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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2B48C><colcolor=#000000> 하노버의 왕자비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 Princesse Caroline de Monaco | |
이름 | 카롤린 루이즈 마르그리트 그리말디 (Caroline Louise Marguerite Grimaldi) |
출생 | 1957년 1월 23일 ([age(1957-01-23)]세) |
모나코 몬테카를로 모나코 대공궁 | |
배우자 | 필리프 주노 (1978년 결혼 / 1992년 무효화) |
스테파노 카시라기 (1983년 결혼 / 1990년 사망) |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1999년 결혼) | |
자녀 | 안드레아[1], 샤를로트[2], 피에르[3], 알렉산드라[4] |
아버지 | 레니에 3세 |
어머니 | 그레이스 켈리 |
형제 | 알베르 2세, 스테파니 |
종교 | 가톨릭 |
계승 서열 |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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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장녀이자 모나코 공국의 공녀로 알베르 2세의 누나이기도 하다. 현재 알베르 2세의 쌍둥이 자녀인 자크와 가브리엘라의 뒤를 이어 모나코 공위 계승 서열 3위다.2. 직위
- Her Serene Highness[5] Princess Caroline of Monaco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 저하(1957년 1월 23일~ 1999년 1월 23일)
-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Hanover 하노버의 아우구스트 왕자비 전하[6](1999년 1월 23일~)
3. 생애
임신이 알려진 직후부터 켈리백 에피소드 같은 화제를 일으키고 태어나기도 전에 언론의 관심을 끌고 다닌 카롤린 공녀는 독일계 미국인과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후손인 어머니 그레이스 켈리보다 부계인 그리말디 가문과 남미 혼혈인 폴리냐크 집안의 유전자를 강하게 타고난 남유럽계 외모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공녀라는 배경 때문에 항상 기자들을 몰고 다녔고, 유명인들의 일상을 찍어 언론에 팔아먹는 파파라치라는 어원의 원조를 만들었다.
그레이스 켈리는 딸이 외국 왕실이나 명문 귀족 가문에 시집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렇게 되기는 했는데... 그리말디 가문은 유럽 왕가 사이에서 지방 귀족 나부랭이 취급을 받으며 배척당했기 때문.[7] 일단 모나코 자체가 그리말디 가문이 무단점령해 통치한 땅인데다 사생아를 후계자로 삼아서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평민 출신 미국인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공비가 되면서 더 격 떨어지는 이미지로 전락했었다. 그나마 무단통치의 역사가 1000년에 가까워서 그렇지 사실상 공족 행세하고 다니는 돈많은 귀족 집안. 켈리 신드롬의 여파로 모나코를 방문해 관광 수익을 올려준 대다수가 미국인이였다.
이런 그레이스 켈리가 찍어 두었던 사윗감이 무려 영국 왕실의 찰스 왕세자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카롤린의 신분으로는 장래 영국 왕비가 되기엔 꽤 어려움이 있었고,[8] 실제로 둘의 만남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종교 문제는 둘째치고 주체 못할 바람기도 똑같고 무엇보다 두 사람 다 극도로 이기적이어서 맞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어릴 때부터 자녀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써서 이에 부응하듯 카롤린 공녀는 학창 시절 우수상을 빈번하게 받아올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고 성적도 매우 우수했다.
10대 시절 카롤린 공녀는 영국에서 유학하며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딸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부모와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방탕한 대학생활이 언론에 자주 오르면서 부모의 속을 타들어가게 만들었지만, 정작 그녀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애들이 클럽에서 술 마시고 남자랑 놀 수도 있지 왜 나한테만 그래요?'라는 식으로 당당한 태도를 고수했다.[9]
3.1. 3번의 결혼
첫 번째 결혼 |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19살에 무려 17살 연상의 이혼남인 필리프 주노와 기어이 결혼했다. 이미 갈 데까지 갔다고 과시하는 모습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레니에와 켈리는 할 수 없이 허락했다. 이때 "그 결혼이 2년이나 가면 용하다"고 했던 모후의 염려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주노가 바람을 피우는 일이 벌어졌고, 카롤린 역시 맞바람을 피우다가 이혼에 이르렀다. 1982년 혼인 무효 신청을 시작했고 1992년에야 무효화되었다.
