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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2:21:54

죽음의 5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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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5가지 단계
2.1. 부정(Denial)2.2. 분노(Anger)2.3. 협상(Bargaining)2.4. 우울(Depression)2.5. 수용(Acceptance)
3. 비판4. 비슷한 사례5. 대중매체

1. 개요

Five stages of grief

스위스 출신의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1]1969년에 쓴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 선보인 모델로서,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을 5단계로 구분지어 놓은 것이다.

영어로는 각 단계들을 줄여서 DABDA라고도 한다.

2. 5가지 단계

2.1. 부정(Denial)[2]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 등 큰 충격을 받았을 경우, 제일 먼저 자신의 상황을 부정한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와 비슷한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검사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물어보면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상태가 심해지면 다른 환자와 결과가 바뀐 것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은 나을 수 있다며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다른 사람은 당사자가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다만 성급하게 당사자의 상태를 말했다가는 당사자가 더 부인할 수 있으니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후에 말해줘야 한다.

2.2. 분노(Anger)

분노의 단계에서는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왜 그 수억명의 사람들 중에 나지?" 라는 식의 말을 하며 돌봐주는 가족, 친구, 의사나 간호사, 혹은 신에게까지 분노를 표출한다. 이 시기 환자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무슨 행동을 해 주든 그게 분노로 연결되어 굉장히 다루기 어렵다. 넓게 보자면 이 단계는 자신이 갖지 못한 '여생'을 가진 일반 사람들에 대한 질투로도 볼 수 있다.

2.3. 협상(Bargaining)

상황도 받아들였고 분노도 충분히 표출했으면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상황을 미루려 한다. 이것이 협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익숙한 예로는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게요!" 이런 식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경우 생명의 연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맹세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무신론자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다.[3] 간혹 이 단계에서 장기기증을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들의 절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소망은 무시할 수도 있고, 무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무시하든, 무시하지 않든 이 단계에서 환자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단계는 짧게 지나간다.

2.4. 우울(Depression)

결국 협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라는 생각이 드는 등, 극심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 이 단계에선 증상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 환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모든 일에 초연해지고, 하루 종일 멍한 표정으로 있기도 한다. 이 단계의 우울함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자기가 죽으면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발생하는 반작용적인 우울증과 친구, 가족, 애인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발생하는 예비적 우울증으로 나뉜다.

이 단계에서 환자는 별 말을 하지 않지만, 가끔 슬픔을 표현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우울함을 예민하게 받지 말고, 최대한 부드럽게 받거나 혼자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2.5. 수용(Acceptance)

모든 감정이 지나가면 이젠 피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 조용히 아침을 맞이하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단계에선 우울하지도 않고 활기차지도 않으며,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좋은 기분인 것은 아니고, 이때까지 겪었던 모든 감정들 때문에 지친 것이다. 환자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고 말수가 줄어들며, 침묵이 소통을 대신하게 된다.

이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그 전 단계들을 거쳐왔다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이 끝까지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역으로 자신이 죽은 후 남겨질 사람들의 슬픔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3. 비판

임상심리학자 스캇 릴리언펠드(S. O. Lilienfeld)는 자신의 책 《유혹하는 심리학》(Common Traps in Psychology)에서 열 번째 대중심리학적 오해로 죽음의 5단계를 들었다. 실상 이 5단계 이론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바 없고, 편향표본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표준화되지 않은 자의적 측정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욕구계층이론 등의 "단계" 논리를 갖고 있는 여러 가설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5단계 역시 단계를 건너뛸 수 있는지, 단계를 되돌아갈 수 있는지, 단계 간의 경계가 명확한지 등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기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Maciejewksi, Zhang, Block, & Prigerson, 2007.에서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의 첫 반응이 오히려 수용이더라는 연구가 있었으며, 이후 수용의 정서가 점차 지배적이게 되어 갔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전부 다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5단계가 일종의 규준 내지는 일반적인 법칙처럼 기능함으로써 "어, 나는 왜 다음 단계로 제대로 넘어가지 못하지?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하는 생각으로 이중의 괴로움을 줄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에서는 저자가 죽음의 5단계를 거꾸로 겪었다.

