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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드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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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04C57><colcolor=#ffffff> 레 남작
질 드 레
Gilles De Rai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illesderais1835.jpg
이름 질 드 몽모랑시라발
(Gilles de Montmorency-Laval)
출생 1404년
프랑스 왕국 앙주 샹토세쉬르루아르
사망 1440년 10월 26일 (향년 35-36세)
브르타뉴 공국 낭트
배우자 카트린 드 투아르 (1422년 결혼)
자녀 마리
아버지 기 2세 드 몽모랑시라발
어머니 마리 드 크라옹
형제 르네
서명 파일:Gilles-de-rais-signature.jpg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전쟁2.3. 체포2.4. 범죄와 처형2.5. 억울한 누명?
3. 잔 다르크와의 관계4. 대중 문화에서5. 질 드 레에서 모티브를 취한 캐릭터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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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라발(Gilles de Montmorency-Laval).[1] 프랑스귀족, 군인. 원수 계급까지 오른 인물이자,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의 최측근으로 유명하며, 그보다도 전설적인 성범죄자, 연쇄살인마, 마법사로 훨씬 더 유명하다.
샤를 페로가 지은 동화푸른 수염》의 등장인물인 의처증에 빠져 아내를 연쇄살인하는 귀족 푸른 수염의 모티브로 추정된다. 하지만 실제 질 드 레의 아내는 그의 사후 1년 뒤 재혼해서 잘 살았다.

헨젤과 그레텔》의 원본에 나오는 노파에게 아이들을 넘겨받아 살해하는 영주의 모티브라는 이야기도 있다. # 하지만 이쪽은 그 원본 이야기라는 것부터가 일본 작가인 기류 미사오가 쓴 책 외에서는 어디서도 언급 안 되는 이야기라 신빙성이 낮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404년 샹토세에서 기 드 레와 마리 드 크라옹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밑으로는 르네 드 레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부모는 재산가끼리 정략 결혼한 사이로, 별로 화기애애한 가정은 아니었던 듯 하다. 다방면에 뛰어났으며, 특히 천부적으로 무관의 재능이 있는 똑똑한 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라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음악을 사랑했다고. 우아한 외모의 소유자로서 귀족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다만 사교에는 서툴렀는데, 실제로 그는 평생 동안 15세기 프랑스 귀족에게 필수적이었던 정치적 술수나 음모에는 능하지 못했다.

11살이 되던 1415년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도 사냥길에 멧돼지에 밟혀 죽는다. 그의 장인이자 세기의 악당으로 유명한 쟝 드 크라옹을 두려워했던 기 드 레는 자식들의 양육을 사촌인 쟝 투르미네에게 부탁하지만, 장 드 크라옹이 손자들의 막대한 재산을 포기할 리가 없었고, 질 형제는 결국 외조부 밑에서 자라게 된다. 이 외조부란 사람이 질의 성장기에 영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16세 때 외조부의 지시하에 질 드 레는 그의 영지에 인접한 프와토 가문의 딸인 사촌 카트린 드 투아르를 납치해와 결혼한다. 카트린의 삼촌 등 3명이 그녀의 구출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붙잡혀서 감옥에 갇힌다. 정치적 협상 끝에 결혼이 정식 인정되고 구출된 3명은 풀려났으나 곧 죽었다고 한다. 지하감옥에 장기간 감금되었던 후유증으로 추정되는데, 프와토 성의 지하감옥은 썩은 물이 발목까치 차는 데다 간단한 침대도 없어서 갇힌 사람은 바닥에 누워 잘 수도 없었다고 한다. 1429년에는 질의 유일한 자식인 딸 마리 드 레가 태어난다.

