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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7:59

크리스 폴/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크리스 폴

1. 대학 시절2. 뉴올리언스 호네츠
2.1. 2005-06 시즌2.2. 2006-07 시즌2.3. 2007-08 시즌2.4. 2008-09 시즌2.5. 2009-10 시즌2.6. 2010-11 시즌
3.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3.1. 2011-12 시즌3.2. 2012-13 시즌3.3. 2013-14 시즌3.4. 2014-15 시즌3.5. 2015-16 시즌3.6. 2016-17 시즌
4. 휴스턴 로키츠5. 오클라호마시티 썬더6. 피닉스 선즈7.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8. 샌안토니오 스퍼스9.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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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시절

웨이크포레스트대 재학 2년 간 스킵 프로서(1950~2007) 감독[1]의 지도를 받으며 전미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맹활약했다. ACC 올해의 신인상, ACC All-Defensive Team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20세 이하 FIBA 아메리카 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미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굵직한 경험을 쌓는다. 대학 무대에서 더 보여줄 것이 없었던 폴은 2005년 NBA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내고 1라운드 4순위로 뉴올리언스 호네츠에 지명된다.

2. 뉴올리언스 호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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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5-06 시즌

한때 인기구단이었으나 여러가지 악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고 분위기가 엉망이었던 뉴올리언스의 호네츠는 폴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폴 역시 그런 뉴올리언스 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2005-06 시즌 신인이었지만 팀의 독보적인 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트리플더블도 두번이나 기록했다. 신인상 역시 그의 몫이었다.

2.2. 2006-07 시즌

2년차 시즌에는 기록이 소폭으로 상승했으나, 폴 본인은 부상으로 인해 잠시 주춤한 상태였다.

2.3. 2007-08 시즌

허나 2007-08 시즌 그를 위한 팀이 갖춰지자 바로 뉴올리언스 돌풍의 선봉장으로 대활약을 펼쳤다. 강력한 수비형 센터 타이슨 챈들러와 픽앤팝 마스터인 파워 포워드 데이비드 웨스트, 밀레니엄 킹스 시절 활약한 3점 슛 마스터 페자 스토야코비치를 맞이한 3년차 시즌에 처음으로 20-10을 기록했고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맛보았다. 시즌 막판까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함께 서부지구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뉴올리언스는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런 대활약 속에 크리스 폴은 정규시즌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2]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폴과 뉴올리언스의 기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폴 to 챈들러를 앞세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댈러스 매버릭스를 4승1패로 가볍게 누르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오른 것. 상대는 산왕 샌안토니오 스퍼스, 역시 예상을 뒤엎고 7차전까지 스퍼스를 물고 늘어졌다. 아쉽게 탈락했지만 그동안 여러가지 악재 때문에 고생했던 구단은 호네츠의 선전 덕에 관중몰이에 성공했고, 카트리나 크리를 먹고 절망하던 뉴올리언스 시민들도 모처럼 웃음꽃을 피우는 등, 폴이나 구단이나 모두 의미있는 시즌이었다.

2.4. 2008-09 시즌

그러나 2008-09 시즌 팀의 성적은 전년도에 비해 하락했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덴버 너기츠에게 탈락하고 말았다. 원인은 주축선수들의 부상과 그로인한 부진.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폴에게 부담이 쏠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매치업 상대인 천시 빌럽스에게 떡실신당했다.[3]

2.5. 2009-10 시즌

급기야 2009-10 시즌에는 폴 역시 무릎 부상을 당해 결장이 늘어나면서 성적이 떨어져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했다. 바이런 스캇 감독이 시즌 중간에 해고되고, 폴 역시 팀의 상황에 불만을 터트리는 등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2.6. 2010-11 시즌

2010-11 시즌에 새롭게 몬티 윌리엄스가 새롭게 감독으로 선임되고, 대형 FA들은 아니지만 트레버 아리자같이 팀에 꼭 필요한 준척급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했다. 폴 역시 불만은 접고,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뉴올리언스는 플레이오프도 힘들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고, 다시 5할 승률로 복귀하는 등 조용한 돌풍을 일으켰다. 크리스 폴 본인의 성적은 지난 몇년간에 비해 떨어지는 수치였지만, 결코 기량 자체가 떨어진건 아니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강적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맞이해 먼저 1차전을 따내는 등 선전하기도 했다.

