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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 아르헨티나 |
1. 개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대외관계에 대한 문서.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아르헨티나와는 스페인 식민지였을 당시 같이 힘을 합쳤다. 식민지 독립전쟁과정에서 양국의 독립군을 서로 지원하거나 협공하며 스페인군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이후에는 스페인이라는 공통의 적이 사라지게 되었다.아르헨티나하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파타고니아와 아타카마 사막 지대,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소유권을 놓고 국경/영토 분쟁을 벌였으며[1] 게다가 현재에도 국경을 접한 안데스 산맥 남부 지역에 위치한 세로 무라욘과 피츠로이 산의 영유권을 두고 국경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2.2. 20세기
1978년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지대인 마가야네스 지역의 비글 해협에서 레녹스, 누에바, 픽톤 섬의 영유권을 두고 양국간의 분쟁이 발생했다. 이 분쟁은 한때 총격전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악화되기도 했으나, 1979년부터 1984년까지 교황의 중재하에 5년간 협상이 진행되었고, 1984년에 아르헨티나가 이들 지역의 칠레 영유권을 인정하는 상호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일단락되었다. 비글 해협의 분쟁은 하술할 포클랜드 전쟁에서 칠레가 영국을 지지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1982년 피노체트 시절에는 둘이 갈등이 있었는데 포클랜드 전쟁 당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아르헨티나와 싸우고 있었던 영국을 지지해서 아르헨티나하고도 갈등이 있었다. 특히 영국 공군에 칠레가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공을 개방하고 비행장을 쓰도록 내준 바람에 칠레가 남미 대륙에서 고립되어 버리기도 했었다. 영국에게 무려 영공까지 개방해줘서 남미국가들의 대다수가 칠레를 비난한 적 있었다.[2] 하지만 칠레에서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물러나게 되어 민주화가 되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3], 그리고 아르헨티나 군부독재도 퇴진하자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다소 사이가 나아진 편이며, 양측 관계가 정상화되었다.[4] 칠레 정부가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에서 아르헨티나를 계속 지지하고 있고, 파타고니아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되어서 서로 협력하게 되었다.
2.3. 21세기
양국은 미주기구,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프로수르의 회원국들이다. 양국은 교류, 협력을 하고 있다. 다만 남극 반도 인근 지역을 두고 갈등이 있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남극 조약으로 인해 두 나라 모두의 영토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2024년 아르헨티나가 정회원국으로 가입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에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게 빼앗긴 해안선 영토 문제를 두고 칠레와 내내 적대관계에 있었던 볼리비아가 아르헨티나 항구에 대한 무관세 사용을 노리며 정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을 메르코수르의 기존 정회원국이었던 아르헨티나에서 승인, 자국 항구에 대한 볼리비아의 무관세 사용을 허가해줌으로서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어있는 볼리비아의 해양 진출 시도 문제를 두고 두 나라 간의 갈등이 새롭게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5]3. 문화 교류
양국은 스페인어 사용국에 속해 있다. 칠레에서 쓰이는 스페인어와 아르헨티나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 중남미와는 차이점이 크고 발음, 어휘, 일부 문법에서 차이점이 큰 편이다. 그리고 천주교는 양국 모두 토착화됐다.4. 교통 교류
산티아고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잇는 항공이 존재한다. 그리고 양국을 잇는 도로가 존재하며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양국을 잇고 있다. 양국 국민은 신분증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5. 관련 문서
- 아르헨티나/외교
- 칠레/외교
- 미주기구
-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
-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 프로수르
- TPP
- 티에라델푸에고[6]
- 칠레/역사
- 아르헨티나/역사
- 칠레/경제
- 아르헨티나/경제
- 칠레인 / 아르헨티나인 / 스페인어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남아메리카 국가
[1] 사실 칠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전 지역와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연안지역을 합병하려다가 아르헨티나와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연안지역을 합병하지 못하고,티에라 델 푸에고도 아르헨티나와 영토를 동, 서로 분할해서 섬 동부지역을 아르헨티나에게 내주고 서부 지역만을 차지했다.[2] 헌데, 특이한 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의 아내인 세실리아 볼로코 (Cecilia Bolocco)는 칠레인이란 거다. 메넴 전 대통령이 블로코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도 아르헨티나 국내에서도 악질 칠레 여자와 왜 결혼하냐며 메넴 전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도 아르헨티나에서의 행보도 좋지 않았는데 2001년도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모독하고 칠레 국기를 찬양하는 언행을 보이는 등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욕을 먹기도 했었다.[3] 영어 위키백과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 관련 항목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후 칠레의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포클랜드 문제에 있어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4] 포클랜드 전쟁 당시 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아르헨티나 편을 들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와 앙숙이었던 브라질조차 아르헨티나 편을 들고 영국을 비난했으며 결국 영국-브라질 관계도 서먹해져 버렸다.[5] 물론 아르헨티나는 아직까지는 칠레와 볼리비아 간 태평양 영유권 갈등에서 과거 볼리비아령이었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로 편입된 안토파가스타주 지방을 칠레 땅으로 인정하고 있다.[6] 양국은 티에라델푸에고를 두고 영토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