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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0-05 18:51:32

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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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522D '''{{{+1 티예 (또는 티이)}}}[br]Tiye or Tiy'''}}}
파일:640px-Ägyptisches_Museum_Berlin_027_detail_01.jpg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출생 BCE 1398
사망 BCE 1338
부모 유야(Yuya), 투야(Thuya)
배우자 아멘호테프 3세
자녀 시타문, 이시스, 헤누타네브, 네베타, 투트모세, 아케나텐
형제자매 아넨(Anen), 아이(Ay)
무덤 KV35

1. 개요2. 무덤


1. 개요

티예 (Tiye, 기원전 1398년경 ~ 기원전 1338년, Tye , Taia , Tiy , Tiyi 등 으로도 표기됨 )는 이집트의 파라오인 아멘호테프 3세의 왕비이자 파라오 아케나텐의 어머니, 그리고 파라오 투탕카멘의 할머니였다. 그녀의 부모는 유야와 투야였다 . 2010년 DNA 분석을 통해 그녀가 1898년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KV35)에서 영거레이디와 함께 발견된 "엘더레이디"로 알려진 미라와 동일 인물임이 확인되었다 .

[ 펼치기 · 접기 (미라 사진 주의) ]
||<tablewidth=100%><width=50%>파일:three_family_KV35.jpg||
KV35에서 발견된 세 사람, 왼쪽부터 The Elder Lady (Tiye), KV35B (Thutmose), The Younger Lady (Nebetah 또는 Beketaten)


2. 무덤

티예의 미라는 1898년 고고학자 빅터 로레트에 의해 KV35에서 딸(추정)[1], 아들(추정)[2]의 미라와 함께 나란히 나체로 누워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티예 왕비의 미라가 본인의 시할아버지인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KV35)에서 발견된 가장 큰 이유는 이집트 신왕국 말기에 극심했던 도굴꾼들로부터 왕족의 미라를 보호하기 위해 후대의 신관들이 미라들을 비밀리에 옮겨 숨겼기 때문이다. 티예 왕비가 처음부터 이 무덤에 묻힌 것은 아니고 남편인 아멘호테프 3세의 무덤(WV22)이나, 아들 아케나텐이 조성한 아마르나(Amarna)의 왕실 무덤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제21왕조 시기 왕권이 크게 약화되자 왕가의 계곡에는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도굴이 만연했고 귀중한 부장품을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왕족들의 미라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이 잦았다. 값비싼 귀금속 부장품들 중에는 미라를 만들면서 시신의 몸이나 아마포 사이에 넣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것을 훔치기 위해 아마포를 벗기는 등 帯回し(오비마와시) 관과 시신을 훼손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시신이 나체로 훼손된 채로 발견된 이유도 그것이다.[3]

당시의 신관들은 왕명에 의해 훼손된 왕가 조상들의 미라들을 수습하여 도굴꾼들이 찾기 어려운 몇 개의 무덤을 골라 여러 미라를 한꺼번에 모아 숨겼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KV35)은 데이르 엘-바하리 무덤(DB320)과 더불어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실 미라 은닉처(Royal Cache)'로 선택된 곳이다.
[1] 영거레이디, KV35YL[2] 투트모세, KV35B[3] 18왕조의 아흐모세 1세나 아멘호테프 1세의 경우 코가 부러지고 목이 분리된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 정도는 다반사였으며, 훔치고 도망가면 그만인 도굴도 아니고 20세기 현대에 고고학자에 의해 정식 발굴된 투탕카멘도 얼굴에 달라붙은 황금 마스크를 벗기기 위해 불에 달군 칼로 얼굴과 마스크의 틈을 후비는 바람에 목이 부러지고 얼굴이 크게 훼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