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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피사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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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라우디오 피사로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데포르티보 페스케로

클라우디오 피사로는 페루의 카야오에서 태어났다. 17세의 나이로 데포르티보 페스케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전은 1996년에 있었던 알리안사 리마와의 경기였고, 2주후 아틀레티코 토리노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면서 팀을 2-1 승리로 이끌었다.

1.2. 알리안사 리마[1]

알리안사 리마로 이적한 피사로는 2시즌 동안 25골을 기록하였으며 이 때의 활약으로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하게 된다.

1.3. SV 베르더 브레멘

피사로는 베르더 브레멘에서 2시즌 동안 29골을 기록했다. 99/00시즌 3라운드 헤르타 베를린전에 교체 투입되어 데뷔했으며, 4라운드 카이저슐라우테른전에서 첫 골을 기록하더니, 5라운드 볼프스부르크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였다.[2]

이 때 똑같이 유망주로서 분데스리가에 역사를 쓸 아일톤과 함께였으며 둘이 같이 주전을 차지해서 엄청난 골감각을 과시했다.[3] 브레멘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여러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인테르,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피사로 영입을 노렸는데, 결국 2001년 7월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1.4. FC 바이에른 뮌헨

안데스의 폭격기라 불린 피사로는 처음부터 바이에른 뮌헨에 잘 적응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 분데스리가 2라운드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고, 2002-2003 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더블을 기록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그 후에도 04-05, 05-06 시즌에도 리가, 포칼 더블을 달성하였다.

피사로의 계약기간은 2007년 여름 까지였는데, 피사로는 구단에 연봉 4백만 유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회장은 "셰브첸코 처럼 벌고 싶으면 더 잘해라" 라며 거절했다. 바이에른은 06-07 시즌 분데스리가 4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이에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기 원했기 때문에 피사로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4] 2007년 5월 20일 바이에른은 피사로가 떠날 것이라 발표했고, 결국 첼시 FC와 계약하였다.

1.5. 첼시 FC

첼시와 4년 계약을 맺은 피사로는 등번호 14번을 받았다. 그는 맨유와의 FA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교체로 데뷔하였지만 승부차기에서 첫 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하였다.

리그에서는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데뷔하였지만, 그를 영입한 무리뉴 감독이 시즌 초반 경질되었고 겨울 이적 시장 니콜라 아넬카가 영입되면서 아브람 그랜트 감독 밑에서는 거의 전력 외 선수가 되었다.

당시 첼시에는 셰브첸코, 드록바, 아넬카 등 다른 공격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피사로가 출장 기회를 잡기는 힘들었다.

결국 21경기에 출전해 2골만 넣는 부진을 보인 끝에 방출되었다. 재밌는 것이 첼시에서 득점한 2골이 모두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기록한 득점이라는 점이다.[5]

1.6. SV 베르더 브레멘 2기

결국 첼시에서 1시즌 만에 베르더 브레멘으로 1시즌 동안 임대로 이적하면서 7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분데스리가로 돌아온 피사로는 다시 부활하였고, 팀 베르더 브레멘은 리가에서의 성적은 10위로 그리 좋지 못했지만, UEFA 컵 준우승을 기록하였고[6], DFB-포칼에서는 레버쿠젠을 꺾고 우승하여 다음 시즌 UEFA 유로파 리그[7] 진출권을 획득하였다. 피사로는 모든 대회에서 총 28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하였다. 베르더 브레멘은 피사로를 완전 영입하기 원했으며, 2009년 8월 18일 계약이 체결되었다. 2010년 10월 23일에는 자신의 분데스리가 134호골을 기록하며 지오반니 에우베르를 넘어 외국인 최다골 선수가 되었다. 2012년 5월 15일 피사로는 시즌이 끝난 후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1.7. FC 바이에른 뮌헨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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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6일, 피사로는 바이에른 뮌헨과 1년 계약을 체결했다. 팀에는 마리오 고메스마리오 만주키치가 있었기 때문에 피사로는 팀의 3번째 옵션이었고[8], 준수한 경기력을 보였다. 주로 후반에 교체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챔피언스리그 릴 OSC와의 홈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6-1 대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 해트트릭은 단 16분만에 완성된 것으로, 역대 챔피언스리그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이다. 분데스리가 3라운드 마인츠 05와의 경기에 출장하면서 제 호베르투를 넘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출장의 기록을 세웠고, 29라운드 함부르크 SV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 4골 2도움을 기록하며 9-2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 경기로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의 기록을 넘어 분데스리가 역대 득점 순위 10위에 올랐다. 결국 리가, 포칼, 챔스 포함 13골을 맹폭하며 슈퍼서브로써의 역할과 팀 내 베테랑으로써 어린 선수들을 돕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3/14 시즌에는 17경기(선발 6경기) 총 684분의 짧은 플레이타임에도 불구하고 10골 3어시라는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다.이 정도면 50분 당 공격 포인트 하나를 찍어주는 수준으로 그야말로 슈퍼조커. 슈팅도 겨우 25회에 불과해 골 결정력이 무려 40%에 달한다. 이로써 피사로는 분데스리가에서 총 176골을 기록하며 역대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중 최다골을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바이에른 뮌헨의 역대 선수들 중에서는 87골로 메멧 숄과 함께 6위를 차지하고 있다. 1골만 더 넣으면 역대 분데스리가 득점 7위(클라우스 알로프스와 디터 뮐러)에 등극하게 된다. 시즌 종료 직전 바이에른과 1년 계약 연장했다는 오피셜이 떠서 바이에른 팬들은 이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의 슈퍼서브로서의 활약을 한 시즌 더 볼 수 있게 되었다.

