ᠻᠦᠷᠦᠯᠳᠠᠶ (Хуралдай/Quriltai)
1. 개요
중세~근대에 칸의 명에 의해 개최되었던[1] 몽골의 정책 결정 기관이자 회의이다.흉노, 선비족, 오환, 거란 등도 쿠릴타이가 있었다.
현재도 헝가리에서 전통 보전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다.[2][3]
2. 상세
새로운 칸을 선발하는 일이나 법을 제정하는 일,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 계획을 수립하는 일 등 중요한 사안은 거의 쿠릴타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실제로 몽골 제국의 모든 칸은 공식적으로 쿠릴타이를 통해 선출되었다. 다만 유목 제국의 특성 상 온갖 곳에 퍼져있는 여러 부족들의 수장들을 모아 집합시키는 것은 영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었던지라, 칸의 재위 기간 동안 겨우 두세 번 정도 개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충 5~6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지는 행사였기 때문에 칸의 숙소(오르두) 근처 목초지에서 큰 규모로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쿠릴타이가 끝난 다음에는 약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4]가 열렸다.한자로는 忽里勒台, 忽鄰塔[5] 등으로 표기되어있으며, 페르시아어 자료에는 قوريلتاى로 표기되어있다. '모이다'를 뜻하는 몽골어 동사 quri-에 접미사 lta가 붙어 명사형이 된 것으로, 직역하자면 '모임'이라는 단순한 뜻이 된다. 다만 단순히 모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가족이나 혈연끼리 모이는 일을 칭한다.
몽골에 복속된 시기의 고려왕들도 황제의 사위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킵차크 칸국의 소 쿠릴타이에는 러시아의 보야르들이나 종속된 국가의 사신들이 오기도 했다.
한민족은 유목민족도 아니긴 하지만, 고려시절에 칭기즈 칸의 혈족과 고려 왕족이 결혼했었기 때문에, 고려 왕족들이 정식으로 원나라 쿠릴타이에 참석하였었다. 가령 충선왕이 쿠릴타이에 참석하여 원무종의 즉위를 지지하기도 했다.[6]
쿠릴타이, 특히 후계자 선정을 위한 쿠릴타이가 개최되면 모든 일이 올스톱되는지라 오고타이 칸의 죽음으로 유럽 정복이 멈췄고 몽케 칸의 죽음으로 남송 정복이 미뤄지기도 했다. 게다가 쿠빌라이와 아라크부카의 사례처럼 적당히 명분만 있다 싶으면 기존에 선출된 지배자를 무시하고 자기 파벌 사람들로만 구성된 쿠릴타이를 열어 즉위하기도 했다.
[1] 물론 칸의 자리를 계승하는 문제는 예외, 특히 쿠빌라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독자적으로 쿠릴타이를 개최할 수도 있다.[2] 대한민국도 참여한다. # 카자흐의 고려인 관련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목민족 한가운데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 워낙 병신같지만 멋있다 보니 역사 커뮤니티에서는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었으니 고려 칸국으로 몽골제국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드립부터 우리는 유목민족을 지배했다며 고구려, 발해, 환국(...) 드립까지 나온다.[3] 참고로 일본과 핀란드가 참여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실제 기마민족 자격으로 참여하는 한국과 달리 관전자 수준의 위치로 참여한다. 그리고 참여 빈도수 역시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 지구 반대편 한국이 참여하는 것도 웃긴데 핀란드까지 참여하다 보니 커뮤니티에선 환핀대전 드립을 치기도 한다.[4] 토이(toi)라고 부른다.[5] 원조비사[6] 예시로 든 충선왕은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였던 관계로 목소리가 더 컸는데, 충자돌림의 대부분의 군주나 공민왕의 아내(노국대장공주)를 보면 대부분이 방계왕족의 자식인 반면 충렬왕은 유일하게 현직 황제의 딸과 결혼하였기에 그 사이에서 나온 충선왕은 다른 고려 왕들보다 원나라 내에서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