2.2. 전쟁

16세 때부터 전쟁에 참가한 질 드 레는 호전적이고 용맹한 것으로 이름을 떨쳤다. 브레통 승계 전쟁에서는 공작을 구출하고, 뤼드 성 전투에서는 영국군 대장 블랙번을 죽이는 등 활약했으며, 백년전쟁에서는 잔 다르크 군대의 장군이자 그녀의 부관으로 싸운다. 잔 다르크가 한창 잘 나가던 1429년, 그는 25세의 나이로 국왕 대관식 성유를 나르는 4명의 기사 중 한 명으로 뽑히고 프랑스 원수의 호칭을 하사받는 등 군 경력의 정점을 찍는다. 이 즈음부터 그는 극심한 낭비벽이 생겨 돈을 물 쓰듯 하기 시작하고 온갖 난행도 저지르는데, 이것이 후일 죽음의 원인이 된다.

1431년, 잔 다르크영국군에 붙잡힌 끝에 결국 화형 당하면서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듬해인 1432년 외조부 장 드 크라옹(Jean de Craon, 1376 ~ 1432)이 사망했는데, 드 크라옹은 자신이 애써 모은 재산을 방탕하게 낭비하는 질 드 레에 대한 개무시의 의미로 자신의 칼과 갑옷을 르네 드 레에게 물려주었다. 한편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삶을 참회하고 그가 착취했던 농부들에게 돈을 주고 2개의 병원에 기부하는 등 마지막으로 선행을 했다고 한다.

2.3. 체포

1435년경, 질 드 레는 공적인 자리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잔 다르크 사망에 이어 조르주 1세 드라트레무아유마저 투옥되자 입지가 한층 불안해진 그는 샹토세로 돌아간다. 정치적으로도 무력해진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지나친 낭비로 인한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 그는 절박한 상황에 빠진다. 이 기회를 틈타 질의 영지를 탐내던 브리타니 공작은 질과 오랫동안 사이가 안 좋았던 낭트 주교 쟝 드 말레스트르와와 결탁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었는데, 1440년 광기에 빠진 질 드 레가 브리타니 공작의 동생이 본당 신부로 있던 성 에티엔 성당을 습격, 자신의 영지에 대한 브리타니의 소유권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질 드 레를 뒷조사하고 있던 말레스트르와는 7명의 영지 주민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질 드 레는 공범자와 함께 우리 관할의 많은 순진한 소년들의 목을 자르고 잔인무도하게 학살했으며, 부자연스러운 욕정에 사로잡혀 남색의 죄를 범했으며, 사람들을 사주하여 무시무시한 악마에게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치고 맹세를 했으며, 그 밖에 우리의 관할에서 숱한 범죄를 자행했고..."라는 서문을 발표한다.

말레스트르와는 약탈 혐의로 질 드 레를 체포해서 낭트로 데려오라고 지시했고, 이튿날 브리타니 공작 수하들이 질 드 레를 붙잡아 감금한다. 낭트에 끌려온 질은 성 에티엔 성당 습격 혐의에 대해 사전 취조를 받았는데, 이 취조서에는 살인이나 초자연적인 행위에 대한 언급은 없다.

2.4. 범죄와 처형

낭트에서 브리타니 수석 재판관 피에르 드 로피탈을 비롯한 검찰관들이 심문관 대리인 등 교회의 유력자의 동석하에 실종된 아이들의 가족에 대한 심리를 열었고, 그 결과 질 드 레는 살인, 남색, 이단, 교권 침해와 관련된 34개 항목으로 공식 기소된다.

재판에 따르면 질 드 레의 살인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미소년을 납치하여, 그에게 생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였을 호강을 누리게 해준다. 좋은 옷을 입히고, 진미를 먹이며, 술을 먹인다. 그 뒤 소년을 내실로 데리고 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채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갔다. 그리고 그 숨이 다할 무렵, 아직 살아있을 무렵에 소년을 강간하는 것이었다. 살해 수법이나 고문 수법은 그때그때 달랐지만 모두 다 점잖은 자리에서 설명하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질 드 레는 강간하는 것 자체는 잊지 않았지만 강간보다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에 더욱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목적 의식이 없는, 그저 끝간 데 모를 파괴 충동의 발산이었다.

