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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산하 공공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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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KOBACO | |
<colbgcolor=#ed1443><colcolor=#ffffff> 정식 명칭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
한자 명칭 | 韓國放送廣告振興公社 |
영문 명칭 | Korea Broadcast Advertising Corporation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2012년 5월 23일 |
설립목적 | ○ 방송광고시장 활성화와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및 다양성 구현 ○ 광고판매대행, 방송광고 균형발전 및 방송광고산업 활성화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 |
업종명 | 광고 대행업 |
전신 | 한국방송광고공사 (1981년 1월 20일 ~ 2012년 5월 22일) |
대표자 | 민영삼 |
주무기관 | 방송통신위원회 |
주요 주주 | 기획재정부: 100% |
기업 분류 | 준시장형 공기업 |
상장 여부 | 비상장기업 |
임직원 수 | 329명(2023년 4분기 기준) |
자본금 | 3,000억원(2020년 기준) |
매출액 | 연결: 1,249억 538만 800원(2020년 기준) 별도: 1,249억 538만 800원(2020년 기준) |
영업이익 | 연결: -304억 9,160만 8,116원(2020년 기준) 별도: -304억 9,160만 8,116원(2020년 기준) |
순이익 | 연결: 146억 5,466만 2,520원(2020년 기준) 별도: 146억 5,466만 2,520원(2020년 기준) |
자산총액 | 연결: 5,640억 4,816만 927원(2020년 기준) 별도: 5,640억 4,816만 927원(2020년 기준) |
부채총액 | 연결: 2,460억 9,586만 1,952원(2020년 기준) 별도: 2,460억 9,586만 1,952원(2020년 기준) |
자회사 | 코바코파트너스 KTBN 방송영상콘텐츠 전문투자조합 화이-코바코 콘텐츠 투자조합 |
미션 | 방송의 공공성ㆍ다양성 구현 및 방송통신광고시장 활성화를 통해 건강한 미디어생태계를 조성하고, 공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 |
비전 | 국민과 함께, 미디어와 함께, 스마트광고허브 kobaco |
소재지 | 본사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14/16/17/18층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한국광고문화회관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137 (신천동) 방송회관 -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233 (목동) 코바코연수원 -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강남로 1375 (화양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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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웹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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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S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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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전화번호 | |
대표전화: 02-731-7114 한국광고문화회관: 02-2144-0114 방송회관: 02-3219-5530 kobaco연수원: 02-3219-55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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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14/16/17/18층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 위치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본사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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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설립) 광고판매대행, 방송광고 균형발전 및 방송광고산업 활성화 등을 위하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공사"라 한다)를 설립한다. 제25조(법인격) 공사는 법인으로 한다. 제33조(유사명칭의 사용금지) 이 법에 따른 공사가 아닌 자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1] 제34조(감독 등) ①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사의 업무를 감독한다. ② 공사에 관하여 이 법 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상법」 중 주식회사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다만, 「상법」 제292조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부칙(제11373호) 제12조(다른 법령과의 관계) ① 이 법 시행 당시 다른 법령에서 종전의 「한국방송광고공사법」 또는 그 규정을 인용하고 있는 경우, 이 법 중 그에 해당하는 규정이 있는 때에는 이 법 또는 이 법의 해당 규정을 인용한 것으로 본다. ② 이 법 시행 당시 다른 법령에서 한국방송광고공사를 인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 법에 따른 공사를 인용한 것으로 본다. |
대한민국의 유일한 공영 미디어렙이기도 하다.
