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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13:28:02

코스 요리

언어별 표기
한국어 코스 요리
영어 course, course meal, course menu
중국어 套餐料理
일본어 コース料理
프랑스어 service à la russe(서비스 아 라 루스)
1. 개요2. 어원3. 역사
3.1. 유럽3.2. 아시아
4. 특징5. 구성6. 목록 및 관련 문서

1. 개요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순서대로 여러 가지 요리가 나오는 정식(定食).

2. 어원

영어로 'course'란, 과정(課程)을 뜻하는데, '과정'이라는 낱말을 풀어서 말하면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course meal', 또는 'course menu'란, 풀어서 말하면 순서대로 나오는 요리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서 'コース料理'라는 낱말로 정착하였는데, 서양식 코스 요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생겨난 가이세키(懐石)라는 일본 고유의 코스 요리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코스 요리라 함은 서양식이나 중식 코스 요리를 말하는 것이다. 일본어 'コース料理'를 한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한국어로도 '코스 요리'라는 낱말로 정착하였다.

프랑스어로는 'service à la russe(서비스 아 라 루스)'라고 하는데, 이는 '러시아식(式) 서비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본디 코스 요리라는 것이 프랑스의 오트 퀴진에서 기원하기는 하였으나,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순서대로 요리를 내오는 러시아식 서빙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추우니까 한 번에 음식을 다 올리면 식어버리게 되니 이런 서빙을 하게 된 것. 반대로 코스의 모든 요리를 한번에 내오는 것은 'Service à la française(서비스 아 라 프랑세즈)', 통칭 '프랑스식 서비스'라 칭한다.

3. 역사

3.1. 유럽

1인당 얼마의 금액을 내고, '전채(에피타이저) → 본 요리 → 후식'의 정해진 순서와 코스대로 즐기는 고급 요리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러시아에서 유래되었다. 러시아의 추운 기후 때문에 한 상 가득 모든 요리를 차려내면 먹는 동안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궁정 요리 등 고급 정찬은 요리를 순서대로 그때그때 조리해서 서빙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

이러한 러시아식 서비스가 프랑스까지 전파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부터이다. 원래 프랑스 요리의 정찬은 종류별로 한 접시씩 놓고 각자 덜어서 먹는 형태였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러시아식 코스 상차림을 도입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 도입 당시의 풀코스는 전통적인 정찬의 식사 예법에 따라 최소 10종 이상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풀코스는 누벨 퀴진 운동의 영향으로 점차 간략화되었고, 20세기 중반 즈음에 일본의 가이세키의 영향을 받아 3~4종 정도로 정착되었다. 현대 프랑스에서는 식당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여건이 된다면 간단하게 코스를 갖춰서 먹는 경향이 생겨났으며, 심지어 프랑스군의 전투식량까지도 코스 형태로 나오게 되었다.

3.2. 아시아

중국에서도 코스 요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정찬을 차리기도 한다. 서역과의 교류와 잦은 왕조 교체로 인해 식문화도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어 왔으며, 독자적인 단일 코스 요리가 발전했다고도 하나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많은 자료가 소실되어 중국식 코스 요리의 역사에는 의문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현대의 중국식 코스 상차림은 일반적인 코스 요리와 유사해보이면서도 5~6종의 독자적인 코스를 선보이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 또한 고급 식당 한정이지, 일반 가정에서는 이러한 코스 요리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전해진다.

한국의 상차림도 조선 시대까지는 코스와 유사한 형태로 차려졌다. 당장 임금이 먹던 수라상은 3개의 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반들의 잔치도 각자 술상(소반)에 요리가 차려져 있고 이게 여러 번 날라오는 형태였다.[1] 오늘날의 한정식집에서 나오는 한상차림[2]1930년대 황금정(을지로)에 즐비하던 조선 요릿집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한제국이 망한 이후 갈 곳 없어진 소주방의 숙수들이 요릿집(요정) 주방으로 갔다는 말도 있는데, 어쨌거나 이 고급 조선 요릿집들은 조선왕조 수라상을 흉내낸 상차림으로 돈 많은 일본인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일본인들에게 각광받은 이유는 일본 황족이나 일본 화족이 아닌 평민이라 일본 본토에서는 꿈도 못 꾸던 신분상의 제약에 관계없이 조선 왕공족이 먹던 식탁을 돈만 있으면 눈치 볼 것 없이 자신들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3] 이 황금정 요릿집의 한상차림은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치며 더더욱 퍼져나갔고 마침내 1970년대쯤 되면 여느 가정집에서도 "잔칫날 잔칫상은 한상차림으로 먹는 것"이란 인식이 뿌리박히게 된다. 프랑스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게 된 셈.

위의 이유로 현대에는 한정식점을 포함한 대한민국 대부분의 요식업소에서 한상차림으로 나오고 코스는 드물다. 최근에는 고급 한식당 위주로 한식을 다시 코스화하는 시도가 여럿 있는데,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형식이 아니라 서양의 코스 요리를 인용하여 재해석해낸 것이다. 그 외에는 역시 서양식 중 하나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볼 수 있고, 고급 중식당과 일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특이한 경우로는 횟집도 코스 요리 비슷한 구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잦은데, 이는 십중팔구 매운탕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4]

4. 특징

5. 구성

6. 목록 및 관련 문서



[1] 요즘은 사극들이 고증을 옛날보다는 잘 해서 이런 독상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2] 커다란 상에 온갖 반찬과 요리를 다 차려놓고 시중드는 아주머니들이 밥상의 한 귀퉁이를 잡고서 방 안으로 들고 들어온다. 요즘은 이 방식이 발전해서 한정식집에 가 보면 커다란 정사각형 판 위에 상을 차려 놓은 후, 상판을 종업원들이 달랑 들어다가 식탁에 있는 홈에 밀어서 끼운다. #이런 식.[3] 조선 왕공족은 일본 화족보다는 확실히 상위 계급이고 일본 황족보다는 아래로 취급했다. 이방자 여사 문서에 있는 요리 에피소드라든가, 미치코 상황후 문서에서 보듯 일본 내의 암묵적인 신분 차별은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4] 살점은 회를 떠서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그걸 먹는 동안 남은 뼈로 매운탕을 끓이니 필연적으로 코스 요리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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