컵 같은 하부 대회와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크루이프의 아약스와 베켄바워의 뮌헨이 역대급 팀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서로 차례대로 유러피언컵 3연패를 차지했기 때문이지 컵위너스컵, UEFA컵과는 일절 관련 없다. 과거 리버풀이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이유도 유러피언컵 4회 우승 때문이지 컵위너스컵, UEFA컵 4회 우승이었으면 붉은 제국의 ㅂ자도 안나왔을 것이다. 역대 클럽 축구 레전드들 중에 겨우 컵위너스컵이나 UEFA컵(유로파리그)을 주요 업적으로 삼는 선수는 별로 없다. 또한 붉은 제국에 이어 새로 군림한 밀란 제너레이션 또한 2015년의 레알의 챔스3연패 이전의 최후의 유러피언컵(챔스)2연패우승과 이후 3연속 결승진출 등으로 시대를 지배했다는 소리가 나오는거지 역시 UEFA컵(유로파리그)와 위너스컵과는 일절 관련 없다.이 시절 당시 당시 4대 리그[3]의 한 축이던 리그앙의 지배자이자 발롱도르 위너였던 장피에르 파팽은 챔스 한 번 우승해보고 싶어서 반 바스텐의 백업멤버가 될 각오까지 하고 밀란으로 이적할 정도였다. "마라도나는 UEFA컵 우승으로도 인정받잖아"라고 항변 할테지만 마라도나는 유럽 대항전 트로피가 없는 신흥강호 나폴리 데리고 했다는 특수성을 인정 받는 것이다.당장 마라도나 영입전 나폴리는 승점1점차로 강등을 겨우 피한 가난한 중소 구단 딱 그 정도였고 마-지-카 라인에서 카레카는 몰라도 조르다노가 시대에 이름을 남긴 선수인가를 질문하면 그렇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마라도나의 사례까지 긁어와서 비교하는 호나우두는 초창기 PSV시절 이후로 바르샤-인테르-레알-밀란 이렇게 빅클럽만 골라서 다녔다.[4]
호나우두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기록은 40경기 14골 9어시스트로, 경기 당 0.4골이 안 된다. 메날두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손흥민보다 챔스 골이 적다. 당연하게도 단 한 차례의 챔스 득점왕도 차지하지 못했는데, 이는 다음 세대의 아이콘인 메시와 호날두가 각각 6회와 7회 득점왕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기록임은 물론, 비슷한 클래스의 공격수 반 바스텐(경기당 0.7골)과 호마리우(경기당 0.63골)의 기록에도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다. 당장 호나우두의 소속팀이였던 당시 레알은 호나우두의 처참한 챔스 경기력에 되려 호나우두 뒤 닦아준다고 호나우두의 범위까지 커버쳐주느라 계속 리그에서 한자릿수 골을 넣으며 최악의 부진을 겪던 라울 곤잘레스에게 기대던 판국이였다.
동시대의 라이벌들과 비교해도 필리포 인자기, 다비드 트레제게, 안드리 셰브첸코, 로이 마카이,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라울 곤살레스, 티에리 앙리, 뤼트 판니스텔로이, 마르코 시모네 보다 뒤떨어지며 파트릭 클라위버르트랑 비슷하고 에르난 크레스포,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지오반니 에우베르, 히바우두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기록인데, 그나마 그들도 전부 다 최소 20골 이상 득점하여 통산 득점이 호나우두보다 많은 선수들이다. 디디에 드록바, 카림 벤제마[5], 마리오 고메스같은 후배 선수들도 호나우두보다 현격히 좋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토너먼트 기록만 따지면 더 처참해진다. 통산 5골[6]을 기록했는데, 안드리 셰브첸코의 18골은 물론 사무엘 에투, 페르난도 토레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10골에조차 못 미치고 손흥민과 같은 수치다. 참고로 손흥민은 챔스 통산 47경기 17골로 호나우두의 통산 골을 이미 추월한 상태다. 게다가 손흥민의 팀인 토트넘 홋스퍼는 전통적으로 챔스에서 16강 이상 올라간 적이 매우 드물고 리그에서는 까딱하면 유로파 리그,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진출로 굴러떨어질 정도로 강팀은 아니란 것도 한몫 한다.