논란이 있지만, 죽음의 심리 단계를 표현한 이론이 이것밖에 없다. 그래서 간호사 국가고시에선 단골로 출제되며 정신과에서도 많이 다루고 호스피스에서 필수적으로 다룬다.

4. 비슷한 사례

죽음뿐만 아니라, 되돌리기가 매우 어려우며 대부분 불운하거나 불행한 사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조우성 변호사의 수필집 후기에 따르면 소송을 당한 사람의 감정 단계도 이것과 비슷하다. 처음에 소송을 당하면 충격상태(쇼크)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 좀 시간이 지나면 화가 나서 내가 얼마나 잘 해 주었는데 나에게 이럴 수가 있냐며 흥분하고 화난 상태가 지속된다.
다음 단계는 죄책감으로 운명론자가 된다. 내가 원래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든가, 전생에 죄가 많아서 이 시련이 왔다거나 좀더 잘 해 주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감정이다. 피소를 당한 반성이라기보다 운명론적 죄책감이나 자책감이다. 다음 단계로 우울감이다. 나는 되는 일이 없다거나, 세상은 살 만한 것이 못된다거나,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극도로 슬픈 상태가 된다.
일부는 이런 슬픔을 이겨내고 피소를 수용하거나 판결을 수용하면서 삶을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트라우마가 남지 않는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기에는 거의 불가능하거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충격상태에 머무르게 되고, 어떤 사람은 화난 상태에 머무르게 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오기로 항소를 하거나, 감정이 상해서 괴롭히기 위해 소송을 전개하기도 한다.

연애에서 실연을 당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농담이지 하면서 믿지 않고, 쇼크를 받은 멍한 상태가 오고, 화가 나고, 죄책감을 느끼다가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의 바닥을 차고 나와야 해결된다.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도 같은 단계를 가진다.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 믿지 못하고, 의학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부정하게 되고,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면서 화가 나고, 나의 죄로 자식이 하면서 탓을 따지며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 왜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가 하면서 용기를 내고 오기가 생기면 우울에서 탈출한다. 선천성 장애라면 부모가, 후천성 장애라면 장애인 당사자가 이런 감정 단계를 거친다.

5. 대중매체

1979년에 방영된 《All That Jazz》라는 영화는 죽음의 5단계에 맞춘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파일:external/pbs.twimg.com/Ci6KC-5UYAI5pNf.jpg

해당 짤은 명탐정 몽크.

이 장면에서처럼, 해당 모델의 시초와는 별개로 현대에는 슬픔의 5단계로 쓰기도 한다.[4] 실제로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도드(Maureen Dowd)는 2008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했을 때 그녀의 심경변화를 DABDA에 기초하여 설명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대중적으로는 여러 에세이스트나 컨설턴트들이 기업이나 정권의 몰락을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인용되는 것은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소개된 모델로, 1.약간의 성공을 맛본 후의 허영심 2.과도한 욕심 3.위기 부정 4.추락 후 구원 갈구 5.몰락의 수용 순이다.

파일:죽고싶지않아유유.jpg
한국에서는 이를 설명하는 심슨 가족#시즌 2 에피소드 11에서 나온 밈이 유명하다. 그리고 무한도전무도드림 특집에서, 마리텔 PD 두명이 정준하를 출연 시킨다는 장면이 나오자 해당 심슨 짤을 예시로 만들어 패러디 하였다. 다만 둘 다 3단계와 4단계 순서가 바뀌어 있다.

파일:짜장면 5단계.jpg
무한도전 인생극장 Yes or No특집에서도 정형돈이 '부정-수용-협상-우울-분노'순으로 보여준다.

로봇 치킨 에서도 해당 내용을 영상으로 패러디 했다.