2. 상세
'한국방송광고공사법'에 근거하여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라는 상호로 설립되었고,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설립되었을때 네덜란드 방송광고협회(STER)[2]의 사례를 크게 참고했다.[3][4]1981년부터 1995년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모든 방송광고 거래 대행 업무를 독점했으며, 1990년대 중반에 케이블 방송이 시작되면서 형식상의 독점체제는 깨졌지만 여전히 지상파 방송국들의 광고업무를 독점적으로 대행했고, 2000년대까지도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이 케이블에 비해서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여전히 상당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었다.[5] 생각지도 않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한테 광고시장을 조금 빼았기긴 했어도 나름 지상파들 못지않게 힘이 있던 시절이었다.[6][7]
그러나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지상파 광고 독점 업무대행이 위헌결정이 났고 이후로 위 법률에 갈음하여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SBS와 지역민방 광고대행업무를 맡는 미디어크리에이트(현재의 SBS M&C)라는 회사가 설립되어 업무범위가 축소됨에 따라 2012년 5월 지금의 상호가 되었다.[8][9]
거기다 2010년대에 들어서 종합편성채널 등장, 카카오톡과 함께 새로운 모바일 시장의 탄생, CJ ENM 계열사들의 본격적인 성장으로 지상파 채널들의 시청률과 위상이 떨어짐에 따라, 코바코도 수익도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20년대부터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 수익원이 방송광고가 아닌, 유튜브 광고수익과 OTT 프로그램 판매수익으로 점점 바뀌면서 코바코의 위상도 예전같지는 않게 되었다.[10]
산하 기구로는 공익광고협의회가 있으며, 노조는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SPOTV의 광고 판매를 담당한 적이 있다.[11]
3. 역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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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두표 (1981~1986)[12]
- 하순봉 (1986~1988)[13]
- 남웅종 (1988~1993)[14]
- 성낙승 (1993~1996)[15]
- 서병호 (1996~1998)[16]
- 배기선 (1998~2000)[17]
- 강동연 (2000~2003)[18]
- 김근 (2003~2006)[19]
- 정순균 (2006~2008)[20]
- 양휘부 (2008~2011)[21]
- 이원창 (2011~2014)[22]
- 곽성문 (2014~2017)[23]
- 민원식 사장대행 (2017~2018)[24]
- 김기만 (2018~2021)[25]
- 이백만 (2021~2024)[26]
- 민영삼 (2024~)
4. 사업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한다(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 방송광고의 판매대행
- 네트워크 지역지상파방송사업자와 중소지상파방송사업자에 대한 지원 등 방송광고 균형발전을 위한 지원 사업
- 방송광고제작산업 육성, 광고 표준화, 광고효과 측정, 광고 유통기반 구축·운영, 광고 관련 조사·연구·교육, 공익광고 등 방송통신광고산업 진흥 관련 사업
- 시청점유율 조사·검증·산정 관련 방송통신위원회가 위탁하는 업무
- 그 밖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광고산업 육성을 위하여 위탁하는 업무
- 이상의 사업에 부대되는 사업
4.1. 거래사
5. 사훈
개발하는 의지, 창조하는 행동, 화합속의 약진
6. 사가
작사는 본사 사가제정위원회, 작곡은 이범희가 맡았다.(1절)개발의 터전이다 문화의 새빛이다 앞서가는 우리가 모인 이곳은 우리문화 꽃피워갈 바탕이라네 창조하는 행동으로 힘을 합하여 더 넓게 바꿔나갈 공익의 전당 아아 우리는 한마음 하나로 뭉친 공익의 역군이다 방송광고공사 (2절)드높은 개발의지 광고문화 빛 밝히며 그 빛이 있는 곳에 광고인 모여 공익광고 문화예술 함께 있는 곳 화합속에 도약으로 힘을 합하여 세계로 펼쳐나갈 광고의 전당 아아 우리는 한마음 하나로 뭉친 광고의 역군이다 방송광고공사 |
7. 사건 사고
7.1. 건물 소유·운영권 갈등
한국언론진흥재단과의 한국언론회관(한국프레스센터)의 갈등에 대해 서술한 문단이다. 공공기관끼리 소송전을 하고 있었으나, 마무리되었다.#1984년 문화공보부 주도로 작성된 '한국언론회관 운영계획'에는 수입구조가 취약했던 사단법인 한국언론회관(현 한국언론진흥재단)[30]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는데, 1985년 신문회관 건물이 있던 자리에 정부가 주주였던 서울신문과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자금으로 지어졌음을 감안하여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층별로 나눠 건물 소유권을 갖고,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소유한 9개층의 관리·운영권은 사단법인 한국언론회관이 맡도록 한 것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한국방송광고공사이던 당시에는 광고 거래를 독과점으로 해먹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1995년 