호나우두 옹호론자들은 "당시 챔피언스 리그는 현재와 달리 각 리그에서 우승팀만 출전할 수 있었기에 호나우두가 챔스에서 온전히 기량을 펼칠 기회가 없었다"라고 주장하나, 그렇다면 당당히 리그 우승 캐리하고 챔스에 나간 다른 레전드 선수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오직 호나우두에게만 리그 우승이라는 참가자격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리그 우승을 해야 챔스에 나갈 수 있던건 다른 모든 선수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에우제비우, 게르트 뮐러, 반 바스텐 등은 챔스에서 날아다녔다. 이러면 당시 바르셀로나가 너무 허접해서 아무리 호돈신이라도 혼자서 라리가 우승을 이룰 수는 없었다고 항변 할텐데, 정작 바르셀로나는 호나우두 내보내고 히바우두를 영입하자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후대의 리오넬 메시는 팀 사이클이 완전 무너진 바르셀로나 데리고 그야말로 멱살캐리의 진수를 보여주며 리그 우승을 했다.#, # 그러고도 챔스 4강밖에 못갔다며 욕먹은걸 생각하면 오히려 호나우두는 라리가 우승 못하고도 엄청 관대하게 평가받는 것이다. 호나우두를 미화하는 올드팬들은 언제나 전성기 기량만큼은 메시조차 능가한다고 추억에 잠겨 있는데, 현실은 그 엄청나다는 전성기 호나우두는 라리가 우승을 캐리하지 못했고, 메시는 오히려 전성기 기량에서 많이 내려온 시절임에도 라리가 우승을 멱살캐리했다. 마라도나가 나폴리 데리고 세리에 A 우승하고 팀을 챔스에 데리고 간 건 말이 필요없다. 게다가 슬개건이 끊어진 치명적인 무릎 부상 이전에 나간 1998-99 시즌 챔스에서도 6경기 1골에 그쳤다. 1998 월드컵 결승전 대패 직후라서 슬럼프였다는 변명도 역대급으로 거론될 자격을 논하는 선수에게 있어서는 핑계에 불과하다. 왜냐면 메시 역시 2014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배를 겪고 한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좌절했다고 회고했는데, 클럽으로 복귀한 2014-15 시즌에 엄청난 기량으로 라리가 우승과 챔스 득점왕을 석권하며 트레블을 이룩한다.
또한 호나우두는 전성기가 굉장히 짧다. 그의 수상 기록은 얼핏 보면 화려하지만, 잘 살펴 보면 바르셀로나에서의 한 시즌과 인테르에서의 한 시즌 반, 마지막 전성기였던 2002 월드컵 직후에 몰려 있다. 메시와 호날두가 타 선수들과 달리 신계라 불리는 이유는 실력과 기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1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세계 최정상급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최연소 발롱도르를 굉장히 강조하는데, 물론 대단한 위업이긴 하나 문제는 이걸 가지고 자꾸 호나우두가 현실에서 보여준 적 없는 if 영역을 끌고 온다는 것에 있다. 메날두보다 더 어린 나이에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니 롱런했으면 메날두도 못쫒아 갔다느니 뭐니 하는데, 실제로 보여주지 못한 if 재능은 그냥 재능이 아닌거다. 일반적으로 전성기는 20대 중반~후반에 오니 20대 초반에 끝난 기량이 아쉬운건 맞지만, 애초에 기량을 일찍 끝낸 부상의 원인은 본인이 강철몸을 타고나지 못한 것[7]과 플레이 스타일 상의 한계[8][9] 도 있었다. 애초에 전성기 일찍 끝난 선수들이 호나우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따지면 자기 기량 전부 못보여주고 끝난 선수들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어린 나이가 어쩌구 하는 식의 평가면 호나우두 역시 음바페에게 동나이 월드컵 활약이 밀린다. 음바페는 호나우두보다 더 어린 나이에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고 월드컵 골든부트도 호나우두보다 어린 나이에 타냈다. 그냥 '어린 나이도르'로는 펠레를 제외하고 음바페가 월드컵 GOAT다. 그런데 호나우두 팬들은 "음바페가 이미 호나우두 월드컵에서 넘어선거나 마찬가지", "음바페의 재능이 호나우두보다 위다"라는 말에는 "음바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속단하지 마라"라며 갑자기 태세전환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호나우두의 부족한 자기관리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초창기에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무기 삼다가 노화 또는 부상으로 인해 신체적인 부담이 적은 플레이 스타일로 바꿔서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들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호날두가 있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무릎에 큰 무리가 가는 플레이 스타일을 계속 유지했고, 그나마도 팀의 주장인 라울 곤잘레스와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유명했던 방탕한 사생활과 게으른 태도로 체중 관리에 실패하며 스스로 본인의 전성기를 단축시켰으니 이는 프로 정신의 부재이다.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 이후에는 전술적 제약이 생겼다는 것도 문제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호나우두는 177경기에 출장해 104골 34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좋은 득점 능력과 순간적인 축구 센스를 과시했고, 첫 시즌에는 라리가 우승을 이끈다. 그러나 그는 전성기 시절 선보인 오프사이드 라인 침투, 현란한 드리블과 보디 밸런스로 상대 수비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이기에는 운동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으므로 포처 성향을 띈다. 이런 포처형 공격수들은 미드필더진의 지원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상대가 라인을 내리고 수비에 치중하면 경기에서 지워지기 십상이라 활용하는 데 제약이 크다. 호나우두가 득점왕을 차지하기 직전 득점왕을 차지하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던 로이 마카이가 좋은 예로, 그도 득점에만 주로 관여하는 스트라이커여서 국대에서는 항상 판니스텔로이에 밀렸다. 이렇듯 포스트플레이에 능한 판니스텔로이는 호나우두가 갖고 있던 주전 스트라이커의 자리를 차지하자 2위 바르셀로나보다 득실이 나빴던 레알임에도 우승에 성공시킬 정도의 득점력, 특히 원정에서의 대활약을 선보인다.[10] 따라서 그가 이뤄낸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기록과 라리가 우승이 과연 호나우두여서 가능했는지는 의문을 제기할 만 하며, 그나마도 말기에 가서는 체중 증가로 인한 기량 저하로 베르나베우에서 홈 팬들에게 자주 야유를 받는다. 실제로도 갈락티코 1기의 에이스는 라이벌 지단이 꼽히며 설령 지단 아니더라도 피구가 꼽히지 호나우두를 꼽는 이는 없다.
