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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09:42:21

한수진(바이올리니스트)

<colbgcolor=#000><colcolor=#fff> 한수진
Soojin Han
파일:hansujin_violinist.png
출생 1986년 7월 22일 ([age(1986-07-22)]세)
부모 아버지 한태준[1]
어머니 허지은
종교 개신교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Purcell School
University of Oxford
Royal College of Music
Kronberg Academy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약력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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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 김다미, 김봄소리와 함께 국내 80년대생 클래식 음악인을 대표한다.

안드라스 쉬프, 기돈 크레머, 유리 바쉬메트, 프란스 헬머슨 등과 실내악을 연주하였고 런던 심포니, 포즈난 필하모닉, 도쿄 필하모닉, 서울시향, KBS, 국립심포니, 심포니 송, 솔로이스트 챔버 오케스트라, L' Ensemble Ricercata de Paris와 같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였고 국내외 주요 공연장인 런던 콘서트 홀, Concertgebouw Amsterdam, Suntory Hall, Operacity 및 Bunkamura Orchard Hall, 도쿄, 오사카 심포니 홀 및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지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국내에서도 외교부 문화외교 자문위원, 부산국제클래식음악제 수석 예술 부감독, 사랑의 바이올린 홍보대사, 제주 프랑스영화제 홍보대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 약력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2세 때 아버지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어릴 때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맨섬에 살다 몇년 후 런던으로 이주했는데, 어릴 때 어머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듣고 호기심에 시작하였으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5세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하지만 8세 되던 해 잠깐 한국에 와서 외할머니가 또래 아이들 연주에 칭찬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어 바이올린을 시작한다.

시작한지 8개월만에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음악학교 오디션에 합격 하였으나 너무 어린 나이에 기숙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2]

11세 때 집에서 통학 가능한 퍼셀 스쿨(Purcell School)로 전학하였고, 12세 때 영국 런던의 유서깊은 실내 연주회장 위그모어 홀에서 독주를 하였다.

15세 때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에 최연소 참가하여 한국인 최초 2위를 수상했다.[3][4] 부상으로 활, 2점의 그림, 음악평론가상, 폴란드 국영방송 청취자상 등, 총 7개의 상을 받았다.[5][6]

성인이 되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음악학(musicology)[7] 을 수료하고 휴학을 했는데, 영국 런던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석사과정 제안을 받아 학교를 옮겼다. 이후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독일) 국제 솔로연주자 과정을 졸업하였다.

2024년 4월 워너뮤직에서 첫 음반이 발매될 예정이다.[8]

3. 기타



[1] 겐트 대학교 글로벌 캠퍼스 총장[2] 지금도 다시 이때로 돌아가라면 기숙생활은 못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가장 힘든점은 부모님을 볼 수 없는 점과 자기전에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어린 아이들일 경우 저녁 8시면 강제소등하는 경우가 많다.[3] 이 때 주니어콩쿠르 데드라인을 놓쳐 수상에 대한 기대없이 새로운 곡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시니어콩쿠르에 나갔는데 덜컥 파이널리스트에 들어 그때까지 한번도 연주하지않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2,3악장을 며칠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마음을 비우고 결선연주에 임했다고 한다.[4]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이라, 원래 3악장에서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죽어라 연습하니까 신기하게도 안됐던 부분을 성공했다고 한다.[5] 비니아프스키는 19세기 폴란드 바이올리니스트로, 쉽게 설명하자면 바이올린의 쇼팽같은 존재이다. 2011년 윤소영, 2016년 김봄소리도 같은 콩쿨에서 입상한 바 있다.[6] 이 콩쿠르는 5년마다 개최되는 권위있는 국제 콩쿠르로 당시 연주했던 음원은 해당 홈페이지에서도 들을 수 있다. #[7] 음악에 관한 학문 전반을 배우는 전공인데, 한국 서울대 작곡과의 이론 전공과 비슷한 편이다.[8] 음반 소식 관련 기사 전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4906[9] 어머니가 왼쪽 귀가 안들리는 유전병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격세유전을 예상하여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한수진도 왼쪽 귀가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다른 방법으로 귀가 훈련되고 발달되어 한쪽 귀의 감각이 뛰어나고 음정이 무척 정확하다는 평을 들었다.[10] 역사뿐 아니라 심리학, 철학 등 거의 인문학 전반의 음악관련 학문에 대한 방대한 양을 공부했고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이라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11] 음악학을 전공하면서 연주를 병행하는 경우가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12] 악기를 대여받던 찰스 비어로부터 악기 소유주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직접 한수진의 연주를 듣고 바로 해당 악기를 평생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13] 이 영상 14:13 지점에서부터 직접 언급하는걸 볼 수 있다.[14] 날씨에도 민감하며 그날 그날 악기 컨디션에 따라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15] 나이로 보면 26~30세 정도로 보통 연주가들이 가장 왕성한 연주 활동을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3년반 정도 악기를 놓게되고 5년 이상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이 기간에 학생레슨도 하고 통역일도 하고 엄마와 해초화장품을 만들기도 했다. 한수진은 회고하길 많은 정신적 고통과 초조함이 있었으나 음악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찰과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시기에 더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가지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고 하였다.[16] 자기가 잠들면 인형들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