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444><colcolor=#fff> 최병헌 崔炳憲 | |
출생 | 1858년 1월 16일 |
충청도 제천현 | |
사망 | 1927년 (향년 68~69세) |
호 | 탁사(濁斯) |
가족 | 아들 최재학, 며느리 최활란 손자 최황, 손녀 최규연 |
경력 | 정동제일교회 제2대 담임목사 인천·서울 감리사 감리교협성신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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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감리회 목사.2. 생애
1858년 1월 16일 충청북도 제천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살림에 옆 동네 서당에 드나들면서 수치를 겪으며 동냥 공부를 하여 독학으로 한학을 배워 과거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한학자 였으나 영환지략(瀛環志略) 등[1]을 읽고 발달한 서양 문물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음을 알게 되고 개국론, 문명개화론의 입장을 지녔다.
1888년 존스(George Heber Jones) 선교사의 어학 선생이 된 것을 계기로 배재학당의 한문 교사가 되어 선교사들과 교제를 가졌다.
처음에는 서양인들과 그 종교에 경계심을 갖고 있었으나 1888년 정동의 양관(洋館)에서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을 입수하여 5년여에 걸쳐 성경을 연구한 끝에 개종을 결심, 1893년 세례를 받았다.
이후 정동교회 전도사, 성서번역위원, 독립협회 간부, 제국신문 주필, 신학월보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독립신문, 죠선그리스도인회보,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에 기고하면서 저술 활동을 하였다.
1901년 '신학월보'에 발표한 "죄도리"는 한국인이 쓴 최초의 기독교 신학 논문으로, 그에게 한국인 최초의 신학자란 명예를 안겨준 논문이다.
1916년부터 '신학세계'에 "종교변증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동서양의 종교들과 당시 한국에 있던 신흥 종교들까지 포함하여 기본 교리를 분석한 것으로, 1922년에 '만종일련'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유불선 등 동양 종교뿐 아니라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라마교 등의 고등 종교와 당시 한국에 유행하고 있던 백련교, 태극교, 대종교, 천도교, 태을교 등 신흥 종교들까지도 망라해 취급하고 있다.
190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정동교회 창설자인 아펜젤러 목사가 사망하자 1903년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14년까지 목회활동을 하였다.
1914년 인천·서울 지방의 감리사가 되었고 1922년 감리교협성신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사망 때까지 비교종교론과 동양사상을 강의했다.
3. 애국가 작사자?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설이 있다. 애국가의 본문은 최병헌의 '불변가'에서, 후렴구는 윤치호의 '황실가'(일명 무궁화가)에서 따온 것이라는 소위 '윤치호·최병헌 공동작사설'이 그것이다.#1#2#3 애국가 문서도 참고.4. 가족
장남 최재학(崔在鶴)은 여성운동가 최활란과 결혼했다. 최재학의 차남, 즉 손자 최황[2]은 한국인 최초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5. 저서
- 예수텬쥬량교변론(역, 1908)
- 성산명경(동양서원, 1911)
- 만종일련(1922)
- 조선야소교서회(1922)
- 한철집요(박문서관, 1922)
6. 관련 도서
- 탁사 최병헌의 개화사상과 민족운동(김정일 외, 여울목, 2019)
- 개화기 정동을 살다간 최병헌과 그의 시대(김정일 역, 여울목,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