즈음 케이블 방송이 등장하면서 독점이 깨지고,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지상파 광고판매 독점마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수익성 측면에서 비상이 걸리게 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입장에서는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정부 도움은 적고 알아서 수익 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성격이 강해졌는데, 임대료 장사로라도 뽑아먹기 좋은 서울 한복판(중구 태평로)의 건물을 그냥 놔두기엔 너무 아까워졌고, 한국언론진흥재단 입장에서는 재단법인 특성상 영리성이 약한데 임대료를 물거나 쫓겨나야 되는 신세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과거 문화공보부(1968~1990년) 시절에는 소관부처가 단일화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부처에서 적절한 조정이 가능했었으나,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후 2012년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소관 기관마저 바뀌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그대로 문화체육관광부 아래 있게 되면서 상위기관 간에도 잡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2013년 기획재정부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한국언론회관 9개층 가운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사용하고 있는 3개 층은 공사 소유로 하고, 나머지 6개 층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유로 하되 재단이 관리·운영하는 안을 내놨다.#
2014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운영권 관련 계약을 2013년 12월 말일자로 파기한다고 통보했는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정부광고 독점대행으로 2015년 당기순이익 186억 원의 안정적 조직으로 성장했으나 30여 년간의 특혜를 누리고자 비정상적 계약조건을 유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프레스센터 운영에 따른 연간 순이익이 5억 원 정도여서 처음에 이 금액을 주겠다고 했으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거부했다. 이후 관리비 4억을 포함해 연간 9억 원을 제시했으나 역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법정 다툼에 이르러 2016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계약 파기를 통보한 2014년부터 발생한 임대료와 지연손해금 등 157억원을 언론재단이 공사에 줘야 한다(서울신문 소유분 제외)며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결국 법정 다툼으로 흘러가 2017년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5부(부장 임태혁)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을 상대로 2017년 1월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소송에서 “언론재단은 공사에게 220억 7,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결과가 확정되는 게 아니다. 당사자들이 합의하면 판결보다 합의가 우선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송비까지 들게 된 입장인 공사 측이 합의를 시도할 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측도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라 합의는 요원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언론진흥재단에 팔이 굽게 된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관훈클럽,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언론6단체는 정부의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 관련 단체들이 재단 편을 들고 있지만, 한국방송협회 등 방송 관련 단체들은 공사 편을 드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는데 이는 방송협회 자체가 각 방송사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고, 방송광고 독점이 깨진 이상 방송사들에게 공사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사들이 재단편을 드는 기사를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신문사들이 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때문이다. 특히 중소신문사의 경우 재단의 지원금이 경영과 생존에 큰 역할을 하기때문에 그들에게 재단은 소위 "갑"이된다. 재단사업에 언론인재교육, 복지증진, 해외연수, 언론인대출 등의 사업이 있어 대형이든 소형이든 신문사들도 재단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재단측의 의견을 옹오하는 기사를 많이 낸다.
