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5-14 10:20:32

춘성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if 넘어옴1 != null
''''''{{{#!if 넘어옴2 == null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2 != null
, ''''''{{{#!if 넘어옴3 == null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3 != null
, ''''''{{{#!if 넘어옴4 == null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4 != null
, ''''''{{{#!if 넘어옴5 == null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5 != null
, ''''''{{{#!if 넘어옴6 == null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6 != null
, ''''''{{{#!if 넘어옴7 == null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7 != null
, ''''''{{{#!if 넘어옴8 == null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8 != null
, ''''''{{{#!if 넘어옴9 == null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9 != null
, ''''''{{{#!if 넘어옴10 == null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0 != null
,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if 설명 == null && 리스트 == null
{{{#!if 설명1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if 설명1 != null
{{{#!html 춘천시의 옛 행정구역}}}에 대한 내용은 [[춘성군]]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춘성군#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춘성군#|]]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 부분을}}}}}}
#!if 설명 == null
{{{#!if 리스트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if 설명1 != null
춘천시의 옛 행정구역: }}}[[춘성군]]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춘성군#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춘성군#|]] 부분}}}}}}{{{#!if 문서명2 != null
 * {{{#!if 설명2 != null
: }}}[[]]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3 != null
 * {{{#!if 설명3 != null
: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4 != null
 * {{{#!if 설명4 != null
: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5 != null
 * {{{#!if 설명5 != null
: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6 != null
 * {{{#!if 설명6 != null
: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7 != null
 * {{{#!if 설명7 != null
: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8 != null
 * {{{#!if 설명8 != null
: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9 != null
 * {{{#!if 설명9 != null
: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if 설명10 != null
: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

<colbgcolor=#000><colcolor=#fff>
춘성
春城
파일:94569_30496.jpg
속명 이창림(李昌林)
국적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대한민국|{{{#!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대한민국}}}{{{#!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출생 1891년 3월 30일
조선 춘천도호부 인제현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원통리
사망 1977년 8월 22일 (향년 87세, 법랍 74세)
대한민국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망월사
본관 평창 이씨
별칭 무애도인(無碍道人)

1. 개요2. 생애3. 기행

1. 개요

대한민국독립운동가이자 승려.

2. 생애

1891년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원통리에서 태어났다. 1903년 13세 때 백담사에서 출가하여 10여년간 만해 한용운을 모시며 수학한 직계제자.

하지만 자신은 만해에게 파문당했다고 생각해 어디에서 만해스님의 수제자라고 하면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사실 여기엔 일화가 있는데, 만해가 투옥되었을 때 춘성을 비롯한 제자들은 스승님의 잠자리를 걱정했다. 춘성은 만해가 출소할 때까지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한용운과 사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는데, 한용운이 아직 감옥에 있을 때 춘성이 정성을 기울여서 만들어온 솜바지 저고리를 드렸다. 그런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만해 한용운이 "이 솜바지 저고리를 만들려면 수월찮게 돈이 있어야하는데 너는 무슨 돈이 있어서 이 비싼 솜바지 저고리를 만들어 왔느냐?"라고 묻자 춘성은 절에 딸린 텃밭을 팔아 만들어왔다고 하자 화를 내며 "절에 딸린 텃밭은 부처님 재산이거늘 감히 네가 마음대로 팔았단 말이냐?"라고 질책했다. 이에 춘성은 "텃밭은 나중에 다시 사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답했지만 한용운은 완고하게 "아니 될 소리! 너는 부처님의 재산인 사중(寺中, 절의) 땅을 사사롭게 쓰기 위해 함부로 팔았으니 죄중에도 큰 죄를 저질렀다! 난 너 같은 상좌를 둔 일이 없으니 오늘부터 내 제자라는 소리는 입밖으로 내지 마라!"라면서 제자가 정성들여 만든 솜바지 저고리를 받길 거부했으며 이 일로 춘성스님은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누군가 자신에게 스승이 누구냐고 물어도 "저에게는 은사가 안 계십니다."라고 계속 답했다고 한다. 출처

1919년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가 되었고, 1929년 만공[1]의 법을 이어받았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북한산의 망월사에서 머물렀으며 1977년 세수 87세, 법랍 74세로 사망하였다. 유언에 따라 사리와 재는 서해에 뿌려졌다.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생전 한용운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는 3.1 운동 당시 수감된 한용운에게서 조선독립의 서를 받아 임시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한용운의 수감 생활을 옥바라지 하는 등 그를 끝까지 챙겼다.

3. 기행

춘성이 유명한 건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의 제자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래의 기행들과 육두문자 설법 때문. 그렇다고 그게 다 해괴한 것도 아니고 일부는 해학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2] 이 기행들 때문에 겉보기에는 땡중처럼 보일 수 있어도, 입이 거칠 뿐이지 항상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며 한 평생 재산을 탐한 적도 없었고 오로지 옷 한 벌과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았다.


[1] 한용운의 절친한 친구기도 했다.[2] 춘성의 또다른 스승이던 만공도 이런 기행으로 유명했다.[3] 후당 시기 선사인 운문(雲門)의 유명한 선문답이다. 어떤 이가 '부처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마른 똥막대기'라고 답했다는 일화. 부처와 대중을 분리해서 보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화두로 이후 선불교 역사를 풍미한(?) 화두다. 태조 왕건궁예의 대사에서 나온 똥막대기도 여기서 온 말.[4] 사실은 절을 재건하기 위해 부러진 나무를 베어서 가져간 것이었다고 한다. 돈으로 아닌 산의 부러진 나무로만(!)[5] 사실 불법이 맞긴 하다.#작정하고 엄청난 양을 가져가지 않는 이상 굳이 단속하거나 신경쓰지 않을 뿐이다. 만일 저걸 다 잡았다면 막말로 등산 시 나뭇가지를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거나, 부상 시 나무 부속물을 임시 부목의 형태로 사용하는 것조차 죄다 산림법 위반에 절도로 잡아 넣어야 하는 데다가, 진짜 잡았다가 누구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나기에 안 잡는 것이다. 단 버섯의 경우 잡을 때가 조금 더 있다.[6] 사실 길거리에 있는 은행을 줍거나, 나뭇잎이나 꽃을 꺾거나 하는 것도 죄다 절도 및 점유율이탈횡령죄가 적용될 수 있고 실제로 판례도 있다. 그러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굳이 막을 이유가 없기에 안 막는 것이다. 어차피 그런 가로수 부속물들 자기들이 다 치워 버려야 하니까.[7] 중창불사(重創佛事)는 퇴락한 절의 시설을 다시 재건하는 사업을 말한다. 중창은 다시 세운다는 뜻이고, 불사는 불교 교단이나 사찰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업 등을 의미한다.[8] 영부인의 생일이라고 감언이설을 할 것 없이, 본질은 어느 누구든 똑같이 그냥 생일인 것이 춘성스님의 법문 핵심이라 볼 수 있다.[9] 박정희 정부는 가지각색의 독재 행적, 인권 유린 및 언론 통제로 악명이 높았지만 정작 박정희 본인은 전주 사찰 당시 할매국밥 사건도 그렇고 언론에서 하는 게 아닌 측근들이 자기에게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기 앞에서만 험한 농담을 하면 굉장히 잘 받아주었다고 한다. 본인부터가 농담을 좋아하기도 했고. 사실 독재자들이 사석에서는 호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박정희 외에도 적잖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