- (170508 & 최근 35시즌 기준) PO 첫 10경기 동안, '250+득점 & 100+어시스트' 기록한 선수
크리스 폴(2008년) : 250득점(FG 50.8%) & 113어시스트 & (15실책)
러셀 웨스트브룩(2016년) : 253득점(FG 40.5%) & 107어시스트 & (41실책)
존 월(2017년) : 288득점(FG 47.7%) & 111어시스트 & (47실책)

3.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012년 뉴올리언스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이적에 대한 소문이 2011년 오프 시즌 동안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초기 행선지는 보스턴 셀틱스라는 얘기가 돌았다. 참조

하지만 이에 대해 현재 보스턴은 강팀이지만 빅3 (폴 피어스, 케빈 가넷, 레이 앨런)가 나이가 많아 이들이 은퇴하면 리빌딩을 해야 해서 폴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셀틱스 팬들이 수근거렸다.

또 하나의 유력한 행선지는 뉴욕 닉스였는데, 위에 보스턴 빅3와는 달리 카멜로 앤서니아마레 스타더마이어는 아직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점, 그리고 대도시 연고라는 점. 또한 닉스가 정상급 포인트 가드를 원하다는 점에서 폴은 가장 적임자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닉스에선 카멜로 앤서니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주축선수들을 내주는 바람에 트레이드 카드가 없었다.

이러던 와중에 그리고 뜬금없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행 확정 기사가 떴었다. 휴스턴까지 낀 3각 트레이드였는데.. 골자는 이렇다.

예전 LA 레이커스의 가솔 딜 때처럼 제3의 팀 휴스턴을 호구로 만드는 사기딜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국내외의 모든 NBA 팬들이 미친듯이 들썩였으나... 파토.

뉴올리언스는 현재 구단주 없이 NBA 사무국이 운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딜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나머지 29개 구단주들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했는데, LA 레이커스의 라이벌 구단인 보스턴 셀틱스의 단장 데니 에인지는 "나머지 구단주들에게 이 트레이드를 반대하라고 전화를 돌리는 등 방해공작을 펼친 끝에 파토 났다."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루머. 애초에 데니 에인지 정도가 구단주들에게 로비를 벌일 수도 없는 일이고.

당연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사실 NBA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돈의 대부분은 억만장자인 구단주들에게서 나오는 만큼 구단주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인종차별 발언을 한 도날드 스털링같이 전 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대통령까지 발언을 했다!!) 바보짓거리를 하지 않는 이상 구단주야말로 철밥통이고 커미셔너(총재)도 결국 이들이 동의해서 임명된 월급쟁이 사장에 불과하다.

원래 커미셔너라도 트래이드를 파토낼 권리는 없지만 폴 딜의 경우, 당시 호네츠의 소유권이 NBA 사무국에 있었기 때문에 구단주 대행으로 파토낸 것이다. 구단주들은 맘만 먹으면 커미셔너조차 갈아치울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데, GM에 불과한 대니 에인지가 입김을 불어넣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게다가 레이커스가 강해지면 똥줄이 타는 건 같은 서부지구 팀들이다. NBA는 같은 지구팀들끼리 최대 한 시즌에 4번까지 붙는데다가 플레이오프에서도 먼저 붙어야 한다.

