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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4-05 05:07:36

핫즈


파일:종교표지_이슬람_흰색.png 이슬람의 오행
샤하다 살라트 자카트 사움 하지


파일:핫즈 순서.jpg

간략히 보는 핫즈의 순서

파일:알 미나 캠프.jpg

핫즈 기간에 백만이 넘는 순례자 (핫지)들이 머무는 미나 야영지. 에어컨을 갖춘 10만개 이상의 천막집을 갖추었다.

1. 개요2. 상세3. 의의4. 역사
4.1. 근세4.2. 근현대
5. 여담

1. 개요

وَأَذِّن فِي النَّاسِ بِالْحَجِّ يَأْتُوكَ رِجَالًا وَعَلَىٰ كُلِّ ضَامِرٍ يَأْتِينَ مِن كُلِّ فَجٍّ عَمِيقٍ
لِّيَشْهَدُوا مَنَافِعَ لَهُمْ وَيَذْكُرُوا اسْمَ اللَّهِ فِي أَيَّامٍ مَّعْلُومَاتٍ عَلَىٰ مَا رَزَقَهُم مِّن بَهِيمَةِ الْأَنْعَامِ ۖ فَكُلُوا مِنْهَا وَأَطْعِمُوا الْبَائِسَ الْفَقِيرَ
ثُمَّ لْيَقْضُوا تَفَثَهُمْ وَلْيُوفُوا نُذُورَهُمْ وَلْيَطَّوَّفُوا بِالْبَيْتِ الْعَتِيقِ

그러나 그곳으로 순례하도록 사람들에게 알려라. 그들은 걸어서 또는 낙타를 타고 먼 곳으로 부터 너에게 오리라.
그들은 유용함을 목격할 것이며, 규정된 날 동안에 그분이 베푼 가축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찬미할 것이니 너희도 먹고 가난하며 궁핍한 자에게도 베풀라.
그런 후 그들로 하여금 의식을 완성케 하고 그들의 결심을 이행케 하며 다시 오래된 집을 순례하도록 하라. ,(최영길 역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1],
-쿠란알 핫즈장 27-29

아랍어 حَجّ
터키어 Hac
인도네시아어 Haji
영어 Hajj / Hadj
러시아어 Хадж / Хаджж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 하나로,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에게는 일생에 한 번 수행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에 해당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메카와 그 주변 성지를 순례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전 세계에서 수많은 무슬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종교 행사이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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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즈 기간의 마스지드 알하람(카바) 일대

이슬람력으로 12번째 달인 두 알히자(Dhu al-Hijjah)의 초반 10일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 순례자들은 특별한 의복인 이흐람(Ihram, إِحرام)을 착용하고, 세속적인 활동을 자제하며 예배와 기도에 전념한다. 남성 순례자들은 두 장의 흰 천으로 몸을 감싸고, 여성 순례자들은 노출을 최소화하는 단순한 복장을 착용한다. 이는 모든 순례자가 앞에서 평등함을 상징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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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트에서 시작해 하람에서 마무리 되는 핫즈의 순서 카바를 7번 돌고, 사파-마르와도 7번 왕복한다

주요 의식 중 하나는 카바 신전 주위를 일곱 번 도는 타와프(Tawaf, طواف)이다. 카바는 이슬람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물로 여겨지며, 무슬림들은 기도를 드릴 때 이 방향을 향한다. 또한, 순례자들은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를 일곱 번 왕복하는 사이(Sa'i, سعي) 의식을 행한다. 이는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위해 물을 찾아 헤매던 행적을 기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순례 시기(두 알히자 7~10일) 외의 메카 방문을 뜻하는 우므라(Umrah, عمرة)와 같다.

파일:아라파트 산.jpg

이슬람 교리를 완성했다고 여겨지는 무함마드의 고별 설교가 행해진 아라파 산(جبل عرفة) 혹은 알-라흐마 산(جبل الرحمة)

아라파 (혹은 아라파트) 산에서의 예식은 하즈의 절정으로 여겨진다. 순례자들은 두 알히자 9일에 아라파 산에 모여 하루 종일 기도와 묵상에 참여한다. 이는 죄를 용서받고 영적인 정화를 이루는 중요한 시간으로, 이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면 하즈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같은날 순례자 외의 무슬림들은 '아라파 날'(야움 아라파, يوم عرفة)을 맞아 권장되는 단식을 행하는 등 경건한 하루를 보낸다.