두 번째 결혼 |
그 다음으로 이탈리아 석유 재벌가의 막내아들인 3살 연하남 스테파노 카시라기와 속도위반으로 재혼하여 2남 1녀를 낳아[10] 자녀들을 키우며 카시라기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 연하지만 막 나가던 카롤린을 꽉 잡고 산 걸 보면 꽤나 능력남이었던 듯하다. 실제로 스테파노 카시라기는 카롤린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였고, 당시의 카롤린은 정말 행복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터 보트 사고로 남편이 사망하면서 행복한 결혼생활도 8여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이후 외진 곳에 칩거하며 육아에 전념하며 조용히 사는 듯했다. 그러나 몇년 지나지 않아 여러 남자들을 다시 사귀고 필리프 주노와의 결혼 정리 문제에 나서는 등 매스컴에 다시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세 번째 결혼 |
하노버 가문의 수장인 3살 연상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와 다시 속도위반으로 3번째 재혼을 했다.
문제는 이 결혼이 친구의 남편을 빼앗아서 성립되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불륜 사실이 보도되자 친구와 남편에게 당한 본처는 한동안 이혼하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러나 불륜 상태에서 임신한 카롤린은 기어코 3번째 결혼을 강행했고, 1999년에 불혹을 넘긴 나이에 넷째 알렉산드라를 낳았다.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하는 듯했으나, 아우구스트 5세는 폭행 관련으로 구설수에 자주 올랐으며## 결국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 [age(2009-06-01)]년째 별거 중이다. 사실상 이혼 상태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11]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와의 결혼은 불륜과 속도위반으로 이뤄졌지만 정작 아버지 레니에 3세를 비롯한 집안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모나코 공가가 일국을 다스리는 가문임에도 격이 낮기 때문이다. 유럽의 왕족사회에서 모나코 공가는 벼락출세한 하급귀족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전통적인 혼맥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은 이름만 남은 옛 왕실이지만 모나코 공가보다 격이 높은 하노버 가문[12]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의 결혼으로 카롤린 역시 유럽의 정식 왕족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슬하의 딸 알렉산드라 역시 정식 칭호는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lexandra of Hanover(하노버의 알렉산드라 공주 전하)로, 왕족 칭호와 공주 작위를 받았다.[13]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섰음에도 이혼하지 않고 별거만 하고있는 이유도 결혼생활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외적인 관계는 유지하는 듯 2022년 9월 19일에 거행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함께 참석했다.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 (Princesse Caroline de Monaco) | <colbgcolor=#fff3e4,#331c00> 레니에 3세 (Rainier III, Prince de Monaco) | <colbgcolor=#ffffe4,#323300> 피에르 드 폴리냑 (Pierre de Polignac) | |
막상스 드 폴리냑 백작 (Count Maxence de Polignac) | |||
수산나 데 라 토레 이 미에르 (Susana de la Torre y Mier) | |||
발랑티누아 여공 샤를로트 (Princesse Charlotte, Duchesse de Valentinois) | |||
루이 2세 (Louis II, Prince de Monaco) | |||
마리 쥘리에트 루베 (Marie Juliette Louvet) | |||
그레이스 켈리 (Grace Kelly) | |||
잭 켈리 시니어 (Jack Kelly Sr.) | |||
존 켈리 (John Kelly) | |||
메리 코스텔로 (Mary Costello) | |||
마거릿 메이저 (Margaret Majer) | |||
카를 마예르 (Carl Majer) | |||
마가레타 베르크 (Margaretha Berg) |
4.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스테파노 카시라기 (Stefano Casiraghi | |||
1남 | 안드레아 카시라기 (Andrea Casiraghi) | 1984년 6월 8일 ([age(1984-06-08)]세) | 타티아나 산토 도밍고 슬하 2남 1녀 |
1녀 | 샤를로트 카시라기 (Charlotte Casiraghi) | 1986년 8월 3일 ([age(1986-08-03)]세) | 슬하 2남[14] |
2남 | 피에르 카시라기 (Pierre Casiraghi) | 1987년 9월 5일 ([age(1987-09-05)]세) | 베아트리체 보로메오[15] 슬하 2남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Ernst August, Prince of Hanover) | |||
1녀 | 하노버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Hanover) | 1999년 7월 20일 ([age(1999-07-20)]세) |
5. 여담
- 항상 바쁜 부모님들 때문에 유모와 더 가까웠고[16], 이는 남동생 알베르 2세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두 사람은 유모가 휴가를 떠날 때마다 차를 막고 가지 말라고 울면서 화를 냈다고. 그 유모는 막내 스테파니 공녀가 태어날 즈음에 떠났지만 본인들에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다. 부모보다 유모를 훨씬 따라서 그녀가 휴가를 가면 둘 다 히스테릭 상태로 울며불며 난리를 쳤고, 그레이스는 유모에게 연락해 예정보다 빨리 와달라고 사정해야 했다고 한다.
