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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제국 3대 샤한샤 𐭐𐭓𐭉𐭐𐭕 | 프리아파티오스 | ||
제호 | 한국어 | 프리아파티오스 |
파르티아어 | 𐭐𐭓𐭉𐭐𐭕 | |
영어 | Priapatius | |
존호 | 샤한샤 | |
생몰 년도 | ? ~ 기원전 176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191년~ 기원전 1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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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르티아의 제3대 샤한샤.마그네시아 전투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이 약해진 틈을 타 독립했다.
2. 생애
1955년 파르티아 최초의 수도 니사에서 발굴한 오스트라콘에 따르면, 제9대 샤한샤 고타르제스 1세(기원전 91년 ~ 기원전 87년 재위)의 조부이며 아르사케스 2세의 조카라고 한다. 기원전 191년 아르사케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치세에 주조된 주화의 앞면엔 부드러운 모자를 쓰고 있는 수염없는 초상화를 새겼고, 뒷면에는 그가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초상화 위에는 BAΣΙΛΕΩΣ(바실레프스)라는 그리스식 군주의 호칭이 기재되었는데, 이는 파르티아 건국 이래 최초로 그리스식으로 왕의 호칭을 지은 것이었다. 파르티아 샤한샤들은 이때부터 동전에 바실레프스를 동전에 기재했다.한편, 동전에는 ΜΕΓΑΛΟΥ(Μέγας: 대왕)이라는 호칭도 기재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190년 12월 마그네시아 전투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가 약해진 틈을 타 잃어버렸던 영토를 탈환하고 독립을 쟁취한 업적을 기리는 의도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주화는 기원전 176년까지 발행된 것을 볼 때 그 즈음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후 프라아테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