파일:마샤아르.png

마슈아르 알 하람 모스크(مسجد المشعر الحرام)

이후 순례자들은 무즈달리파(Muzdalifah, مزدلفة)로 이동하여 무함마드의 숙영지 터에 세워진 마슈아르 알 하람 모스크 일대에서 야영하며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미나(Mina, منى)에서 돌을 던져 악마를 상징하는 기둥을 맞히는 라미(Ramy, رمي) 의식을 행한다. 이는 아브라함이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희생 제물인 쿠르반(Qurban, قربان) 혹은 우드히야(Udhiyah, أضحية)를 바치는 의식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이브라힘이 아들 이스마엘을 신에게 바치려 했던 헌신을 기리는 행위이다. 희생된 동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같은날 순례자 외의 무슬림들은 이둘 아드하 명절을 기념하며, 역시 양이나 염소를 잡아 가족 및 이웃과 나눈다.

3.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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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즈는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행사로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무슬림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신앙심을 나누고, 형제애를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하즈는 개인에게 깊은 영적 경험을 제공하며,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신앙심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무슬림이 하즈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능력과 건강 상태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여행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는 무슬림에게 하즈는 평생의 염원이자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무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즈 기간이 끝나면 이슬람력 기준 연말이 되고, 새해인 무하람을 맞이하게 된다.

4. 역사

파일:카라반 메카.jpg 파일:1910 미나.jpg
이집트에서 메카로 향하는 핫즈 카라반 1910년, 미나 평원의 순례자용 천막들

쿠란에 의하면 카바에 대한 순례 자체는 카바를 건설한 아브라함 (이브라힘)의 아들 이스마일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이슬람 이전 (자힐리야) 시기에도 메카의 카바는 여러 다신교들의 우상이 위치한 아라비아반도 최대의 성지였고, 각지의 상인들이 왕래하며 메카의 정치적 위상 확립을 도왔다. 무알라카트 등의 시에서 6세기 무렵 쿠라이쉬 부족이 카바와 그 순례를 관리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당시에도 순례객들은 카바를 원을 그리며 돌았는데, 신에게 본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나체로 참배했고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물론, 순례 기간 전쟁은 금지되었고 카바 경내에서도 무기 휴대가 금지되었다. 630년 메카를 정복한 무함마드는 카바의 우상들을 파괴했고, 631년 아부 바크르가 3백의 무슬림들과 카바를 순례했으며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새 규정들에 대해 설교했다.

알리는 이교도와 나체 상태의 사람들에게 카바 출입을 금지했고, 순례객들에게 이흐람의 원형이 된 흰 천을 두르게 했다. 632년에는 임종을 앞둔 무함마드가 직접 핫즈를 주관했고, 관련 절차를 구체화했다. 이후 무함마드는 신도들과 아라파트 산으로 이동해 고별 연설을 했고, 이때부터 카바에서 아라파트 산까지 오가는 순례가 확립되었다. 이슬람 정복을 통해 이슬람 제국이 형성되며 핫즈를 위한 여행은 매우 장기화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시리아 방면에서, 압바스 왕조는 이라크 방면에서 메카로 향하는 도로를 정비했다. 특히 8세기 말엽 하룬 알 라시드의 황후 주바이다는 이라크 순례로를 따라 우물과 요새화된 여관을 설치했고, 아라파트 산에는 수로를 건설했다. 따라서 이라크 순례로는 '주바이다 길'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룬과 주바이다 부부는 직접 여러 차례 핫즈에 참가했다.

3차례에 걸친 피트나 기간 외에는 3세기 간 안정적으로 진행되던 핫즈는 압바스 왕조가 약화되던 10세기 초엽에 출현한 이스마일파 극단주의 조직인 카르마트의 위협으로 큰 위기에 봉착한다. 924년 술라이만 알 잔나비가 이끄는 카르마트 군대는 바그다드로 돌아오던 핫즈 카라반을 공격해 학살했고, 이슬람력 311년인 그 해는 무슬림 사가들에 의해 '파괴의 해'(사나트 앗-담마르)라 불리게 되었다. 925년에는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순례단이 6천의 호위대와 동행했음에도 카르마트의 위협에 얼마 못 가 돌아왔고, 926년 압바스 당국은 호위대를 1만으로 늘린 후에야 2년 만에 순례를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927년에는 병력을 편성할 예산이 부족하여 순례단 구성 자체가 취소되었고, 메카는 혼란에 빠졌다. 930년 1월에는 카르마트 군대가 메카를 점령, 순례객들을 학살하고 카바를 피로 물들인 후 흑석을 탈취했다.