최종적으로, 2020년 12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관리·운영권을 두고 갈등을 겪었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와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극적 합의했다. 언론재단은 30일 코바코에 부당이득금과 지연이자 일부를 지급했고 코바코는 31일 관련 소송을 취하했다. #
코바코와 언론재단은 새로운 계약조건을 세부 합의했으며(21년 1월), 언론재단은 프레스센터 12층~20층 관리·운영을 맡고 임대료를 코바코에 내는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8. 노동조합 현황
9. 공채 논란
2024년 하반기 공채 2024년 10월 22~ 11월 4일 18:00까지*https://www.kobaco.co.kr/site/main/content/recruit_1
2023년까지의 공채 서류평가 기준
직무관련이 75%, 자기소개서 25% 이상적인 비율
2024년 하반기 공채 서류평가 기준
공인외국어성적(토익,토플,텝스)의 비율이 80% 가중치, 자기소개서 20% 비율
많은 취준생한테 비난을 받고있다
10. 여담
- 방송프로그램 반응을 집계하는 시스템인 RACOI를 방송통신위원회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
- 한국 아이돌 팬들도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기업인데, 연예인 팬미팅과 싸인회에 자주 활용되는 목동 방송회관 코바코홀을 이 회사가 소유하고 있으며, 운영은 리딩컨버젼스에서 맡아서 하고 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1] 특이하게도 위반시의 과태료 제재 규정이 없다. 이 법률의 전신인 구 한국방송광고공사법도 마찬가지이기는 했다.[2] 네덜란드 공영방송인 NPO의 광고판매를 담당한다.[3] 이는 언론통폐합으로, 민영방송이었던 문화방송과 동양방송이 강제적으로 공영방송으로 전환된것이 크다.[4] 이 때문에 KBS는 블록광고도 잠깐 실시한 적이 있었다. 다만 수익문제와 수신료 징수 문제 때문에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5] 이때는 종합편성채널도 없었고 CJ ENM 계열 케이블 방송국들도 아직 투자를 제대로 못 받았던 시기라 지상파들과 시청률 차이가 차원이 달랐다. 지상파계열 케이블 방송국들(사실상 재방송 채널)한테도 밀리던 시절이었고 오죽하면 3%만 넘겨도 기적이라고 놀라워 했던 시기였다.[6] 무조건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서만 MBC, KBS2, SBS(와 네트워크 일동), EBS한테서 광고를 내보낼 수 있었기에 인기 프로그램들 광고와 비인기 프로그램 광고 시간대를 무조건 묶어 팔아 엄청난 이득을 볼 때였다.[7] 다만 그렇다고 해서 폭리만 취한건 아니었다. 나름 공영 미디어랩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했다. 종교방송이나 지역방송(공영, 민영 구분없이) 같은 비인기 방송사들 프로그램들도 같이 묶음판매 했었기에 비난은 별로 받지 않았었다.[8] 이때 청구인은 방송사들이 아니라, 한 민영 미디어렙 회사이다.결국 SBS만 도와줬다[9] 이때 공영방송사들(MBCKBS,EBS)이나 민영방송사들(지역민방,종교방송들) 전부 환영한다기 보다, 굉장히 떨떠름 했었다. 어차피 정부가 대주주인 공영방송사들은 코바코를 이용해야했고, 민영방송사들도 코바코의 강력한 권한(독점판매와 묶음판매)으로 꽤나 많은 수익을 챙겼기에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종교방송들과 경인방송 같은 독립민방이 전부 코바코에 잔류한 건가 싶기도..[10] 과거에는 묶음판매로강매 광고를 엄청나게 팔아치웠기에, 비인기 프로그램들도 꽤나 많은 광고를 송출했지만(윤도현의 러브레터, 주말의 명화 등) 이제는 아예 안나오거나 1개만 송출(그것도 자사 프로그램 홍보가 대다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 TV광고를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11] 2019년부터는 자체 광고영업으로 전환했다.[12] 1935년생, 인천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한국관광공사 사장, 동양방송 사장, KBS 사장(10대 ~11대 연임), 로또공익재단 이사장, JTBC 고문,TV조선 회장을 역임했다. 재연배우였던 김태영과 얼굴이 닮았다.[13] 1941년생, 진주시 출신, 진주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MBC 보도국 정치부장, 국무총리비서실장&제11·14·15·16대 국회의원, 현 국민의 힘 상임고문[14]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장, 본기관 감사[15] 1935년생, 부산광역시 출신, 대건고, 고려대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 서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언론학 박사 학위 취득, 불교방송 사장, 금강대 총장[16] 1938년생, 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공보처 공보정책실장·종합홍보실장, JEI재능방송 부회장[17] 1950년생, 무안군 출신, 광주일고,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제정치외교학 석사, 광주일고총학생회 회장, 평화민주당 선거대책본부 대외협력위원회 위원, 평화민주당 총재보좌역, 민주당 대통령후보비서실 기획담당 차장, 부천지역자치발전연구소 이사장, 조순서울시장후보비서실 실장, 국민대총동문회 부회장, 새정치국민회의 부천원미을지구당 위원장, 사단법인 지방정부연구원 이사장,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 새정치국민회의 대선전략기획팀 팀장, 고려대정책대학원교우회 회장, 한국 프레스센터 이사, 예술의 전당 이사, 방송진흥원 이사, 서울 NGO 세계대회 자문위원, 한미문화재단 이사부천사랑 문화센터 이사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국방위원회 