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호파 Jimmy Hoffa | |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 제임스 리들 호파 James Riddle Hoffa |
출생 | 1913년 2월 14일 |
미국 인디애나주 브라질 | |
실종 | 1975년 7월 30일 (당시 62세) |
미국 미시간 블룸필드 타운십 | |
직업 | 노동조합원 |
자녀 | 바바라 앤 크랜서 제임스 P. 호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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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미 호파는 미국의 유명 노동 운동가이며, 1975년 7월 30일에 실종되었다.흔적도 없이 사라진 美 거물 노동운동가는 어디에2. 생애
지미 호파(Jimmy Hoffa)의 본명은 제임스 리들 호파(James Riddle Hoffa)로 독일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1913년 2월 14일 미국 인디애나 주 브라질 시[2]에서 태어났으며 11살에 디트로이트로 이사 갔고 어렸을 때부터 노동 운동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때는 17세였던 1930년으로 창고 종업원 일을 했다고 한다.그가 창고 종업원으로 재직할 때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1930년대 미국에서는 노동 운동이 절정에 달했는데 그가 노동 운동에 투신한 사연도 시대적인 배경과 관련이 깊다.
그는 20세였던 1933년에 트럭 운전 노동자 파업 운동에 동참하면서 노동 운동에 투신했고 1957년 전미트럭운송노조인 팀스터스(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7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위원장을 역임했는데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협상력으로 많은 노동자들의 우상이 되었으며 그가 팀스터스의 위원장을 역임하는 동안 팀스터에 10만 명에 불과하던 조합원은 무려 23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조합으로 성장했다.
영화 아이리시맨에서는 그의 유명세를 1950년대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1960년대에는 비틀즈와 맞먹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점점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부패하였고 심지어 마피아와 결탁하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지지자들이 대부분 보수파들이었다는 점만 봐도 일반적인 노동운동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피아/역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뉴욕 5대 패밀리가 건재하던 미국 마피아의 전성기에 미국 노조는 마피아에게 장악되어 보수화되고 카르텔화된 경우도 많았다.[3] 역사적 맥락을 보면 세기말 전후로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현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강력했던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후 뉴딜 동맹의 와해, 정부와 기업의 반노동 입법, 45년 총파업의 실패,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레드 컴플렉스가 일으킨 노조 탄압과 노조 내부 분열로 인해 진보성을 상실하고 단순 이익집단화되어 버린 것을 넘어서서 그 기세가 약화되었고 상층부가 마피아에게 포섭당하기 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67년 3월 7일, 마피아와 결탁, 공금 유용, 카지노 운영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한 지 4년 만인 1971년 12월 23일에 가석방되었고#, 향후 10년 동안 조합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다시 위원장 자리를 되찾고자 노력했는데 그러던 중 1975년 7월 30일 디트로이트에서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도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법적으로는 1982년 7월 30일에 사망 처리되었다.
3. 지미 호파 실종 사건
미국의 전설적인 노조 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지미 호파는 1975년 7월 30일 오후 2시 반 디트로이트의 마커스 레드 폭스(Machus Red Fox)라는 레스토랑의 지하 주차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이날 디트로이트 마피아 간부 앤서니 지아칼로네(Anthony Giacalone),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간부 앤서니 프로벤자노(Anthony Provenzano)와 만날 계획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 달력에서 그날 지아칼로네와의 만남 약속을 나타내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프로벤자노는 팀스터스 뉴저지 지부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그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사실상 팀스터스의 2인자였다.훗날 그의 아들 제임스는 마피아들이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아 상당히 두려웠다고 밝혔는데 그에 의하면 호파 본인도 만남 시간이 다가오자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고 한다.
1975년 7월 30일 오후 2시 호파는 만남 장소였던 디트로이트의 마커스 레드 폭스에 도착해 30분 정도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아내에게 "몇 분만 더 기다렸다가 안 오면 나도 그냥 가야겠다."고 전화로 말했는데 이것은 그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남편의 목소리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어느 트럭 운전사였다. 트럭 운전사는 그가 1975년식 머큐리 마퀴스 브루엄에 타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 레스토랑 주차장을 빠져나오려고 할 때 자신의 트럭과 접촉 사고가 났다고 했다. 트럭 운전사의 말에 의하면 호파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옆에 앉아 있었으며 그들 옆에는 샷건 혹은 라이플로 보이는 총기류가 회색 담요에 덮여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호파가 누군가에게 목격된 마지막 순간이었다. 당시 호파가 탑승했던 차량은 디트로이트 마피아 간부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아들 조셉 지아칼로네의 차량이었고 운전은 호파의 수양아들 처키 오브라이언이 했다.