보스턴은 레이커스와 동반 결승 진출하지 않는 이상 한 시즌에 두번밖에 붙지 않는데다가 결승 진출을 장담할 정도로 우승에 근접한 전력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한 팀이 강해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같은 지역 팀인데, 실제로 팀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서부팀" "구단주인" 마크 큐반같은 사람도 아니고 "동부팀" "GM인" 대니 에인지가 구단주들한테 로비를 한다는 건 얼토당토않는 일이다. 정확하게는 호네츠가 현재 구단주가 없어 NBA 사무국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임시 구단주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스턴 커미셔너가 딜을 파토냈다. 이에 대해 호네츠의 단장인 델 뎀프스는 "나는 허수아비임? 못해먹겠네여. 사표쓸래여."라고 징징을 시전. LA 레이커스 팬들은 스턴놈이 레이커스를 죽이려고 한다며 난리가 났고, 크리스 폴에게 동정을 표하면서 "이제 이적은 물 건너 갔나보네..." 라는 반응을 보였는데...[4]

딜이 파토난지 며칠 만에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조건은 클리퍼스가 폴과 뉴올리언스의 2015년 2라운드 픽 두장을 받고 대신 에릭 고든, 크리스 케이먼, 알 파눅 아미누를 내주는 것. 이 두 딜의 차이는 다름아닌 팀 운영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단장인 델 뎀프스는 폴이 떠나도 이럭저럭 경쟁력을 갖춘 라인업을 만들고 싶어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임시 구단주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스턴 입장에서는 단순히 팀이 그럴싸해보이는 문제를 넘어서 새로운 구단주에게 매각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고, 때문에 어중간한 실력과 나이에 계약기간도 길고 샐러리는 샐러리대로 퍼먹는 삼각딜은 매력적인 매물이 될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 것.

결과적으로 저 딜을 캔슬한 덕분에 클리퍼스에게 준올스타급에 훨씬 젊은 스타플레이어와 팔아먹기 좋고 써먹기 좋은 빅맨 샐러리덤프, 유망주에 픽까지 얻어왔으니 장사는 끝내주게 한 셈. 폴을 만날 뻔했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팬들이야 스턴 개객끼를 외치고 있지만... 이미 다 끝난 일.[5] [6] [7]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호네츠에게 더 나은 딜과 미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여타 NBA 팬들은 "역시 NBA 운영 날로 해먹던 게 아니네여." "스턴느님 대단하심."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팀의 상황과 맞지 않는 딜을 하자고 덤벼들었다가 징징을 시전한 델 뎀프스는 욕을 바가지로 퍼먹고 있다...

뭐 이적하게 된 팀이 전통의 명문이나 강팀이 아닌 클리퍼스지만, 블레이크 그리핀이 있고 케런 버틀러를 영입하면서 나쁘지 않은 전력보강을 한 클리퍼스이니, 그 지긋지긋한 주축선수들의 부상만 없으면 해볼만은 하다는 평. NBA 역사를 살펴보아도 S급 둘의 만남이 A급 3~4의 만남보다 시너지가 확실했다는 점에서 2011-12 시즌 기대팀 1순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팬들의 반응은 레이커스 지못미 ㅠㅠ...라는 레이커스 팬들과 그리핀과 펼칠 콤비 플레이가 기대된다는 여타 팬들의 반응으로 양분 중. 다만 연장계약에 확실하게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통기한이 짧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폴이 옵트인에 동의함에 따라 최소 2년간 그리핀과 플레이하게 되었다. 대다수 팬들은 아마도 2년 정도 그리핀과 함께 한다면 폴이 굳이 다른 강팀을 찾아 다시 떠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오고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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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다리 길이를 자랑하는 NBA의 호빗

3.1. 2011-12 시즌

단축시즌으로 진행된 2011-12 시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팀의 사령탑으로서 그리핀과 디안드레 조던 두 짐승을 잘 조련해 클리퍼스의 40승 26패를 이끌었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시켰다.

3.2. 2012-13 시즌

2012-13 시즌에는 그리핀, 디조던과 앨리웁 플레이를 자주 선보여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올스타 게임에서 20득점 15어시스트를 기록해 올스타전 MVP까지 차지했다.

3.3. 2013-14 시즌

클리퍼스는 처음으로 디비전 우승을 경험하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멤피스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폴 본인은 2차전에서 위닝샷을 넣는 등 제대로 활약했지만 팀원들의 부진으로 2:4로 패배. 시즌이 끝나고 드와이트 하워드와 뭉칠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프시즌에 5년 $107M로 재계약을 하면서 클리퍼스에 잔류했다. 그리핀, 디조던과 함께 신나는 lob city 놀이는 할만큼 했으니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해 가야할 듯.