호나우두는 다른 약점은 전술 이해도다. 리오넬 메시,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지네딘 지단 등 다른 올타임 레전드들은 개인의 능력 뿐 아니라 축구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이 빼어나 수비 및 플레이메이킹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하지만 호나우두의 전술 이해 능력은 저들과 비교하면 명백히 한 수 아래였다. 호나우두와 라이언 긱스의 발언이 유사하면서도 뉘앙스가 다른 것[11]은 참고할 만하다.
그리고 늘상 나오는 그의 부상 문제는 그와 비교되는 다른 선수들은 물론 모든 프로 선수들이 겪는 것이다. 물론 호나우두의 부상은 회복하는 데만 최소 2년 정도에 최악의 경우 선수 생활을 마감할 가능성도 있었을 정도로 치명적이었으나, 펠레도 선수 시절 심각한 부상을 여러 번 겪었고, 특히 1966 월드컵에서 모라이스에게 더블 백태클을 당하며 입은 부상은 펠레의 신체적인 전성기를 끝냈다.[12] 그러나 펠레는 이후 자신의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바탕으로 플레이메이커로서 1970 월드컵 전승 우승을 주도했다.[13] 심지어 호나우두 팬들이 걸핏하면 주장하는 "90년대의 태클은 지금보다 훨씬 심해서 요즘 공격수들은 그때로 가면 짧은 전성기조차 못누린다"는 소리도 감히 펠레 앞에선 꺼내지도 못한다. 펠레는 60년대 선수이며 90년대와도 비교도 안되게 수비수들이 마음껏 백태클을 날려대던 시대이다.[14] 선수 교체도 1967년 이전까지는 필드 플레이어는 전반 종료 직전 1명만 교체할 수 있어 컨디션 관리도 힘들었다. 90년대 거친 수비에 시달리던 선수가 호나우두 혼자만 있는것도 아니고 다른 공격수들도 다 당했으며 90년대 이전에는 더 심했는데 유독 호나우두가 자주 드러누운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80년대 마라도나도 걸핏하면 살인태클을 당해 아예 축구가 아니라 장애물 피하기 게임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호나우두처럼 걸핏하면 드러눕지 않았다. 00~10년대로 따져도 메시도 엘클 나갈때마다 각각 깡페페, 라장군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인 페페와 라모스에게 두들겨 맞아도 35살이 된 지금까지도 탑 드리블러다. 2010-11 시즌 아틀렌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아예 발목이 돌아가서 시즌아웃이라고 다들 예상했지만 타고난 발목 유연성과 평소 철저했던 자기관리의 시너지로 단 11일만에 복귀해서 멀쩡하게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호나우두 바로 전 세대의 탑 스트라이커 마르코 반 바스텐 역시도 호나우두처럼 20대 초반 당한 무릎 부상으로 나이 30도 못되어 실질적 은퇴를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공격수들을 압도하며 발롱도르를 꾸역꾸역 차지했다.[15]
호나우두의 최대 강점인 월드컵 활약도 과장된 부분이 있다. 호나우두 팬들이 자꾸 "호나우두가 월드컵 우승을 2회 이끌었다"라는 뉘앙스로 떠들고 다니는데, 1994 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명단에는 속했지만 실제론 1초도 출전하지 않았다. 따라서 '커리어'로서 '월드컵 2회 우승'은 사실이긴 하나 마치 1994 월드컵도 호나우두가 주역으로 활약했다는 듯 말해선 안 된다. 아래 반박 문단에서는 어린 나이에 브라질 국대에 들어간것만 해도 대단하니 폄하해선 안된다고 반박을 하고 있는데, 1994 월드컵에 대한 비판은 1초도 뛰지 못한 대회를 은근슬쩍 '월드컵 2회 우승을 이끈 선수'라며 마치 호나우두가 펠레처럼 2번 다 본인이 캐리한 것처럼 은근슬쩍 날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때문에 어린 나이에 브라질 국대에 뽑힌것만 해도 대단하니 뭐니 하는 반박은 전혀 엉뚱한 말돌리기에 불과하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23인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대회 규정에 따라 우승메달까지 받았으니 커리어에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일반적으로 그라운드에서 뛴 적이 1초도 없는 대회를 그 선수의 '업적' 또는 '활약'으로 내세우는 경우는 없다. 실제로 1994 월드컵을 상징하는 스타 플레이어는 각자 뛰어난 활약으로 팀을 이끌며 결승에서 만나 맞대결을 펼친 호마리우와 바조, 그리고 약체 불가리아를 4강까지 올리며 득점왕을 차지한 스토이치코프다. 경기에 뛰지도 못한 호나우두는 아예 언급도 안 된다.