다음날 오전 7시 호파의 아내는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전 7시 20분 호파의 친구 린토는 마커스 레드 폭스 주차장에서 호파의 차를 발견했지만 그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린토는 경찰을 불렀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주 경찰이 투입되었고 FBI는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오후 6시 호파의 아들 제임스는 실종 신고를 했다. 호파 가족은 실종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해 20만 달러의 보상금을 걸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동 운동의 대가 지미 호파는 1975년 7월 30일 이후 종적을 감추었고 실종된 지 7년이 지난 1982년 7월 30일 법적으로 사망처리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4. 용의자
4.1. 마피아
마피아는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배후로 여겨지는 집단이다.당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미 호파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마피아 간부 앤서니 지아칼로네와 앤서니 프로벤자노를 강력하게 의심했다. 지아칼로네와 프로벤자노는 팀스터스와 매우 밀접한 사이였다. 거침없는 성격의 호파는 러셀 버팔리노 같은 몇몇 두목급 마피아는 진심으로 존경했지만 하급 마피아들은 마치 자신의 하수인처럼 부리면서 사사건건 그들의 행동을 간섭했고 반대로 팀스터스와 관계를 맺은 마피아들은 조합원들의 연금을 빼돌려 자신들의 사업 자금으로 유용했다. 이 문제 때문에 겉으로는 유대관계였지만 속으로는 사이가 단단히 틀어졌다. 호파는 마피아들이 팀스터스의 충견으로 남기를 바랐던 모양이지만 호파를 제외한 나머지 간부들은 마피아를 상당히 두려워했고 마피아는 팀스터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즉, 호파가 감방에 들어간 일은 마피아 입장에서 나름 호재였다. 후임 위원장 프랭크 피츠시먼스는 마피아의 부탁을 절대 거절하지 않는 예스맨이었기 때문이다.
마피아 배후설의 주요 범행 동기는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했던 호파가 1970년에 출소하여 다시 팀스터스 위원장에 취임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자 마피아는 이참에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호파를 제거하기로 결심했고 그를 유인해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아칼로네와 프로벤자노는 호파가 실종되었던 1975년 7월 30일 호파와 만나기로 약속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피아의 중간 간부인 지아칼로네나 프로벤자노는 지시만 하달하고 실행은 하급자들이 하기 때문에 그들은 알리바이와 상관없이 호파 살인에 관여할 수 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죄를 입증할 수단은 전무했다.
2013년 전 디트로이트 마피아 부두목(Underboss) 앤서니 제릴리가 호파의 시신이 디트로이트 마피아 두목(Boss) 잭 토코가 소유했던 농장 부근에 묻혀 있다고 증언했다. 앤서니 제릴리는 호파가 실종되었던 1970년대에 디트로이트 마피아 두목이었던 조셉 제릴리의 아들이고 잭 토코는 조셉 제릴리의 조카로 삼촌으로부터 마피아 조직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이에 FBI 주도로 조사가 진행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잭 토코는 2014년에 사망했고 앤서니 제릴리도 2015년에 사망했다.
제임스 부첼라토 노던 애리조나 대학 범죄학과 교수는 호파가 마피아 닉 리카타의 아들 카를로 리카타의 집에서 1마일 떨어진 식당에서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마피아는 당시 디트로이트 지역에 몇 개의 폐기물 소각장과 화장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호파의 시신이 이 장소들 중 한곳으로 옮겨져 처리된 것으로 추정했다.
지미 호파와 같이 팀스터스의 노조 간부이자 마피아의 히트맨이었던 프랭크 시런은 호파를 자신이 죽였다고 증언했다. 관련 동영상 실제로 프랭크 시런은 호파와 가까운 사이였고, 마피아의 지시를 받는 암살자였으며 3건 이상의 살인으로 기소된 적이 있지만 전 연방검사 제임스 코벳 같은 전문가는 마피아 지도부에서 호파 암살 같이 중요한 작업에 프랭크 시런 같은 아일랜드계를 관여시키진 않았을 것이며 호파 작업에는 이탈리아계 정규 조직원으로 이루어진 팀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앤서니 프로벤자노를 대변하는 뉴욕 마피아가 1명 이상 관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진작에 프랭크 시런은 1995년 필라델피아 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호파를 살해한 범인으로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의 살바토레 브리구글리오를 지목했다. FBI에서도 호파 살인을 실행한 인물로 살바토레 브리구글리오, 가브리엘 브리구글리오, 토마스 안드레타, 스티븐 안드레타를 유력 용의자로 여기지만 프랭크 시런은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이 호파를 살해했다고 주장을 번복했다. 상술했듯 이런 그의 주장은 전문가들에 의해 반박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망 직전에 무일푼이었던 그가 딸들에게 인세라도 남겨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프랭크 시런의 회고를 기반으로 책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책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화한 게 아이리시맨이다.[4] 프랭크 시런은 2003년에 사망했지만 FBI는 여전히 호파의 실종과 프랭크 시런을 연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합하면 이 사건의 전말은 당대 뉴욕, 디트로이트의 최고 마피아 두목(Boss)이 그의 삶이 종결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지시가 중간 간부 앤서니 지아칼로네•앤서니 프로벤자노를 통해 일선에 하달됐으며 살바토레 브리구글리오•가브리엘 브리구글리오•토마스 안드레타•스티븐 안드레타 같은 말단 조직원들이 범행을 직접 실행하였고 호파가 실종 직전 탑승한 차량에는 그가 안심하고 탑승하도록 평소 믿고 의지하던 1명 이상의 측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실체적 진실에 제일 가까운 추측이다.