2013년 10월 31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전에서 42득점 15어시스트 6스틸이라는 초특급 활약으로 팀을 승리로 이끈걸 비롯, 2013-14 시즌 첫 12경기동안 한번도 더블 더블을 놓치지 않으며 활약 중. 시즌 중반까지 새로 영입한 주전 슈팅 가드 레딕이 장기부상으로 결장하는 사이에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쳤다. 3점슛 성공률이 떨어지는 것 외에는 20-10에 득점이 조금 모자란 수준의 놀라운 평균 스탯을 찍으며 무릎 부상 이후 최고의 활약이라는 평. 3년째를 맞아 개선된 호흡+닥 리버스 감독의 전술+그리핀의 기량발전 등이 겹쳐져 지난 2년간 기대 이하라는 평을 듣던 블레이크 그리핀과의 2:2플레이도 굉장히 좋아졌다.

MVP도 노려볼 만한 성적을 찍으며 잘 나가던 중, 2014년 1월 초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공격 도중 댈러스의 가드 몬타 엘리스와 충돌하며 어깨 부상을 당했다. 최소 3주에서 심할 경우 한 달 이상 결장이 예상되고 있다. 그야말로 부상신이 지배하는 2013-14 NBA 복귀는 2월 9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전. 이후에는 별 이상 없이 그리핀과 함께 클리퍼스를 진두지휘하며 서부 3위로 이끌었지만, 플레이오프 세미파이널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게 2-4로 패하며 이번에도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3.4. 2014-15 시즌

2014-15 시즌에는 운동능력 저하 때문인지 팀 전술 때문인지 골밑까지 돌파해 들어가서 슛을 날리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그 대신 엘보 부근에서의 점프슛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면서 미드레인지 장인이 되어 약점을 상쇄하는 중. 팀 전체가 작년에 비해 힘이 빠진 상태에 그리핀마저 부상에 시달리는 클리퍼스를 디안드레 조던과 함께 죽을 둥 살 둥 캐리하고 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는데, 디조던이 '핵 어 조던'으로 묶였음에도 블레이크 그리핀과 더불어 큰 활약을 펼쳐 팀을 2라운드로 이끌었다. 특히 마지막 7차전에서는 1쿼터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서 라커룸으로 들어갔지만 곧 복귀, 결승골 포함 27득점을 하면서 수훈갑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2라운드였다. 휴스턴을 맞아 3승 1패로 압도적인 전적을 유지하던 클리퍼스는 거짓말같은 3연패를 당하며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8] 특히 6차전의 어이없는 역전패는 아까웠다하기도 민망한 결과. 이러한 허망한 결과에 대해 네이버에서 오늘의 NBA를 연재중인 월간루키의 염용근 기자는 기사내용에 슬램덩크를 빗댄 에필로그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 내용은 승리했다는 가정하에 쓰여진것이다.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리고 이 다음해에 3:1에서 역전당한 폴의 심정을 이해해줄 포인트가드 러셀 웨스트브룩, 스테판 커리가 생겼다.

전년도 챔피언인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이기고 올라와 분위기는 최고조였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클리퍼스팬뿐만 아니라 휴스턴을 제외한 모든 NBA팬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폴 본인도 상심이 컸는지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며 기자회견 자리에서 인상을 구기기도. 결국 폴은 이 결과를 모두 감당해야하는 긴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3.5. 2015-16 시즌

2015-16 시즌을 앞두고 손가락 부상을 당했으며 얼마 뒤에는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 막판에 사타구니 부상을 당했다. 저번 시즌에 비해서 안정감이 많이 떨어지면서 턴오버 숫자도 늘고 슛 성공률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다만 그리핀이 부상에 병크를 저질러 나오지 못하고 있는 1월 내내 성적은 평년 수준으로 회복중이다. 개선되었어도 막장인 닥 리버스의 용병술 아래에서 눈물나게 고생중.

