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의 영윤(令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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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 자문 子文 | ||
최종직위 | 영윤(令尹) | |
성 | 미(羋) | |
씨 | 투(鬪) | |
명 | 누오도(穀於菟)[1] | |
자 | 자문(子文) | |
아버지 | 투백비(鬪伯比)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5월 5일 ~기원전 ???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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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楚)나라의 명재상. 투백비(鬪伯比)의 아들. 성득신의 종형제. 자는 자문(子文).[2] 초성왕(楚成王) 대에 영윤(令尹)[3]을 지냈는데, 성왕 대의 초나라의 강성함은 투누오도의 공헌이 컸다. 제 환공에게 관중(管仲)이, 초 장왕에게 손숙오가 있었다면 초 성왕에겐 투누오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2. 생애
2.1. 비범한 출생
모년[4] 5월 5일 초나라 주위의 소국인 운(鄖)나라 여자와 투백비가 사통하여, 그를 낳았다. 투백비는 투누오도를 버렸는데, 투누오도는 호랑이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이에 투백비는 투누오도를 기이하게 여기고 그를 길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투누오도가 되었다. 穀은 초나라에서는 㝅(젖 누)와 통하니 '누'로 읽으며, 於는 사람 이름으로 쓸 때는 어가 아닌 '오'로 읽고, 菟는 호랑이라는 뜻이니 '도'라고 읽는다. 그래서 투곡어도 혹은 투곡어토가 아니라 '투누오도'라고 읽는 것이다. 애초에 투누오도의 이름 자체가 중국어가 아니라, 초나라에서 널리 쓰이던 원시 몽몐어로 된 이름이라고 추정되는데, '오도'가 몽몐어족 계통 언어로 호랑이를 뜻하는 말이다[5].2.2. 그 뒤의 생애
초성왕 초기에 자윤이 반란을 일으켜 투반(鬪般)[6]을 죽였다.초 성왕 8년(기원전 664년) 성왕이 자윤을 물리친 공을 기려 영윤으로 봉했다. 그리하여 초나라의 국력이 커져 국가가 안정되고 중원의 패권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초 성왕 17년(기원전 655년) 현(弦)나라, 초 성왕 24년(기원전 648년) 황(黃)나라, 초 성왕 25년(기원전 647년) 영나라를 멸망시키고 채나라, 수나라, 서나라, 강나라를 압박해 남방의 패자가 되었다. 그리고 투누어도는 늙어 성득신을 영윤으로 추천한 후 은퇴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월초의 사악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투씨 가문의 멸망의 원인이 될거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늑대와 같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