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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8 13:43:42

춘평군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春平君
생몰년도 미상

전국시대 조나라의 인물.

2. 생애

조도양왕총애를 받은 인물로 이 때문에 낭중(郞中)들에게 시기를 받았다고 하며 기원전 243년에 진나라에서 불러들였다가 억류되지만 진나라의 대신인 설균 덕분에 풀려났다.

열녀전[1]에 따르면 도양왕의 왕후인 창후와 간통했다고 한다.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사극 대진부에서는 특이하게도 역사와 정 반대로 효성왕의 장남이라는 설정으로 도양왕의 동복형이다. 휘는 일이다. 동생인 조언이 워낙 공자 시절부터 개망나니였던데다가 본인은 성격이 진중하고 품행이 단정해서 사실상 태자로 내정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진나라에서 조나라 조정을 막장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로 조일을 인질로 보내라고 협박했고, 효성왕은 전쟁까지 불사하려고 하지만 본인이 희생해서 진나라에 인질로 가겠다고 하면서 자진해서 간다. 춘평군으로 봉해진 것도 이 때. 진나라에 가서는 진왕이 된 에게 예를 올리지 않는 등[2] 꼬장을 부리다가 그 꼴을 보고 빡친 조태후에 의해 아무리 인질이라고 해도 일국의 공자인데 여산에 끌려가서 노역을 하는 신세가 된다.

조일이 노역을 한다는 말에 대노한 효성왕은 본인이 친정을 해서 진나라를 치겠다며 군대까지 다 소집해놨지만 열병식을 하는 자리에서 그만 쓰러지고 얼마 안 가 사망한다. 자연히 차기 왕은 본국에 남아있는 조언이 된다. 이후 몇 년간 고생을 많이 했는지 그 이후로는 성격이 많이 죽어 함양으로 돌아오는데 부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진왕 정에게 전해듣고 오열하면서 조나라로 돌려보내달라고 영정과 여불위에게 애원한다. 진나라 측에서도 춘평군을 조나라에 돌려보내 조정을 혼란하게 하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기 때문에 이해가 일치하여 진나라 군대를 호위로 딸려주면서 조나라로 보낸다.

이목과 조나라 종실 종친들, 백성들의 지지를 모두 받고 있던 조일을 매우 경계한 조언은 좌불안석이었는데, 창후가 꾀를 내어 춘평군이 한단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인을 겁탈하려고 한 것처럼 상황을 만들어 약점을 잡으며 그가 내란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든다. 이후로는 조나라 조정에서 상장군 이목, 승상 곽개, 공자 조총 등과 함께 나름 주도적으로 활동하는데 도양왕 말만 듣는 곽개와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그렇게 잘 살다가 도양왕이 함양에 가서 진-조 동맹을 맺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이것도 계획이 새서 곽개와 창후가 먼저 알게 된다. 도양왕의 행렬을 습격하려던 찰나 창후가 선수를 쳐서 암살 기도를 무마했고 이걸로 또 약점이 잡혀서 창후의 아들인 공자 천의 승계를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후 진나라와 동맹을 맺고 배후를 안정시킨 뒤 연나라를 털어먹으려던 도양왕은 진나라가 ‘평화롭게 지내자고 동맹을 맺은 것인데 그러고도 약소국을 괴롭히는 불의로운 행동을 하는 조나라를 응징하겠다’는 명분으로 통수를 갈긴 꼴을 보고 홧병이 나서 드러눕는다.(...) 도양왕이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되자 창후는 종친들의 지지를 모아 차기 왕인 조천의 후견인 역할과 곽개를 견제할 미래의 국정 파트너로 춘평군을 낙점하고 그를 유혹해서 또 하룻밤을 보낸다.(...)이 무슨 막장[3] 한편 도양왕은 이 꼴을 엿보고 혈압이 올라 그대로 사망한다.

도양왕 사후에는 완전히 초강대국이 된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팽당한 여불위를 모시러 갔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한비연태자 단 등 육국 수뇌부들과 함께 합종책을 모색하지만 제나라와 초나라의 미적지근한 반응, 그리고 이를 간파한 이사와 요고, 돈약 등 진나라 요인들의 집요한 방해로 전부 실패한다.

조나라 멸망 직전까지도 반쯤 진왕의 첩자가 되어 X맨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던 곽개를 견제하고 그 곽개가 찍어내려던 이목을 최대한 커버치며 조국의 멸망을 막아보려 애썼으나 곽개가 군량 횡령의 누명을 씌워 조의 마지막 기둥이었던 이목을 죽이고 종국에는 한단 성문을 열어 왕전의 진군을 받아들이는 이적행위까지 저질러 뜻을 이루지 못한다. 최후도 참 허무한데, 장대궁이 진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항복을 종용하러 온 곽개를 죽이려다가 먼저 칼을 뽑은 곽개가 그의 목을 그어버려 절명한다. 그야말로 왕위도 잃고, 개고생했는데 이룬 건 없는[4] 작중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하라 야스히사만화킹덤에서는 17권에서 잠깐 등장하며 역사와 동일하게 왕의 총애를 받는 점, 그리고 진나라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난다는 점은 같지만 작은 설정이 추가된다. 작중에서는 외모가 여자처럼 곱상한 미청년으로 묘사되며, 그가 도양왕에게 총애를 받았던 것도 실은 왕의 동성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불위가 장사꾼이던 시절에 그와 거래를 한 적이 있어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5] 이후 진나라 승상이 된 여불위가 조나라의 장수인 이목을 진나라로 유인해오기 위한 희생양이 된다. 역사에서는 다른 인물을 인질로 보낸 것으로 풀려난 것과 달리, 킹덤에서는 땅을 조건으로 해서 진나라에서 풀려난다.[6]


[1] 전한의 유향이 지은 책을 말하며, 여기서는 정절을 지킨 열녀(烈女)를 뜻하는 것이 아닌 많은 여자를 뜻하는 열녀(列女)를 말한다.[2] 대전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여불위와 조태후에게 대충 읍만 하고 말았다.(...)[3] 더 골때리는 건 이후에도 창후랑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는 씬이 나오는 등 그녀와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었다는 암시가 작중 여러 번 나온다.[4] 아무리 약점을 잡혔다지만 도양왕 사후에도 유목왕을 보좌하면서 충실하게 나라만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단 포위 당시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식량을 모두 조군에 헌납해 자기 아들도 굶어죽었을 정도다.[5] 여불위는 진나라에 들어와 승상이 되기 전에는 조나라 수도인 한단에서 지냈다.[6] 사실 저 땅따먹기 자체가 여불위의 이목 평가+이목 일행의 목숨줄+진나라와 조나라의 동맹으로 춘평군은 이를 위한 구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