또 하나 더하자면 월드컵에 탈락할 때마다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에게 항상 패배했는데,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를 상대로 2전 2패 0골 0어시스트라는 기록과 함께 '지단 앞에선 작아지는 선수'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처음 프랑스와 맞붙은 결승전에서는 원인 모를 발작의 영향이 컸으니 그렇다 쳐도,[16] 2006 월드컵 8강전에서는 빼도박도 못한 부진에다가 호나우두의 오랜 라이벌이자 4살이나 많은 지단의 어시스트에 이은 앙리의 결승골로 패했다.
3. 반론
클럽 활약의 일관성과 1인자로서의 위상을 보여준 기간이 짧다는 약점으로 호나우두를 펠레, 마라도나, 메시 같은 올타임 레전드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인 것은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그런 약점들을 감안해도 축구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가 맞다.먼저 축구는 기록으로써만 평가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한 예로 리오넬 메시의 최고의 시즌 중 하나로 2010-11 시즌이 주로 거론되는데 총 60경기 102개의 공격 포인트[17]를 기록한 2011-12 시즌보다 우위라는 의견도 많다. 이 시즌 메시의 퍼포먼스는 상대팀으로 하여금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위압감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호나우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기록이 단순 수치로 현대 공격수랑 비슷해보여도, 그의 퍼포먼스는 가히 펠레, 마라도나에 비견되었다. 사실 순수하게 기록만 보더라도 당대 월드클래스 공격수들의 2배 가까운 스탯[18]을 전성기에 찍었으니 그 임팩트는 알만 하다.
당연히 호나우두의 선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은 월드컵 관련 기록으로 폄하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프리츠 발터, 바비 무어, 고든 뱅크스, 디에고 마라도나, 파비오 칸나바로 등 클럽에서 세운 기록은 다소 빈약해도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각국의 레전드로 남은 경우도 있고, 가린샤,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파올로 로시, 로베르토 바조 등 월드컵에서의 임팩트로 당대의 위상은 물론 전체적인 선수 평가가 더 높아진 경우는 흔하며, 무엇보다도 펠레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사실과 그가 축구 황제로서의 위상이 굳건한 가장 큰 이유는 '월드컵 3회 우승'이다.
한 세기 가까이 되어가는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호나우두만큼의 활약[19]을 보여준 선수는 몇 안 되며, 이마저도 어린 나이에 당한 심각한 혹사, 부상으로 인해 2년이 넘는 공백기, 갑상선 비대증으로 인한 후유증들을 극복하고 이뤄낸 것들이다.
호나우두의 전성기가 짧다고 비판하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짧은 전성기에도 이렇게 무수한 업적들을 세운 것으로 충분히 고평가할 수 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거기다 선수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은 경험이 쌓이면서 신체적 노화가 진행되기 전인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는 것을 고려할 때 호나우두는 선수로서 진정한 전성기를 맞지 못했다. 흔히 바르셀로나에서 뛰며 득점왕을 차지한 1996-97 시즌이 그의 전성기로 꼽히나, 그 때 호나우두는 20세에 불과했다. 당시 그는 스피드와 기술은 엄청났으나 부족한 경험으로 (비판론에서 지적되었듯이) 패스 타이밍, 마무리 능력, 동료들과의 연계 등 전술적으로 다소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기 생략하고, 리그 37경기 34골 10어시스트, 시즌 49경기 47골 13어시스트라는 스탯을 찍었는데 이는 20대 중반에 접어들어 기량이 만개한 메날두에게 깨지기 전까지 십수년간 유지되었다. 바르셀로나 시절보다 더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던 PSV 시절에는 당시 준 빅리그였던 에레디비시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한 것이 호나우두다.[20]
호나우두의 자기관리에 대한 비판은 분명 일리가 있다. 인테르 시절 동료인 비에리의 증언과 레알 마드리드 시절 불성실한 태도로 팀의 주장인 라울과 충돌했던 유명한 일화가 뒷받침하듯이 자기관리 부족으로 급격한 기량 저하의 원인 중 하나를 자초한 것은 프로 의식 부재로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당한 엄청난 혹사[21], 갑상선 비대증, 인테르 의료진의 판단 미스로 인한 부상재발 등 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원인들이 있었다.[22] 무엇보다도 축구를 아예 접어야 할 확률이 50%인 부상을 겪고도 부활에 성공해서 불가피하게 신체 기능이 크게 저하되었음에도 위치 선정을 통한 골 결정력과 그나마 남아있던 테크닉을 무기 삼아 월드컵 우승에 득점왕까지 차지하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 시절 전반기에 이룬 준수한 기록은 왜 그가 아직까지도 많은 선수들의 우상으로 추앙받는지 보여준다.
