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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22:03:49

풍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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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군 창산군
※ 실제 혈통이 아닌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선은 친자, 점선은 양자 관계임
※ 왕족 / 황족으로서 정식 봉호가 있는 사람만 기재함
※ 은신군은 영조의 동생 연령군의 후사를 이었으나 당시에는 장조 의황제의 아들로 간주하여 그 후손들에게 황족 작호를 수여함
※ † 기호는 사후 추증된 인물이며, 흥선헌의대원왕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수립 이전 사망한 왕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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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대원군 영평군 청안군 (풍선군)
제4대 - 제5대
청풍군 (이완주) (이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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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동궁 추증 궁주
대한제국 장조의 5대손
풍선군 | 豐善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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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장종의 5대손
풍선군 | 豐善君
봉호 풍선군(豐善君)
이름 이한용(李漢鎔)
출생 1875년 2월 19일
사망 1890년 8월 1일 (향년 15세)
1. 개요2. 생애 및 사후3.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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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왕족. 조선 25대 임금 철종의 형인 영평군 이경응의 양손자이고 청안군 이재순양자이다.

2. 생애 및 사후

1875년(고종 12년) 2월 19일, 소현세자의 8대손 이재철(李載徹)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왕실 직계와는 250년 전인 인조 때 갈라져서 당시 풍선군과 그의 일가는 왕족이 아니었다. 그러나 청안군 이재순의 아들로 입양가면서 왕실과 가까운 친척이 되었다.[1] 그의 본래 가계는 다음과 같다.
인조 이종 - 소현세자 이왕 - 경안군 이회 - 임창군 이혼 - 밀원정 이용 - 이항석[2] - 이원형 - 이정현 - 이교응[3] - 이재철 - 풍선군 이한용

1890년(고종 27년) 8월 1일에 1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홍제원 답동리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경기도 포천군 주내면 선단4리[4] 산 11번지 전계대원군 묘소 근처로 이장하였다. 그의 묘소는 전계대원군과 완양부대부인 내외의 묘소, 소실 용성부대부인 묘소의 동쪽 150m 지점에 있다.

순종 때인 1907년(융희 원년) 10월 14일에 종2품 가선대부 종정원경(嘉善大夫 宗正院卿)에 추증되었고, 풍선군(豐善君)으로 추봉되었다.[5] 즉 풍선군의 작호는 죽은 뒤 받은 것. 1909년(융희 3년) 7월 20일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正二品資憲大夫奎章閣提學)에 추증되었고 1910년(융희 4년) 8월 21일 순정효황후가 풍선군의 아내인 정부인 홍씨에게 훈 2등에 서훈하고 서봉장(瑞鳳章)을 하사하였다. 이후 풍선군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3. 후손

양할아버지양아버지처럼 자녀가 없다. 애초에 16세의 나이에 요절하였으니. 그래서 또 다시 입양으로 대를 이어야 했다.(...)

풍선군의 양자로 덕흥대원군의 후손인 이해승을 데려다 입적시켰다.[6] 단 청풍군 이해승의 자녀들부터는 진짜 친자식들이다. 슬하에 아들 3명을 두었지만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일제 치하 1943년에 자신보다 먼저 죽었고 그 자신도 1950년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다. 그의 장손이 바로 그랜드힐튼 서울의 이우영 명예회장. 즉 풍선군의 후손이 현재 그랜드힐튼 서울 오너 일가이다.
[1] 언제 입양이 되었는 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한용의 입적 후 정작 본인의 후사가 끊긴 생부 이재철은 조카 이복용을 양자로 들였다. 사족으로, 이복용의 친부이자 이한용의 친숙부(이재철의 친동생) 이재민은 소현세자의 7대 종손 이호응의 양자로 입적하여 소현세자의 8대 종손이 되었다.[2] 생부는 밀원정 이용의 형 밀풍군 이탄[3] 초명은 이경섭. 1868년(고종 5년)에 이교응으로 개명.[4]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 선단4통.[5] 봉호는 양어머니의 본관 풍산 홍씨의 관향지인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豊山邑)에서 유래했다. 풍선군과 같은 항렬의 또 다른 왕족이었던 영선군 이준용의 어머니도 본관이 풍산 홍씨였는데, 안동의 별호인 영가(永嘉)에서 유래한 것이다.[6] 1908년(융희 2년) 청풍군(淸豊君)으로 책봉. 근데 눈여겨 볼 건 이미 이 전에 이해승의 직계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입양이 되었단 점이다. 실제로는 월산대군의 후손. 그래서 풍선군과는 실제 혈통 상으로 33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