정규시즌을 4위로 마치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 경기중 오른쪽 손등 골절상을 당했다. 사실상 시즌 아웃이 확정적이라 매우 안타까운 상황. 결국 허벅지 부상이 악화된 블레이크 그리핀과 함께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팀은 뼈아픈 전력누수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시리즈를 2:4로 패배하며 탈락, 폴의 컨퍼런스 파이널 도전기는 이번에도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다.

3.6.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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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휴스턴 로키츠

2017년 파이널시리즈 중인 현재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꾸준하게 링크설이 나오고 있다. 역대 최고의 정통 포인트가드 중 하나라고 칭송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컨퍼런스 파이널 한번 못갔다는 것은 선수 커리어 내내 본인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했을 터. 우승을 노리고 이적하기에는 본인의 나이를 생각해봤을 때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클리퍼스에 남아 맥시멈 연봉을 받고 카멜로 앤서니가 될 것인지, 페이컷을 하더라도 케빈 듀란트가 될 것인지, 폴의 이적 시장 행보가 주목된다.[9]

파일:크리스폴_입단.jpg

'패트릭 베벌리 & 루 윌리엄스 & 샘 데커 & 몬트레즈 해럴 & 대런 힐라드 & 디안드레 리긴스 & 카일 윌터(총 7명)' + 2018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1~3순위 보호) + 현금 66만 1천 달러(약 7억5천만원)를 조건으로, 휴스턴과 트레이드 됐다.[10] 이는, NBA 역사상 선수 한 명의 대가로 가장 많은 매물이 넘어간 트레이드다.(8대1 트레이드)[11]

'폴과 하든의 볼 소유 문제와 벤치 생산력'이 17-18시즌 휴스턴의 관건이다. 주전 혹사로 유명한 댄토니 감독인 만큼, 벤치 생산력이 정규시즌 때는 상관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규시즌 후의 플레이오프에서 큰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컨퍼런스 파이널 이상을 노리는 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 지켜볼 점이다. 그렇지만 폴과 하든 조합에 대해서는, 대릴 모리 단장과 마이크 댄토니 감독 모두 기대하고 있다. 워낙 다재다능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두 선수 간의 시너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12][13]

휴스턴은 나름 골든스테이트 바로 다음으로 분석되는 서부의 강팀인지라 이번에야말로 컨퍼런스 파이널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폴을 데려오느라 휴스턴의 강점이던 벤치자원에서 출혈이 꽤 많았다는 점이 변수.

4.1.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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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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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나이에 따른 노쇠화, 그리고 하든과의 불화로 인해 결국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트레이드 되었다.트레이드 상대는 러셀 웨스트브룩이며 트레이드 과정에서 하든이 웨스트브룩을 원했다는 뒷말도 나왔다.[14] 급하게 팔아야 하는 입장이 된 휴스턴은 폴과 함께 2장의 1라운드픽과 2장의 1라운드 지명교환권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폴의 대권 도전은 사실상 끝나버렸다.[15] 썬더의 홈인 오클라호마시티와는 인연이 있는데, 데뷔초 뉴올리언스 시절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로 2년동안 오클라호마에서 홈경기를 가진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썬더를 떠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이애미 히트와 협상중이라고, 하지만 트레이드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았는지 일단 다음 시즌은 썬더에서 보내게 됐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중요한 시즌이 되었다.

5.1.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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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피닉스 선즈

6.1.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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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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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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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022-23 시즌 종료 이후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드래프트 추첨일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 커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 골스는 폴의 다가오는 부분보장 계약을 전액 개런티하면서 폴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23-24 프리시즌 열린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대결에서는 13분 출전, 6득점, 5어시, 4리바 2턴오버로 게임을 승리로 이끌었다. 비록 출전 시간은 적었지만 스플래쉬 브라더스에게 좋은 패스를 잘 찔러줘 게임 흐름이 더 부드러워졌다는 평이다.

드레이먼드 그린이 부상으로 이탈한 2경기는 선발 출전, 그린의 복귀 이후에는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벤치 출전을 해 골스의 영건들을 이끌고 있다. 프리시즌에서 보여줬듯이 3점이 영 말을 안 듣지만 안정적인 볼 핸들링을 통해 골스에 잘 녹아들고 있다.