목적 의식이 없는 살인에 목적을 부여한 건 프렐라티란 남자였다. 그는 미남에, 마술사[2]였으며, 수많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화술의 달인이었다(아마도 사기꾼이었겠지만). 질 드 레는 그를 철석 같이 믿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로는 악마에게 살해한 어린이들을 바치기로 하였다. 질 드 레와 악마의 추종자들은 프렐라티가 가르쳐준 대로 심장, 내장, 성기 등등을 적출하여 악마를 소환하는 의식을 치렀지만 악마 자체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때마다 프렐라티는 더욱 잔인한 요구를 하였고, 질 드 레는 무엇에 홀린 듯이 그 요구에 응하였다. 질 드 레의 악마 숭배와 희구는 광적인 수준조차도 뛰어넘고 있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첫날 질 드 레는 혐의에 대한 답변을 요구 받자 재판자들을 "잡것들, 성직 매매꾼"이라고 욕하며 "네 놈들한테 답변을 하느니 그냥 교수형을 당하고 말겠다"고 뻗대며 4번의 변론 기회를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둘째 날이 되자, 여전히 영성체고해성사를 거부하면서도 재판정의 권위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시인하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한다. 그는 기소된 모든 범죄를 인정했으나 악마 소환만은 시인하지 않았는데, 성경에 손을 얹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정은 그의 공범자들을 대질시켜 심리하는데, 5일에 걸친 심리에도 질은 여전히 더 이상 덧붙일 사실이 없다고 우겼다. 그러나 고문실을 보여주며 위협하자 결국 사실이라고 진술했고, 결국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1440년 10월 25일 질 드 레와 공범자들은 모두 화형에 처해졌다. 신분과 공을 감안하여 질 드 레만 교수형 직후 화형 당한다.[3] 이때 그의 나이는 36세였고, 사형 집행 전에 군중 앞에서 그의 무분별한 젊은 시절의 악행과 자신의 범죄에 대한 참회, 자녀들을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하게 키울 것을 당부하는 장문의 연설을 했다고 전해진다. 연설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록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로서의 겸손과 참회가 담긴 모범적인 내용이었다고...

추가로 여러 연구 중 하나는 질 드 레가 잔 다르크의 이단 판결과 화형 후 정신병을 겪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질 드 레는 연금술과 마술에 빠져들어서 엄청난 재산을 탕진했었다.

질 드 레의 외동딸 마리는 프랑스 원수 앙드레 드 라발몽모랑시의 부인이 되었다.

2.5. 억울한 누명?

그가 악마 숭배와 아동 살해로 체포되어 재판 끝에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허나 중세 시대에 종교적 모함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재산을 빼앗는 일이 많았기에, 질드레가 실은 무고를 당했다거나 정치적 모함으로 인해 교회에 의해 허위로 자백을 강요 당했다는 주장이 생겨났다. 아무리 영주라고 해도 저렇게 극악무도한 범죄를 들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벌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 때문에 수많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주요한 떡밥으로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발생한 증거들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아서 정말로 연쇄살인마였는지 의문점이 많은 바토리 에르제베트와는 달리 질 드 레는 무죄라는 걸 입증하는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

