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헤이그 프랑스 대사관 습격 사건 ハーグ事件 Prise d'otages de l'ambassade de France à La Haye Gijzeling in de Franse ambassade in Den Haag 1974 French Embassy attack in The Hague |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발생일 | 1974년 9월 13일~9월 17일 오전 10시[1] | |
발생 위치 | ||
네덜란드 헤이그 프랑스 대사관 | ||
유형 | 인질 | |
인명피해 | <colcolor=#fff><colbgcolor=#bc002d> 사망 | 0명 |
부상 | 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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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4년 9월 13일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에 적군파 소속 단원 3명이 습격해 프랑스 대사를 포함해 11명을 인질로 잡은 사건.2. 배경
일본 신좌파에서도 무장단체로 유명한 적군파의 일본적군은 1970년대에 전세계를 대상으로 테러를 시행했는데 이 사건이 일어난 해에만 싱가포르와 쿠웨이트에서 테러를 했다.1973년 싱가포르 셸 석유 습격 사건에 가담한 야마다 요시야키가 7월 25일 파리의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4개의 위조 여권과 위조 달러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심문 과정에서 서독의 뒤셀도르프에 있는 종합상사 지점장을 납치할 계획이 드러났는데 일본적군은 본인들의 단체와 계획들이 전부 밝혀지지 않도록 프랑스 대사관을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3. 전개
1974년 9월 13일 일본적군 소속 단원 3명이 헤이그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을 습격해 11명을 인질로 잡았고 곧이어 네덜란드 경찰 3명이 쫓아왔으나 총격전이 벌어진 후 경찰 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일본적군은 야마다 요시야키의 석방과 100만 달러를 요구했고 그들이 탈출할 수 있게 프랑스 국적 여객기 이용을 요구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당국은 건물의 위치로 인해 구출 작전을 시행하기보다는 협상하기를 원했고 이틀 후 2명의 인질이 풀려났다.
9월 15일 일본적군과 동맹을 결성한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이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가 계획한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망데프레에서의 르퍼블리시스 카페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출신 단원들은 프랑스 당국에 일본적군의 야마다 요시야키 석방을 촉구하는 취지로 카페에 수류탄을 던져 2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을 입었다.
9월 17일 오전 10시경에 프랑스는 협상 조건에 수용했고 야마다 요시야키를 석방하고 300,000 달러를 제공했으며 에어 프랑스 소속 보잉 707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고 암스테르담의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로 이동했다. 비행기는 이륙 후 남예멘의 아덴을 경유해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향했고 일본적군 단원들은 시리아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되어 다마스쿠스의 프랑스 대사관에 넘겨졌다.
4. 사건 이후
프랑스 정부는 정보기관에서 일본적군의 테러에 맞서기 위한 다국적 협력 조직을 결성할 것을 발표했다.이 사건에 가담한 하루오 와코와 니시카와 준은 일본으로 추방되었다.
장도미니크 세나르 르노그룹 이사회 회장의 부친이 당시 주 네덜란드 프랑스 대사이다.
[1] 현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