간사,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제1정조위원장・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 중앙회장,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깨끗한정치실천특별위원회 위원장, 한국연극배우협회 후원회장, 제17대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운전면허 소유자이며, 쌍용 체어맨을 자가용으로 당시 소유하고 있었다, 제14·16·17대 국회의원[18] 1942년생, 광주일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운전면허 소유자였으며, 주 일본 삿뽀로총영사관 영사, 주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기획조정실 부실장, 사무부총장, 국민회의 강남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안타깝게도 2004년 1월 7일 지병으로 향년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19] 1942년생, 전주고, 한국외대 서반아어과(스페인어과) 졸업, 동아방송 기자, 한겨레신문 경제부 편집위원-논설위원-편집위원장-논설주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위원,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이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국제언론인협회 이사, 한국신문협회 감사, 2008년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위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지도부의 최고위원 역임, 안철수계로 분류이며,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 이후 안철수의 국민의당 창당 때 창당발기인으로 합류했다.[20] 1951년생, 경희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 (사회부·정치부 차장, 체육부장, 편집부국장),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 겸 대변인, 국정홍보처 차장(3대,5대),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 문재인 후보 언론특보단장,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언론고문, 前 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21] KBS 기자, KBS 뉴스 9 앵커 , KBS창원방송총국장, 한나라당 입당 및 한나라당 언론담당 총재 특보, 제2기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한국프로골프협회 KPGA 회장[22] 경향신문, MBC 보도국 기자, 경향신문 외신, 사회부장•논설위원, 관훈클럽 임원, 내무부 정책자문위원, 한나라당 총재 언론특보•선대위 대변인, 국회 행정자치위원, 한빛은행 불법대출 조사특위위원, 대한합기도연맹 총재,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제16대 국회의원[23] MBC 보도국 기자, MBC ESPN 대표이사 사장, 한나라당 홍보위원장, 제17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제17대 국회 한미FTA 특별위원회 위원,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특별위원회 위원[24] 1984년 제4기 공채 입사 정책협력국장, 영업2국장, 상근이사 겸 영업본부장, 전무이사 권한대행을 맡아 2018년 9월까지 임무를 수행했다.[25] 전국경제인연합회 연구원, 동아일보 프랑스(파리)특파원, 기획팀장, 언론노조 지부 노조위원장 대통령비서실 해외언론비서관, 보도지원비서관, 춘추관장, 국내언론1비서관, 부대변인 한국키즈TV 사장, 열린우리당 언론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전북지방발전연구원 원장 국회 의장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게임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우석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초빙교수[26] 매일경제신문 기자, 한국일보 경제부장, 서울경제신문 정경부장,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한국경제TV 보도본부장, 국정홍보처 차장,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목포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노무현재단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주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특명전권대사[27] 지역 문화방송의 경우, KBS와 다르게 법인이 전부 분리되어 있다.[28] 수도권 한정, 지역국의 경우는 광고방송을 하지 않기 때문[29] U-KBS, MBC DMB, YTN DMB, 지금은 폐국한 U1과 QBS의 광고를 집행한다. SBS U의 광고도 미디어크리에이트로 분리하기 이전에는 여기서 집행했다.[30] 1999년 한국언론회관(1962년 사단법인 한국신문회관 설립 후 1984년 한국언론회관이 됨)+한국언론연구원(1964년 사단법인 한국신문연구소 설립 후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이 됨)+한국언론인금고(1974년 재단법인으로 설립) 통합으로 한국언론재단이 되고, 2009년 한국언론재단+신문발전위원회(2005년 10월 신설)+신문유통원(2005년 11월 신설) 통합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된다. 사실 한국언론회관은 사단법인으로 민간기관 성격을 띄고 있었고, 이 때문에 5공 정권(전두환)에 회관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