사실 중세 시대에 정치, 종교적 모함으로 죄가 없는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 허위로 자백을 받아내어 사형을 내리는 일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질 드 레 또한 영지와 재산들을 빼앗기 위한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으로 보는 의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단 중세 시대에 허위 자백을 통해서라도 유죄 판결을 받고 회개한 뒤 사형 당했다면 재산을 후손에게 넘겨줄 수 있었는데, 질 드 레 또한 자백을 했기에 재산을 후손들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질 드 레는 중세 시대에 재판으로 사형을 당했는데 실제로는 무고했으나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후건긍정의 오류가 된다. 당연하지만 중세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질 드 레의 무죄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질 드 레의 재판 과정에서 질 드 레와 그 시종들이 고문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으며, 재판정 측에서 고문을 하려고 했으나 질 드 레는 고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백을 했다. 또한 질 드 레의 범행에 대해서 본인의 자백뿐만 아니라 수많은 희생자 아이들의 부모들과 공범인 질 드 레의 측근 시종들이 증인으로서 증언했다. 음모론자들은 이 수많은 증인이 다 강압이나 매수라고 주장하나, 그 주장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질 드 레가 아무 죄도 없는데 정치적 모함을 하려고 했다면 그냥 이단이나 반역 혐의로 누명을 씌우면 되지, 굳이 수많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아동 성폭행살인에 대한 매우 생생하고 디테일한 증언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수고를 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질 드 레 무죄론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인용하는 것이 1992년 전직 성직자와 의원, 검사들로 구성된 모의법정이 질 드 레를 무죄로 결론 지은 모의재판인데, 21세기 현재에도 오심 사건이 간간히 터지는 마당에 500년 전 사건을 재심하는 모의재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해당 모의재판에 참석한 사람들 중 중세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역사학자의 자문을 받지도 않았다.[4] 살인의 구체적인 희생자의 수나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질 드 레의 범행 자체는 사실이라는 것이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Gilles de Rais: History’s First Serial Killer?[5]

3. 잔 다르크와의 관계

그가 잔 다르크의 최측근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잔 다르크를 사랑했고 그녀의 죽음에 좌절해서 광기에 빠졌다는 것은 창작된 이미지이다. 그는 딸 하나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잔 다르크와 어떤 관계였는지 시사하는 어떤 기록도 없다. 심지어 그는 잔 다르크의 가장 큰 정적인 대시종장 조르주 1세 드라트레무아유와도 결탁하고 있었다. 단, 그와는 사촌 관계이다. 잔 다르크가 죽고 나서 방탕과 퇴폐에 빠진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방탕하고 퇴폐했으며 잔혹한 인물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예 없는 죄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므로, 그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일부는 소위 숙청이 목적일 때만 꺼내드는 사소한 범죄 형태의 유죄였을 가능성이 높다.

연구 결과 중 몇몇은 질 드 레가 잔 다르크의 사후 정신병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는 것과, 잔 다르크의 사후 방데의 티포즈(Tiffauges) 성에서 프랑수아 프렐라티라는 연금술사에게 거액을 투자하며 연금술과 마술에 매달리는 행적 등 잔 다르크가 질 드 레라는 한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1429년, 질 드 레는 시농 성에서 소년 행색인 잔 다르크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왕세자 신분이었던 샤를 7세가 잔 다르크에게 에스코트할 기사를 선택할 기회를 주자 질 드 레를 선택한다. 샤를 7세의 명령으로 질 드 레는 군을 지휘하고 잔의 부관이 된다.

잔 다르크가 잉글랜드 측 루앙에 붙잡혀 있던 1430년 12월 26일, 질 드 레의 행적이 루앙으로부터 28km 떨어진 루비어스(Louviers)[6]에서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잔을 구출하려 한 시도의 증거라고 해석하는 연구가 분분하다.

1435년 5월 8일, 질 드 레는 오를레앙에 등장한다. 무려 2만 행을 넘는, 잔 다르크가 주인공인 《오를레앙 공략의 신비(Le Mystère du Siège d'Orléans)》 연극의 기획에 참여하고 후원자로서 손수 막대한 비용을 감당한다. 거대한 세트장과 5백 여명에 달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며, 한 번 사용했던 소품은 버리고 다음 공연 때 모조리 새로 제작하게 한다. 관객이 마시는 음료의 비용까지 부담했으니 지출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1439년 봄, 그는 남복 차림으로 잔 다르크를 사칭하는 여성(Jeanne des Armoises)에게 제대로 속아 넘어간다. 그의 휘하 소규모의 정예군을 그녀에게 위임하고 이전처럼 헌신을 바치며 함께 전투를 하기까지. 그러나 샤를 7세가 그녀의 속임수를 간파한다. 그녀는 왕의 면전에서 사실을 토로하고 대중 앞에서 잔 다르크가 아님을 고백한다. 이 사건으로 인한 질 드 레의 반응은 문서 보존이 완전치 않아서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잔의 옛 측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잔 다르크와 질 드 레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미셸 트루니에의 소설 《지독한 사랑》[7]을 읽어보도록 하자. 그러나 잔 다르크와 질 드 레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라기보단, 역사 소설에 그런 소재를 가미한 것이니 둘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원하는 바를 보지 못할 것이다.

