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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2:52:41

펜은 칼보다 강하다

1. 개요2. 실체3. 비판과 반론4. 예시5. 창작물에서6. 여담

1. 개요

전적으로 위대한 사람의 지배 하에서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
Beneath the rule of men entirely great,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에드워드 불워-리튼[1]

보통 문학이나 언론의 영향력을 표현할 때 쓰는 문장.[2] 즉, 무기로서 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다. 비슷한 표현은 이전부터 존재한 듯하다.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문장은 기원전 7세기경 아시리아 설화에 나오는 주인공인 아히칼이 한 말로, "The word is mightier than the sword."(말은 칼보다 강하다)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작가 유리피데스는 “The tongue is mightier than the blade."(혀는 칼날보다 강하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수단은 칼(폭력)이 될 수밖에 없지만 원초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집단을 구성하고 문제들을 중재하려 나섰으며 중재의 권한은 결국 입과 펜을 놀릴 줄 아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갔다. 무조건적인 폭력으로 공멸하기보단 폭력의 정당성을 논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폭력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입을 놀리는 사람들(정치인, 언론인 등)이기 때문에 저 속담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정치인의 법률 제정에 국가 전체가 흔들리거나 개선되며, 언론인의 기사 한 줄에 부조리가 밝혀져 악인이 처벌 받는 등이 그 예시다. 즉, 지배 관계로 치자면 펜이 칼을 직접 이길 수는 없지만 넓디 넓은 사회에선 펜이 칼을 지배하는 입장인 것이다.

2. 실체

다만 에드워드 불워-리튼의 저 말은 본인이 직접 한 말은 아니고 리튼이 집필한 희곡 '리슐리외'[3] 2막 2장에 나온다. 그리고 상기한 대사 뒤에는
"펜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펜에 깃든 권력이라는 마법, 이것을 보아라. 황제들은 얼어붙고 대지는 조용해질 것이다. 권력자들로부터 칼을 뺏어도 나라는 구원받을 수 있다."

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불워-리튼이 리슐리외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언론이 아니라 좀 더 실체적인 힘, 즉 관료제를 말한다.

3. 비판과 반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마오쩌둥[4]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람들은 자동화기[5]의 위력을 보지 못한 작자들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맥아더는 그가 살던 당시 무시무시하게 발전했던 화기들의 위력을 보고, 펜으로 표현되는 것들을 무력하다고 느꼈는지 저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한 맥아더는 펜의 대표자에 의해 잘렸다. 그가 전장에 나가 싸웠던 것들 모두가 펜의 대표자들에 의해 지휘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맥아더의 비판에 대해 반론할 거리는 여전히 있는 셈이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해당 국가를 통치하는 수뇌부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펜의 역할이었고, 항상 군대 같은 무력집단을 아래로 두었다.

쿠데타를 예시로 펜이 칼보다 강한 것은 칼을 펜으로 통제하는게 가능할 때 이야기일 뿐이라지만 정작 쿠데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민중의 지지를 받기가 매우 어려우며 결국 정당성 없는 쿠데타는 또다른 쿠데타를 불러오든, 아니면 민중의 혁명으로 퇴진되든 할 뿐이니 쿠데타 또한 칼이 펜을 역전하는 상황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이 반론도 반박할 수 있는데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프랑스 혁명, 신해혁명과 같은 수많은 혁명들은 '칼'로 대표되는 무력이 없었다면 절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문민통제가 아예 없었다고도 볼 수 있는 중국의 군벌 시대에서 천성 정치인이자 펜을 가진 왕징웨이는 칼을 가진 장제스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다.[6] 즉, 펜이 아무리 영향력이 크다고 한들 어쨌거나 실질적인 힘은 펜이 아니라 칼이다. 물론 그 혁명도 동물적인 광기(...)에 기반해 아무렇게나 이루어진 목적 없는 파괴가 아닌 혁명 이론을 기초에 두고 있고 칼은 단지 수단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재반박이 가능하다.

혁명이나 쿠데타 등의 명분과는 무관하게 무기의 위력이나 학살 등의 예시를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간단히 반박이 가능하다. 어떤 목적이었든, 무슨 무기를 쓰든 인류 역사상 무자비한 학살이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력과 무기의 내구성, 그리고 탄약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일반적인 살인이라면 모를까 특정 집단을 향한 학살에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킨 사례는 없으며 피지배층을 진압할 때 사용된 무력 역시 죽여서라도 남은 사람들에게 겁을 줄 목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함포와 미사일, 항공기, WMD가 피지배층 진압에 역사상 단 한 번도 투입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거나,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참상을 묵도한 사람들이 저항 의지를 갖고 참상을 알려 학살 주도자가 지지를 잃도록 만들게 된다.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소설가 김훈

펜으로 대표되는 문인들 중에서도 김훈처럼 이러한 말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억울해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에 보내는 칼의 경의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영도의 소설 피를 마시는 새 중, 엘시 에더리

무책임하게 펜을 휘두르는 사람들그 단체[7]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도 있다.

4. 예시

5. 창작물에서

6. 여담



[1] '폼페이 최후의 날'을 쓴, 19세기의 영국인 작가이다.[2] 여기서 말하는 칼은 당연히 무력을 의미한다.[3] 삼총사의 주 악역이자 루이 13세의 명재상 맞다.[4] 한국에서는 마오쩌둥이 비호감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의 어록이 폄하되는 부분이 있고, 실제로도 대다수가 동의하기 어려운 어록을 몇몇 남긴 것도 사실이지만 이 발언은 그렇지 않다. 이 어록은 문민통제가 되는 상황에서의 권력(펜)은 총구(칼)의 뒷받침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5] 최신무기로 번역되거나, 으로 의역되는 경우도 있다.[6] 물론 장제스가 권좌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펜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기타 군벌의 반란과 같은 '칼'의 위협 때문이었다.[7] 링크는 기레기와 황색언론에게 걸려 있지만 실제 엘시 에더리의 의도는 부패한 관료, 그 중에서도 지방관을 향한다. 다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언론이 제4의 권력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도 방종하는 경우가 많으니 크게 의미가 어그러진 편은 아니다.[8] 취소선이 쳐지긴 했지만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펜으로 누군가의 이름이 써질 때마다 사람이 죽죽 죽어나가니.[9] 이는 클라우제비츠전쟁론에서 규정한 전쟁의 정의인 '전쟁은 1) 자국의 의지를 상대 국가에게 강요하기 위한 폭력적인 행위이며, 2)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명구를 명확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