정규시즌은 58경기 출전에 평균 9.2점 6.8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한자리수 평균득점을 기록한건 커리어상 처음이다. 주로 벤치로 출전하며 스탯은 좀 줄었으나, 특유의 패싱센스와 경기운영능력은 살아있다는 평가다.

정규시즌을 10위로 마쳐 플레이인 토너먼트부터 시작하게 되었는데, 새크라멘토 킹스에게 가비지 패배를 당하면서 그대로 시즌이 종료되었다. 오프시즌 중 골스의 전체적인 로스터 변화가 예상되어, 향후 골스에서의 거취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계약 자체는 1년 남아있긴 하지만 30밀 비보장 계약이라 골스가 이 계약을 보장해줄 확률은 거의 없다.

크리스 폴 또한 이제는 정말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연봉을 상당 부분 포기하더라도 우승권 팀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다.

8. 샌안토니오 스퍼스

2024-25 시즌 전 1년 $11M의 계약으로 샌안토니오행을 확정지었다. 바나나 보트 팀으로 유명한 르브론 제임스의 LA 레이커스 등 우승을 노리는 팀들과의 계약 이야기가 나왔으나, 실질적으로 우승과는 거리가 먼 샌안토니오를 행선지로 결정했다. 명장 그렉 포포비치 아래에서 주전 보장 및 빅터 웸반야마와 뛰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그 외에 자존심이 특히 더 강한 폴의 성격 상 자존심을 굽히고 우승권 팀에 꼽사리 껴서 우승 반지 하나를 얻는 것 보단 반지를 얻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농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추측도 있다.

댈러스와의 개막전에 출전하여 역대 11번째 커리어 20년차를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9. 국가대표