4. 대중 문화에서

5. 질 드 레에서 모티브를 취한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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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6b6><colcolor=#FFFFFF> 소속 <colbgcolor=#fff,#1f2023>발루아 왕조 · 프랑스군
가족 다르크 가문
관련 인물 미카엘 · 성녀 마르가리타 · 성녀 카타리나
프랑스 원정군 동료 (질 드 레 · 라 이르 · 리슈몽)
적대적 인물 (헨리 6세 · 선량공 필리프 · 이자보 드 바비에르 · 피에르 코숑)
주군 (샤를 7세)
관련 장소 잔의 생가 동레미라퓌셀
오를레앙 공방전이 벌어진 곳 오를레앙 · 파테 전투가 벌어진 곳 파테
루아르 원정이 벌어진 곳 루아르 · 랭스 행진을 통해 주군 샤를이 즉위한 곳 랭스
파리 공방전이 벌어진 곳 파리 · 잔이 마지막으로 승리한 전투가 벌어진 곳 생피에르르무티에
잔이 생포된 곳 콩피에뉴 · 잔이 화형당한 곳 루앙 · 잔의 묘소 윈체스터
관련 사건 백년전쟁
관련 물건 잔 다르크의 깃발 · 생트 카트린의 검
기록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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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어록 및 편지 · 특징 · 생애 · 창작물
평가 및 여담 평가 · 의문점
창작물 잔 다르크 별도 문서 (그랑블루 판타지 · 드리프터즈 · 데스티니 차일드 · 벽람항로 · 신격의 바하무트 GENESIS · 영웅 · 오버히트 · 이나즈마 일레븐 GO · 인피니티 · 전함소녀 · 크루세이더 퀘스트 · Fate 시리즈 · 컴파스)
그 외 동음이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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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모랑시-라발의 질'이란 뜻으로 가문명이다. '드 레'는 질이 레의 남작이기 때문에 붙은 영지명이다. 물론 몽모랑시-라발 역시 질의 본가의 영지명이다.[2] 연금술사 혹은 흑마술사였다고도 한다.[3]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교수형 장면을 제외했다.[4] 또한 현대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무죄 추정의 원칙이고, 따라서 충분히 의심스럽고 정황증거가 많아도 여전히 무죄로 볼 여지가 조금이나마 있다면 현대 법조인들은 거의 대부분 무죄로 판단한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현대 모의법정에서의 무죄 판결이 질 드 레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의미할 확률은 높지 않다.[5] In modern times, revisionists have questioned whether or not de Rais was truly guilty of the crimes for which he was executed, noting that his confession was extracted using the threat of torture. Most historians who have examined the evidence from de Rais’s trial, though, continue to believe that he did in fact commit the murders.
현대에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질 드 레의 자백이 고문을 하겠다는 위협으로 강요당한 것이라 주장하며 질 드 레가 처형 당한 죄목에 대해 실제 유죄인가 아닌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질 드 레 재판의 증거들을 검토해온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질 드 레가 그런 살인들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6] 노르망디에서 북쪽 방면으로 파리에서 100km이며 2021년 기준 2만 명의 중소도시이다.[7] 원제는《질과 잔(Gilles et Jeanne)》, 이원복 역.[8] 이름은 다르지만 포지션이 질 드 레다. 본명인 '질 드 몽모랑시 라발'에서 따 왔을 수도 있다. 마술과 연관 있고, 잔 다르크와 같이 행동했고, 그녀가 죽은 후 그녀를 되살리려고 행동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질 드 레다. 다만 주인공이라 아직 원본과 같은 상황은 되지 않았다.[9] 가설 중 하나다.[10] 이름만 따온 것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