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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모잠비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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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모잠비크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2.2. 20세기2.3. 21세기
3. 경제 교류4. 문화 교류
4.1. 스포츠
5. 교통 교류6. 공동체7. 관련 기사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모잠비크의 관계를 설명한 문서. 양국 모두 포르투갈은 강국들, 모잠비크는 약소국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각각 대륙간 교류의 중요성, 빈곤의 심각성을 조명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국가들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에 모잠비크 일대를 침략했다. 1498년부터 포르투갈은 모잠비크를 식민지배했다.# 대항해시대 당시 아시아 식민지와 포르투갈 본토를 잇는 보급 기지로 활용하였고, 많은 모잠비크 흑인들이 노예가 되거나 군인, 선원으로 징집되어 아시아 식민지 각지로 파견되었다. 비교하자면 대서양의 포르투갈 식민지 앙골라 출신 흑인들은 주로 브라질로 플랜테이션 혹은 광산 노예로 끌려갔었다면, 인도양과 근접한 모잠비크 출신들은 주로 군인이나 선원으로 활용되었으며 포르투갈 아시아 식민지 경영의 핵심 인력을 담당했다.

2.2. 20세기

20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했다. 식민 지배 당시 마푸투 등 남아공 주변 항구들이 건설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모잠비크 관계 및 상호 교류[1]에 영향을 주고 있고[2] 모잠비크 무역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곧 모잠비크의 양극화를 불러일으켰으며 모잠비크 내에서 포르투갈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다. 교통망 건설로 원주민들이 강제로 흩어진 경우도 빈번했었고 심지어는 주요 요직들을 포르투갈인들이 독점했다.# 게다가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의 지배 시절에는 교육을 받지 못해 독립 이후에는 문맹률이 90%에 달했다.#

1975년에 포르투갈령 모잠비크는 모잠비크란 국명으로 포르투갈에서 독립했다.# 모잠비크는 독립 이후, 수도 이름을 로렌소 마르케스에서 마푸투로 바꿨다.#

1992년 2월 20일, 포르투갈 정부는 86년 6월부터 포르투갈에 계속 거주한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카보베르데 출신 불법이민들에게는 영주권을 주기로 했다.#

2.3. 21세기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 가입돼 있다. 포르투갈의 투자 및 국력 성장 지원의 영향으로 현재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수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모잠비크 국민들은 역사적 이유로 포르투갈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포르투갈이 모잠비크를 상당히 중요시하는지라 포르투갈 기업이 모잠비크로 진출하는 것은 모잠비크에 기본적인 인프라가 세워질 때 까지는 이후 모잠비크 산업 발전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양국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며,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의 포털 사이트 SAPO 모잠비크는 지역 언론보다 국제 언론을 다루는 편이다.

2013년 11월 30일, 모잠비크에서 앙골라로 향하던 비행기가 나미비아에서 추락해 모잠비크, 앙골라, 포르투갈, 프랑스, 브라질, 중국 등 탑승객 33명이 사망했다.#1#2#3

2014년, 포르투갈의 전 축구선수 에우제비우가 사망하자 양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포르투갈 정부는 에우제비우가 사망하자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2021년 11월 4일, 포르투갈과 미국은 모잠비크에 특수부대를 파견했고 유럽연합도 모잠비크를 지원했다.#

11월 28일, 포르투갈 보건당국은 마푸토에서 포르투갈로 도착한 승객 200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12월, 포르투갈 정부는 앙골라, 모잠비크, 동티모르에 코로나19 백신을 무상공여한다고 밝혔다.#

3. 경제 교류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포르투갈 기업들이 모잠비크에 많이 진출해있다.# 포르투갈은 모잠비크의 중요 무역국으로 성장했다. 포르투갈과 모잠비크는 현재도 인도와의 중개무역 등으로 중요 무역 파트너이자 앙골라의 자원 민족주의 견제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양국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남아공과 포르투갈의 제품들이 모잠비크 시장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포르투갈 북부 가스광구의 지분을 한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모잠비크가 소유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모잠비크, 앙골라, 카보베르데로 이주하는 포르투갈인들이 늘어났다.#

4. 문화 교류

전술했다시피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회원국이다. 모잠비크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는 유럽식 포르투갈어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포르투갈의 지배 시절에 생겨난 피리피리 치킨이 모잠비크와 앙골라는 물론, 포르투갈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4.1. 스포츠

포르투갈 리그에는 모잠비크 출신 축구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전 축구선수 에우제비우포르투갈령 모잠비크에서 태어났다.#

2008년 7월 3일, 모잠비크 출신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코치가 포르투갈 축구팀의 감독으로 내정됐다.#

2010년 6월 9일, 포르투갈 축구팀이 모잠비크 축구팀과의 경기에서 승리했다.#

5.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포르투갈 항공사가 모잠비크 등 구 포르투갈령 지역들을 중심으로 항공노선을 두고 있다.#

6. 공동체

포르투갈 내에는 모잠비크 출신 공동체가 존재한다.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모잠비크인들은 포르투갈 흑인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예컨대, 에우제비우 등).

포르투갈령 모잠비크 시절부터 포르투갈인들이 많이 정착했다. 포르투갈령 모잠비크가 독립한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남아공 등 주변국들과 포르투갈로 대부분 돌아갔다. 포르투갈의 경제 상황이 안좋아지자 모잠비크에 정착하는 포르투갈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1#2#3

2010년대 후반, 포르투갈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브라질, 모잠비크 등 포르투갈령 지역에 거주하는 포르투갈계 후손들의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7. 관련 기사

8. 관련 문서



[1] 허허벌판이었던 남아공 북동부에 대 모잠비크 산업단지가 생겨 크게 발전했고 모잠비크-남아공 사이의 노동력 교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2] 대표적으로 모잠비크 라디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주변국 라디오의 전신급이며, 이는 라디오국이 위치한 마푸투가 남아공과 가깝고 영토가 넓어 최남단 마푸투에서 북부까지 수신이 되다 보니 주변국들 및 요하네스버그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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