이슬람권 전역에 충격과 공포를 안긴 카르마트의 준동은 952년 흑석을 반환하며 일단락 되었고, 969년 히자즈 지역을 장악한 파티마 왕조 하에서 핫즈는 안정을 되찾았다. 11세기 무렵 이슬람권 각지의 핫즈 순례단은 카이로, 다마스쿠스, 쿠파 (나자프)의 세 도시에서 모인 후 메카로 향했다. 카이로에는 안달루스, 마그레브, 서아프리카, 이집트 일대의 순례단이 모였고 다마스쿠스에는 시리아, 아나톨리아 일대의 순례단이 모였으며 쿠파에는 이라크, 이란, 중앙아시아의 순례단이 모였다. 그 외에 예멘을 비롯한 아라비아 반도의 순례단은 각각 메카로 향했고, 인도인도네시아, 스와힐리 해안 등지에서는 해로를 통해 제다를 거쳐 메카로 향했다. 파티마 왕조는 또한 기존과 달리 순례객들에 대해 인당 7.5 디나르 금화의 순례세를 부과했는데, 이를 감당 못해 되돌아간 사람도 많았기에 핫즈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1171년 파티마 왕조를 멸한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흐 앗 딘 유수프는 순례세를 금지시키나 이미 10세기부터 자립해 있던 메카의 하심 가문 샤리프 등은 종종 이를 어겼다. 한편 시리아 및 이집트 순례길은 12세기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시나이 반도와 홍해까지 위협하며 위기를 맞았다. 1181년 카라크 영주 르노 드 샤티용타이마를 지나던 핫즈 카라반을 약탈했고 1182년 말에는 함대를 건설해 해양 순례로도 위협했다. 그리고 1183년 르노는 제다로 향하던 순례단 함대를 침몰시키고 얀부 등지를 습격, 육상 순례단을 학살했다. 살라흐 앗 딘은 기독교도 순례단을 사로잡고 카라크를 2차례 포위하나 함락하지 못했다. 이후 예루살렘 왕국과 휴전을 맺었던 살라딘은 1186년 11월에 르노가 재차 핫즈 순례단을 공격하자 휴전 종료를 선포, 이듬해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을 괴멸시키고 예루살렘을 수복한다.

살라흐 앗 딘 사후 아이유브 왕조는 파티마 왕조처럼 이집트 기반 세력이 되었고, 다마스쿠스에 비해 메카와 멀었기에 시리아 총독을 종종 순례단의 관리자인 아미르 알-핫즈 (أمير الحج)로 임명하여 파견했다. 그리고 13세기 맘루크 왕조 시기부터 핫즈 카라반의 선두에는 마흐말 (محمل)이라 불리는 화려한 가마를 맨 낙타가 위치하게 되었다. 이집트 (카이로), 시리아 (다마스쿠스), 예멘, 인도, 이란 등지에서 각자의 마흐말을 보냈고 순례가 끝난 후 마흐말은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한편 1258년 몽골 제국이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키며 이라크가 초토화되자 핫즈 카라반의 집결지는 카이로를 거쳐 다마스쿠스에서 집결한 후 메카로 향하는 노선으로 굳어졌다. 1325년에는 이븐 바투타가 핫즈를 위해 고향 탕헤르를 떠나며 30여년간 세계 각지를 방문하는 여행가로의 발을 내딛었다.

4.1. 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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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묘사된 이집트의 아미르 알 핫즈 카이로의 이집트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마흐말과 키스와
파일:핫즈 루트.jpg