부족한 클럽 경력, 특히 호나우두에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챔피언스리그 실적 부진에도 옹호의 여지가 있는 것이 호나우두가 부상을 입게 전 챔스는 각 리그 우승팀만 출전이 가능했기에 호나우두에겐 챔스에서 온전히 제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23] 부상을 입기 전에는 1998-99 시즌에 딱 1번 출전했으며, 당시 호나우두는 1998 월드컵 결승전 참패로 인해 챔스 뿐 아니라 리그에서도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
혹자는 정신적인 압박을 받는 것은 프로 레벨, 그것도 호나우두 정도 되는 월드클래스 선수라면 숙명이고, 그것을 견뎌내고 회복하는 정신력 또한 선수의 능력이므로 핑계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물론 일리는 있으나, 당시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호나우두에게는 선수로서 처음으로 큰 좌절을 맛보고 의회 청문회까지 출석하는 등 분명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24] 그럼에도 호나우두는 해당 시즌 종료 직후인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 재기하여 다시 한 번 조국에 우승컵을 안기고, 득점왕을 차지했다는 점[25]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와 인테르에 소속된 시절에 두 구단이 약체까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의 강팀도 아니었다. 그 예로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 감독인 바비 롭슨의 경우 언론으로부터 "전술이 없다"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고, 이에 롭슨 감독은 "호나우두가 곧 전술이다"라고 대답한다. 인테르의 경우에도 엄청난 이적료를 들여 호나우두를 영입한 이유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들의 리그 우승 실패를 무조건 호나우두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 특히나 호나우두 입단하기 전 시즌에 각각 승점 80점, 59점으로 3위에 그쳤던 바르셀로나, 인테르가 호나우두 입단 후 승점을 90점, 69점으로 10점씩 더 벌면서 2위를 차지했는데 이게 누구의 공이겠는가?
또한 호나우두는 불과 10대였던 초기 시절에 크루제이루에서 경기 당 1골에 가까운 득점력을 과시하며 크루제이루 창단 최초로 리그컵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고,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첫 시즌에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컵위너스컵 우승을 주도했으며, 마찬가지로 인테르에 합류하자마자 UEFA컵 우승을 이끌었으니 결코 호나우두가 소속된 클럽들에서 활약한 바가 적다고 폄하할 수는 없다. 거기다 챔스가 아닌 컵위너스컵과 UEFA컵에서의 호나우두는 충분히 잘했다고 볼 수 있다. 컵위너스컵 통산 7경기 5골 1어시스트, UEFA컵 통산 23경기 15골 3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소위 전성기 구간으로 일컬어지는 1994~1998년 사이에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25경기 20골 4어시스트[26]를 기록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이름값을 해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리오넬 메시를 제외한 어떤 레전드 선수들의 커리어에도 약점은 존재한다. 펠레조차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 없고, 유럽에서의 커리어가 전무하다는 약점이 있으며,[27][28] 마라도나도 코파 아메리카와 챔스를 비롯한 최상위 클럽 대항전 우승이 없고,[29]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1994 월드컵에서는 도핑 양성 판정을 받는 큰 오점을 남겼다.
호날두는 월드컵에 5번이나 출전해 우승이나 MVP, 득점왕은 커녕 토너먼트에서 단 한개의 공격 포인트나 MOM을 기록한 적이 없을 뿐더러(8경기 0골 0어시스트 MOM 0회)[30] 국제대회 MVP를 수상한 적도 없다.[31]
다시 말해서 전술한 선수들의 커리어 약점이 전부 선수 본인들의 책임으로 전가할 수 없고, 설령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해도 다른 업적들까지 폄하받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호나우두만 클럽 커리어 부족, 특히 족적을 남길 기회 자체가 적었던 챔스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선수로서의 전체적인 평가까지 폄하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월드컵 경력과 더불어 호나우두가 가진 강점은 압도적인 재능이다. 그가 부상을 입기 전 득점 기록은 동 나이대의 메시와 호날두와 비교하면 80골 가량 차이가 날 정도로 독보적이며 네이마르는 물론 메날두의 뒤를 이어 축구계를 양분할 것이라는 기대와 찬사를 받는 킬리안 음바페와 엘링 홀란드에 비해서도 월등히 앞선다.