위에 언급한대로 2004년 20세 이하 FIBA 아메리카 대륙 선수권에서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주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성인국가대표팀으로 뽑히기도 했고, 한국에서 열린 월드 바스켓볼 챌린지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 대회기간 중 나이키의 농구코트 기증식에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을 벗어나 해외로 나온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땄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포인트 가드들 중에서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받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금메달은 보너스. 4년 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주전 포인트 가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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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0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출생. 1972년 미국상선단사관학교에서 항해과학을 전공하고 1977년 린슬리 군사학교(현 린슬리 스쿨)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여 1979년 휠링 센트럴 가톨릭 고등학교를 거쳐 1985년부터 8년 간 제이비어 대학교의 코치로서 피트 길렌 감독을 보좌했다. 1993년 메릴랜드 로욜라 대학교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후 1994년부터 제이비어대 감독으로 돌아와 제임스 포시와 토레이 브렉스(전 울산 모비스 피버스 외국인 선수) 등을 발굴했고, 2001년부터 웨이크 포레스트대로 옮겨 폴 외에 리투아니아인 선수 다리우스 송가일라, 조쉬 하워드 등을 발굴/육성했다. 재직 중이던 2007년 7월 26일, 조깅 후 사무실로 돌아오고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웨이크 포레스트대 부속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대학 보도자료) 그의 장례 미사는 그가 재직하던 웨이크 포레스트대 및 제이비어대에서 거행됐고, 자녀들 중 차남 마크는 매리스트 칼리지 재학 시절인 1999년부터 수습 코치로 시작해 2002년 졸업 후 워포드 칼리지(2002~2003/2008~2011), 벅넬 대학교(2003~2008) 등을 거쳐 2011년 NCAA 디비전3 대학인 브리버드 칼리지 감독을 시초로 2012년 디비전1 소속 윈스롭 대학교로 넘어와 팻 켈시 감독을 보좌했고, 2018년 웨스턴 캐롤라이나 대학교를 거쳐 2021년 윈스롭대 감독으로 돌아와 커리어를 쌓고 있으며, 2008년에는 칼리지인사이더닷컴이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올해의 남자농구 감독상을 제정했다.[2] 당시 MVP는 코비 브라이언트였는데 총점 64점을 얻어 60점의 폴을 가까스로 따돌렸다. 이 수상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수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참조[3] 폴의 커리어 내내 빌럽스나 데론 윌리엄스같은 덩치 큰 가드는 폴에겐 천적과도 같았다. 후일 충격적인 패배를 안기는 루카 돈치치도 그랬다.[4] 막상 레이커스 팬을 제외한 대부분의 NBA 팬들은 레이커스로의 이적 파토를 슬퍼하진 않았다.[5] 실상 스턴이 진정 욕먹을 일을 벌였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커미셔너라는 권력을 남용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사실 커미셔너였던 데이비드 스턴호네츠 임시 구단주 데이비드 스턴이 구분되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비판일 뿐. 실제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보는 편이 맞다. 다만 임시 구단주였다면 애초부터 딜에 대해 단장에게 가부를 설명해줬어야 하지 않느냐, 엎을 거였으면 원래부터 대놓고 말하지 그랬냐라는 비판과 더불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라는 점은 피해갈 수 없겠지만.[6] 커미셔너로서 생각한다면 오히려 폴같은 슈퍼스타의 레이커스행을 환영할 일이다. 빅마켓의 흥행은 수익 증대와 직결되기 때문. 빅마켓이 아니더라도 레이커스같은 전통 명문이 더 강해지는것이 리그 인기에는 크게 유리하다. 실제로 전통의 명문이자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와 레이커스가 붙은 2008년 파이널은 9.3%에 달하는 시청률로, 클리블랜드와 샌안토니오라는 두 스몰마켓이 붙은 전년도보다 3.1%나 올랐다. 2007년 파이널이 스퍼스의 압승으로 매우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이때 리그 최고스타인 르브론도 있었다는 점, 2004년 파이널 이후 최고의 시청률이라는 점을 보면 레이커스가 강한게 얼마나 흥행이 되는지 알 수 있다.[7] 참고로 2004년 파이널 시청률이 높은 것도 레이커스 덕분이라 추정이 가능한데, 이때 레이커스와 붙었던 피스톤즈같은 경우 이듬해에 파이널에 재진출, 스퍼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였으나 이때 시청률은 직전 파이널에 비해 3.3%나 폭락했다. 즉, 냉정한 말이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레이커스 보려고 tv 튼거지, 피스톤즈 보려고 튼 건 아니란 것. 종합해보면 "커미셔너" 스턴은 오히려 레이커스가 강해지는 걸 쌍수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파토내고 클리퍼스 딜을 통해 훨씬 많은 걸 얻어냈다는 것은 스턴이 임시 구단주 역할에 매우 충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8] 참고로 이 드립과 걸맞게 전 상대는 국내팬들에게 별명으로 산왕이라 불리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였다.[9] 이러한 언론보도와 달리, 실제로는 스퍼스와 한 번의 미팅조차 갖지 않았다. 원래부터 스퍼스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10] 당초 옵트아웃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번 트레이드를 위해 옵트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리퍼스가 폴과 계약을 맺은 뒤에 트레이드를 진행하는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실상 친정 팀에 대한 마지막 의리를 지킨 셈.[11] 그전까지는 케빈 가넷 트레이드가 최고기록이었다. (2007년 여름) 보스턴이 케빈 가넷을 트레이드로 영입할 때, 미네소타에 넘긴 대가 : 알 제퍼슨 & 세바스찬 텔페어 & 제럴드 그린 등 총 5명의 선수 + 1라운드 지명권 2장 = 7대1 트레이드[12] 대릴 모리 단장은,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두 명을 얻었다. 정말 기대가 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13] 댄토니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e more point guards you have on the floor the better it is."[14] 2024년에 베벌리가 밀워키로 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때 폴은 모리로부터 트레이드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결국 트레이드되었다고 대릴 모리 사장한테 실망했다고 한다.[15] 현재 오클라호마 구단은 대다수의 팀내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 하거나 FA로 풀어주면서 리빌딩 진행중인 팀이다. 물론 마이애미와의 트레이드 루머가 있어서 추가 트레이드의 확률도 있지만 우승에 가장 근접한 팀으로의 이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