19세기 무렵 이슬람권의 핫즈 경로

1517년 맘루크 왕조를 멸한 오스만 제국은 매년 상당량의 예산을 핫즈 이행에 배정했고, 아미르 알-핫즈의 권한과 군사력을 확대했다. 오스만 시기 매년 수천 마리의 낙타가 순례단, 상인, 물품, 식량, 물을 싣고 다마스쿠스를 떠나 메카에 이르렀다. 다만 다수의 순례자들은 뒤에서 도보로 따라갔고, 군대와 함께 수술이 가능한 의사 역시 동행했다. 메카에서는 인도, 동남아시아, 이란 등지에서 온 카라반과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전체 순례객의 숫자는 5만 전후였다. 1757년 가을 다마스쿠스를 떠난 순례단이 바니 샤케르 등 베두인들의 공격을 받아 2만에 가까운 인원이 학살되거나 약탈당한 후 탈진해 사망하는 참극이 있었다. 사망자 중에는 당시 술탄 오스만 3세의 누이도 있었기에 충격을 더했고, 이전 총독 아사드 파샤와 환관장 아부 쿠프 등이 처형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전체 무슬림 중 상류층 일부만 가능했던 핫즈는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고 지중해와 인도양에 증기선이 도입되며 더 넓은 계층에게 기회가 확대된다. 영국 선박 회사들은 인도의 무슬림들을 제다로 운송하며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오스만 제국은 핫즈를 위해 이스탄불 ~ 바그다드 철도에서 분기된 히자즈 철도 건설에 나섰다. 철도는 1900년 다마스쿠스에 이어 1908년 메디나에서도 개통하며 50일 가량 걸리던 시리아 순례길의 여정을 3일 정도로 단축했다. 비록 1차 대전 시기 아랍 반란으로 히자즈 철도는 파괴되어 운행이 중단되었지만 제다를 통한 해상 유입은 꾸준히 늘었고, 이로써 1918년부터 매년 역병이 퍼지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의 붕괴 후 헤자즈 왕국샤리프 후세인은 핫즈를 주관하며 명성을 쌓았고, 칼리파를 칭하기도 했지만 1925년 네지드 술탄국 (사우드 왕조)에게 멸망한다.

4.2. 근현대

파일:헤자즈 철도.png 파일:기관차 메디나.jpg
히자즈 철도 노선도 히자즈 철도를 달린 증기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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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의 히자즈 철도역

헤자즈 왕국의 멸망 직후인 1926년의 핫즈에서 네지드와하비 군중이 이집트 왕국의 마흐말을 막아서자 호위 병력이 발포하며 2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이래로 핫즈 시에 마흐말을 보내는 전통은 중단되었다.[2] 아미르 알-핫즈 역시 폐지되었고, 1932년에 설립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직접 핫즈를 주관하게 된다. 1937년부터는 이집트의 미스르 항공이 카이로 ~ 제다 노선을 개설하며 핫즈는 육로, 해로에 이은 항공로까지 새 지평이 열리게 된다. 2차 대전으로 순례자 수가 급감한 후 사우디아라비아는 1946년 아라비아 운송회사를 설립했고, 1950년 들어 낙타를 이용한 전통적인 순례 방식은 종언을 고했다. 그 무렵 순례객의 10%만이 육로를 이용했고 80%가 해로, 7%가 항공을 이용했다. 1970년대 들어 항공편을 이용한 순례의 비율은 급증하여 점차 1순위가 되었다.
1979년 말의 핫즈 기간에 메카 점거 사태가 벌어져 26명의 순례객을 포함, 하람 권역에서 3백여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핫즈 기간 순례객의 수가 백만을 넘기며 압사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에 1426명, 1994년에 270명, 1998년에 118명, 2001년에 35명, 2003년에 14명, 2004년에 251명, 2005년에 3명, 2006년에 346명, 2015년에 1470명이 압사 혹은 크레인 붕괴로 사망했다. 사고는 주로 미나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후 사우디 정부는 대대적인 시설 확장과 인파 통제에 나섰다. 2018년에는 메디나 ~ 메카를 잇는 하라메인 철도가 개통해 핫즈의 편의를 더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 확산을 막고자 1만명의 순례객만을 수용했다. 순례객 수는 2021년에 5만 9천명, 2022년에 92.6만으로 회복했고, 2023년 기준 184만명이 방문했다.[3]

5. 여담

파일:미나 메카.jpg

미나 야영지의 모습

파일:메카 도시철도.jpg
파일:자마라트.jpg
[1] 원문에는 문장부호가 없고, 가독성을 위해 발췌자가 임의로 추가했다.[2] 1952년까지 카이로에서 둘 힛자 달마다 마흐말을 광장에 전시하고 축제를 벌이긴 했다.[3] 사우디 정부의 핫즈 비자 제한으로 순례객 수는 (메카 주민 포함) 3백만명 선에서 유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