많은 축구계 저명인사들은 업적과 별개로 재능만큼은 축구 역사상 최고, 최소한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평가한다.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모두 봤던 브라질의 레전드 선수인 지쿠는 호나우두를 가리켜 "펠레에 필적하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라고 평가했고,[32] 마라도나와 호나우두를 모두 상대해 본 말디니는 호나우두를 근소하게 두 번째로 평가했다. 펠레 역시 1998 월드컵 직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면 그는 나와 비견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호나우두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했으며, 펠레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그렇게 질색하던 마라도나 역시 호나우두를 가리켜 "부상만 없었다면 그는 역대 최고 선수가 되었을 것임을 의심치 않고, 세상은 나와 펠레를 잊었을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였다. 메날두 시대로 불리는 최근에도 선수를 보는 안목만큼은 누구보다도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 무리뉴 감독이 역대 최고 재능에 대한 질문을 받자 "엄밀히 재능과 기술만 보자면 누구도 호나우두를 넘을 수 없다"라며 호나우두의 재능을 메날두의 위에 두고, 라리가 전문가로서 메날두의 플레이를 누구보다 많이 봤을 Sid Lowe도 호나우두를 가리켜 "하려고만 했다면,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할 정도다.
물론 이런 독보적인 재능에 비해 자기 관리 부족으로 공백기를 겪었거나 스스로 전성기를 단축시키며, 상대적으로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활약을 한 기간이 훨씬 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전성기의 활약'과 '기량 유지 기간'을 모두 고려해서 15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킨 메날두를 호나우두보다 고평가하는 시선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33]
그러나 호나우두는 어린 나이로 신체적 능력은 좋았으나 경험이 미숙할 때는 당대 유러피언 골든슈 및 월드컵 준우승과 골든볼을 차지했고, 신체적으로 저하된 후지만 경험이 쌓였을 때는 월드컵 우승과 골든슈, 라리가 득점왕 등을 차지했다. 최연소 발롱도르 수상 기록은 여전히 그의 몫이며,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의해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은 깨졌으나, 경기수 대비 득점이나 토너먼트 득점 기록은 여전히 호나우두가 우위에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부상 전후로 뭔가 선수로서 크게 부족한 악조건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니 그가 선수 시절 타고난 잠재력을 전부 만개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만약에'라는 가정을 하는 것을 무작정 무의미하다며 비판할 수는 없다.
호나우두의 광팬들이 호날두를 향해 다소 국대 성적이 부족하다는 측면으로 폄하를 일삼는 것처럼 타 팬들 역시 호나우두의 커리어 약점을 들먹이며 그를 폄하하고 호나우두의 팬들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 또한 심각한 우를 범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 심지어 2위였던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 마드리드와 승점 9점차, 11점차의 압도적 우승이었다.[2] 호돈빠들이 메날두빠에게 큰소리 뻥뻥 칠 수 있던 부분이 바로 월드컵이었는데, 메시가 2022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룬 이후에 메시보다는 주로 호날두를 타겟으로 삼고 있다. 서로 챔스 고자 vs 월드컵 고자라며 싸우는 중이고 메시빠들은 주로 호나우두빠 편을 들어 호날두빠들을 패는게 많다.[3] 세리에를 필두로 한 스페인 라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가, 프랑스의 리그 앙.헤이젤 참사 이후 유럽대회 출장금지 징계가 맞물려 잉글랜드 리그는 경쟁력을 상실하여 대륙에서 뛰던 노장들의 은퇴무대로 전락했고, 파팽이 이적할 당시 풋볼리그와 관계를 단절하고 EPL이 생겼지만 입지는 별 볼일 없었다. PL이 경쟁력을 가지기 시작한건 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부터고, UEFA계수로 4대리그로 꼽히기 시작한건 2001년부터.[4] 간혹 호나우두에 챔스 실적 부진에 대한 반론으로 '현역시절엔 호나우두가 챔스에 약하다는 비판이 없었다'라고 반론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역시 적절한 반론이 될 수 없다. 현역 시절에 축구팬들이 호나우두가 챔스 통산 40경기 14골 우승 0회 결승 0회로 커리어를 마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챔스는 토너먼트 대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떤 강팀과 월드클래스 선수들도 부진한 실적을 남기는 시즌은 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은퇴할때까지 단 1시즌도 챔스에서 완벽한 증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 비판받는 것이다. 