14/15 시즌은 지난 시즌의 슈퍼 서브로서의 활약상은 보여주지 못하고 적은 출전 수에 무득점에 그쳤으며 뮌헨과의 계약 만료로 자유 계약 신분이 되었다. 이후 본인의 등번호인 14번은 사비 알론소에게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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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V 베르더 브레멘 3기

바이언에서 나온 이후 피사로는 부르는 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미루다가 결국 시즌이 시작된 이후인 2015년 9월 6일에 자유계약으로 자신의 또 다른 친정팀 베르더 브레멘과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입단 초에는 전 시즌 부진의 여파도 있고 늦게 합류하기도 해서 출전 시간이 적었으나 폼을 끌어올린 이후 위기에 봉착한 브레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특유의 제공권을 살려 공격 진영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전반기가 마무리 될 무렵에는 득점도 두 번 기록했다. 후반기에는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헤르타 베를린에게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안토니 우자와 함께 팀의 주득점원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레버쿠젠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하노버 96전에서 수비 6명을 벗겨내는 미친 골을 기록하며 베르더 브레멘 커리어 통산 100득점을 기록하였다!

https://googledrive.com/host/0B50xiXrxYwbPRTUxczZIU2FnQWs

결국 15/16 분데스리가가 끝난 시점에 득점 5위에 오르는 좋은 결과를 냈다.

분데스리가 통산으로는 190득점이다. (베르더 브레멘 103득점, 바이에른 뮌헨 87득점)

2016년 5월 17일, 피사로는 베르더 브레멘과 연장 계약을 체결하여, 2017년 6월 30일까지 브레멘에 잔류하게 되었다. 16/17시즌에도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한다면, 통산 200득점 달성이 가능하다. 관련 기사

2016/17 시즌은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한데다 부상 복귀 후에도 주전보다는 교체 위주로 출전하였고, 2어시스트만을 기록한 채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24라운드 레버쿠젠 원정에서 후반 30분 게브르 셀라시에와 교체 투입되자마자 동점골을 기록하였다.[9]

불혹의 나이로 부상 및 체력 문제로 경기 출전 시간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지만, 자기관리만 철저히 해 준다면, 파올로 말디니[10]라이언 긱스처럼 만 40세가 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16/17시즌까지는 200득점 달성이 어렵더라도, 17/18시즌까지 계약이 연장될 경우에는 200득점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여담으로, 분데스리가 역대 득점 순위 4위는 213득점을 기록한 만프레드 부르크스뮐러로, 은퇴 전 잔여 5시즌 동안 베르더 브레멘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며 34골을 넣었다. 이 선수 또한 만 40세를 넘긴 1989-90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베르더 브레멘에서도 해트트릭을 두 번이나 기록한 바 있다. 부르크스뮐러의 마지막 득점은 1989년 8월 5일 뒤셀도르프전으로, 만 39세 7개월 14일인데, 피사로의 나이에 대입해본다면, 2018년 5월 17일로, 분데스리가 시즌 종료 직후가 된다.[11] 비록 부르크스뮐러의 213득점을 경신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지만, 17/18시즌까지 선수생활을 한다면 피사로는 200득점 달성이나 부르크스뮐러의 득점 연령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시즌 종료 이후 피사로는 7월 2일, 브레멘과 재계약 없이 자유 계약으로 만료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

1.9. 1. FC 쾰른

이후 9월 30일 1. FC 쾰른과 1년의 단기계약을 채결하면서 이적했다.

25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홈경기에서 선발출전, 전반 7분 골을 기록하며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 기록을 192골로 늘렸다.