4.2. 팀스터스 간부들
또 다른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바로 팀스터스의 간부들이었다. 지미 호파가 복역 중이었을 때 팀스터스는 새로운 위원장으로 프랭크 피츠시몬스를 선임했는데 1970년 호파가 출소하고 다시 위원장 자리에 복귀하려고 했다. 호파의 영향력은 아직도 팀스터스 내에서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이는 피츠시몬스와 그를 따르는 간부들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호파가 징역 8년을 선고받아 수감되어 있었을 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에게 로비를 하여 호파의 출소를 방해했다고 한다.그러나 그들의 그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파는 4년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했고 다시 위원장 자리에 돌아오려고 했다. 아직도 팀스터스에서 전설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던 호파는 조합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현 위원장 피츠시몬스와 그를 따르는 간부들은 위협을 느꼈고 호파가 위원장 자리에 복귀하기 전에 먼저 손을 써서 제거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에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 지미 호파의 수양아들 처키 오브라이언이었다. 즉, 팀스터스 간부들이 호파의 측근 오브라이언을 매수해 호파를 디트로이트로 유인했고 당시 팀스터스 지도부와 밀월 관계였던 마피아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어느 살인 청부업자를 시켜 호파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파의 마지막 모습을 본 목격자들은 호파가 오브라이언의 차를 타고 있었다고 진술했고 오브라이언의 차 시트에서는 의문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이에 경찰은 처키 오브라이언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처키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혐의를 극구 부인했고 1975년 7월 30일 그 날 자신이 차를 몰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에 호파를 태운 적은 없다고 발뺌했으며 차 안에서 발견된 혈흔은 사람의 피가 아니라 생선의 피였다고 진술했다. 1975년에는 미국에서도 아직 DNA 감정 기법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 안의 피가 정말 호파의 피가 맞는지 입증할 수 없었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오브라이언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5]
그런데 지미 호파가 실종된 지 26년이 지난 2001년에 DNA 감정으로 처키 오브라이언의 차에서 발견된 혈흔을 조사한 결과 그 피는 오브라이언의 진술과는 달리 실종된 호파의 피였음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오브라이언은 계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고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그를 불기소 처분함으로써 사건은 계속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팀스터스와 마피아의 밀접한 관계를 근거로 호파의 실종(살인)은 두 집단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5. 현황
일단 미국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확실한 물증과 목격자가 없어 그것들이 발견되지 않는 한 영원히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age(1975-07-30)]년이나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인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완전범죄라고 봐야할 것이다.한편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었던 뉴욕 마피아 간부 앤서니 프로벤자노가 1988년에 사망했고 디트로이트 마피아 간부 앤서니 지아칼로네도 2001년에 사망하면서 이들에게는 더 이상 사건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다.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가능성 중 하나로 2014년에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조카 잭 지아칼로네가 디트로이트 마피아의 두목(Boss)이 되었다. 정부로서는 잭 지아칼로네를 수사해 유죄판결을 이끌어 낸 뒤 사법거래를 통해 증인으로 돌아서게 할 수만 있다면 유력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현재로서는 그저 막연하다. 사실 앤서니 지아칼로네가 조카에게 지미 호파의 실종에 관한 중대한 정보를 얘기했는지도 불확실하다.
한편 유가족들은 호파가 법적으로 사망 처리된 지 5년이 지난 1987년에 FBI에 수사 기록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 법원에서 수사 기록 공개를 불허했다고 한다.
2019년에도 FBI는 호파의 시신이 있을 법한 장소를 발굴했다.