현역 시절 선수의 평가와 위상은 미래 기대치가 반영되어 평가되는 법이고, 호나우두는 그 미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참고로 레알 시절 호나우두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충분히 전성기를 이어가고도 남을 나이였다.[5] 벤제마는 아예 2023년 기준으로 챔스 통산 득점 랭킹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상으로는 이미 자신의 우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셈. 특히 2021-22 시즌에는 챔스에서의 미친 활약으로 이견의 여지가 없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6] 그 중 3골이 신격화하다 못해 숭배하는 그놈의 02-03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올드 트래포트 3샷 3킬이다.[7] 강철몸을 타고나는 것도 엄연히 재능이다. 강철몸 재능을 타고난 선수로 유명한 게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이들은 커리어 내내 선수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의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없고 회복도 굉장히 빠르다. 사실 이들도 각각 햄스트링 부상과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긴 했으나,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플레이 스타일도 몸에 부담을 덜 주는 식으로 바꾸면서 극복했고, 그래서 유럽에서 뛰던 당시 시즌 내내 대부분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뛸 수 있었다.[8] 메시처럼 몸에 큰 부담 안주는 간결한 움직임이 아니라 굉장히 화려하고 요란하게 제쳤는데, 이게 '보는 맛'이 좋아서 본인평가 올리는데는 기여 했지만 슬개건이 끊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애당초 호나우두가 슬개건 끊어진건 혼자서 헛다리 하다가 끊어진거지 누구한테 살인태클 맞아서 끊어진게 아니다. 즉 애초에 본인이 메시만큼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수비를 제치지는 못하니 온갖 무릎 아픈 개인기를 범벅시켜서 제칠 수 밖에 없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아니면 플레이 스타일을 통째로 바꿔 호날두처럼 골게터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으나, 이 부분도 게으름으로 인해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다.[9] 애초에 호나우두는 키도 183cm로 건장한 체격을 가졌는데 그 몸무게를 전부 무릎에 몰아넣는 식으로 드리블을 했으니 호나우두의 유리몸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10] 레알은 호나우두를 영입한 첫 시즌에 86득점 42실점으로 우승을 차지하지만, 다음해 72득점 54실점으로 실망스럽게 4위, 그 다음 시즌은 바르셀로나의 73득점 29실점에 비해 71득점 32득점으로 득실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승점은 차이가 나서 준우승하는데 홈에선 심심찮게 5골 이상 득점했지만 원정에서 부진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다음 시즌은 66득점 40실점으로, 5골 이상을 넣은 경기는 한 경기도 없었으며 2위 바르샤의 78득점 33실점보다 득실이 나빴는데도 우승에 성공한다.[11] "머리로는 수비수를 어떻게 따돌리는지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호나우두) vs "몸은 느려지는데 머리는 더욱 빨라진다"(긱스)[12] 펠레의 득점 기록상 커리어 하이는 17살, 38경기서 58골을 넣었을 때이며, 20대 중반에 입은 부상 이후에는 그런 미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토스탕은 1970년의 펠레로 그를 평가하지 말라며, 그는 그보다도 훨씬 뛰어났던 선수라고 말했다.[13] 단일 월드컵 최다 어시스트(6경기 6회), 기회창출 4위(6경기 28회)[14] 펠레의 선배인 지지뉴는 80년대 선수들이 환경이 너무 거칠다고 불평하자 "이 숙녀분들은 우리 시대에 뛰어봤어야 했다."라는 말을 남겼다.[15] 다만 당시 발롱도르는 유럽 국적의 선수 한정이었으며,(이러한 국적제한은 1995년에 최초로 풀리게 된다.) 반 바스텐은 호나우두와는 반대로 클럽에 비해 국가대표 활약이 초라했다. 전성기 때 제대로 자신의 활약을 보여준 때는 유로 1988뿐이었고, 1990 월드컵을 포함한 기타 국제 대회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반 바스텐이 자신의 대선배 요한 크루이프와 발롱도르 숫자로는 동률이더라도 국제대회 활약에서 크게 밀려 그와 비교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된다. 유관인 쪽은 반 바스텐이긴 한데, 개인 영향력과 활약도에서 크루이프가 두 수는 위였기 때문. 물론 유로 1988 우승 당시 반 바스텐 역시 대단한 활약이긴 했다. 다만 1974년 크루이프는 준우승에 그치긴 했어도 개인 활약도 면에서는 월드컵 역대 탑5 안에 들어갈 정도다.