- 그레이스 공비는 어린 시절 너무 엄격한 어머니가 매를 아끼지 않고 키웠는데, 자신도 자녀들이 말을 더럽게 안 들을 땐 엄하게 때렸다고 한다. 생전에 만났던 미국인 작가는 그레이스가 자신에게 털어놓기를 "어릴 때 카롤린이 하도 말을 안 들어 사흘에 한 번씩은 반드시 팼고 알베르는 눈치가 있어서 덜 맞았다"라고 했으며 스테파니는 정작 거의 손을 대지 않고 길렀는데 진작에 좀 패서 키웠어야 한다는 어조로 말했다고 했다.
- 조카인 자크와 가브리엘라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모나코 공위 계승서열 1위였다. 알베르 2세가 결혼하지 않았거나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카롤린이 여공으로 즉위하거나 카롤린의 자녀들이 공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17] 그러나 알베르 2세가 샤를린 위트스톡과 정식으로 혼인한 후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현재는 3위로 밀려났다.
- 칼 라거펠트와 절친이었다.
[1] 계승 서열 4위[2] 계승 서열 6위[3] 계승 서열 5위[4] 계승 서열 7위[5] 모나코 공국의 로열 패밀리들은 HRH보다 한단계 낮은 HSH 칭호를 사용한다.[6] 하노버 왕국은 멸망했으나 구 왕족들은 HRH 칭호를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카롤린은 모나코 공위를 이은 동생보다 신분이 높다.[7] 사실 유서깊은 룩셈부르크 대공가(부르봉-파르마 가문), 리히텐슈타인 공가와 같은 공실 취급 받기도 애매한 가문이다. 물론 일반인들 기준에선 엄연한 상류층이지만.[8] 무엇보다 영국 왕실에서 그레이스 켈리를 사돈으로 맞이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9] 이런 기질은 동생들인 알베르와 스테파니로 내려갈수록 심해져, 모나코 공가가 날라리 졸부 귀족들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한다.[10] 안드레아(1984년생, [age(1984-01-01)]세), 샤를로트(1986년생, [age(1986-01-01)]세), 피에르(1987년생, [age(1987-01-01)]세)이다. 알베르 2세가 미혼일 땐 안드레아가 공위계승권에 가까웠고 한때 외모도 출중해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샤를로트 역시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패션감각을 지녀서 예전부터 인기 많은 셀렙이었으며, 할머니 그레이스 켈리의 재림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11] 실제로 아우구스트가 국 푸껫 해변에서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 #[12] 하노버의 왕족들은 Royal Highness를 존칭으로 사용하는데 모나코의 공족들은 그보다 격이 낮은 Serene Highness를 존칭으로 사용한다.[13] 엄밀히 따지면 현 군주인 외삼촌 알베르 2세의 적자녀 자크 공세자와 가브리엘라 공녀보다 신분이 높다. 그리고 하노버 왕가의 피를 이어 받아 2018년까지 영국 왕위 계승권도 가지고 있었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제외되었다.[14] 장남은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나서 계승 서열에서 제외됨[15] 밀라노 공국의 유서 깊은 백작 가문인 보로메오 가문의 사생아 출신으로 이 가문 출신의 성인으로 카를로 보로메오가 있다. 베아트리체 본인은 언론인으로 독일인 청년 디르크 하머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으로 이탈리아 왕국 사보이아 가문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와 부자와 SNS상으로 다툰 이력이 있다. 이복 언니인 라비니아는 이탈리아 최대 기업 엑소르의 수장이자 세리에 A 유벤투스 FC의 구단주 존 엘칸과 결혼했다.[16] 그레이스는 스스로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했으나, 당시 모나코의 인지도와 국격을 높이는 문제로 너무 바빠서 영국인 보모를 고용했다고. 그레이스와 레니에 부부는 항상 아이들과 같이 하는 것을 중요하게 내세웠지만, 정작 카롤린은 10대 이전까진 항상 바쁘고 너무 엄격한 부모와 그리 가깝지 않았다고 했다.[17] 이 때문에 카롤린의 자녀들은 작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추정 상속인으로 대우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