이 이론이 죽음뿐만이 아니라 실연, 좋아하던 컨텐츠의 사망선고 등의 큰 충격을 받은 상황에 빗대기 매우 적절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터넷 게시판 등지에서 패러디도 간간히 보이고 있다. 부들부들하는 상황을 일견 그럴싸해보이는 심리학적 이론을 거론하여 설명한다는 상황이 웃음 포인트라고 볼 수 있으며, 충격을 받은 사람을 놀리는데 주로 쓰인다. (소위 '부들부들잼'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 앞에서 심슨 가족에서 나온 장면을 캡처한 사진은 대사만 바꾸면 훌륭한 패러디가 되기 때문에 짤방으로서의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고 있다. 다만 사람이 죽는 거에 빗대서 하는 농담인 만큼 사실 상당히 조심해서 써야 할 말이다.

마다가스카의 펭귄에서도 응용했다. 에피소드 내용이 센트럴 파크 동물원의 사육사 앨리스가 한 '우리 동물원의 펭귄은 수컷 3마리, 암컷 1마리'라는 말에 동요한 펭귄들이 DNA 검사를 받았는데, 스키퍼가 암컷 판정을 받았다. 덕분에 코왈스키가 이를 응용하며 앞 일을 예지했는데, 스키퍼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다른 검사를 했으나 그 검사도 암컷으로 나온 바람에 부숴버리며 분노하다 프라이빗에게 검사 결과를 바꾸자는 말을 꺼내는 둥, 절망해서 통곡하다가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고 한동안 암컷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검사 결과가 나오던 중 검사기가 멈췄던 것뿐이고, 스키퍼도 수컷이 맞다는 것이 밝혀져 원래대로 돌아온다.

인디 게임 GRIS는 죽음의 5단계를 시청각적으로 풀어낸 플랫폼 게임이다. 부정은 회색 폐허, 분노는 돌풍이 몰아치는 붉은 사막, 협상은 생명체들이 가득한 초록색 숲, 우울은 우울한 분위기의 파란색 바다, 그리고 수용은 노란색 하늘정원[5]으로 이루어진다.

GTA 5에서도 잠깐 언급되는데, 트레버 필립스죠니를 밞아죽인 후 그의 일행들을 찾아가서 죠니를 찾는 동료 폭주족들에게 자신의 신발 밑창에 붙어있는 조니의 뇌 조각을 향해 고인드립을 시전하면서 그가 죽었다는 걸 알리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폭주족들을 향해[6] "마음에 드는군. 부정! 큰 슬픔을 직면했을 때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이지."라고 말한다.

영화 크루엘라에서도 언급되는데 여기서는 슬픔의 5단계로 나온다.[7]

틴 타이탄 GO!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나오는데 사이보그와 비스트보이가 소파에 계속 달라붙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자 로빈이 소파를 양로원에 보내고 런닝머신을 들여놓자 사이보그와 비스트보이가 이 죽음의 5단계를 겪는다.


[1] 본인도 본인이 제시한 이론의 5단계들을 똑같이 겪었다. 지켜본 사람들이 '당신은 안 그럴 줄 알았다, 앞선 단계들 없이 단박에 수용할 줄 알았다'고 놀라자 "지금까진 다 남의 죽음이었잖아. 막상 내 죽음이 닥쳐 봐, 그게 되나."라고 대꾸했다고.(출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138쪽)[2] 내지는 충격과 부정(Shock and Denial). 아래의 충격을 받은 것까지도 단계에 포함할 경우엔 충격과 부정으로 기술한다.[3] 존 폰 노이만이 좋은 사례다. 무종교인이었지만 췌장암에 걸려 죽기 전 파스칼의 내기 논리에 따라 가톨릭에 귀의했다.[4] 개요 문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현대에 해당 단계를 부르는 영문 명칭은 "Five stages of grief"로, grief는 (주로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슬픔, 비탄 등을 뜻한다. 죽음에도 쓰일 수 있긴 하지만 죽음에만 국한된 용도는 아닌 셈.[5] 그 덕분인지 노란색이 여태까지 나온 색채들 중 유독 밝게 나온다.[6] 폭주족들 중 테리가 "거짓말!"(Bullshit!)을 외치면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7] grief 자체가 깊은 슬픔을 의미하므로 딱히 다르다고 할 순 없다.