[16] 후에 밝혀진 바로는 발작이 아니라 그냥 수면중 몸을 떠는 일종의 몽유병이었고 이걸 동료들이 간질발작이라 오해해 해프닝이 일어났던 것에 불과하다. 그냥 호나우두 본인이 부진했다. 특히 튀랑에게 완전히 지워졌다.[17] 트랜스퍼마크트 집계로는 105개.[18] 1996-97 시즌 49경기 47골 13어시스트, 1997-98 시즌 47경기 34골 4어시스트, 2시즌 합계 96경기 81골 17어시스트 98공격 포인트.[19] 1998 준우승+골든볼+도움왕, 2002 우승+골든슈+실버볼, 2006 브론즈슈, 통산 19경기 15골 4어시스트.[20] 같은 리그의 아약스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것도 이 시기다.[21] 클럽에서도 많이 뛰었지만 그보다도 대표팀에서 1996 올림픽 6경기, 1997 코파 아메리카 6경기, 1997 투르누아 드 프랑스 3경기,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 5경기, 1998 월드컵 7경기, 1999 코파 아메리카 6경기와 평가전 등 23살 이전에 너무나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그리고 이때 당한 혹사는 호나우두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게 된다.[22] 거기다 조르제 칼데이라의 저서 '호나우두, 한 축구영웅의 시련과 영광의 드라마'를 보면 호나우두의 성실한 훈련 태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몇 번의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도 2002년에 부활하여 월드컵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한 것은 단순히 호나우지뉴, 아드리아누마냥 게을러터진 선수였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23] 당연히 이는 호나우두 뿐만 아니라 모든 20세기 선수에게 적용되는데, 20세기 선수의 클럽 대항전 활약을 평가할 때는 챔피언스리그(유러피언컵)에서의 활약 뿐만 아니라 컵위너스컵, UEFA컵에서의 활약도 반드시 반영해야한다. 당시의 챔피언스리그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으며, 컵위너스컵과 UEFA컵은 현재의 유로파리그보다 높은 난이도,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호나우두가 우승했을 당시의 컵위너스컵은 1년 후에 UEFA컵과 통합되어 사라졌을 정도로 위상이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24] 브라질은 극단적인 축구 문화로 유명하다. 자국 리그의 경우 감독의 평균 임기는 수 개월에 불과할 정도로 짧고, 모아시르 바르보자를 비롯한 마라카낭의 비극 당사자들은 평생 고통받았으며, 1998 월드컵 결승전 직전에 호나우두가 발작을 일으킨 원인으로도 본인이 "온 브라질이 나에게 기대는 것 같았다"라고 회고하며 너무나도 컸던 압박감을 들었다. 2014 월드컵에서 브라질 선수들은 대회 도중 엄청난 압박감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면서 극단적인 공격 일변도의 경기를 치르다가 미네이랑의 비극을 당하게 된다.[25] 동료 히바우두와 함께 5골로 공동 득점왕. 대회 MVP는 히바우두.[26] 컵위너스컵 7경기 5골 1어시스트 + UEFA컵 18경기 15골 3어시스트.[27] 다만 유럽에서의 커리어가 없는 것은 약점이라고 보기 힘들다. 펠레가 현역이었던 시절엔 지금처럼 유럽이 모든 인프라와 선수층을 쓸어담던 시대는 아니라서 브라질 리그가 유럽 리그들에 비해 딱히 수준이 떨어지지 않아 성장이나 검증을 위해 유럽으로 진출할 필요성이 없었고, 실제로 펠레의 산투스는 많은 친선전들에서 유럽 강팀들을 제압했다.[34] 무엇보다도 브라질에서 펠레를 아예 국보로 지정하여 해외 리그 진출을 원천 봉쇄해버렸다.[28] 코파 아메리카의 경우에도 펠레 시절엔 다소 위상이 낮아서 심지어 1967년 대회에는 브라질 대표팀이 스스로 불참을 선언하기도 할 정도였다. 이에 펠레는 코파 아메리카에 딱 한 번 출전했고, 그 한 번의 참가에서 펠레는 우승만 못 했을 뿐 6경기 8골 2어시스트로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다.[29] 대신 마라도나는 UEFA컵을 1회 우승했는데, 같은 UEFA컵 우승이라도 마라도나는 호나우두가 다닌 인테르, 밀란, 바르사, 레알 같은 빅클럽이 아니라 유럽 대항전 우승 경력이 없는 중소클럽 나폴리에서 이뤄냈기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30] 이 부분은 호날두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통한다. 특히 2022 월드컵으로 호날두가 마지막까지 토너먼트 8경기 0골 0어시스트 MOM 0회로 커리어를 마감했기에 그 이후로는 호나우두 팬들이 그동안 호날두 팬들에게 챔스 관련해서 당해왔던 울분을 월드컵으로 갚아주는 광경이 각종 커뮤니티 곳곳에서 보였다.[31] 유로 2016 우승 당시에는 준우승팀의 앙투안 그리즈만이 MVP를 받았으며 메이저 대회가 아닌 네이션스 리그 우승 때조차 MVP를 베르나르두 실바에게 내줬다.[32] 펠레와 호나우두의 차이로 부상 빈도와 헤더 능력을 언급했다.[33] 언론사들에서 내놓는 순위 등을 보면 역대 1위로 자주 선정되는 메시나 4~5위를 다투는 호날두에 비해 호나우두는 아무리 높게 보더라도 6,7위 정도가 한계다. 실제로 2022 월드컵 이후로 언론사들이 내놓은 역대 랭킹들을 보면 호나우두에 대해 90min 단 한 곳에서만 6위에 올렸을 뿐, 다른 언론사들은 모두 7위~10위권 바깥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