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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31 14:16:31

플류트

1. 개요2. 상세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leuten_1647.jpg
플류트 그림(출처: 위키백과)
파일:modelships_Fleute_2.jpg
플류트를 복원한 모델(출처: 독일 역사 박물관)
플류트(Fluyt)는 16세기 말에 네덜란드에서 개발한 화물선이다. 기존의 상선들이 해적을 상대하기 위한 무장을 갖추었던 것과는 달리, 해전 능력의 대부분을 포기한 대신에 건조비를 낮추고 화물 수송 능력을 최대화시킨 설계를 적용하였다.

2. 상세

16세기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무역량이 증가하고 발트해서유럽 연안의 해적이 거의 완전히 소탕되자, 더 많은 화물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해상 수송하려고 네덜란드에서 개발한 상선이다. 영국과 같은 다른 나라도 화물선으로써 네덜란드 플류트의 우월성을 목격하고 곧 플류트를 따라한 함선을 개발하였기에, 플류트는 17~18세기 기간동안 서유럽에서 표준적인 상선이었다. 대체로 배의 크기가 200~300 톤급에 길이는 24 m 전후였다.

이전의 갤리온에서 파생된 형태이지만 바닥을 비교적 평평하게 하고 배의 측면이 상갑판보다 양쪽으로 불룩하게 나오게 디자인하였다.[1] 또한 대포의 반동을 흡수하거나 적의 포격을 견디기 위한 강화 구조를 과감하게 포기하였다. 덕분에 적재 공간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건조비도 다른 동급의 선박 대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돛줄을 조작하는데 도르래를 최대한 많이 적용하여 더 적은 선원수로 배를 운용할 수 있었다.[2]

크기가 적당히 작고 배의 깊이가 낮아서 얕은 수심의 바다나 강에서도 운용할 수 있었는데, 당시 유럽의 주요 대도시런던, 암스테르담, 세비야 등이 얕은 바다를 끼고 있거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당도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할때 화물선으로 가장 효율적인 배였다.

플류트는 17세기 네덜란드 전성기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실제로도 1670년 유럽 물동량의 절반(568,000t)은 네덜란드 선박에 실려 운반되었다. 플류트의 등장으로 물류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자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무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18세기 대량생산 기술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본래 유럽 근해에서의 항해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배이지만 대륙간 항해에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청교도들이 미국 대륙으로 건너가서 식민지를 만들때 탔던 메이플라워 호도 플류트 형식의 배였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도 절찬리에 사용했다. 또한 원래 순수한 상선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필요하면 대포 몇 문 정도를 싣고 다니기도 했다.

플류트에 대해 널리 퍼진 오해 중에 하나가 덴마크가 해협 통과 요금을 갑판 너비에 비례해 매겼기 때문에 배의 갑판폭을 좁게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세관원은 배의 폭을 측정할 도구를 전혀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갑판 너비를 기준으로 요금을 매기지도 않았다. 플류트의 갑판 폭을 좁게 설계한 이유는 적은 선원수로 최대한 많은 화물을 운반하려는 목적이었지 해협 통과 요금 때문은 아니었다. #


[1] 이런 배의 형태 때문에 배의 속력이 빠른편은 아니었다.[2] 보통 35명의 선원이 탑승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5~10명으로도 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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