6. 대중매체에서
미국서는 장기 미제사건의 대명사로 꼽히며 공구리당해서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도시전설이 퍼졌고 심지어 외계인이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건대 공구리나 암매장 수준이 아니라 마피아나 노조 간부 입김이 닿는 폐차장이나 공장 용광로를 이용해 시체를 완전히 소멸시킨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Mythbusters[6]에서는 돼지 사체로 실험해서 "공구리를 당하면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눈치 못채는게 불가능하다. 설령 눈치채지 못한다고 해도 초음파 촬영으로 시체를 찾을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공구리를 당해 시체가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뉴욕 자이언츠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 초음파기기를 가져가 전체를 다 뒤졌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2012년 3월 25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을 소개했다.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는 브루스가 기적을 일으켜 복직하는 데 사용했다. 경찰견에 대해 취재하던 채널 5 방송국 기자가 자기를 깔보자, 브루스가 신에게서 받은 기적의 힘을 사용해 경찰견이 지미 호파의 시체를 찾게 한 것이다.[7] 웃긴 것은 혹시라도 지미 호파인 것을 확인하지 못할까봐 옆에서 각종 의료기록문서, 특히 치과 진료 기록들도 같이 발굴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신이 행사한 기적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
심슨 가족에서도 호머 심슨이 잠시 트럭운전 알바를 하게 되는데 졸음을 이기기 위해 기사들 사이에서 금지시되는 각성제를 먹게 된다. 그 탓에 밥줄 끊기게 생긴 트럭기사들한테 제대로 텃세를 당한다. 그때 호머를 혼쭐내 주겠다는 기사의 말에 동료 기사가 "지미 호파처럼?" 이라고 되묻자 입조심하라는 주의를 준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액션스타로 발돋움하기 전 주연을 맡은 1978년작 노만 주이슨 감독의 영화 'F.I.S.T'[8]도 호파의 삶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 왔다. 한국에는 '투쟁의 날들'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본인이 직접 나오는 건 아니지만 사랑과 영혼에서 은행원인 칼이 마피아들의 돈 400만 달러를 잃어버리는데 이걸 두고 주인공인 샘이 지미 호파처럼 될거라고 놀리는 부분이 있다. 즉 마피아들이 너를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해서 없애 버릴 것이라는 의미다.
지미 호파의 삶을 다룬 영화로는 1992년작인 "호파(Hoffa)"가 있다. 잭 니콜슨이 지미 호파를 맡았고 대니 드비토가 감독 겸 공동 주연인 바비 시아로로 출연했으나 잭 니콜슨의 연기나 전반적인 영화 내용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갈렸으며 제작비 3500만 달러를 들여 그 이하인 2839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도 실패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상술한 프랭크 시런의 이 사건에 대한 증언을 다룬 논픽션을 바탕으로 노조 간부 겸 마피아 준조직원 프랭크 시런과 지미 호파, 이들과 연관 관계에 있었던 버팔리노 패밀리의 보스 러셀 버팔리노의 삼각관계를 다룬 영화 아이리시맨을 제작했고 2019년 11월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시런 역은 로버트 드 니로, 호파 역은 알 파치노, 러셀 버팔리노 역은 조 페시가 맡았다.
일루미나티 카드 게임에서 카드로 나온다. #
7. 같이 보기
[1]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팀스터스 위원장을 1998~2022년까지 24년간 지냈다.[2] 남미의 브라질이 아니라 인디애나 주의 소도시 이름이다.[3]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공포 도시: 마피아와의 전쟁'을 보면 마피아가 왜, 어떻게 노조를 장악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4] 그래서 해당 영화에는 스코세이지의 다른 마피아 영화인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와 다르게 영화 도입부에 '실화를 기반으로 함'이란 문구가 빠져 있다.[5] 아이리시 맨에는 이를 뒤틀어서 마피아인 샐리 벅스가 왜 뒷좌석이 축축하냐 캐묻고 뭔 생선인지 종류까지 집요하게 캐묻는 장면이 나온다.[6] S02 E13 - 한국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다.[7] 그리고 그 채널 5 방송국 기자 취재 차량에서는 대량의 대마초 덩어리가 쏟아져나오게 해서 마약사범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기자가 수갑으로 결박당한 채 바닥에 엎어져서 "신에게 맹세코 전 몰라요! 모르는 일이라고요!"라고 울부짖는 게 참 웃프다(...)[8] 작중 스탤론이 이끄는 트럭기사 노동조합의 이름이기도 하다.[9] 작중 인물인 '지미'는 지미 호파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10] 지미 호파와 주변인들, 그리고 마피아 살해설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