1.10. SV 베르더 브레멘 4기

2018년 7월 29일, 브레멘과 1년 계약을 맺었다. 세 번째 입단에서는 39번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4번으로 정했다. 만 40세의 나이에 여전히 분데스리가 중하위권 클럽들의 부름을 받으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스스로 입증했다.

7라운드까지 득점은 없이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6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에서는 중거리 슛팅이 골대를 맞으며 이번 시즌 첫 득점 찬스를 아쉽게 놓치기도 했다.
볼프스부르크와의 7라운드 홈 경기에서는 요하네스 에게슈타인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했는데, 요하네스 에게슈타인은 98년생으로 이 경기의 최연소 출전 선수였고, 피사로는 생일이 지난 상태여서 만 40세에 이 경기 최고령 출전 선수였다. 두 선수 모두 후반에 교체 투입되어 팀의 완승에 기여했다. 게다가 브레멘은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7라운드까지 4승2무1패에 승점14점, 13득점 8실점으로 도르트문트, 묀헨글라드바흐에 이어 3위를 기록했으며 바이에른 뮌헨보다 승점, 득점에서 모두 우위에 있는 상태였다.

9라운드 레버쿠젠전에서 만회골을 득점하여 19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득점 기록을 달성했다. 득점 연령은 만 40세 25일이다.

17일 토요일 밤비 미디어 어워즈 스포츠 분야에 선정되어 트로피를 수상했다.#

포칼 16강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연장 전반에 동점골을 넣었다.

22라운드 베를린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에 프리킥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을 구함과 동시에 분데스리가 최고령 득점자가되었다. 득점 연령은 만 40세 136일이다.

32라운드 도르트문트전에서는 팀이 1대2로 뒤지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어 팀에게 승점 1점을 선물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도르트문트 킬러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나비효과로 도르트문트의 승리를 저지하며 친정팀인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경쟁을 돕게 되었다. 경기 후 피사로의 인스타그램에는 뮌헨 팬들의 감사 댓글이 도배됐다.

34라운드 라이프치히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결승골을 넣었다. 비록 볼프스부르크의 대승으로 팀은 8위에 머물러 유로파리그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 골로 분데스리가 통산 197골을 기록한 피사로는 브레멘과의 계약을 1년 연장했다.

19-20 시즌은 골은 넣지 못했지만 DFB-포칼에서 2도움을 올렸다.

SV 베르더 브레멘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피사로가 은퇴했음을 알렸다.


[1] 이 팀은 페루 내에서는 탑 클래스에 속하는 팀이다. 리마시 La Victoria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다. 상대 더비 팀은 우니베라시타디오스 델 페루[2] 이 경기는 볼프스부르크가 2-1로 앞서다가 마르코 보데와 피사로가 나란히 해트트릭을 하며 브레멘이 7-2로 대역전승을 거둔 경기다.[3] 이 때 후보선수가 라데이동국이다.[4] 일명 분노의 영입으로, 이 때 새로 영입된 스트라이커는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 토니, 얀 슈라우드라프이다.[5] 첼시전 두 경기에서 피사로에게 2골을 먹힌 버밍엄은 모두 한점 차로 졌고 승점 1점차로 결국 강등당했다.[6] UEFA컵 32강전에서 AC밀란을 침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0-2로 뒤지고 있던 원정 경기에서 2골을 넣어 당시 UEFA컵 우승후보였던 AC밀란을 침몰시켰던 것.[7] 이 시점부터 유로파 리그로 이름이 변경되었다.[8] 마리오 고메스의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전반기까지는 2번째 옵션으로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었고, 고메스가 돌아온 후에도 최단기간 분데스리가 우승 확정 후 중요도가 덜한 경기에 나서 베테랑으로써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며 거듭된 승리를 이어갔다.[9] 참고로 이 경기에서 레버쿠젠은 64분에 99년생의 카이 하버츠를 벨라라비와 교체 투입시켰다. 카이 하버츠와 피사로의 나이차는 무려 21살이며, 피사로가 브레멘에 데뷔하여 생애 첫 해트트릭을 하던 시절에 하버츠는 생후 5개월 된 갓난아기에 불과했다.[10] 피사로가 2008-09시즌 UEFA컵 32강 2차전에서 2골을 넣어 AC밀란을 침몰시켰을 당시, 파올로 말디니가 이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사례가 있다. 당시 말디니의 나이는 만 40세 8개월이었다.[11]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이 2018년 6월 14일인 점을 감안하여, 2017/18시즌은 2018년 5월 12일(토)에 종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즌 종료 후 1주일 뒤에 DFB포칼 결승전이 있는데다, 분데스리가는 시즌 종료 후 승강 플레이오프가 있기 때문에, 월드컵 준비를 위해 조기에 시즌을 마무리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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