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 | |||||||
대한민국 | 일본 | 중국 | 인도네시아 | 동티모르 | ||||
인도 | 마카오 | |||||||
유럽 | ||||||||
러시아 | 독일 |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 ||||
스페인 | ||||||||
아메리카 | ||||||||
미국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브라질 | 우루과이 | |||||
아프리카 · 북아프리카 | ||||||||
모잠비크 | 카보베르데 | 기니비사우 | 앙골라 | 상투메 프린시페 | ||||
적도 기니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세네갈 | 나이지리아 | 모로코 | ||||
다자관계 | ||||||||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 ||||
대한민국 | 중국 | 포르투갈 | 브라질 | 기니비사우 | |
세네갈 |
포르투갈 | 카보베르데 |
1. 개요
포르투갈과 카보베르데의 관계. 카보베르데는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서 포르투갈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다.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원래 카보베르데 지역은 무인도였다. 대항해시대부터 카보베르데 지역의 무인도를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했다.# 포르투갈은 카보베르데의 무인도를 발견하면서 정착지를 세웠다. 정착지를 세운 뒤에 아프리카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카보베르데를 거점 지역으로 삼았다. 포르투갈의 지배 기간,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카보베르데에 정착하거나 카보베르데를 통해 브라질이나 카리브 지역으로 끌려갔다. 그 과정에서 포르투갈인과 흑인 혼혈인 뮬라토까지 생겼다.2.2. 20세기
포르투갈의 지배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포르투갈령 지역들의 독립 열기가 이어졌다. 고아와 다만디우는 인도측에 포르투갈에 선전포고를 했고 결국 되찾았다. 아프리카의 다른 포르투갈령 지역들도 독립 전쟁을 치렀고 카보베르데 지역에서도 독립 열기가 높아졌다. 나중에 카보베르데는 20세기에 독립하게 되었다.1992년 2월 20일, 포르투갈 정부는 86년 6월부터 포르투갈에 계속 거주한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카보베르데 출신 불법이민들에게는 영주권을 주기로 했다.#
2.3. 21세기
카보베르데는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포르투갈과 협력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부 포르투갈인들이 카보베르데에 정착하고 있다.2009년 11월 24일, 카보베르데에서 뎅기열이 확산돼 카보베르데 방역당국이 프랑스, 포르투갈, 스위스로부터 방역팀을 받아들였다.#
2019년 8월 5일, 카보베르데에서 브라질, 포르투갈, 카보베르데 경찰이 협력해 브라질의 코카인 밀매 조직을 체포했다.#
3. 문화 교류
포르투갈의 지배와 영향으로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지만,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포르투갈어 크레올을 사용하고 있다.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도 가입돼 있다.포르투갈과 카보베르데의 관계는 포르투갈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 영화의 주요한 소재기도 하다. 용암의 집, 행진하는 청춘, 호스 머니, 비탈리나 바렐라 같은 영화에서 포르투갈로 이민 온 카보베르데인과 반대로 카보베르데로 떠난 포르투갈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특히 호스 머니에서는 포르투갈에 정착한 카보베르데 노동자들이 카네이션 혁명 당시 고생했다는걸 알수 있다.
3.1. 스포츠
2015년 3월에 포르투갈과 카보베르데는 축구경기를 개최했는데 카보베르데가 승리했다.#4. 경제 교류
카보베르데는 흑백혼혈인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포르투갈인과의 통혼, 인적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역사를 가지고 있을정도로 경제 역시 포르투갈과 상당한 밀접한 부분을 차지한다. 통화 역시 에스쿠도를 사용하는데 이는 포르투갈이 유로로 바꾸기 직전 사용했던 통화이다.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이 유로로 바꾸기 전 에스쿠도와 연동시켰다가 2002년에 유로로 바꾸자 카보베르데 에수쿠도를 유로와 연동시켰다.카보베르데의 주력산업은 농업, 어업, 관광업, 항만산업인데 이 역시 포르투갈 기업과 협력업체 혹은 하청업체 구조로 되어있으며 여러 개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보니 유통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포르투갈로부터 연료, 정제 오일, 화물트럭, 자동차 등을 수입을 하여 경제를 활성화한다.[1] 그러다 보니 카보베르데의 수입국 비중이 무려 40%가 포르투갈이 차지할 정도로 포르투갈의 수입 제품에 상당히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5.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포르투갈과 카보베르데를 잇는 노선이 있다보니 양국간에도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리스본 공항과 프라이아 항공에는 양국을 잇는 항공 노선이 존재하며 양국 국민들은 항공노선을 통해 자주 왕래하고 있다.6. 관련 문서
- 포르투갈/외교 / 포르투갈/외교/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 카보베르데/외교
-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 포르투갈/역사
- 카보베르데/역사
- 포르투갈/경제
- 카보베르데/경제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서아프리카 국가
[1] 여러 섬을 다니는 배 혹은 섬 내부에서 유통할 수 있는 차량에 필요한 에 필요한 연료나 부품을 포르투갈에서 주로 수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